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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카네이션

한울타리 |2004.05.10 23:55
조회 446 |추천 0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뒤적거리는데, 핸드폰 문자메시지 알림이 울립니다.
아버지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한숨이 한없이 배어나왔습니다.
내용을 그대로 옮기자면, "미안하다/말없이 떠나와서/5월11일 집으로 간다/" 는 것이었습니다.
남동생과 조카(남)를 가슴에 묻고 힘든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생각하자니 자식으로서 가슴이 아프다못해 저려옵니다.
그래서 몇 자라도 적고 싶어서 두서없이 글을 올립니다.


♣            ♣            ♣


지난 89년 12월에 결혼한 남동생은, 다음해인 90년 5월에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기에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기신 말씀은, "세상에 남매는 너희 단둘이다. 그러니 남은 가족은 아버지 모시고 항상 행복하길 바란다" 였습니다.
결혼을 먼저한 남동생은 철없는 누나에게 잘해주려고 하였고, 쓸쓸한 아버지에게는 외롭지않도록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아픈 시어머니가 계신 집안으로 시집온 올케는 여러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불편해하거나 싫은 내색 한번 안하고 묵묵히 내조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다들 열심히 사는 동안 사랑스럽고 예쁜 조카도 둘이 태어났고, 남동생과 올케는  변함없이 따뜻하게 아버지를 모시면서 단란하고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냥, 이대로 계속 살아갈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더군요.

 

S회사에 근무하던 동생은 중국으로 03년 1월에 출장(1년)을 갔었는데, 갑자기 1년이 연장되어서 04년에 만날 것을 기대했던 가족들의 실망이 무척 컸습니다.
서로가 보고 싶었던 남동생 가족들은 S회사의 경비일체 부담으로 중국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모처럼만의 즐거운 여정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아침에 회사 숙소인 아파트에서 가족 4명 모두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스에 중독이 되어서 남동생과 조카(남)는 사망하고 의식불명인 올케와 조카(여)는 아파트 근처의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날 아침에 아파트에서 공항까지 운전하기로 약속하였던 중국인기사(S회사 직원)는 남동생 가족들과 만나기로 하였던 시간에서 2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아파트 문을 비상키로 열고 가스중독상황을 회사로 연락하였답니다.(?)

 

S회사의 연락으로 아버지와 저는 급하게 중국으로 갔습니다.
중국에 도착하여 병원 응급실에서 남동생과 조카(남)의 사망 사실을 모르고 있는 올케와 조카(여)를 만났습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올케는 온 힘을 다하여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 목소리로, '형님, 전 괜챦아요. OO씨(남동생)한테 가보세요. 저보다는 안좋은 것 같아요.   OO(조카(남)가 어떤지 보고 오셔서 꼭 말씀해주세요"
그 말을 듣고 병원에서 나온 후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니, 내가 왜 살아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신으로 변한 남동생과 조카(남)는 병원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외국인이 사망한 경우 병원영안실에 안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철제 캐비넷에서 꺼내지는 남동생과 조카(남)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둘의 이름을 부르면서 힘없이 주저 앉으셨습니다.
"그렇게 갈 수가 있는거니?,,,  이렇게 허무하게 아무 말도 못하고 가다니,,,"  흐느껴 우시는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남동생이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있었던 아파트(회사숙소)에서 그당시 처참한 상황을 보았고, 남동생이 근무했던 S회사와 빈소가 차려진 장소도 갔습니다.
부자의 영정이 나란히 있는데, 아무런 생각조차도 안들었습니다.
그저 멍허니 부자의 영정을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아버지도 목이 메이시는지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두 눈을 감으셨습니다.
평소에 고혈압과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는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굳굳하게 버티고 계셨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으셨겠죠.
정말 사랑하는 가족들이었는데,,, 왜, 우리는 다른 자리에서 그저 바라보야만 하는 것일까요?

 

다정다감했던 남동생과 장난꾸러기였지만 작은 천사였던 조카(남)의 모습이 떠올라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제가 이러한데 아버지와 올케, 조카(여)는 어떻겠습니까?

 

서울로 돌아온 올케와 조카(여)는 병원에 입원하여 외상과 심리치료를 계속 받았고, 공항 화물로 도착된 남동생과 조카(남)의 시신은 5일장을 치른 후 화장을 하여 납골당에 안치하였습니다.
올케가 남동생과 조카(남)의 시신을 붙잡고 울면서 하던 말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OO씨(남동생)사랑했어... 너무 보고 싶다... 꿈에서라도 자주 찾아와줘,,, 둘이 같이 있는 거지?,,, 아버님 잘 모실께,,, 걱정하지 말어... 다음에 우리 꼭 만나야해..."  "OO(조카(남)야... 일어나야지,,, 엄마가 부르면 얼른 일어났쟎아... 네 옆에 아빠 계시니?,,, 꼭 손 붙잡고 있어야해... 아빠는 네가 힘들면 잘해줬쟎아... 사랑한다..."
절규하는 올케와 넋을 잃은 아버지를 보면서, 끝없는 절망감에 무너졌습니다.

 

♣            ♣            ♣


올케! 그리고 OO(조카(여)야!
그래도, 앞으로는 행복해야해... 모두가 그러기를 바래...

 

아버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5월7일에 통화한 후 연락이 안되네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카네이션이지만, 남동생과 조카(남)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가슴에 묻어드립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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