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아랍니다. 이곳은 비를 머금고 있어서 인지
하늘이 흐린 물빛이네요.
그래도 예쁜 우산을 준비하고
우산 속으로 뛰어들 그 사람을 기다려 보며
기분 뛰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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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두 얼굴을 가진 김시일
이상하게 얼핏 본 그 얼굴이, 그냥 놓쳐버린 그 오토바이의 임자가,
틀림없이 김 시일이라는 확신이 드는 것이었어.
하지만 정확한 위치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찾아 나설 수도 없어서
그날 밤은 어쩔 수 없이 가게로 돌아갔어.
다음날 학교에서도 김시일은 별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어.
난 조회를 마치고 조용히 김시일을 더 보았어.
녀석은 아주 잘 다려 입은 교복에 하얀 실내화까지
어디 한곳 흠 잡을 때가 없었지만 왠지 그런 완벽한 모습이
난 마음에 안 들었어.
나도 바빠서 신경을 못쓰고 있었고 그리고 점심을 먹고 2층 조용한
여선생 전용 화장실을 가기 위해 과학 실험실 앞을 지나가는데
안에서 나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었어.
우당탕! 와장창! 퍽퍽퍽!
창으로 들여다보니 적어도 열명은 되는 녀석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는 거였어.
“ 야! 그만두지 못해? 멈춰! ”
난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며 소리를 빽 질렀는데
그 순간 한 녀석이 창문으로 어느새 뛰어 내리고 없는 거야.
뒷모습 만 봤지만 틀림없는 김 시일이었어. 뒤로 돌아 서는데
벌써 도망치려고 마음먹는 녀석들이 있었어.
난 제일 먼저 뛰려는 오 오열의 배를 한대 질러 꿇어 앉히고
놀라서 입이 쩍 벌어지는 녀석들을 향해 소리를 빽 질렀어.
“ 좋게 말할 때 꿇어라!! 여기서 튄다고 빠져나가겠어? 지금 ?”
나는 아홉 녀석을 앉혀 놓고 물었어.
“ 지금 저 창문으로 튄 거 누구야? ”
“ ……”
“ 오 오열! 김 시일이냐?”
“……”
“ 좋아, 대답을 안 하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
“ 아닙니다. 김 시일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 그럼 뛰어 내린 건 누구야? ”
“……”
“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왜 싸웠냐? ”
“ 저 자슥들이 우리 인쇄물을 훔치는 바람에 혼을 좀 내줬더니
저 여덟놈이 저를 놓고 팼습니다. ”
“ 인쇄물? ”
그래서 난 그 인쇄물을 한 장 집어서 보았더니 그건 학교 직인까지 위조된
보충 수업비 청구서 였어.
녀석들은 자기 부모님들에게 용돈을 아주 지능적으로 받아 내고 있었던 거였어.
아마도 이런 인쇄물은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 틀림없었어.
나는 마침 소식 듣고 뛰어 올라온 체육 선생과 기 기마에게
사정을 대충 설명하고 교실로 뛰어 내려가니 김시일은 책상에 책을 펴놓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가 나를 올려다보았어.
어느 한구석 흐트러진 곳도 없이 말끔하게 말이야.
그리고는 여전히 미소를 띄우며 나를 바라 보았어.
나는 녀석의 젖은 머리카락을 보며 조용히 물었어.
“ 공부 열심히 하네. 땀이 다 나도록! ”
“ 네, 얼마 있으면 시험입니다. ”
“ 참, 너 굉장히 어이가 없다. ”
“ ……”
“ 시험? 그런 녀석이 혼자 여덟 녀석을 해치웠냐? ”
“ 저 공부 해야 되는데요. 선생님, 할 일 없으신 가보지요?”
“ 좋아. ”
얼굴빛 하나 안 변하는 녀석을 두고 나는 그냥 오후 수업을 마치고 퇴근을 했다.
“ 징아, 요즈음 무슨 일 있어? 기분이 영 별로 인 것 같아? 무슨 일이야? ”
토요일날 아침도 사채는 출근하면서 피곤한 나를 보면서 걱정스럽게 물어 왔어.
“ 긴장해서 그런가봐. 오빠. ”
“ 많이 피곤하니? ”
“ 으응, 오빠! 아니야. ”
“ 무슨 일 있으면 의논해야 돼. ”
“ 응, ”
“ 너, 정말 이상하다. 사부 때문이야? ”
“ 아이! 나 이제 바람 안 피워. ”
“ 날 두고 바람 피우면 죽어, 알았지. 토끼야? ”
“ 알았어. 오빠. ”
“ 너무 피곤하면 안 돼. ”
사채는 시무룩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이나 짖꿎게 쳐다보고는 출근을 했고 나도 그 날은 조용히 학교에서
수업도 했고 김 시일에게서도 눈을 떼 놓고 있었어.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거든……그리고 그날 오후 난 지난번 김시일이
사라진 종로 근처를 뒤지기 시작했어.
종로를 차로 몇 바퀴씩 빙빙 돌다가 종로 2가 쪽의 YWCA맞은편
낮에는 콜라텍이었다가 밤이면 나이트로 변하는 ' 마부' 라는 곳도 가보고
드디어는 단성사와 피카데리 맞은편에 모여있는
나이트 '서울데크', '투마로 ' ' 원 투 쓰리 ' 를 모두 뒤지기 시작 했어.
차만 타고 다니다가 1시간 이상을 걸은 난 너무 피곤하고
다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어.
더구나 무리를 해서 인지 어깨마저 쑤셔왔어.
“왜 이렇게 덥지?”
날씨마저 더워서 옷 아래로 땀이 흘러내려 영 기분이 찝찝했어.
그래서 잠시 음료수 하나를 마시며 두리번 거리다 보니
높은 건물 옆 튀어나와 있는 좁은 난간이 있기에 엉덩이를 살짝 걸쳐 앉았어.
대빵도 지쳤는지 헉헉거리고 있었고 중얼중얼 투덜투덜 거리고 있었지.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서 까페와 술집, 나이트가 밀집되어 있는 그 거리는
휘황찬란한 간판들로 대낮처럼 밝아 보였어.
토요일 저녁이라 벌써부터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며 가는 사람도 있었고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떼를 지어 돌아다녔지.
갑자기 왠지 내가 이러고 있는것이 막 후회가 되기 시작할때쯤 ,
우연히 정말 우연히 대각선으로 보이는 왼쪽 골목 안쪽에
나이트의 간판이 내 눈에 확 들어왔어.
그 순간 그 간판을 스쳐 들어가는 검은셔츠에 흰진바지를 입고
선그라스를 쓴 남자가 눈에 확 들어 오는거야.
그 순간 내가 무슨 탐정이 된 것도 아닌데 갑자기 가슴이 떨려왔어.
저기 진짜 있구나.
내 이 골목에 나타날줄 알았다. 자아식! 너 딱 걸렸어!!!
무의식적으로 눈을 몇 번 깜박이며 난 천천히 일어섰어.
한 손으로 엉덩이를 털면서도 시선을 그쪽에서 떼지 않았고
대빵을 발로 차면서 선글라스를 쓰고 그 나이트골목쪽으로 들어 갔어.
뭘 어쩌자고 온건 아니었는데 난 왠지 모르는 두려움을 한쪽 가슴에
묻어두고 천천히 그곳으로 걸어 들어갔어.
내가 왜 두려워해야 하지?
내가 왜 떨어? 모르겠어 정말?
하지만 내 이 기분은 뭘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건너 빨간색 네온으로 빛나는 간판이
보이는 그 골목으로 들어섰어.
맞은편에는 커다란 갈비집이 있었고, 그 안에는 꽉 찬 사람들이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먹고,
연기를 내뿜는 화로위에서 무언가를 구어 먹고 있었어.
그 나이트 앞에서 난 한참 숨을 들이 쉬고는 걸음을 멈췄어.
그 나이트는 지하에 있는지 경사가 완만한 계단이 보였어.
밝은 조명 아래 짙은 붉은색 카페트가 계단 중간부분에
고급스럽게 깔려있었고,
내려가는 벽 양쪽에는 거울이 호화롭게 붙어있었어.
“ 사장님, 와 여기를 들어가시는 건데요? 사장님 이런데 안 가시잖아요. ”
“ 조용히 해, 일이 있어서 그래. ”
“ 그래도 이상한데? ???”
“ 조금 멀리 떨어져서 따라오고 무슨 일 있기 전에는 나서지 마. ”
“ 네.”
토요일 저녁, 나이트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볐어.
난 조명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려 잠시 입구에 서 있다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지.
나이트 안으로 깊숙한 자리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깍두기로 보이는 남자애들 몇명을 세워두고 오 오열이와
여자애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는것은 분명히 김시일 이었어.
숨이 턱 멎는 것 같았어. 내가 망설이지 않고 곧장 그 자리로 가서
앞에 서자 검은 티셔츠에 날라리들 사이에 한창 유행하는
흰 진바지를 입고 긴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김시일은 나를 올려다보았어.
난 아무말 없이 선그라스를 벗었고 녀석들은 기겁을 하고 벌떡 일어났고
김시일이 깍두기들을 나가 있으라고 고개 짓을 했어.
난 자리에 폼나게 앉았지.
속으로 우헤헤! 를 외치면서 딱 ! 걸렸지? 요놈아!
“앉아, 그냥 먹어.”
“네?”
“마시라고 !”
당황한 오 오열 녀석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어고
김시일 녀석은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어.
바로 내옆에 앉은 녀석이 고개를 돌리자 마자 내가 먼저 느낀 건 냄새였어.
시원한 샴푸냄새. 아니 샤워코롱 냄새인가? 여하튼.
큰 키에 몸에 딱 맞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단추 몇개를 풀고
그래도 여유있게 술잔을 내려 놓지 않고 있는 녀석은
순간 다 자란 남자로 느껴지는 거였어.
오! 하느님! 나 변태 아냐? 어찌, 이녀석이 남자로 느껴지냐?
아! 남자 보기를 돌같이 하자! 징아!
정말 방금 전에 머리를 감고 왔는지 약간 젖은 긴 앞머리가 안경을 벗어
버린 깊은 눈을 살짝 덮고 있었고 학교에서는 모두 모아 단정히 빗고 있어서
몰랐는데 층을 내어 보기 좋게 친 깔끔한 머리는 잘생겨 보이는 녀석의 얼굴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어.
녀석은 일단은 창피해 흘낏 나를 보고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술을 한잔 들이키고는 내게 잔을 내밀었어.
“ 받으세요. 선생님, 술 하시죠? ”
“응, 너 이런데 자주 오냐? ”
“ 선생님, 여기 시일이네 가게입니다. ”
“ 오열아! 너 먼저 가라 , 나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 ”
“ 그래, 나 먼저 들어갈게. 선생님, 저 갈게요. ”
“ 응, 조심해서 들어가. ”
사실, 이런 술집에 혼자 들어 와 본 것은 처음 이었어.
술집이나 나이트에 가본 경험이라고 해봐야 대학에 들어와
과에서 개강 모임이나 신입생 환영회 등을 하느라 우르르 몰려갈 때
따라가 본 정도였고 희진이랑 몇 번 미팅 나가 본 게 전부인 내가
사실 이런데 혼자 들어오고 단 둘이 김 시일이랑 앉아 있으니
왠지 위축되는 기분이었어.
김 시일은 종업원을 손짓해 불렀다.
“ 네, 사장님. ”
“ 여기 안주 좀 가져다 주세요. ”
“ 네, 사장님. ”
그런데 그 종업원이 과일 안주를 가져와서는 안주가 가득한 쟁반을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거야.
나도 얼굴이 네모나게 생긴 녀석을 쳐다보았지.
그랬더니 아무 말 없이 안주를 내려 놓고 가버렸어.
“ 선생님 한잔 더 드세요. ”
“ 좋아, 오늘만 봐 줄 테니 너도 한잔 마셔.”
“ 선생님도 술 잘하시네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녀석을 쳐다보았더니 녀석은 나를 보면서 웃고 있었어.
“ 귀엽네요. 선생님. ”
“ 뭐? 콜록콜록! ”
나는 내친김에 별 생각 없이 술을 한잔 더 들이키고 있었어.
“ 더 드실래요? ”
“ 그래!”
“ 그런데 말이지? 너, 여기 사장이냐?”
“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어요. ”
녀석은 잠시 뭐라고 할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입을 다물고
이마에 깊게 주름을 지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그리고는 입을 다시 국 다문 채 잔에 술을 따랐어.
“ 아버지가 몇 년 전에 사고를 당하셨어요.
그래서 가게를 어머니께 돌보셨는데.
어머니가 아버지하고 이혼을 하시는 바람에 제가 대신 나오게 된 거예요. ”
“ 아……그렇구나. ”
“ 네. 그런데 선생님은 여기 웬일이세요?”
“ 어, 솔직히 말하면 지나던 길에 여기로 들어가는 너를 보고 들어 왔어.”
“ 왜요? 그런데 왜 저한테 관심을 갖는 거죠?”
녀석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손님들에게 시선을 두었다가 가게를
한바퀴 돌아보며 턱을 괴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어.
“ 나는 네가 왜 공부도 잘하고 반듯한 녀석이 너인지?
아니면 애들의 짱이 너인지? 그게 궁금해. 아주, 궁금해 죽겠어. ”
“ 둘 다 나예요. 둘 다!”
녀석은 다시 술을 한잔 마시고 인상을 조금 찡그리며 말했어.
“ 난, 우리 아버지를 저렇게 휠체어에서 꼼짝도 못하게 만들어 놓은 녀석을
찾아내 복수 할거예요. 반드시! 하지만 고등학교는 졸업해야겠죠. ”
난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남은 술을 마저 마시고 물었어.
“ 그게 무슨 소리야? ”
“ 이야기해도 모르실 거예요. 또,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고요. ”
“ 그래? 하지만 말야. 난 네가 어쩐지 위태 위태하게 느껴지는데……”
“ 그렇지도 않아요. ”
“ 아버지가 당하신 사고가 그렇게 네게 치명적이었니? ”
“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난 그저 아주 착한 학생이었죠.
범생이 말이죠. 하하핫!”
“ 사고가 아니었구나. ”
“ 우리 아버지는 동대문 쪽의 사채 업을 하시죠.
그런데 반대쪽의 사채업자가 우리아버지를 공격했고 결국 그 사건으로
다리를 못쓰시게 된 거예요. 처음엔 식물인간이셨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어! ”
거의 경악에 가깝게 소리를 지르며 내가 다시 녀석을 쳐다보자 녀석도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의아한 듯 물었다.
“왜요?”
그애 역시 한마디로 대꾸했다.
커질대로 커진 눈을 비벼가며 난 내 눈앞에 서있는 그애를
다시 한번 보며 경악을 해야 했다.
이.. 녀석이… 김시일이 김사장의 아들?
난 너무 놀라 내가 아직 녀석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도 깜박하고 있었어.
아슬아슬하게 포크에 찍은 안주를 들고 난 심하게 떨고 있었던 것이었어.
내가 그렇게 입 벌리고 놀란 눈으로 녀석을 보고 얼어있자
녀석은 내 곁으로 더 다가오더니 내 손을 잡았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움직이는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며
난 앞이 아득해 지는 것을 느꼈어.
“선생님? 왜 그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