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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귀거래사 (新歸去來辭) 62 아름다운 것만큼 슬픈 것은 없다

김명수 |2004.04.25 10:20
조회 648 |추천 0

 


 

신귀거래사 (新歸去來辭) 

 

  62

아름다운 것만큼 슬픈 것은 없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T·S 엘리엇 <황무지>중 일부


짙어가는 신록이 산도 푸르게 들녘도 푸르게  사람의 마음까지도 푸르게 물들이고 있다.

시원한 바람결에 푸르러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넉넉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익어가는 신록의 포근한 고움을 어디다 비기리.


시골에 살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실감나게 볼 수 있다.

특히 산과 들녘의 변화하는 모습은 세상을 덮을 수 있는 보자기가 있어도 감출 수 없다.

신록의 유년이 녹음의 청년으로 촌각을 다투며 변해가기 때문이리라…….


산과 들녘이 변해가는 모습은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니 좁은 새가슴으로 받아들이기란 가히 담아내기 모자라 넘쳐날 뿐이다.

아침마다 바라보는 산은 초록의 절경이고 산꽃들 어지러운 향내 꽃바람에 실려가 누리에 붉고 푸르게 흐드러져 천지를 달려간다.


간혹, 비라도 스치고 난 뒤의 산하를 보노라면, 운해 낮게 내리고 이내가 산자락 감싸는 사이사이로 새색시 고운 볼에 가벼이 흐르는 미소처럼 수줍게 보이는 저 초록의 풍광은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니기도 하다.

지금 상큼한 봄꽃들이 지고나면 초하이려니 성숙하지 못한 또 다른 여름이 봄꽃 지고 난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라…….


우리 동네 작은 고개 마루 내려오다 보면 청보리가 들판에서 푸르런 봄바람을 가볍게 타고 있다.

바람결에 일렁이어 보리수염 사각거리며 푸른 소리 연주하는 황홀함에, 나는 기절할 것 같은 아름다운 감동을 먹는다.

보리이랑 푸른 바람 속에는 서글픈 보릿고개의 배 아리던 아련한 잃어버린 내 어린시절 추억도 알알이 쌓이고 잠겨 있을지니…….


몇 마지기 청보리밭에 맑고 밝은 푸른 바람의 희롱으로 풋풋한 내음이 구수해져 옴은,  내 유년의 여물지 못한 아름다움이 소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눈시울 적시지 않는 슬픈 아름다움과 그리움이 청보리 이랑마다 몸서리치도록 곱게 베어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만큼 슬픈 것도 더는 없으리라…….


“입춘대길 건양다경” 춘련절구 붙일 때쯤이면 마을의 굴뚝에는 서서히 연기가 사라지는 가난의 미운 계절, 보릿고개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서럽게 다가와서 뱀의 또아리처럼 질기게 감겨왔다.

그때쯤 할머니는 풋 자란 보리 싹 뜯어다 모자란 양식 아끼려 맑고 푸른 보리이파리 죽을 끓여 저녁상 둘러앉은 식구들을 오순도순 먹게도 했다.


나는 도시락 빈 겨움에 눈물 아리어 이상한 부끄러움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배고픔에 겨워 어머니가 겉 삶아 놓은 보리쌀 한 줌 한 줌 손가락사이로 흘리며 바삐 먹다보면, 어느새  매달아 놓은 보리쌀 소쿠리는 비어가고 있었다.

 

물을 잘 먹지 못하는 보리쌀은 초벌 삶아서 밥을 할 때 다시 한번 지어야 먹을 만한 보리밥이 되기 때문에 어느 집이나 한번 삶아서 바람 잘 통하는 대나무소쿠리에 삼베 보자기를 덮어 보관하였다.


며느리 준다는 봄 뙤약볕 맞으며 들일 나갔다 돌아오신 어머니는, 빈 소쿠리를 보고 당황해 하였지만 먹성 좋은 어린 것들의 배고픔에 오히려 당신의 가슴은 찢어질듯 아리기만 하였다.


아이들은 봄바람에 익어 가는 여물지도 못한 풋보리 이삭 꺾어 불 서리를 한다.

어설픈 모닥불에 까실한 털 가시 거슬린 보리알을 손바닥에 비벼 한줌 입에라도 털어 넣고 쫄깃쫄깃한 풋보리의 비릿함으로 배부름을 대신하기라도 하노라면, 입술은 깜부기로 황칠한 듯 새까매지고 그래도 보리피리 불며 깔깔 웃음으로 봄노래를 불렀다.


허기짐에 우물가 두레박 올린 찬물 한 사발로 목을 축이시던 아버지의 헛기침은 쇳소리처럼 카랑지게 메말라 있었다.

들풀처럼 살아오신 어른들의 힘들고 서러운 세월을 나는 지켜보며 자랐다.

모두들 전설 같은 저 멀지도 않은 시간을 되돌아보려하지 않을 뿐, 그 지난한 시절을 시커멓게 헤치며 살아온 할머니와 아버지는, 청보리 일렁이는 붉은 황토 흙으로 한 많게 돌아가시고…….

다시 새싹 돋아나듯 태어난 내 아이들은 보리와 밀의 이삭도 분간할 줄 모른다.

모와 벼와 나락도 구별 못하는 아이 같은 어른들도 지금이사 흔히 있을지니…….


먹거리가 지천으로 쌓이고 계절을 잊어버린 푸성귀에 국적불명의 과일이 산처럼 쏟아지는 풍요로운 세상에, 무감각한 배부름이 오만으로 쌓여가는 시절이련만 내 영혼은 배부르지가 않다.

가난이 부끄럽지 않았던 시절,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가난했어도 묻어나던 인정어린 손길의 맛이 없어진 오늘 나는 정녕 편하지가 않다.


아슬아슬한 가난의 고비 넘어 보리밥이 별미가 되고 건강식이 되는 시절…….

소문난 보리밥집을 찾아 한나절 자동차 타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런 시절도 있으려니, 꿈엔들 생각이나 했으리까 우리 할머니와 아버지는…….


때로는 찬란한 봄이 몹시 싫어지기도 한다.

칠칠맞지 못하던 보릿고개의 가난했던 유년이 청포도알처럼 알알이 서럽게 영글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보리이랑 훑어가는 바람결에 속삭이며 알 여물어가는 청보리 이삭의 합창을 보노라면, 그 아픔의 유년도 아슴한 추억이 되어 비단처럼 아름다워지고, 배고픈 세월 지켜보고 살아온 들녘의 푸근함이 지난 시절을 정답게도 잊게 해 준다.

 

봄바람에 여전히 미소 짖는 청보리 푸른 이랑에 잠시 비켜가던 잃어버린 옛 봄의 아픔도, 모질게 아름다운 그리움으로 사무치게 손짓할 뿐이다.

아름다운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말들 하지만, 청보리밭에 불어오는 천의무봉 하늬바람의 일렁거림은, 새삼 보이는 그대로 평화로운 서러움으로 아름다울 뿐이다.

 

아름다움은 우연히 만날 수 있어도 무심히 스쳐지나가는 눈길로 때로는 지나칠 수 있다.

청보리밭 바람 푸르런 아름다움은 애써 찾아 헤매지 않아도 봄이면 우리 마을 작은 고갯마루 넘을 때마다, 가벼이 눈길만 준다면 나는 언제나 고요속에 황홀히 볼 수 있다.

 

보릿고개의 서글픔도, 지금이사 그립고도 아름다운 추억의 화석으로 굳어버린 내 가슴을 술렁거리며 요동치게 하고,

보리이랑 한숨결에 쓰다듬는 하늬바람은 보리피리 불며 할머니의 빈 젖가슴 만지다 잠들은 당신의 빈약한 품으로 나의 사위어진 영혼을 다시금 실어가리라…….


2004, 04, 24


김 명 수

 

이숙자 ...여인과 보리밭.

1942년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 졸업
현 재 : 고려대학교 동양학과 교수

보리밭 - 김학남(메조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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