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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시작된 모험(어머니 나라 한국)

젖살공주 |2004.04.08 20:06
조회 1,448 |추천 0

 험험..오랫만이군여.. 그간 쩜 바빠서리..ㅎㅎㅎ

실은 다가오는 5월 8일에 결혼식 서약 증인으로 참석을 합니다.

그 결혼식 참석을 위해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기차표 싼걸 알아보느라...헤헤헤...

드뎌 찾아냈숨돠만 보통 비싼게 아니군여...

 

알자스에서 리용까지만도(프랑스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혹자는 마르세이유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나..전반적으로 리용을 두번째 도시라고 하져.)

프렘(Prem's)이라는 할인시스템(60일전 예약할 경우 거의 50%가격에 살수 있음.

그러나 해당 안되는 지방도 있음)을 통해 샀지만 그래도

3식구 왕복 120유로(1유로가 1417원 계산 나오시져?)

거기서 다시 샹베리라는 작은 도시로 가야하니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드는 돈은

교통비만 183유로입니다. 자그마치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2십 5만 9천 3백 십일원 임돠.

 

자, 오늘 이야기는 이러니까 기차 혹은 기차비 이럴 거 같져?

군데 왜 제목은 거창하게 어머니나라 한국이냐굽쇼?

그 비싼 기차비를 들여서라도 그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 이유는

비단 우리 부부가 결혼서약의 증인이기때문만은 아닙니다.

 

결혼의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같은 시기에 이 땅으로 입양되어 온 한국 입양아들입니다.

신랑이 되는 Bruno (한국이름 영춘)는  오랫동안 신부가 될 Sandra(순미)를 짝사랑했었다는군여.

그러다 드뎌 어느날 고백을 하고 5월에 결혼까지 하게 되는 검돠.

 

프랑스로 입양와서 프랑스인이 아닌 한국인과 결혼한다...

한국에서 와서 프랑스인과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무튼 브뤼노와 순미의 결혼얘기는 5월에 다녀온 담에 다시 올리겠숨돠.

 

얼마전 입양에 대한 기사를 인터넷으로 읽었숨돠.

내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를 내아이처럼 키운다는거..직접 경험자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쉬운일은

분명 아니겠지요. 내 아이건 남의 아이건 아이를 키운다는거 자체가 쉬운일이 아닌 까닭입니다.

 

프랑스온지 2년쯤 되었을 때

네델란드 암스텔담에서 입양아를 위한 크리스쳔 캠프가 있었습니다.

아는 분을 통해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참가했지요.

 

제가 한 일은 주방팀 팀장이었는데 저보다 훨씬 연배이신 다른 분들을 젖히고 제가 팀장이 되었던것은

제 음식솜씨가 더 뛰어났던건 결코 아니었숨돠.

단지 제가 우스개소리를 그분들보다 더 맛깔나게 한다는 것..그래서 매 식사때마다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리드해줬어야했기 때문입니다.  헤헤헤헤..

 

그때만해도 갓 서른을 넘겨 그 입양아들은 다들 프랑스에서 온 언니라고 불러주었지요.^^ㅎㅎ

(여담이지만 독일에서 오신 나이 지긋하신 교포한 분은 저를 가리키시며 누구집 딸이냐고 지금 (고등학교) 몇학년이냐고 물으시기도 했숨돠..) 다른 아즘마들께선 그 부분 아주 질투(?)하셨져..ㅎㅎㅎ

-크...잘난척...되게 한다 그쵸? 하지만 지금은 몇년새 폭삭 늙었기에..억울해서 해보는 소림돠..헐헐..-

 

모든 프로그램이 영어로 진행되었고 중간중간 김밥싸보기, 한복 입어보기등등의 한국적인 행사도

있었지요. 아이들은 모두 즐거워했고 재미있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는 한국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진 아이들도 여럿 되었습니다.

다정하게 아침인사를 해도 어깨에 얹는 손을 뿌리치거나 퉁명스럽게 대꾸도 없이 휙- 가버리거나

심지어 가증스럽다는 눈길로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4박 5일동안 이어진 행사는 그리 장밋빛만은 아니었습니다.

 

이틀쯤 지나서 아이들의 마음이 열리고 여전히 퉁명스럽긴 하지만 Hi! 하고 대꾸해올땐

정말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물었습니다.

 

" 언니 왜 울 엄마는 나를 버렸을까?" " 누나 우리 엄마가 나를 사랑하긴 했을까?"

나는 나름대로 한국의 그 당시 어려웠던 상황에 대해 설명도 해주고 또 나역시 부모였기에 부모로서의

입장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은 이해를 하면서도 여전히 버려졌다는데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가슴아팠습니다.

캠프가 끝나고 헤어질때 아이들은 Hug한 팔들을 풀지 못하고 엉엉 울었습니다.

사랑이 그리웠던 아이들이었고 한국이 그리웠던 그 아이들을 차마 두고 돌아서는 우리 모두도

돌아오는 내내 차안에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유럽에는 입양아들이 정말 많습니다. 미국에도 많고 영국에도 많고 다 많지만

벨기에에는 부뤼셀에만 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프랑스도 공식적으로는 4만명정도랍니다만 비공식적인 숫자까지 한다면 8만은 족히 넘을거라는군요.

독일도 마찬가지이고 네델란드도 많습니다.

 

특히 네델란드의 경우 다는 아니겠지만

나라는 바다로 자꾸 가라앉고 땅을 메꾸어 국토를 넓혀가고 있는지라

일 손이 모자라는 관계로 아이들을 입양해서 학교를 보내는 대신 농장에서 일을 시킨답니다.

게다가 양부에게 성적으로 폭행당하는 경우도 많고 그래서 가출하는 아이들도 꽤 된다고 합니다.

네델란드에서 만났던 S는 열 여섯살의 미혼모였는데 양아버지와 양오빠에게 그런일을 당하고

집을 나왔답니다. 그리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다가 한국 대학생 배낭족을 만나 덜컥 아이를 가졌다는군요

그 배낭족은 Y대 학생이었다는데 그러고는 그냥 귀국해버렸다는겁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같은 한국인에게 다시 한번 버림을 받은 S...참 기구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아이는 정말 해맑고 순수한 얼굴의 소녀였고 아이를 입양하면 어떻겠냐는 선교사님 말씀에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이 아기까지 입양아로 살게 할 수는 없다고 하더랍니다.

끝내 아기를 낳았는데 남자 쌍동이였고 주변분들의 도움으로 아이를 키우고 학업도 계속하고

일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합니다.

 

물론 모든 입양아들이 모두 S같은건 아닙니다.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준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에게는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이

반반 섞여 있었습니다...불행하게 자란 아이들일수록 집착에 가까운 그리움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저에게 " 당신이 우리 엄만가요?"라는 전화를 한 적도 있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기위해 수십번도 더 서류를 뒤지고 한국도 방문하고...

 

제가 만난 또다른 입양아는 리용 근처 Valence라는 마을에서 문화원주최 입양아의 밤에서 만났는데

나이는 27살쯤이었으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이 완전 장애자는 아니지만

약간의 지진아 장애를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부모님과 함께 문화원에서 전시한 한국에 관한 사진들을 구경하다가

그의 부모님이 한국 지도를 구할 수 없겠냐고 물으시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화중에 그 부모님께서 우리는 성웅을 보았다우 하시길래

잘 알아듣지 못해서 네? 성웅이라니요? 하고 되물었더니

아들을 데리고 한국에 패키지 관광을 다녀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성웅을 그 때 보았다고..거 왜 있잖우 거북이 배 만든 사람..

아..이순신을 말씀하시는구나. 아 그 성웅이란 그의 이름이 아니고...어쩌구저쩌구..

세종대왕과 한글이 어쩌구저쩌구..신라, 백제, 고구려가 어쩌구 저쩌구...

 

그러면서 저는 그 청년에게 "우리나라 선조들은 이렇게 지혜로우셨단다. 그러니 너도 한국인이라는걸

자랑스러워해도 돼.(자랑스런 한국인이야) 한국은 작지만 훌륭한 나라야 "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착한 아들인가요?(한국식으로 효자냐고 물었지요) 하고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순간 눈 파란 그의 어머니의 두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시면서

" 이 애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전해 주었는지 모른다우"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 어머니를 와락 껴안고 우리는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여서 버려졌을것이 분명한 그를 통해서 큰 기쁨을 얻으셨다는 그 분들앞에서

자랑스런 한국 운운했던 나는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나는 목이 메어서 말은 못하고 그저 Merci(감사합니다)만 연발했던거 같습니다.

 

그 분들은 제가 관광공사에서 구해드린 한국 지도를 받으시고

다음번엔 패키지가 아닌 세식구끼리만 한국을 여행하시겠다고 하시면서 기쁘게 떠나셨습니다. 

 

대학생이 낳아서 버린 아이, 형제가 많은데 집은 가난하고 그래서 버려진 아이..

고아원에 그냥 버려진 아이...서류상에 기입된 이야기들을 양부모들은 스스럼없이

우리에게 하십니다...

 

사연도 많고 슬픔도 그만큼 깊습니다. 버린 부모들의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았겠지요.

하지만 그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입양을 보냈다고는 하지만

입양이란거 정말 가능하면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가 잘먹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도

버려졌다는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는  평생을 다 소비합니다..

 

농사 잘못 지으면 일년 굶으면 그뿐이지만

자식 농사 잘못 지으면 평생이 고생이란 말이 있지요.

 

글이 두서 없었습니다만

아이 낳아서 무책임하게 버리는 일...이제는 제발 자제해주십시오.

함께 고생하더라도 내아이는 내가 어떻게든 키운다는 결심으로

키울수는 없는걸까요...

 

정 보낼수밖에 없다면 우리가 그 아이들을 끌어안아 줄 수는 없는걸까요...

한국아이들이 영리하고 예의도 바른데다 공부도 잘한다면서

다른 사람이 입양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꼭 한국 아이로 입양하라고 한다던

프랑스 나이드신 노부인의 말씀에 씁쓸한 미소만 지었는데...

입양아 수출 1위라는 수치스런 통계가 조금 사라지려하니 이제는 이혼율 1위..

이래저래 우리 아이들은 슬픔으로 자라게 되겠군요...

 

입양 보낸 부모의 눈에서도 눈물이 마르지 않겠지만

아이의 눈에서도 그 눈물은 결코 마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요즘 신문 지사을 오르내리는 아이와 함께 동반자살로 치닫는 것도

참..견뎌내기 힘든 이야기로군요...

어찌해야할까요...답이 없는..이 일을... 

 

10년이 가까운 지금도 내 귓가에 쟁쟁한 그 아이들의 음성을 기억합니다.

 

"우리 엄마는 왜 나를 버렸을까요?"

"우리 엄마가 날 사랑하기는 했을까요?"

 

이 아이들을 위해 어머니 나라 한국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이런데 신경 쓸 겨를 없이 당파싸움에 급급한 어머니 나라...

날씨도 우울하고 기분도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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