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어머니
수없이 듣고 또 들었건만.....
이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난다.
사내 녀석이 그것도 희끗희끗 흰머리 보이는 녀석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
그리 보기 좋지만은 않으련만....
어릴 적 울 엄마는 새벽같이 집을 나서서 시장에서 생선을 팔아서
우리 7남매를 먹여살리시는 분이셨다.
5일 장이어서 5개 읍, 면에서 돌아가며 장이 서기에
5일에 이틀 정도는 장터에서 장사를 하시고
나머지 날들은 대게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파시거나
그도 아니면 동네 일손 바쁜 집에 품이라도 팔아서
대식구들을 먹여 살리셨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집안에 엄마의 온기가 아쉬웠다.
다른 친구들은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챙겨주는 밥도 먹고,
함께 뛰어놀다가 부르면 모두 내팽개치고
쪼르르 뛰어가 안기는 친구 들......
나는 머언 발치서 늘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했었다.
그럴 때는 찔구나 삐비를 한 웅큼 꺽어 쥐고
엄마가 간 장터로 이어진 신작로가 잘 보이는 잿백이에 올라가
어릿어릿 포플러 가로수 사이로
장에 다녀오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꺾어 가지고 간 찔레를 벗겨 먹는다.
아니, 그리움을 씹어 삼킨다.
당연히 그럴 리 없으리 란걸 알면서
저 어렴풋 희끗하게 보이는 사람이 엄마이길 바라면서....
아카시아 나뭇잎을 하나씩 뜯어내면서
'엄마다.' '아니다.' '엄마다.' 아니다.'..........
시골이라서 유난히 일찍 마지막 버스가 떨어지는데
그 마지막 버스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그러나 마지막 버스가 떠나기 전 남은 생선을 떨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장사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차비라도 줄이려거나
그도 아닌 막 버스를 떨궜을땐 모든 사람이 다 내려도
엄마모습은 찾을 길 없었다.
혹시 뒷문으로 내리셨나?
장에서 오시는 길인 동네 분들을 붙잡고 울엄마 못 보셨냐고
울상으로 물어보곤 했다.
막 버스도 떠나고 모든 사람들 흩어지고 혼자 남아 있게 되면
집에 돌아와 등불을 켜들고 누나 손잡고
장터에 가신 엄마 마중을 나간다.
왜 그리도 다리(橋)마다 고개마다 무서운 전설들을 가지고 있는지....
지난 장날에도 밤늦게 돌아오시던 동네 할아버지가
도깨비에 홀려서 곤욕을 치르시고
간신히 건너왔다는 조그만 다리를 지날 때면
등골이 서늘하고 머리끝이 모두 일어서지만
귀신이나 도깨비나 호랑이들은 불(火)에는 꼼짝못한다는
어른들 말씀에 들고 있는 등불의 위력을 믿으며
등불 든 손을 더욱 고쳐잡고 하나하나 다리를 건너고 고개를 지난다.
달이 밝은 날에는 제법 멀리 사물을 구별할 수 있다.
그런 달 밝은 밤이면 이 노랫말처럼 멀리서
우리에게 서둘러 오시느라 휘젓는 팔과 발목이 바쁘다.
그럴 때면 큰소리로 "엄마~~!" 하고 뛰어가곤 했다.
남들이 흉보는 생선 비린내가 나에겐 엄마의 향수였다.
그렇게 고생하며 키우고 그렇게 자라고.....
남들보다 좀 일찍 엄마의 품을 떠나 객지를 떠돌았다.
처음엔 지나가는 아주머니의 행색이 울 엄마하고 비슷하거나
멀리서 걸음걸이가 비슷하면 그럴 리 없으리란 걸 알면서도
뛰어가 확인하고 돌아서곤 했다.
그러다가 이 노래를 라디오에서 듣게 되었다.
노랫말이 자기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이 있겠느냐 마는....
난.... 그 자리서 울어버렸다.
그리고 이 노래를 찾아서 보관하였다.
엄마가 보고픈 날이면 찾아서 듣곤 했다.
작년 여름에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셨다.
그렇게 살을 뜯어 먹이다시피 키운 7남매들 모두
풍족하진 못해도 끼니 걱정 없이 서로 우애 있게 지내며
그 은혜를 가슴에 새기며 하나씩 그 빚을 갚으려는데.
아직 반절도 아니 십분 지 일이라도 못 갚았는데......
이젠 얼마나 더 기다려야 볼 수 있을까.......
이 노래를 얼만큼 더 듣고 불러야 만날 수 있을까....
그동안 기다린 것을 다 합친 만큼?
그동안 그리워한 시간들을 합한 것 만큼?
"엄마~ 엄마도 지금 이 노래 듣고 계시죠?"
.....
.....
글옴김/홍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