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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면서 없는것...

바람이 |2004.04.06 00:58
조회 33,250 |추천 0

지금 봄이 왔나요?

전엔 계절이 바뀌면 계절이 바뀌는 냄새가 났었는데..ㅋㅋ


 

그냥요...넋두리같은 이야기좀 하고 싶어서요.

제겐 언니가 둘있지요. 제가 막내이니 모두 딸만 셋입니다.

하지만..지금은 언니들을 보고 살지않습니다. 전화나 방문 전혀 연락없이 사는게 2년쯤되었네요.현재 홀어머니를 제가 모시고 있구요.


 

저희부모님은 제가 아기였을적에 별거를 시작하셨습니다. 합의에 의한 별거가 아니라,

아버지의 폭력과 난폭함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가 젖먹이였던 저만 들쳐업고 야반도주 하셨습니다. 사회생활경험이나, 돈한푼 들고나오지 않으신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모진 고생을 하셨지요.


 

아기인 저를 걸려서 미역행상서부터, 공장일, 가정부, 포장마차.. 제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니..외로운기억밖엔 나지 않습니다. 네살때인가..저를 보아줄사람이 없어서 어머닌 방문을 밖으로 잠그고 일을 다니셨죠. 저는 방안에 갖혀서 혼자서 엄마놀이..그리고 갯수맞지않은 화투를 보면서 똑같이 따라그리며 그림을 그리고 놀곤 했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그림으로 먹고 삽니당..ㅋㅋ)

어릴적..저희엄만 두고온 언니들을 참 보고싶어 하셨어여. 그럴때마다..힘든 생활고 때문인지.. 제가 엄마인생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때문이셨는지.. 저를 때리곤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저랑 두살터울인 둘째언니가 우리집에 드나들기 시작했고..(그때언니는 못말리는 반항아였습니다.) 어머닌 제게 공락금을 주시지 못하셔도..어떻게든 둘째언니 용돈을 마련해 주셧었죠.그때..둘째언니는 엄마에게 당당하게 쌍소리와 포악을떨더군요. 엄마가 두고 가버렸다는것에 대한 원망, 엄마에 대한욕들..아무소리도 못하는 엄마를 전 이해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고3때 아버지가 돌아가셧죠..전 그때서야 아버지 영정을 보며 아! 울아버지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사실..돌아가셨다는 아무런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15년동안 엄만 키우지 못한 자식들에게 무시와 설움을 많이 당하셧죠. 제가 보기엔 그랬습니다. 특히 작은언니의 악다구니, 저는 그런모습의 언니와 함께하려는 엄마도 이해 할 수 없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엄마에 대한 언니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힘들었던것은 엄마와 나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초등학교때부터 죽음이란게 무엇인가를 고민할만큼 나역시 외로움과 가난이 무엇인가를 알기에.. 이해는 아니더라도..엄마를 힘들게 하는 언니들에게 전 분노를 느꼈었습니다. 특히 아버지 돌아가시자 마자 재산분배를 해달라고 달려들던 언니들..



그러다가..10년전쯤에 정말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큰집제사쯤에 음식을 준비하던중 저희 어머니께서 큰집언니에게 뭘좀 나무라셧나봅니다.

제사준비를 마친후 어머닌 집으로 돌아오셧고, 잠시후에 큰집언니들 둘이서 저희어머니집으로 들이닥쳤습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어머니(작은어머니)를 때리기 시작하더군여. 말리던 저도 함께 맞았습니다. 한언니는 엄마를 바닥에 뉘고 어머니배를 깔고 앉아서 제 어머니의 뺨을 이리저리 때리고 있었고, 한언니는 허리띠를 푸르더니 그것으로 제어머니께 채찍질을 하려고 하더군여. 입에 담지못할 쌍소리를 해가면서요.. 그러길 30분..저의 친언니들과 큰어머니가 오셧는데.. 큰어머니나, 저희 친언니들 누구하나 그 언니들을  나무라거나 하질 않더군여. 저의 작은 언니..팔장을 끼고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저희어머니 새끼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 저또한 온몸에 멍이들고, 제가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갔더니, 온몸이 시커멓게 멍든 저희어머니를 보시고 의사 선생님께서 교통사고 당했냐고 물어보시더군여..


 

그때...저는 제 언니들을 버렸습니다.
마음속에서 그나마 갖고 있던 제 어머니의 딸들이란 생각까지 모두다..



저 홀홀단신으로 미국에서 혼자 독학하면서 힘들게 공부할때...

포기하고 싶을때마다..엄마생각하고.. 어머니를 때리던 언니들 생각하면서 이 악물었습니다. 두 언니들이 어머니곁에 살고 있었지만 저 미국에서 고학하면서도 제 어머니께 생활비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저 미국에 있는동안 안부전화 한번 없던 둘째 언니, 제게 딱 2번 전화했었습니다. 차사고 나서 해결해야 하니, 돈좀 해달라구요. 저 그때 식당에서 시간당 5불씩 받으면서 벌었던돈 3000불 보내줬습니다. 또한번은 가게 한다고 700만원 해달라고..
그때..제가 학비를 벌어서 생활하고 있는것을 잘 알고 계셨던 분께서..물어보시더군요..
"가족이 맞니?"


제가 비행기표를 마련해서 어머니를 미국에 다녀가시라 할때에도 70이 넘으신 엄마혼자서 비자만들고 비행기표끊고 전에 사귀던 남친이 공항까지 모셔다 드렸야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 비행기표 끊으시면서 고속버스인줄 아시고 편도를 끊으셨더군요. 제가 한국에 전화해서 다시 끊었지만요. 그때 저희 어머니 둘째언니랑 함께 살고 있었고, 큰언니 같은 동네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6년만에 한국돌아오자마자..저희어머니..둘째언니몰래 옷보따리 하나들고 제게로 도망 오셨습니다. 도저희 둘째언니랑 못살겠다고..10년전 그사건이후에 제 어머니께 그랬습니다.나에겐 형제가 없다고..나혼자라고생각한다고 저희어머니께서는 업보라고.. 엄마가 감당하셔야 한다고 언니들의 그 무시와 냉대 속에서도 언니곁에 남으셨죠. 둘째언니 이혼하고 지금 한참어린 남친이랑 엄마집에 들어와서 삽니다. 

 


지금도 어머닌 새벽기도를 하십니다. 기도하시는 수첩에 보니, 큰언니 작은언니, 그 아이들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켜놓고 기도를 하시죠. 저 지금도 그 악몽을 꿉니다.

저희 어머니 몸은 여기계시면서도 늘 언니들 생각을 하시나봅니다.



저는 결혼도 하지않고 자식도 낳아보질 않아서 부모가 갖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보다 더 불행했던 제 친구들도 세월이가고 자식낳으면 부모에 대한 원망도..어느정도는 부모를 이해하던데..저희 언니들은 별종들인가 봅니다.

 


언젠가 제가 엄마께 물어본적이 있습니다. "엄마는 나도 힘든거 알아"?
제 물음에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넌 혼자서도 잘하쟎아.."
사실..저 혼자서 잘한게 아니었어요.



저역시 너무도 힘들었다는걸...

4살때..방안에서 혼자서 너무도 무서웠다는걸..

12살때 자살결심을 했었다는걸..

공락금 해결하기 위해서 선생님들 구두를 닦아야했다는걸..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싸온 친구들이 너무도 부러웠다는걸..

미국에서 공부할때...혼자서 악착을 떠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고아인줄 알았다는걸..

7년간을 사랑하던 사람의 엄마가 홀어머니의 딸이라서 안되겠다고 한걸..

저도 엄마에게 기대고 싶었다는걸..

아버지가 필요했었다는걸..

지금도 가끔 언니들이 엄마에게 악다구니를 쓰듯 저도 아버지에게 왜 이렇게 밖에 될 수 없었는지..따져보고 싶다는걸..

지금도...가슴이 시리다는걸..

언니들이 너무도 밉다는걸..

 

내가 혼자서 해내었던건 내가 용감해서도 씩씩해서도 아니라..

아무도 기댈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란걸..
지금도 사는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는걸..

어머닌 알고 계신지요..

 

 

p.s. 어제 저희어머니께서 어떻게해서 둘째언니와연락이 닿으셧나봅니다.

저는 아직도..언니들을 볼 생각도 없구요. 앞으로도 볼생각이 없어요. 저희 어머니께서

다시 언니들한테 가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러실경우, 어머니조차 보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가슴에 멍울이 많이 진것같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꿈을 꾸고 놀라는것을 보면요..제가 이러는것들이 생각이 좁아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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