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 백과 버킨 백은 에르메스의 대표 상품들이다. 전세계 패션감각이 뛰어난 여성들이나 부유한 여성들이 한 번씩은 갖고 싶어한다는 핸드백들이다. 그러면 이 핸드백들은 왜 이렇게 유명세를 타게 됐을까?
켈리 백은 그 유명한 미국 출신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 왕비가 된 후 임신했을 때 에르메스의 커다란 백으로 배를 가리려 했다는 데서 켈리(Kelly) 백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또한 버킨 백은 프랑스의 유명한 샹송가수인 버킨과 에르메스 회장이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타면서 탄생했다. 에르메스 회장은 여행을 많이 다니는 그녀를 위해 단단하고 편리하면서 큰 가방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렇게 생산된 것이 바로 버킨 백이다.
이 핸드백들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7백~8백만 원에서 많게는 2천만~3천만 원대를 호가한다.그런 엄청난 가격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도 버킨 백을 사려면 3~5년 이상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아야 구매가 가능하다.
이 백을 사기 위해서 외국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유럽으로, 한국에서 동남아로, 미국에서 유럽으로 전세계 부호들은 에르메스 백을 갖기 위해서 긴 여행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수요량보다 훨씬 적게 공급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런 에르메스가 수요보다 훨씬 적은 공급으로 최고급 제품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디마케팅을 구사한다고 말한다. 수급 불균형의 과다는 일반 경제논리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회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매출과 수익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에르메스 코리아 정주연 과장은 “에르메스는 단 한 번도 상류층 손님을 유지하기 위해 디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적이 없다. 사실 에르메스는 적극적인 마케팅도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맞다”며 “대부분 사람들이 에르메스 제품의 높은 가격 때문에 오해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높은 가격은 정책보다는 최고급 품질과 장인정신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에르메스가 마케팅 전문가들로부터 ‘디마케팅’의 오해(?)를 받는 이유를 살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에르메스 최고경영자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에르메스는 초기 1대 티어리 에르메스(Thierry Hermes)에서 시작해 현재 6대 회장 장-루이 뒤마-에르메스(Jean-Louis Dumas-Hermes)까지 모두 에르메스 家 출신들로 이뤄져 전형적인 패밀리 비즈니스 기업이다.
티어리 에르메스는 프랑스 파리의 마들렌느 광장에서 마구상으로 시작했다. 그의 작업실에 보존됐던 말 어깨 줄을 보면 당시 그가 정확하게 말에 맞는 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으며 세계 박람회에서 1등 상을 수상함으로써 섬세함과 견고함을 인정받았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 에르메스 제품을 만들 때 쓰이는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 말안장에 쓰이던 박음질법)인데 이 바느질법은 아직까지 에르메스 제품을 만들 때 쓰인다.
2대 샤를-에밀 에르메스(Charles-Emile Hermes)는 처음으로 부티크 사업을 시작했으며 3대 에르메스 형제는 제 1차 대전 후 파리의 대규모 마구상을 전부 흡수할 정도로 사세를 확장했으며 현대적 여행 스타일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4대 에밀-모리스 에르메스(Emile-Maurice Hermes)는 많은 전위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으며 에르메스 제품에 예술적 감각을 불어넣은 인물이다.
5대 회장인 로베르 뒤마(Robert Dumas-Hermes)는 프랑스 명품 수출의 기수가 됐다. 당대 저명인사였던 그레이스 켈리, 잉그리드 버그만, 재클린 케네디 등이 에르메스의 단골고객으로 에르메스 매장은 유명인사들의 만남의 장이 됐다.
장인 한 사람이 1주 동안 핸드백 하나 생산
켈리 백이나 버킨 백과 같은 최고급 핸드백은 장인(Master)이 직접 손으로 제작하는데 꼬박 32시간이 걸린다. 즉, 주 4일제 근무의 프랑스 여건에서는 장인 한 사람이 꼬박 일주일 걸려 핸드백 하나를 만드는 셈이다.
이 장인들이 켈리 백이나 버킨 백뿐 아니라 다른 제품도 만들기 때문에 아무리 잘 팔리는 핸드백이라 해도 이 제품들만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에르메스 측의 설명이다.
파리근교의 빵땅(Pantin) 공장의 에르메스 장인들은 7백50명 정도. 이들은 에르메스 장인 학교 3년을 수료하고 다시 2년간의 실습 수련과정을 마쳐야 비로소 가방제작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장인 한 명을 선발하는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또한 에르메스의 핸드백은 전세계 최고급 가죽을 사용해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의 가죽 상인들은 제일 먼저 에르메스 본사를 찾아와 가죽의 질을 심사 받는다. 벌레에 물린 자국까지 가려낼 정도로 꼼꼼한 심사를 거쳐 가죽을 공급받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에르메스의 고급 백은 평생 A/S가 가능하다. 줄이나 버클 등 부러지고 낡아서 떨어져서 수리를 맡기면 그 해 생산된 가죽제품으로 똑같이 수리해준다. 그래서 에르메스의 고가 백은 어머니가 며느리나 딸에게 물려주는 제품으로도 유명하다.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판매
에르메스 제품은 스타마케팅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샤넬, 루이비통 등은 최근 들어 제니퍼 로페즈, 우마 서먼, 니콜 키드맨 등 미국 최고의 여배우들을 모델로 기용하며 더욱 적극적인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마케팅 트렌드에서 에르메스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또한 공식적으로 에르메스 제품은 세일을 하지 않는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간혹 우수고객들을 상대로 의류나 구두 제품을 세일하긴 하는 곳도 있다. 핸드백 등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세일이란 없다.
웹사이트에서는 에르메스 제품군 중 비교적 저렴한 향수, 스카프 등만 판매하고 있다. 에르메스 측은 웹사이트를 판매 후 고객의 불만 등을 접수하거나 판매 정책에 대해 설명하는 수준으로만 운영하고 있다.
에르메스 측은 “높은 가격 정책으로 대중을 고객에서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장인정신과 최고급 제품에 대한 가격을 받는 것일 뿐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에르메스는 열려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이런 에르메스에 불명예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미국 최고의 여성 사업가이자 토크쇼 사회자인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가 파리의 에르메스 매장에서 쫓겨난 사건이었다. 이는 흑인에 대한 에르메스의 차별적 성향을 보여준 사건으로 에르메스 직원들이 이 세계적 명사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뒤늦게 에르메스 회장이 직접 사과를 발표하며 사태를 진압하려 했으나 오프라는 ‘인생 최대의 모욕’이라며 불쾌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 사건은 에르메스의 ‘고객 가려내기’ 디마케팅의 전형적이고 노골적인 예에 속한다.
에르메스가 명품 중의 명품으로 불리는 것은 최고급 품질에 견고함, 전세계 어디서든, 언제든 수리가 가능한 특별한 가치 때문일 것이다. 스타 마케팅과 바겐 세일을 사절하며 에르메스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게만 판매한다는 것 역시 에르메스의 오래된 고객들의 자부심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수요만큼 고급 핸드백을 생산하지 않는 것도 에르메스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전략이라면 이 전략은 ‘돈이 많아도 제품을 살 수 없는’ 소비자를 계속 애태우는 성공적인 디마케팅 전략이라 할 수 있겠다.
<출처 : 후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