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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사 이야기 episode1 그녀들의 수갑5

전선인간 |2004.04.24 03:06
조회 686 |추천 0

//전편에 이은 글입니다. 전편을 읽고 읽어주세요

 

남형사 이야기 episode1 그녀들의 수갑5

 

 

“은희야! 저기 저 파란색 유니폼 입은 머리 긴 여자 맞지?”


“응 저 애가 며칠 전부터 은행 출납 구좌에서 돈을 찾아가더라구

어디 회사의 경리인 듯한데 오늘 흰 봉투가 터질 듯이 담아 가는 걸로 봐선

오늘이 임금 날인가 봐. 오늘 대략 대박이다. 대박!

알지? 평상시대로다.“


한 울 은행 대림동 지점 편의점 앞 모자를 눌러 쓴 세 명의 그녀들은

길다란 아이스바 막대를 빨아먹고 있었다.


천천히 내리쬐는 태양빛을 거슬려가며 그녀들은 결코 처음은 아니지만 언제나

처음처럼 밀려오는 불안과 초조를 감추기 위해 천천히 그렇지만 입술 끝에 힘을 주어

막대 아이스크림을 꾸욱 꾸욱 목구멍 속으로 빨아 당기고 있었다.

자신들의 불안한 마음까지도........


이제 저 은행 문 앞으로 현금봉투를 든 경리아가씨가 나오면

은희는 언제나처럼 그녀의 뒤쪽에서 현금가방을 날치기 하고

지유는 앞에서 그녀와 부딪쳐 시야를 가린 후 시간을 벌고

저 앞에서 가방을 건네받은 혜림은 죽어라 달리기를 시작할 것이다.


지난 몇 개월에 걸친 범행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단조로운 범행패턴은

그저 ‘은행 앞 대로변 날치기 주의’라는 경고 문구하나만 붙어있을 뿐

여전히 그들의 잘 짜여진 팀워크 만큼이나 유효하게 먹혀들어갔다.


이제 저 은행 문 앞으로 현금봉투를 든 아가씨가 나오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언제나 그렇듯이 지유와 은희와 혜림은 좁지만 아늑한 그녀들만의 오피스텔의

침대위에서 코발트 빛 향기가 나는 지폐들을 세고 있을 것이다.


“끼이익!”

 

드디어 현금 봉투를 든 그녀가 검은 색 두터운 미닫이 유리문을 밀고 나왔다.


지유, 은희, 혜림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큰 전쟁이라도 치루러 가는 전투병 마냥

확고한 표정으로 동시에 쓰레기통을 향해 세차게 아이스크림 막대를 뱉었다.


“가자!”


그녀들이 뱉은 아이스크림 막대들은 오월의 높은 태양 빛 아래에서 곡예라도 부리듯

빙글빙글 돌다 결국 쓰레기통 구멍 주변을 “탱”하고 맞은 후 다시 거리바닥으로

내 팽개쳐졌다.



“죄송합니다.”


은희는 ‘툭’하고 어깨를 부딪친 후 능숙한 솜씨로

하얀색 현금 봉투를 낚아채려 그녀의 길고도 가는 손을 뻗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 순간 그녀는 약간의 쾌감으로 몸속 세포들이

떨린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뻗은 손 그리고 뛰는 심장, 순식간에 낚궈 채어진 타인의 핸드백, 그리고 도주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뤽 배송 스타일의 빠른 영화마냥

은희의 자율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은희는 자신의 손에 낚궈 채질 목표를 생각하며 짜릿한 손맛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먼 가? 은희의 손에 느껴지는 평소와 다른 금속성의 차가운 느낌은


은희는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팔이 등 뒤로 꺾여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가는 손목 위로 느껴진 차가운 금속성의 느낌은 바로 수갑인 걸 느꼈다.


그리곤 체 자신의 상황을 정리하기에 앞서 저기 앞에서 뛰어오는

지유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유야! 도망쳐 곰이야! 곰!”


“머 머라고? 곰! 어떡해 어떡해! 혜림아 경찰이래! 경찰”


원래 조금 둔한 편이었던 지유는 잡혀있는 은희를 보며 그리고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혜림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찌할 줄 모른 채

‘어떡해’만 연신 남발하고 있었고

눈치 빠른 혜림은 우울할 정도로 길게 뻗어진

아스팔트 도로로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민경씨 수고 많았어. 역시 대단해 팔을 단번에 꺾어서 수갑을 채우는 것까지

거의 한편의 무협영화인데 그래.”


우물거리던 지유의 손에 수갑을 채운 채로

김 경장은  자신의 애인인 이 민경 경사 쪽으로 다가왔다.


“멀요. 연쇄 날치기범이라더니 이거 너무 고운 아가씨인걸요.

꺾는 게 너무 미안할 정도로 갸녀린 팔인데요.

한명 도주한 것 같은 데 어떻게 안 쫒아 가봐두 되요?“


“하하! 걱정 말라고 저쪽 골목에 호랑이 한 마리를 풀어두었으니까 말야!

자! 이제 우리는 순찰차에 가서 같이 에스프레소 커피나 한잔 하자구........

어때 이 놈들아 너네도 한잔씩 줄까?“


“호랑이? 아!”


김 경장은 지유와 은희를 순찰차 쪽으로 밀기 시작했다.


지유의 금방이라도 울 듯한 눈망울을 보며 은희는 입술을 한번 꾹 깨물었다.


“이 년아. 울지마.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 스탈 구겨지게 울지말자 우리

그렇지만 혜림이는 잡히면 안 될텐데.......“



‘헉, 헉! 그래 뛰어야만 해! 내 다리가 부서지고 내 영혼이 부서지더라도

지금 난 잡힐 수 없어. 이제 저기 저 골목만 돌아서면 시내가 나오니까 사람들

사이로 묻혀서 도망가면 누구도 날 잡을 수 없을 거야 그래 힘내자

혜림아.‘


혜림은 바람을 크게 입으로 마시며 자신이 마신 바람보다

더욱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막 편의점 앞 골목을 돌아서는 순간

 

“네 수고하셨습니다. 터치다운 성공입니다.”


굵은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 그리고 혜림의 날랜 다리 아래로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

오래전 어린 시절에 타본 트램블린에서처럼 혜림은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방이 적당히 진 털들이 북실한 굵은 한 팔이 혜림의 아랫배를 감쌌고

나머지 한 팔은 혜림의 오른쪽 팔을 등 뒤로 꺾었다.


“상으로 귀하에게 서울지방 경찰청에서 내리는 순도 99.9%의 은팔찌를

제공하오니 부디 거절치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털컥”


혜림의 팔에도 결국 수갑이 채워졌다. 그리고 수갑이 채워지는 소리처럼 혜림의

쉴새없이 달려온 다리도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남형사는 혜림에게 수갑을 채우며 천천히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베테랑 형사인 그는 이미 그 거리에서 도주할 곳이라곤

편의점의 골목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미리 골목 어귀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천천히 혜림을 일으켜 세우던 남형사는 혜림의 얼굴을 한번 흘깃 쳐다본 후

두터운 손을 뻗어 혜림의 머리칼을 자신의 코에 대고

킁킁 거리기 시작했다.


“어 이것봐라. 이봐 아가씨 우리 구면이지?

쯧쯧 내가 전에 머라고 했어. 랄프로렌 글래머러스 향 쓰지 말라고 했지.

그 향을 쓰면 남자들이 꼬인다구. 봐! 결국 그 향 때문에 나 같은 남자랑

같이 은팔찌도 끼고 가게 되잖아. 내가 쁘띠에망 같은 아기냄새 나는 향수를 쓰라고

글케 충고 해줬는데두 말야.

어 이건 또 머야?

팔목에 왠 나비 문신? 지가 이승희 인줄 아나! 아주 골고루 하는구만 골고루........

그래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은가 보지.

근데 이거 나비 옆에 구름이 없는 게 아쉬운 걸“


남형사는 수갑 아래로 보이는 혜림의 오른쪽 손목에 나비 문신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담배연기를 깊게 한모금 들어 마신 후 혜림의 손목을 향해 내 뿜는다.


“자. 이제 내가 구름까지 만들어 줬으니 나비처럼 훨훨 경찰서로 날아가자구”


불투명해진 그녀의 삶을 대변하듯 혜림의 손목에 그려진 선명한 나비문신은

남형사가 뿜어 놓은 뿌연 담배연기에 가려져 희미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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