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눈이 더욱 붉게 변하며 으르렁 거렸다.
그리고는 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놈은 덩치에 비해 놈 놀림이 무척이나
빠르고 유연했다.
순식간에 뛰어 올라 호의 머리를 향해 자신의 손을 내려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붉은 덩어리를 입에서 갑자기 쏟아서 호를 놀라게 했다.
마치 입 속의 혀가 뱀처럼 나왔다 들어가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 붉은 혀는
너무나 파괴적이고 빨랐다. 호는 린의 빠르고 탄력적인 공격을 피해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장(掌)으로는 놈을 죽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빠른 신법을 이용하여 번번히 린의 공격권 안에서 벗어났다.
마치 미꾸라지가 빠져나가듯 번번히 자신의 공격을 호가 벗어나자 더욱
화가 난 린은 미친 듯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두 손과 발을 이용하면서 자신의 최고 무기인 붉은 혀를 낼름 거렸다.
그럴 때마다 동굴 안에는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렸다.
수많은 괴물에 둘러 쌓여서 공격을 당하고 있었는데도 여사랑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환상적인 몸놀림이 있을 때마다 검은 피가
동굴에 그림을 그리듯 퍼져갔다. 그녀는 끝없이 이어지는 괴물들의 공격이
점점 따분하고 지루해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호가 린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호가 어렵지 않게 괴물들의 수장인 린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호의 공격이 먹히지 않고 밀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녀는 린의 강철같은 비늘이 호의 무서운 장을 막아내는 것을 보고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백괴 갈마웅을 보며 소리쳤다.
“갈대협. 린을 먼저 제거해야 이 날 파리들이 사라질 것 같은데요.”
여사랑의 말에 갈마웅은 괴물 한 마리를 집어던지며 린과 호의 싸움을 지켜봤다.
호가 밀리는 듯 보였지만 힘겨운 싸움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오히려 린과 호의
싸움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글세요. 저 호웅사묘의 실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굳이 우리까지 저런
하찮은 괴물과 손을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는 여사랑에게 말한 것이었지만 동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웅과 사가 얼굴에 인상을 쓰며 호를 사납게
쏟아보았다.
“너 뭐라고 했나? 하찮은 괴물에 손을 대? 그렇다면 우리 형님이 하찮은
괴물에게 손이나 대는 수준이라는 말이냐?“
음울하게 사가 갈마웅을 바로 보며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무척이나 이상야릇하게 퍼져 듣는 사람은 소름이 끼쳤다. 더구나 그의 말엔
분노가 잠재되어 더욱 그 느낌이 안좋았다.
옆에서 웅이 말리지 않았으면 당장이라도 갈마웅에게 덮쳐 갈 것처럼 보였다.
“하하하. 이런! 제 말이 그렇게 들렸다면 사과하겠소.”
갈마웅의 밉살스런 웃음과 함께 말을 듣자니 웅은 속이 더욱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갈마웅을 죽여 버리고 싶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서로 싸운 다면 시간만 낭비되고 자신들의 목적은 그 만큼 더 멀리
달아 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많은 인내력을 발휘할 생각은 없었다.
“갈마웅! 다시 한번 그 간사한 혀를 놀린다면 그 때는 가만있지 않겠다.”
웅의 위협적인 말에 갈마웅은 입가에 웃음만 지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괴 마불웅이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뭐야? 네 놈들이 형님과 한번 해 보겠다는 거야?”
그의 작은 몸이 통통거리며 화를 내자 오히려 우스워 보였다. 그러나 웅과
사는 웃음 대신 싸늘한 시선을 주었다.
여사랑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자신은 이곳을 빨리 정리하고 막개를 찾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여 빨리 린을 처치하자고 갈마웅에게 말한 것이었는데
그는 오히려 사람들을 선동하여 이상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갈마웅의 모습을 보며 그의 머리 속이 궁금했다. 과연 어떤 꿍꿍이를
품고 있기에 저렇게 느긋하게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어쨌든 지금은 이 상황을 빨리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더 이상 싸움이
나지 않기 위해 다시 중재에 나섰다.
“이렇게들 말싸움만 하고 있을 건가요? 내 생각에는 이 떨거지들을 쫒아
내기 위해서는 저기 거만 떨고 있는 린이란 놈을 죽여야 할 것 같은데...“
여사랑의 말에 사가 회색빛 눈동자를 들어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형님 혼자서도 저런 놈은 쉽게 해치울 수 있소.”
여사랑은 사의 말에 뭐라고 한마디 더 해주려 했지만 그만 두었다. 어차피
그들에게 말해봐야 똑같은 대답을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갈마웅을 보았다.
그 역시 다시 달려드는 괴물들과 싸움만 할 뿐 호를 도울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참! 웃긴 사람들이군! 한 쪽은 무슨 꿍꿍이로 돕지 않고 또 한 쪽은 자신의
사형이 체면을 잃을 까 돕지 않고....‘
그녀가 생각하기에 참으로 한심해 보였다. 물론 그녀가 보기에도 호를 도울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밀리는 듯 보였지만 결코 린에게 당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을 오래 끌수록 자신들에는 불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음흉한
갈마웅이 가만있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녀가 고심에 빠져 있을 때, 시커먼 괴물 한 마리가 그녀의 뒤쪽에서 덮쳐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휘둘러 녀석을 가볍게 물리치며 자신도 모르게
청도삼괴가 있는 쪽을 쳐다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제서야 갈마웅의 속샘을 알아챈 것이다.
치우는 괴물들이 몰려와서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조용히 뒤로 물렀다.
그는 다시 폭포수 뒤의 동굴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쏟아지는 폭포수의 좁은 길은 지나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아래서 비추는 횟불 때문에 광명석이 빛을 발하고 있어 많이 어둡지는 않았다.
동굴 안에는 아직도 막개의 시신이 있었다. 그리고 괴물 두 마리의 시체도 있어서
역겨운 피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놈들의 시체를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 이 놈들의 시체를 밖으로 옮기다가 청도삼괴나 다른 사람에게 발각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치우는 차갑게 식은 막개의 시신을 보고 있으니 다시 마음이 아파 왔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망막했다.
지금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는 일만도 그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지금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강자 였다.
여기서 약간의 숨소리만 잘 못 내도 곧 들켜서 어떻게 될지도 몰랐다.
언제까지 이 어둡고 축축한 동굴에 숨어있어야 할지도 몰랐고,
자신이 이곳에서 무사히 살아 나갈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는 불행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다.
어느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다. 부자를 꿈꾸지도 않았고,
명예를 꿈꾸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의 삶이 그에게는 좋았고 편안했다.
많은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그 만큼 행복해진다는 것을 그는 어렸을 때부터
깨닫고 있었다.
그는 배운 것은 없지만 욕심이 모든 것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욕심이 없다면 갖기 위해 힘들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성취하기 위해 남을
죽이거나 짓밟고 올라서지 않아도 된다.
그에게는 그저 한끼의 식사와 마음 착한 초개면 되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다. 그의 행복인 동생 초개가 죽음 맞이했고,
그의 자유가 이렇게 묶여버린 것이다.
아직까지도 악몽을 꾸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러나 거칠고 차갑게 쏟아지는 폭포수 소리가 그의 귓속을 아프게 때리고 있었다.
‘이대로....이대로...죽기에는 난 너무 억울하다.’
치우는 정말 억울했다. 자신은 잘 못한 것이 없다. 빌어먹는 것도 죄라면
그는 차라리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냉철하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처음에는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쫒겨 다니기만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초개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막개 아저씨와의
약속도 지킨다. 꼭!’
치우는 다시 한번 약해지려는 마음을 잡으며 자신에게 다짐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조용히 마음을 가라 앉혔다.
그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막개의 말이 맴돌고 있었다.
뇌전심법을 통해 그의 머리 속에 전해진 막개의 무공심법이었다.
뇌전심법이 완전히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중단되었지만 막개가 전수한
칠성지연검의 심법은 치우의 머리 속에 잠재되어 있었다.
칠성지연검에 대한 모든 것이 전수되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모두 전수되었기 때문에 치우가 연구를 한다면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었다.
치우는 조용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고요히 앉아 있으니 막개의 말이 끊임없이
자신의 머리 속으로 전달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막개가 옆에서 치우에게 말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 였다.
뇌전심법은 잠잘 때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혔을 때 어김없이 시행자의
말이 전해진다. 이것은 반복 학습과 같아서 전수 받은 자가 모든 것을 흡수할
때까지 계속해서 머리 속에 전달해 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당하는 사람에게는 고통과도 같았다. 잠을 잘 때나 쉬고 있을
때나 끊임없이 시행자의 말이 머리 속에서 이어지니 견디지 못하면 정신이상을
일으키기가 쉬웠다. 그러나 끊임없이 시행자의 말을 받아들여 그의 뜻에 맞추어
수행하다 보면 그렇게 힘들지 만도 않다. 모든 것은 뇌전심법을 전수 받은 자의
몫이 되는 것이다.
치우가 그렇게 막개의 뇌전심법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무엇인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치우는 처음과 달리 막개에게서 전수 받은
순양기(純陽氣)의 기초 내공이 자리 잡아서 이미 모든 감각이 일반인에 비해서
월등한 수준에 올라있는 상태였다.
아직 자신만이 그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지.
그는 점점 다가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몸을
조용히 움직였다.
이 동굴에서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막혀있는 굴이기 때문이다.
치우는 다가오는 것이 사람인지 아니면 괴물인지는 모르나 자신에게는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빨리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이미 아래쪽에는 그의 적들이
무수히 많았고, 지금 있는 곳 또한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지 않은가.
치우는 진퇴양란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있다가는 적에게 노출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하지...”
추괴 나찰은 갈마웅의 말을 듣고 괴물들이 공격해 올 때 이미 그 자리를 피해
있었다. 갈망웅은 그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폭포수 쪽이 수상하다. 조용히 그쪽을 수색해 보아라. 다른 사람들 모르게
막개를 찾아야 한다. 그는 이미 내 한독공에 적중되어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추괴 나찰은 갈마웅의 전음을 듣고는 바로 폭포수 근처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폭포수 근처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수색을 하고 난 후 여서 그가 다시 그 곳을
수색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여사랑이나 호웅사묘는
모두 아래 쪽 동굴들을 수색하기 바빴다. 그래서 그가 폭포수 근처를 조용히
관찰하기에는 더 없이 좋았다. 그가 얼마간 수색을 할 때쯤 동굴에 괴물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보니 괴물들과 싸울 준비를 하며 동굴 중앙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갈마웅의 명령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폭포수 근처에 몸을 숨기며 막개의 종적을 찾았다.
처음에는 특별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초개의 무덤과 그 근처에 괴물들의
흔적이 약간 보였을 뿐, 막개의 흔적이라 생각되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막개의 흔적을 찾는 동안 동굴 안은 괴물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그는 폭포수 근처의 바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생각했다.
‘형님은 함부로 말하실 분이 아니시다. 분명 뭔가 감을 잡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흔적이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된 걸까.‘
그가 한참 생각을 하며 폭포수 근처의 바위를 살펴 볼 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저것은...”
가까이 다가가서 흔적을 살펴 본 추괴 나찰은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후후. 상천제 막개 드디어 네 놈에게 복수를 할 기회가 찾아 왔구나. 기다려라
정말 살고 싶지 않도록 해 주마.“
나찰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의 얼굴이 무척이나 흉직한 상태에서 얼굴에 야릇한 웃음을 지으니 마치
지옥의 상제가 웃는 듯 했다.
그가 보고 있는 바위에는 붉은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군데군데 살짝 묻어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어두운 동굴 속에서 발견되지 않을 흔적이었지만 나찰의 밝은
눈은 피해 갈 수 없었다. 핏자국은 바위 위쪽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막개는 상처를 입고 폭포수 위로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괴 나찰은 지체하지 않고 곧 바로 바위 위로 뛰어 올랐다. 그가 두 번 정도 치고
올라가자 금새 그는 폭포수 근처에 올라섰다. 십 여장 가까이 되는 길이를 손쉽게
뛰어 오른 것이다. 그가 오른 곳은 작은 공간이 형성 되어있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 정도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그곳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이상하게 흙이 깔려 있어 이상한 풀들이 자라 있었다.
사실 풀이라고 해야 할지 이끼라고 해야 할지 그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푸르스름한 것들이 군데군데 뭉쳐있는 것이 그의 눈에는 식물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바닥도 자세히 보면 흙인지 수 천년 된 먼지인지 알 수 없었다.
무척이나 고와서 그가 움직일 때마다 흙먼지가 일정도 였다.
그런데 그 곳에서 나찰은 자신의 발자국 말고도 다른 사람의 발자국과 괴물들의
발자국인 듯한 이상한 발자국들이 서로 뒤엉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 발자국은
막개의 발자국이라 보기에 상당히 작았다. 그리고 괴물들의 발자국은 어지럽게
흩어져서 엉켜 있어 몇 마리인지 알 수 가 없었다.
‘이상하군! 사람 발작국은 저기 작은 것들밖에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상천제 막개의
발이 저렇게 작을 수는 없고 분명 그 거지새끼의 발자국 같은데....그럼 막개는 어디
간 거지? 그의 발자국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군....‘
추괴 나찰은 주위를 좀 더 세밀히 관찰해 보아도 막개의 발자국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고심하기 시작했다. 발자국의 종적을 따라가다 보면 폭포수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음...그럼 저 폭포수 뒤쪽에 길이 있다는 말인가. 막개의 발자국이 없다면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가 여기에는 없거나 최고 상승 신법을 이용하여 발자국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형님의 말에 의하면 상천제 막개는 심한 부상을
입었을 거라고 했는데 어떻게 상승의 신법을 운행했을까.‘
추괴 나찰은 괜히 불안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이미 막개와는 서로 무공을 겨루어
보았기 때문에 그가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자신 이기기에는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주춤거릴 수만은 없었다.
“할 수 없군! 조심해야지.”
추괴 나찰은 작게 읍조리며 그의 병기인 적사철(赤沙鐵)를 꺼내 들었다.
막개와의 일전을 조심스럽게 준비한 것이다. 그는 최대한 자신의 움직이 들어나지
않게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귓가에 천둥치듯 폭포수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그의 심장에서 뛰는 박동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앞으로 걸음을 조용히 옮기며 긴장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추괴 나찰이 언제부터 이렇게 담이 줄었는가! 고작 상천제 하나에 내가 이렇게
조심을 해야 한다니 웃기는 구나!‘
그는 자신의 한심스러움에 고개를 흔들며 조용히 접근해 갔다. 그의 발걸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왔다. 폭포수에 가까이 접근하자
그는 왜 발자국이 그쪽으로 이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동굴이 이었군! 폭포수 뒤에 이런 교묘한 굴이 있다니 대단하군!”
추괴 나찰은 조용히 동굴 입구로 다가갔다. 거세게 쏟아지는 물결 옆으로 좁다란
길이 나 있고 그곳으로 동굴이 연결 되어있었다. 그는 안개처럼 퍼지는 하얀 포말의
물들을 맞으며 동굴 입구에 다가서 사람의 기운을 감지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동굴 안에는 사람의 기척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군!’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용히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은 어두웠으나 추괴 나찰은
화섭자를 꺼내지 않았다. 어두운 곳에서 빛을 비추고 들어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와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특히, 적이 어디서 자신을 공격할지 모르는 이런 동굴에서는
더욱 그랬다. 다행이라면 아래 쪽 사람들이 피워 놓은 횟불에 의해 동굴 벽이
은은하게 빛을 발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나찰은 동굴 벽이 빛이 나서 이상했으나
이내 벽이 광명석으로 이루어 진 것을 깨닫고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은 막개의 종적을 찾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추괴 나찰은 동굴 안으로 좀 더 들어가 주위를 살피다 무엇인가 발견했다.
“저게 뭐지?”
추괴 나찰은 주위를 더욱 철저히 살피며 바닥에 불룩 솟아있는 물체를 향해
다가갔다. 처음에는 바위 같았던 것이 점점 다가가자 형체가 들어 나기 시작했다.
“음. 이것은 괴물들의 시체가 아닌가? 그리고 이 상처는...”
괴물들의 시체는 두 구 였다. 괴물들의 시체를 살펴보던 나찰의 눈에 또다른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어두워서 자세히 구분이 않았지만 그 또한 시체 같았다.
“저기 또 하나 있군!”
추괴 나찰은 또 다른 한구의 시체가 보이자 그것도 괴물의 시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 시체 곁에 가까이 가서야 자신의 생각이 잘 못됐음을 알았다.
“어? 이건 사람의 시체인데....”
어둠 때문에 사람의 모습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사람이었다. 추괴 나찰은
사람의 시체라 생각되자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다시 한번 주위를 살핀 후에
사람의 시신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어두워 시신의 얼굴을 자세히 알아
볼 수 없었다. 추괴 나찰은 주위를 다시 살펴 본 후 자신의 품에서 화섭자를 피웠다.
치치치치.
화섭자의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가 나며 동굴이 이내 환하게 밝아졌다.
화섭자의 불빛에 의해 광명석이 더욱 밝게 빛나서 마치 동굴밖에 있는 듯하게 모든
사물이 뚜렷하게 보였다.
추괴 나찰은 화섭자를 켜서 주위를 세심하게 살폈다. 혹시라도 적의 공격이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위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핀 후 아무런
느낌이 없자 사람의 시체를 다시 살폈다. 시체는 양팔이 떨어져 나가 있었고 옆구리가
터져서 내장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온 몸에 피투성이 여서 정말 사람이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였다. 무수한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보았지만 추괴 나찰도 이렇게
끔직하고 역겨운 시체는 처음 이었다. 그는 인상을 쓰며 시체를 뒤집었다.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 였다.
“아니! 이건!! 상천제 막개가 아닌가!!!!”
시체를 뒤집어 본 추괴 나찰은 자신도 모르게 놀라서 큰소리로 외쳤다.
동굴 한 쪽에 쳐 박혀 있었던 시체는 상천제 막개였던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시체를 밝견 하자 추괴 나찰은 잠시 할 말을 잃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가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자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은 시체로 자신의 앞에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동대륙의 최강자라는 상천제 막개의 시체를 보자니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의 손으로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었지만
무공의 차이에 때문에 많은 고심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처참한 시체가 되어
싸늘한 동굴에 죽어있다니. 점점 추괴 나찰의 입이 옆으로 찢어지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통쾌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크크크크....하하하.....이렇게 죽다니 상천제 막개가...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