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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의 언덕 -9-

화니 |2009.04.01 21:36
조회 124 |추천 0
진우는 천천히 뒤를돌아 연진을 정면으로 바라다 보았다.

무표정의 얼굴...


하지만 그 때의 연진에게

그만큼 무서운 얼굴은 없었다.



"뭐지? 아는 사람인가?"

"..."

"기억이 돌아온건가?"

"... 네.."


진우는 또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눈을 하늘로 향하니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다.


"언제.. 돌아온거지?"

"며칠 전이예요.. 내가 떨어졌다는 해안 절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빠르게 지나가더라구요..

그리고는 하나씩.. 하나씩... 기억이 돌아왔어요..

내가 누군지..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진우는 아침에 울고 있던 연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눈물은..

도대체 뭘까..

기억을 찾은 기쁨에?

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아니면 가족들 생각이 나서?

도대체 뭘까.. 도대체..



"왜.. 말하지 않았지?"

"..."

"말해봐. 왜 내게 말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도대체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왜 아무말 없어.. 왜 아무말 없냐고!!"


진우의 고함소리.

결국 진우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 때 쥐눈의 사내가 끼어들었다.

연진을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보고있던 진우 앞으로

명함 한장을 내밀었다.



"그동안 우리 희연이 돌봐줘서 고맙군.

별일 없었던 것 같고..

다행히도 그 바퀴벌레 같은 기자들도 낌새를 못챈 것 같고..

후훗.. 사례는 톡톡히 하지.


나는 조병만이라고 하네. B.M 엔터테인먼트 사장이야.


자네는 이 시골바닥에서 TV나 신문도 안보나본데..

지금 저기 서있는 김연진, 아니 우리 희연이는

드라마나 영화 쪽에서 이 나라의 대 스타가 될 몸이야.

벌써 신인으로 주목받았다고,


그런데 빡빡한 스케줄에

로드매니저가 병신이 됐는지,

저 빌어 처먹을 해안 도로에서

차가 구른거야..


로드 매니저는 죽었고...

희연이는 행방불명...

기자들이나 우리 직원들은 필사적으로 희연일 찾았지.

하지만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 깡촌에 이딴 식모나 되어 있을줄 누가 알았나.



흠.. 말이 길었군..

이제 우리 희연일 데려가야겠어.

문 막고 서있지 말고 저리 비켜."



병만은 톡톡 쏘는 말투로 진우에게 말했다.

그 톡톡 쏘는 말투가 예리한 바늘이 되어

듣고 있는 진우의 가슴에 자꾸만 아픔을 주었다.



진우는 다시 병만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긴 내 집이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쥐눈의 사내는 피곤하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


"아.. 귀찮네 이 새끼..."


진우는 들은 척도 않은 채 연진에게 다시 물었다.


"김연진. 똑바로 말해라.

지금 이 사내가 말한게... 사실이냐?"

"... 네.."



"좋아.. 좋아..

그렇단 말이지..


다른 말은 나도 귀찮아서 하지 않겠다.

한가지만 말해라.


너는 이 사람들을 따라갈꺼냐..

내 집에서 나와


이 사람들을 따라갈거냐?"



진우는 연진에게 따지듯 물었다.



"나는... 나는....."


연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곳에서의 삶...

그리고 스타가되어 다시 화려한 길을 걷는 또 다른 삶...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어느새 연진에게 진우의 집에서의 삶은

화려한 스타의 삶만큼 버리고 싶지 않은 삶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떠한 길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이고 만 있었다.




그 때였다.



진우의 뒷통수에 무언가 화끈함이 느껴졌다.


병만과 함께 있던 덩치 큰 사내가

갑자기 진우의 뒷통수를 세게 한 방 날린 것이었다.


진우는 뒷통수를 잡고 주저 앉았다.



"새끼... 그러길래 말로 할 때 들을 것이지..."



덩치큰 사내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주저 앉아있는 진우를 발로 걷어차 넘어뜨리고는

진우의 배 위에 올라타 양 주먹으로

진우의 얼굴을 연신 내려쳤다.




"아아아악!!! 뭐하는거예요!!!!"

연진이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달려들어 폭력을 휘두르는 사내를 말릴수도

어떻게 할수도 없었다.



"이봐. 멈춰봐."

병만의 한 마디에 진우를 때리고 있던

덩치 큰 사내는 손을 멈췄다.


진우의 얼굴은 이미 엉망으로 부어있었다.

입으로는 한줄기 붉은 피가 누워있는 진우의 뺨을 타고 흘렀다.


"으으으.."

진우의 신음소리가 아프게 들려왔다.


병만이 그런 진우를 힐끗 쳐다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자.. 희연아 그동안 네가 없어졌다고,

온 매스컴이 난리가 났어.

지금 네가 돌아온다면 아마 모든 이목이 너에게 쏠릴거다.

지금이 기회야.

가자. 서울로."



"나보고 가라구요? 이렇게 다친 사람을 두고?

사장님 정말 잔인하시군요..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을 수 있어요!!!"


연진의 절규..

이미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병만은 그런 그녀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비열하게 말했다.


"휴우.. 어쩔 수 없지.. 안가겠다는건가? 지금?"

"이 사람 다쳤잖아요.. 이런 사람을 두고 어떻게 가냐구요!!"

"안가겠다는거군.. 어쩔 수 없지.. 이봐 다시 시작해!"


병만의 한마디에 덩치 큰 사내가 다시 주먹을 들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연진은 기겁했다.


"안돼요!! 안돼!!!"

덩치 큰 사내는 주먹을 잠시 멈췄다.



"뭐해? 빨리 끝내버려."

병만의 비열한 명령은 계속 되었다.




"갈께요!!! 간다구요!!! 그러지 말아요..

제발... 제발...."


결국 연진에게서 항복의 한마디가 흘러 나왔다.



"훗.. 그래. 잘생각했어.

자 가자구."


병만은 낄낄낄 웃으며 등을 돌렸다.

덩치 큰 사내도 일어서서 옷을 툭툭 털더니

문 밖을 나갔다.



연진은 누워있는 진우에게 다가갔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진우씨...

나 때문에..."

연진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진우의 퉁퉁 부은 얼굴위에 톡 떨어졌다.



진우는 눈을 떴다.


"울고... 있군."

"정말 미안해요... 미안해요..."

"울지.. 마라.."


진우는 오른손을 들어 연진의 눈물을 닦았다.


"넌.. 항상 웃었잖아. 그게 더 예쁘다.

내 앞에서 웃는 모습만 보였잖아...

언제나 웃어라..

난.. 괜찮아.."


통증이 심한지 더욱 나즈막하게 깔려 나오는 진우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연진의 가슴을 울려

그녀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미안해요 진우씨.. 아무래도 난 가야할 것 같아요..

내가 안가면.. 저 사람 진우씨를 어떻게 건드릴지 몰라요..

정말.. 미안해요.."


진우는 자꾸 흐르는 연진의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말했다.


"... 가라.."


연진은 자신의 옷으로 진우의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진우씨.. 내가 없더라도..

지금의 진우씨의 모습을 간직해요..


화도 낼줄 알고..

걱정할 줄도 알고...

아껴줄 줄도 알고...



그리고 진우씨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뿌리치지 말아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요..

그들의 안에서 웃고.. 울고.. 기쁘고.. 슬프고..

그리고 사랑하고..

그렇게 사세요..


진우씨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예요..

벌써 10년이 넘도록

외로움에 몸부림 쳤으니까..

나는 당신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이젠 외로워 하지 말아요..

진우씨는 버림받지 않아요..

나도 진우씨를 버리지 않아요..

언젠가.. 그게 먼 훗날이 되더라도

진우씨를 찾아 올께요..


그땐 나에게 웃어줘요..


지금까지 본 적 없던 당신의 미소를 보여줘요.."



말을 마친 연진은 일어나 현관문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홀로 남겨진 진우는

일어나 벽에 기댔다.



"또다시.. 혼자가 된건가..

후훗...


그래..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뿌리치지 말라고..

그 들 안에 함께 살라고...

그들 안에서 웃고.. 울고.. 기쁘고.. 슬프고..

그리고...


사랑하라고..



사랑하라고..






그래.. 그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너의 말이라면..

너의 부탁이라면 그렇게 하겠어."



진우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맞은 얼굴이 찡하고 아려온다.

"크윽..."

진우는 아픔을 참고 전화기를 향해 비틀 비틀 걸었다.




"네. 혜성입니다."

"박비서 바꾸세요."

"예 진우도련님. 뭐 시키실 거라도.."

"박비서."

"예?"

"나.. 이젠 나가야겠어요. 외출할 때가 됐군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

"그동안.. 혼자서 회사 운영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도, 도련님."

"내일... 총회 소집하세요."

"예?"

"안건은... 경영진 교체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진우는 의자에 털썩 앉아 창문밖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우의 손에 주먹이 쥐어졌다.

그리고 주먹이 부르르 떨리도록 힘이 들어갔다.



"조병만이라고 했나... 오늘 일을.. 평생 후회하도록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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