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 : 고된 훈련
이스마엘은 소년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투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 다들 여기서 뭣들 하는 것이지? 내일 훈련에 늦지 않으려면 어서 일찍 가서 쉬도록 들 해라.”
만장일치로 겁먹은 체 긍정을 표하는 다른 아이들을 뒤로 한 채, 그는 잠시 소년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천천하면서도 위협적인 어조로 덧붙였다.
“그리고 너… 엄살 따위 피워 동정심을 얻을 생각은 집어 치우고… 내일부터 훈련에 임해야 할 테니 마음의 각오 잘 해두고 있어라…”
이윽고 무엇이 분한 듯, 약간동안의 침묵을 뒤로 한 체 유유히 빠져 나가며 중얼거렸다.
“내가 잠시 방심했다고 들떠 있지 않는 게 좋을 게다… 다음에 만나거든… 두 번의 기적은 없을 테니까…”
예전처럼 존댓말을 쓰지 않는 그의 말투는 한층 더 차갑게만 느껴졌는데, 아마도 이스마엘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데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소년의 뇌를 스치고 갈 정도였다.
바야흐로 이스마엘이 자리를 비우자 나머지 아이들도 각자 헤어질 채비를 시작 했는데, 소년은 직업 별로 다른 기숙사를 쓴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처음 알았다. 어찌 됐건, 소년 또한 몸이 좀 나았는지, 쉽사리 담당 치료사에게서 퇴원 허락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묵묵히 기사도 학생인 다프네와 맥심을 따라 어디로 인가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 하루는 긴장과 공포, 그리고 안도감의 연속이라 할만큼 피로한 하루였다. 소년은 자신의 방으로 보이는 듯한 곳에 친구들이 그를 인도하자 마자, 다른 생각도 없이 픽 쓰러지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심신이 매우 지친 와중에도, 긴장을 잃지 않은 탓일까. 소년은 다음날 새벽 매우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 그는 순간 자기가 어디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이윽고 여기는 자신이 이제부터 살아야 할 기숙사 안임을 상기하였다. 어제는 워낙 기력이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따라 왔지만, 그제서야 소년에겐 이 곳이 어떤 곳인가에 관한 궁금증이 들었다. 옷을 갈아 입은 그는, 만일 사태에 대비해 검을 등에 멘 뒤, 유유히 방을 빠져 나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맑은 정신으로 주위를 살펴보니, 어제도 이 길을 왔었나 싶을 정도로 신비롭고 새로운 풍경의 연속이라 표현함이 옳았다. 그의 방 문은 은은한 촛불과 화려한 그림들로 장식 된 복도와 통해져 있었는데, 그 복도를 향해 쭉 걸어가자 자신 방 것과 비슷한 다수의 문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문들을 더 유심히 살펴보자, 제각각 ‘다프네’, ‘맥심’ 등의 익숙한 이름을 비롯해, ‘실리앙’, ‘미테르’ 등 덜 익숙한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이, 다른 학생들의 방인 듯 하였다. 이윽고 복도의 맨 끝에 있던 방에는 ‘이스마엘’ 이라는 이름이 큼지막 하게 걸려 있었는데, 이를 보자 소년은 속이 뒤틀리는지 가속도를 붙여 복도를 빠져 나왔다. 이어서 소년은 어제 입학 시험을 치루었던 그 큰 방 한가운데 도착 하였다. 비록 새벽이라 어둡긴 하였지만, 다시 끔 보이는 기사, 궁수, 그리고 마법사 영웅들의 동상들은 하루 사이에 더욱 낯익게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인기척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허허벌판과 같은 그 거대한 방은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다. 어찌 됐건, 방금 온 길을 제외하곤, 또 두 갈래의 길이 있었는데, 예감상 각각 마법사와 궁수들의 기숙사로 향하는 곳이었다. 소년이 문뜩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무렵, 낮으면서도 음침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왜… 이상한가?”
그는 다름 아닌 이스마엘이었다.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소년을 노려보다 말을 이어갔다.
“어제 들어온 문이 없어졌음을 느꼈겠지… 암, 그렇고 말고. 이 방은 로엔 사관 학교를 위해 비밀리 만들어진 장소이다. 그랑카의 암살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매우 엄격한 비밀 절차를 거치지…”
이해 못하겠다는 소년의 표정을 읽은 그는 한심하다는 투로 쏘다 보며 구체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말하자면… 바깥 세상으로 통하는 문은… 사범들이 주문을 외우기 전까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야…”
그는 잠시 헛기침을 하였으나, 돌연 듯 생각이 난 것이 있다는 투로 말하였다.
“또한 눈치 챘을지 모르지만… 사관 학교는 이 방을 비롯해… 각 직업별 기숙사 셋이 전부이다… 허무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기서 로엔의 인재가 성장을 해가는 것이 또한 관례이지… 아마도 오늘부터 너는 지옥이 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졸업한지 상당히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이윽고 그가 증오스러운 눈초리로 슬쩍 째려보더니 말을 맺었다.
“폐하의 명을 받들어 ? 아주 특별히 - 당분간 여기서 생활하게 된다.”
소년은 귀찮은 듯 그 말을 흘려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오르를 비롯한 인원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하였다. 졸린 눈을 부비적 거리며 지팡이를 들고 온 소피아는, 소년을 보자 매우 반갑다는 듯, 손을 크게 휘저으며 방긋 웃었다. 소년이 대답을 해주려던 찰나, 그녀는 옆에 있던 이스마엘의 모습이 눈에 띄자, 언제 그랬냐는 듯 겁먹을 투로 동작을 멈추었다.
한 시간 후가 되자,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삼십 여명 정도 되는 로엔 사관 학교 학생들이 모두 집합 하였다. 그러자 언제 와 있었는지, 크리스토퍼가 그의 특허인 위엄 있는 목소리로 차근차근 설명을 해 내갔다.
“모두 집합 했겠지? 그렇다면 하루 일과를 시작하도록 하겠네.”
그 말과 함께 소년의 사관 학교 첫 경험은 시작 되었다. 훈련은 각 직업마다 달랐지만, 날이 저물 무렵엔 쓰러지는 학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쉬운 쪽은 한 군데도 없는 것이 분명하였다.
기사 지망생들의 첫 과목은 창 다루기였다. 열명 남짓한 학생들에게 각자 아홉 자는 되는 듯한 길고 무거운 창이 주어졌다. 이어서 크리스토퍼의 시범에 맞추어 여러 동작들을 연습하게 되었는데,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지, 작은 오차가 있을 때마다 크리스토퍼의 벼락 같은 호통 소리가 이어졌다. 소년은 들고 있기도 버겨운 이 창을 어떻게 돌리는지 의문만 들 뿐, 동작을 흉내 내는 것은 엄두도 못 내었다. 물론, 이에 사범들의 질책은 늘어만 갔다.
이어서 다음 훈련은 방패의 사용법에 관한 이론에 이은 실습이었다. 이는 궁수도 사범인 아스텔의 화살 두 개를 백 보의 거리에서 막는, 매우 간단한 연습이었지만, 실제로 이를 해내는 학생들은 상당히 드물었다. 아스텔은 활의 명수답게, 한 번에 세 대의 화살을 동시에 날릴 정도였는데, 한 번이라도 목표물에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여러 기사도 학생들이 시범을 보였으나, 더러는 실패하고 더러는 성공 하는 게, 특별히 성공 여부에 대해 왈가왈부 하기 힘들었다. 이윽고 소년 차례가 다가 왔다. 소년은 최선을 다해 집중을 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어느새 시위 소리가 살짝 들렸나 싶더니, 하얀 빛 줄기는 어김 없이 그의 무릎을 맞고 튕겨 나갔다. 비록 화살 촉을 뺀 단순한 나무 조각에 불과 했지만, 무릎이 깨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게, 그제서야 소년은 말로만 듣던 활의 위력을 실감할만한 고통을 느끼며 무릎을 움켜잡고 신음하였다. 아스텔은 냉정하리만큼 차가운 모습으로 넘어진 그를 향해 또한 대의 화살을 날렸다. 그 소리에 놀란 소년은 무심코 방패를 들어 머리를 감쌌으나, 화살은 방패를 살짝 스치고 이번엔 그의 오른팔에 강타를 했다. 순간 소년은 거대한 망치가 그를 두들긴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싸늘한 바닥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 소년은 겨우 일어날 수 있었으나, 숨돌릴 틈도 없이 다음 훈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는 그나마 가장 자신 있던 검술이었으나, 실제로 해보니 이 또한 만만치 않자 소년은 거의 좌절 상태에 빠질 뻔했다. 찌르기와 베기 같은 기본 동작으로 몸을 풀었나 싶자, 어느새 공중 이단 돌려 베기, 삼 연타 찌르기 등 고 난이도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처음의 자신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의 동작마다 손발의 움직임이 어색한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이어지는 순서는 마법 방어술 이었다. 이는 후천적인 다른 기술과는 달리, 어느 정도 타고 나야 했기에 그나마 부담이 적었는데, 그래서인지 소년은 이 분야에서만큼은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아이네스가 구석마다 소환한 수많은 불 함정들을 차례차례 통과 하는 것이 그날 훈련 내용이었는데, 조금만 불이 닿으면 비명을 지르는 여느 학생과는 달리 소년은 약간 뜨끔 거리는 고통만 느낄 뿐, 무난히 헤쳐 나가, 그날 처음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 외에도 도끼 다루기, 표창 던지기, 말 타기는 물론, 어느 정도의 기초적인 활 쏘기 및 마법 연습을 하였는데, 이들 하나 하나가 너무 힘들어 몇 번이고 쓰러질 고비를 겨우 참아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그 하루가, 그 동안 자신이 살아온 모든 세월을 합친 것보다 길게 느껴지는 자신을 돌아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지나치게 무리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저녁을 허겁지겁 먹은 그는, 자신의 방에 도달하자 마자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앞으로 얼마 동안 이런 생활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죽을지언정 물러나지 않겠다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함께, 최대한 많이 배워 언젠가 아이젠의 복수를 하고 말겠다는 불타는 집념이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루하리만큼 반복적인 생활이 계속 지속 되었다. 소년의 인생에서 자고, 먹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고된 훈련만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뇌가 단순화 되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는 아이젠을 비롯한 자신의 짐을 잠시나마 잊는 수단이 되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단, 달라진 점이라면, 날마다 소년의 실력은 수직 상승을 한다고 볼 만큼 확연히 차이가 눈에 띄었다.
한달 정도가 지나자 어느새 그의 창 동작은 봐 줄만 하게 되었고, 간혹 가다 아스텔의 화살이 막히는 경우도 발생 하였는데, 이때마다 주위 아이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말이란 동물을 처음 접해보던 소년은,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그럭저럭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였다. 또한 검술과 마법 방어 분야에선 주위 동료들을 능가하는 뛰어난 기질을 보였으며, 나머지 과목에서도 이제 꼴지는 면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리 되어, 모든 생각은 접고 그렇게 지긋지긋한 인생에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사관 학교의 분위기로 봐서는 그다지 특별한 일은 없는 듯 하였다. 단 한가지 이상한 점이라면,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 사관학교 사범들이 한 시간이 지난 시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낌새를 눈치챘는지, 웅성거리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이스마엘의 눈은 왠지 긴장한 기색을 역력히 보이고 있었는데,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반나절이나 지났을까, 지루하게 엎어져 있는 학생들도 더러 눈에 띄었고, 더러는 불평찬 목소리로 불만을 나타내고 있었다. 소년이 그 광경을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던 찰나였다. 큰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어느새 바깥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들 늦으셨지?”
- “그러게 말이야. 사범님들이 이렇게 늦으면 우린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그러나 불평을 일삼는 일반 학생들과는 달리, 이스마엘은 드디어 기다릴게 왔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크리스토퍼가 평소와는 달리 창백한 얼굴로 들어오자, 주위의 소란은 일시적으로 잠잠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리둥절하던 소년은, 그의 인생을 확연히 뒤바꿀 만한 일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비로서 전투가 시작된 그날… 아마 나의 인생에 한 획을 긋고 있었겠지…”
(아발랑슈의 일기 제 36쪽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