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맘에 들지 않는 녀석
딱히 프로포즈라 할 것도 없었다. 내가 상상하던 장미꽃 수천송이도 없었고, 예상하고 있던 일도 아니였다. 그냥 어느날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별일 아니라는 듯 그가 나에게 툭 던진 말 한마디...
결혼하자! 였다.
결혼을 하기에는 난 너무 어렸고 난 솔직히 그와의 결혼은 생각해보지도 않았었다.
그럴수밖에...누가 짚섬을 지고 불구덩이에 들어가고 싶겠는가?!
막무가내에 성격 포악! 난폭! 게다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왕자병 중증의 환자! 그러나 남들에겐 이미지 관리 철저해서 내가 남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면 다들 자랑하는거냐며 비웃기 일쑤였다.
그 녀석은 의례 당연하다는 듯이 사귄지 정확히 3개월하고도 10일만에 나에게 프로포즈를 했던 것이다.
그 말에 비웃으며 무시했던 나는 확실히 아니라고 그 자리에서 못 박았어야만 했다.
그냥 농담으로 치부해 버렸던 ....그냥 웃어버렸던 것이 내 인생 3번째 최대 실수였다.
다음날 학교끝내고 독서실 갔다가 늦은 새벽 2시에 집에 들어갔을때는 왠일인지 부모님 모두 잠자리에 들기 전이셨다.
“다녀왔습니다!”
“왔어?!”
내 앞에 있어야 할 사람은 엄마인데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그녀석이였다. ‘왔어’라는 말과 함께 내 책가방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고서는 그는 제집인 마냥 내방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고, 어이와 황당함에 차마 말을 잊지 못하고 있는 내게 우리 부모님은 날은 언제잡으면 좋을까 하시며 내 의견을 물어보고 있었다.
생각을 해 봐라! 상식적으로 난 이제 19살이고 고 3인데다가 게다가 그 녀석과는 잘 알지도 못했다. 이제 사귄지 고작 3달 10일 만이였고, 난 야자다 뭐다 밤낮으로 공부하기 바쁜덕에 그 녀석의 얼굴은 1주일에 한번 볼까 말까였다.
그런 그 녀석과의 결혼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릴 일이였다.
난 내 방문을 벌컥 열어 그 녀석에게 따지듯 말했다.
“난 아직 결혼같은거 생각없어요!”
“그래도 언젠가는 할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아니란말예요!”
“어짜피 할거라면 부모님 동의하에 사귀고 결혼하는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렇다. 그 녀석은 능글 맞았고, 내가 이렇게 나올줄 알았던 것이다. 그당시 결혼 전 교제 허락을 받으러 왔다는 식으로 말하던 그는 어느새 부모님과 결혼식 날짜까지 잡았고, 난 고삐에 매어진 망아지 마냥 그렇게 끌려다니다 결국 이렇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도무지 맘에 들지 않는 녀석이다.
제 멋대로인 녀석!
지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
정말 대책 안서는 그 녀석의 가장 마음에 안드는 점은 바로... 이중적인 성격이다!
가족 끼리 식사를 할때!
그의 행동은 버터를 발라 놓은 빠다 왕자 저리 가라였다.
“등푸른 생선은 머리에 좋다더라! 이거 먹어봐”
하며 내 밥숟가락 위에 고등어 자반이 하얀 속살을 들어내며 얹혀질때 즈음.... 내 위에서도 식용유 같은 그의 느낌함에 밥이 얹히고 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와 아빠는 어쩜 저리도 다정하고 다감하냐면서 나한테 복받았댄다...젠장!
그 녀석의 맘에 안드는 구석은 그랬다.
모든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 어느새 정신 차리고 보면 다들 그녀석의 마수에 끌려들어가고 있음을 알게 될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말 정말 맘에 안드는건...내가 이미 그녀석에게 적응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어딜 가면 의례적으로 문자 남겨서 행선지를 밝히고 있는 나를 느끼면....정말인지..그녀석의 존재가 나에게 참 대단하다는걸 느끼게 해준다.
근데 정말 인연이라는건 있는 것 같다.
사실 난 그때 그 녀석과의 입맞춤 이후 그 녀석을 다시 볼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고, 다시 그를 본 것은 시아의 오빠인 그리고 내가 본의 아니게 바람을 맞춘 그 예의바른 남자의 생일 파티에서였다.
[오늘 시후오빠 생일! 짝짝짝!~우리집으로 오셈!~]
한참 식곤증으로 눈꺼풀이 천근 만근인 5교시 수업시간. 애써 다리를 찔러가며 공부하던 나는 시아의 문자를 받고 잠시 그날일을 생각했다. 하지만..그날 일과 연관되어지는 그 녀석의 얼굴!
고민 끝에 그래도 그 사람은 나에게 잘 해주었고, 내가 바람까지 맞춘 꼴이였으니 이번엔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시아네 집은 의리의리 했다. 텔레비전에서나 나오는 의리 의리한 집!
한 두 번 시아네에 온적은 있었지만 요 근래에는 한번도 없었고, 그 집에 관한 위압감은 여전했다.
긴 정원을 지나서 안으로 들어갔을때 후회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였다.
안에는 전번에 봤던 중학교 동창 2명과 시아, 그리고 시후오빠와 그 녀석이 멀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다시 받는 눈동자 세례라니.....
간단한 식사가 끝나고 그 자리는 곧 술로 이어졌다. 고등학생이 술이라니.... 예전같았으면 이해 못할 나였지만 나도 한번은 나이트클럽까지 다녀온 몸이 아니시던가?!
“미진인 중학교때 어땠어?!”
시후오빠는 그 날의 이야기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았다. 사실 오빠가 말을 꺼낼까봐 조마조마 했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또 오빠가 나를 편하게 대해주자 난 솔직히 오빠에게 마음이 가고 있었다.
쇼파에 살짝 걸터 앉아 예의 그 환한 보조개 미소를 보여줄때면 술을 마신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나 가슴이 떨렸는지....
지금 내 옆에 있는 그 녀석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의 첫사랑은 시후오빠인 것 같다.
“미진이?! 예나 지금이나 범생이지!”
“미진이 맨날 공부만 했잖아.”
“난 전번에 미진이 보고 미진이가 누군지 앨범 다시 뒤져 봤잖아.”
지금 다시 생각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 시간이였다. 나를 그렇게 생각하다니...하긴 내가 생각해도 난 공부가 낙이였고, 내가 원하는 점수를 받을때면 항상 왠지모를 자부심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일까??! 욕을 딱히 먹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말할줄은.....
애들이 한참 나를 화두에 올려놓고 중얼댈때 그 녀석의 표정이란 왠지 모르게 심각해 보였다.
어쨌든 그런 기분으로 더 이상은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뒤늦게 약속이 생각났다는 진부한 핑계거릴 대고 시후오빠한테는 미안하지만 집을 나왔다. 그때 나와 같이 나온 한 사람....
그 녀석이였다.
솔직히 그날은 그 영 꽝인 기분이였고, 난 그녀석이 날 쫒아 오든 말든 거리를 걸어 아무 버스나 잡아탔다. 오래전부터 나의 버릇이였다. 기분이 우울할 때면 항상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 까지갔다가 다시 돌아오는일.....
창 밖의 사람들과 지나가는 차들 그리고 거리들을 보면 내 기분은 어느새 안정을 찾았고, 그날도 어김없이 난 버스를 탔고, 그 녀석 역시 나의 뒤를 이어 조금은 멀찌감치 자리잡고 앉아있었다.
흔들거리는 차의 요동이 자장가처럼 느껴져 스르르 눈이 감겨 있을때 즈음 나의 어깨를 툭툭 치는 사람이 있었으니...
내 앞에 할머니라 하기에도 뭐하고 아줌마라고 하기에도 뭐한 사람이 한명 서있었다.
그녀의 눈은 날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으며, 날 깨우고 난 후 한 그녀의 말이 가관이였다.
“요즘 것들은...어른 공경할줄도 모른다니깐! 자는척 하니깐 좋디?!!”
오히려 당당한 그녀 때문에 가라 앉을려고했던 마음이 다시 불같이 일어났다. 나 이미진! 자칭 바른생활소녀라 자부하며 이제까지살았거늘....나를...나를.....
버릇없이 어른와서 자는척 하는 아이로 몰고 가고 있었다. 얼마 없는 버스안 승객들의 눈동자가 다 나와 그 여자에게 향했다. 너무 분해서 한마디도 못하고 바르르 거릴때 쯤!
그 녀석이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누나! 몇 살이세요?! 무척 젊어보이시는데?! 피부 관리 잘 하시나봐요!“
약간 하이톤의 목소리. 그 녀석은 그 여자를 떠보고 있었다.
난 의아한 눈으로 그녀석을 바라보았고 그녀석은 나에게 눈한번 찡긋 하더니 이내 그 여자의 얼굴로 손이갔다.
“우와! 피부 정말 좋아요!”
생각해 보라!
어느 여자가 멋지고 잘생긴 남자가 누나라고 부르며 피부 곱고 예뻐보인다는데 안넘어 가겠는가?!
그 여자도 생긋 거리며 수줍은 척(적어도 내 눈엔 수줍어 하는척 해보였다.) 하며 말했다.
“그렇지?! 내가 어딜가도 40대중반이란 소리는 안들어! 홀홀홀홀”
그 여자가 뿌듯해 하면 그 말들을 내던지는 순간 난 그여자의 아이큐가 심히 궁금해 졌었다. 그 녀석은 자기가 원하는 답을 얻었다는 듯 전에 보여줬던 그 시그니컬 한 웃음을 지으며 인상을 굳혔다.
“아줌마! 아줌마는 40대 중반이 할머니야?!! 어따 대고 자리를 비키라 마라야!”
갑작스레 태도 돌변인 그의 행동에 그 여자는 심히 당황했고, 주변사람의 쑥덕임이 들렸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선 다음 정거장에서 황급히 내려 버렸다.
창밖으로 황급히 내리는 그 여자를 보고 나서 내가 그를 쳐다 보았을때 그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내 옆에 와서 서있었다.
솔직히 그때는 엄청 멋져 보였다.
한참을 그렇게 돌아다니고 기분이 풀어져 집 앞까지 왔을때 그는 아무말 없이 날 한번 안아주고는 가버렸다. 사실 남자 품에 그렇게 안겨 있는 내 모습이 지금도 상상이 잘 안가지만 그때는 그게 대단한 위로이며 활력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