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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 Avalanche [11] : 전투의 시작

정화니 |2004.04.06 03:07
조회 152 |추천 0

제 11장 : 전투의 시작

             크리스토퍼는 여전히 엄한 얼굴로 그의 제자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왠지 평소와는 달리, 애정이 섞인 듯한 눈초리였는데, 이윽고 그가 망토를 벗어 던지자 주변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년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깊은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크리스토퍼의 오른팔을 볼 수 있었다. 한동안 다들 얼어 붙는 얼굴로 긴장한 체 그의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스토퍼는 침통하면서도 괴로운 어조로 나직이 알려주었다.

 

           “기어코 전쟁이 일어났어… 그랑카와 그 연합군들이 대군을 이끌고 로엔으로 진격 중이다.”

 

그 놀라운 소식에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존재가 잊혀지고 있던, 역사 속에서만 언뜻 듣던 그랑카 군이 오고 있다니 무리도 아니었다.

 

             “적의 숫자는 대략 어느 정도 입니까?”

 

             이스마엘은 올 것이 왔다는 듯, 덤덤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러자 크리스토퍼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 지더니, 큰 결심을 한 듯 침울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랑카 군 이 만을 비롯해 그 연합군 오 천이라는 소문이 지배적이네.”

 

그러자 이스마엘은 알 수 없다는 어조로 되물었다.

 

“그 정도라면 로엔에서도 간단히 처리 가능한 숫자 아닙니까? 네미엘과 게리온의 영주들은 무엇을 한다는 말입니까?”

-           “그들은 이미 그랑카군에게 대패해 목이 날아갔다네.”

 

그러자 그 엄청난 소식에 웅성거리는 아이들을 뒤로 한 채, 크리스토퍼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간다는 얼굴을 하는 이스마엘을 향해 나직이 설명했다.

 

“그들은 단순히 수만 많은 것이 아닐세. 어디서 숨어 지냈는지 모르지만, 훈련이 매우 잘 되 있는 것으로 봐 오랜 기간 동안 준비 해온 것이 틀림 없네. 놀라운 것은 완전히 멸망한 줄 알았던 에이메르 기사들 오십 여명이 선봉을 맡고 있는다는 것일세. 게다가, 역사 내내 항상 중립만을 고집해왔던 ‘라미안’ 소속 마법사들 몇몇이 고향에서 나와 그들을 돕고 있다는 정보도 있었네…”

 

그 말에 누구보다 놀란 것은 소년 자신이었다. 그는 고대의 책 속에서 ‘라미안’ 인들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명성은 에이메르와 버금갈 정도로 항상 매서운 실력을 과시하곤 했다. 넋 나간 채 설명을 듣고 있던 소년은, 이어지는 크리스토퍼의 말에 번쩍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나 또한 폐하의 영을 받고 ‘로엔의 엘리트 기사단’ 소속 수십 명과 군사를 이끌고 네미엘을 구원하러 갔으나… 적들의 매복에 걸려 … 로엔군은 다시 한번 뭉그러렸다네…”

    -   “그렇다면 참모들의 결정은 어떤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까?”

-           “적들은 사상 최고라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이네. 전국에 비상령을 내리고 슈델리안 군사들을 전부 집결 시키기로 했다네. 적들은 정면으로 오지 않고 여덞 갈래로 군사를 나누어 오고 있다네... 이미 일곱 군데는 맞서 싸울 군대와 기사들이 보내졌지만… 문제는… 나머지 한 군데는 더 이상 보충할 인원이 딸린 다는 것일세…”

 

그 말과 함께 다소 망설이는 크리스토퍼를 보자, 이스마엘이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분연히 외쳤다.

 

           “나라가 오락가락하는 이때 어찌 감히 목숨을 아끼겠습니까? 로엔의 이스마엘. 기꺼이 제 한 목숨을 로엔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그러자 깊은 감명을 받은 듯, 키오르 또한 그의 지팡이를 치켜 들며 따라 다짐했다.

 

“저 또한 따라가겠습니다!”

 

가장 으뜸 되는 두 명이 지원하자, 나머지 학생들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저희 또한 뒤쳐질 수는 없습니다!”

 

크리스토퍼는 감동의 물결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으나, 그는 공과 사를 엄하게 구분할 줄 아는 이었다. 이윽고 은은하면서도 위엄 있는 말투로 그가 당부했다.

 

“너희들 모두가 이토록 진심을 다해 따라주니 사부로서 정말 뿌듯하구나… 그러나 이것은 지금까지의 훈련과는 엄연히 다른 것을 냉정히 깨우쳤으면 한다. 목숨을 잃더라도 조국의 번창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각자 가장 자신 있는 병기 및 말을 챙겨 해가 저물 떄 까지 … 로엔의 광장으로 집합하길 바란다.”

 

소년은 한편으로는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끈임 없이 교차됐다. 조용히 기숙사에서 그 동안 장만한 은빛 갑옷과 투구를 눌러 쓰곤, 아이젠의 보검을 허리에 매며 맹세했다.

 

“나의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한이 있더라도 후회는 없다…”

 

           이윽고 준비를 마친 그가 사관학교의 큰 방에 다다르자, 그 동안 정들었던 동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여느 때보다도 빛났다. 여전히 차가운 눈매로 소년을 훑어보던 이스마엘은, 그의 모습을 보자 적대심이 약간 수그러지는 듯 하였고, 이윽고 차가운 목소리로 모두에게 명을 내렸다.

 

“모두들 준비 됐으면… 마구간에서 각자 말을 빌려… 광장에서 보도록 하겠다.”

 

슈델리온의 광장. 어느새 해는 서서히 지기 시작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크리스토퍼는, 그의 애제자 삼십 여명이 늠름한 모습으로 말을 타고 등장하자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는 듯, 말을 잇지 못하였다. 애타게 왕의 명령만 기다리던 찰나, 큰 나팔 소리와 함께 말발굽 소리가 일더니 몇 천은 되는 듯한 군사들이 이르렀다. 이윽고 왕의 사신임을 밝힌 자가 크면서도 뚜렷한 목소리로 글을 읽어나갔다.

 

“친애하는 로엔의 후예들이여. 어느새 적군은 슈델리안에서 불과 이백 리 떨어진 곳까지 도달하였다. ‘피레네’ 에서 급한 구원을 거듭 요청하는 바, 오랜 회의 끝에 ‘로엔의 엘리트 기사’ 크리스토퍼를 비롯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사관 학교 용사들의 출전을 허락하노라. 그대들은 당장 삼천의 병사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레네로 향해 속히 적군을 궤멸하고 나라의 위기를 구해주기 바란다. 부디 짐의 기대에 허물이 없도록 하며, 온 나라가 그들만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은 로엔의 자랑임을 한시도 잊지 않기 바란다.”

 

사신이 왕의 영을 전달하자, 크리스토퍼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듯, 뭐라 대답하는 대신 뒤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명령했다.

 

“로엔의 군사들이여! 앞으로!”

 

그 외침 소리와 함께 그가 먼저 말을 몰자, 사관 학교 수련자들에 이어 삼천의 병사들은 우렁찬 군기와 함께 피레네를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말 울음 소리와 군사들의 함성이 번갈아 가며 귀에 맴돌던 순간, 소년은 에이메르의 피가 흘러서 그러는지, 속에서 피가 뒤끓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Je vous accorde le droit, Christophe, Elite Chevalier de Roen, ainsi qu’a tous vos apprentis. N’oubliez pas, et dites a vos troupes, que toute la nation vous regarde, et que vous etes certainement son orgueil.”

(아발랑슈의 일기 제 36쪽 : ‘헬리오의 명령’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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