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출근하시나 봐요.”
“예, 안녕하세요.”
우 기자에게 열쇠가 없기 때문에 같이 출근하러 나서는 길이었는데 옆집 현관에서 나오던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전에 인사한 적이 없어서 어색해 하고 있는데, 우 기자가 얼른 대답했다.
“먼저 찾아 뵙고 인사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유, 뭐 바쁜 분들인 거 같던데요. 그런 거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신혼 부부신가봐. 행복하시겠어요.”
뭐라구? 신혼 부부? 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우 기자가 나서서 말했다.
“예.”
“결혼한지는 얼마나 됐어요?”
“한달 됐습니다.”
한달? 나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어쩜 저렇게 사람이 능수능란할까.
“좋을 때네요. 그래, 얼마나 좋을까.”
“그럼요. 행복합니다.”
셋이 같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뒤, 우 기자는 내 쪽으로 바짝 붙어섰다.
“새댁도 좋아요? 말이 없네. 수줍음을 타나봐.”
흐익! 새댁? 그것도 우 기자의 새댁이라니!
“예? 예.”
“제가 이 사람 이런 면에 반했거든요.”
우 기자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나는 토할 것 같은 심정이 얼굴로 드러나는 것을 막으며 간신히 서 있었다.
“맞벌인가 봐요.”
“예. 이 사람이랑 같은 직장에 다닙니다.”
“어머, 부러워라. 하루 종일 같이 있겠네요. 출퇴근도 같이 하고. 요샌 능력 있는 여자가 대우 받죠. 새댁은 좋겠다. 직장도 있고, 이렇게 멋지고 든든한 남편도 있고. 새댁, 그런데 남편 넥타이가 좀 비뚤어졌네. 고쳐 줘요. 난 못 본 척 할 테니까.”
나는 엉겁결에 우 기자의 넥타이를 매만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 기자는 정말 남편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1층에 다 오자 아주머니는 한마디 더하고 내렸다.
“우리 남편은 직장이 멀어서 7시면 출근하거든요. 아까 출근했어요. 같이 인사했으면 좋았을 걸. 다음에 언제 같이 인사해요.”
“그러죠. 저희가 한번 초대하겠습니다.”
아주머니가 상가로 들어가고나자 우 기자가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이 기자, 너무 웃긴다. 우리가 신혼 부부로 보이는구나. 그게 당연한 건데 왜 여태 생각을 못 했지?”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우습긴 하지만 마냥 우습기만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뭐가 웃겨?”
“재밌잖아. 우리, 앞으로 행동 잘해야겠다. 안 그러면 정말 이상한 사람들로 찍히겠는 걸? 사람들, 남 말 하는 거 좋아하잖아. 괜히 입에 오를 일은 하지 말자고. 큰 소리 내서 싸운다든가, 아니면 그냥 동거하는 사이처럼 보여서 소문 나면 좋을 거 없잖아.”
내가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담. 정말 불쌍하다, 이소영. 이 세상 다른 어떤 남자도 아니고, 우 기자와 신혼 부부가 되다니!
“참, 이 기자, 열쇠를 맞춰야되는데, 어떻게 하지? 퇴근도 같이 해야겠는 걸.”
++++++++++++++++++++++++++++++++++++++++++++++++++++++++++++++++++
회사에 갔더니 놀라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잡지사의 또 다른 남녀 혼성팀인 구철수 기자와 유영숙 기자가 결혼을 한다는 거였다. 올 1월부터 같이 다니다가 눈이 맞았다고 했다.
“언니 한테도 말 못해서 미안해요.”
유 기자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어쨌든 잘 됐다.”
“언니도 빨리 가야할 텐데. 내가 언니보다 먼저 가서 어떡해요.”
“그런 거 신경 쓰지마. 있는 사람이 먼저 가는 거지, 뭐. 그래, 결혼은 언제 해?”
“내년 봄으로 날짜 잡았어요. 3월 11일이요.”
“회사는?”
“그만 둘 거예요. 구 선배가 그걸 원하고 저도 그만 두고 싶어요. 여기서 일하는 거, 너무 힘들잖아요. 그냥 구 선배 뒷바라지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동안 힘들게 공부한 거 아깝지 않아?”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이 일 하면서 맏며느리 노릇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서요. 시부모님 연세가 좀 많으시거든요.”
“여자들이 그런 식이니까 사회에서건 가정에서건 대접을 못 받는 거야.”
“대접 받으려고 공부했던 것도 아니고, 대접 받으려고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저는 어려서부터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도 아깝다, 아까워. 유 기자는 계속 다니고, 구 선배가 그만 두면 좋을 텐데.”
유 기자가 배시시 웃었다.
“언니, 구 선배 좀 잘 봐주세요.”
“구 선배가 어디가 좋니?”
“언니는…, 그런 걸 물어봐요. 쑥스럽게.”
이렇게 신혼 부부로 시작한 하루는 진짜 예비 신혼 부부의 소식을 들으며 지나갔다. 퇴근길에 열쇠를 맞추러 우 기자와 같이 나오는데 뒤에서 구 기자가 한 마디했다.
“어이, 우 기자, 이 기자, 오늘 같이 퇴근하네? 잘 해봐.”
내가 돌아서서 한마디 하려고 하니까 우 기자가 막았다.
“그 쪽도 잘 해보라구.”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내가 따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쪽도 잘 하라니.”
“이 기자, 그렇게 사람들 말에 예민해서 어떻게 살아? 그냥 대충 흘려 넘겨야 되는 말도 있어. 괜히 그럴 때 화 내면 정말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구. 사람들이 하는 의미 없는 한 마디가 그렇게 중요해?”
“….”
“이 기자, 그 말투만 아니면 사람들이 정말 좋아했을 거야. 똑똑하고 성실하고.”
“병 주고 약 주네?”
“그래, 그런 식으로 말을 받아들여보란 말이야.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파악해서 대답을 하라구.”
“우 기자, 열쇠는 이 기회에 아예 여분으로 두 개쯤 더 맞춰놓자. 또 언제 잃어버릴지 모르잖아.”
“좋은 생각!”
“근데, 감기는 괜찮아?”
“와, 나, 이 기자한테 감동했다. 그 하찮은 사실을 아직도 기억하고 염려해 주다니.”
오버하기는….
“안 아프냐구.”
“응. 덕분에. 근데 우리, 저녁 먹으려면 시장 봐야되지 않아? 장 보러 가자. 집들이 벌금 겸 해서 오늘 저녁은 내가 쏜다!”
같이 상가로 들어가서 카트를 끌고 다니며 과일, 채소, 오렌지 주스, 고기, 두부 같은 걸 사다가 아침에 만났던 아주머니를 만났다.
“어머나, 퇴근 같이 해서 시장도 같이 보나봐. 너무 좋겠다.”
“예. 좋습니다.”
“아유, 그래요. 그저 좋다는 말만 나오죠?”
그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오늘은 기분이 괜찮은 날이었으니까.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우 기자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물었다.
“이 기자, 우리 진짜 부부 같다. 그지?”
나는 대답은 하지 않고 그냥 우 기자를 보면서 웃었다.
“이 기자, 우리 오늘 한번도 안 싸운 거 알아?”
“정말? 그러고 보니 그렇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우리 정말 딱 오늘 하루만 싸우지 말고 보내자. 내가 맛있는 저녁도 만들어줄게.”
“정말 그래 보자. 가만 오늘이 며칠이지? 역사적인 날이 되겠다. 11월 17일.”
11월 17일? 그럼 이제 올해도 정말 얼마 안 남았구나. 왜 몰랐을까. 매주 나오는 잡지 아이템 잡고, 여기 저기 취재 다니고, 그러는 사이에 이렇게 20대가 다 가버렸구나.
그런데, 그럼 내가 이제 서른? 서른? 서른이라구? 휴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안 내리고 뭐해?”
“응? 응.”
“무슨 생각했어?”
우 기자가 문을 따며 물었다.
“아무 것도 아냐.”
“난 무슨 생각하는지 알지.”
“뭐?”
“구 기자랑 유 기자 결혼하는 거 생각했지? 이 기자, 내년이면 서른이잖아.”
“그게 왜?”
“부럽지?”
그가 놀리는 어투로 물었다.
“결혼하는 게 뭐가 부럽냐?”
“오! 지금 남편도 있겠다, 신혼 부부 소리도 들었겠다, 그래서 남 부러울 것 없다, 그 말씀이셔? 그래도 이 기자, 착각하면 안 되지.”
“지금 뭐래? 노총각이 노망 나셨나?”
“그래, 외롭고 힘들면 나한테 말씀하시라구. 그래도 내가 남편 아냐.”
“자꾸 까불어라.”
“지금 그렇게 말했다가, 나중에 정말 술친구 필요하면 어쩌시려고 그래? 이제 서른살 되니까 조금씩 불안하실텐데?”
“서른이 뭐 어때서 그래?”
“그래도 스물 아홉에서 서른이 되는 건 느낌이 좀 다를 걸? 내가 작년에 겪어봐서 알지.”
“아냐. 아무렇지도 않아.”
“얼굴에 쓰여있네.”
“나 먼저 씻을게.”
욕실에 들어왔는데 정말 울적했다. 내가 서른이라니. 아무도 내 주위에 없는데 내가 서른이 되다니. 서른이 되도록, 30년을 살도록 아직도 혼자라니. 서른이 되면 어떻게 산다지.
==================================================================
안녕하세요? 김현정입니다
지금도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내 사랑이 누굴까 상상하고,
누구는 결혼을 발표하고, 누구는 적지 않은 나이를 세고 있겠지요
읽고 계시는 님은 이소영 기자 편이세요, 아니면 유영숙 기자?
그것도 아니면 혹시 이미 짝을 찾아 결혼한 '옆집 아주머니'이신가요?
^^
이 지구상에는 지금도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드라마가 전개되고 있겠지요
그 사연들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랍니다
이건 꿈 같은 이야기일 테니, 다만 님들의 마음 풍경 만큼은 봄과 같이 향기로웠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김현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