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옴 붙은 정월 초하루
1998년 1월 1일
어제 밤부터 새벽녘까지 기와집과 초가집을 수없이 허물고 또 짓다가 부수면서
얇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오줌이 마려워서였다. 음산하고 추운 날씨 탓에 이불을 사타구니에 끼고 두 손으로는 이불 끝자락을 턱까지 당겨 삼각형 사다리꼴로 만들어 끌어안으며 이빨로는 이불깃을 물고 뒤통수는 절반쯤 이불밖에 들어내놓고 야금야금 아파 오는 아랫배 앓 이는 참을 만 하건만 밤새 아내의 기저귀에서 새어 나온 소변 쓰며든. 담배 불통 떨어트려 군데군데 담뱃불 자국이 까맣게 있는 사슴 무늬 연분홍색 카시미롱 담요를 끌어안고 있는 나였기 때문에 찌린내의 고문이 역겨워 마른침을 몇 번이나 퇴퇴 거리며 내 뱉고 이불을 얼굴에서 벗 끼고. 새우처럼 하고서 몸을 오그리고 사타구니에 끼웠던 이불을 발가락 끝으로 집어 잡고 몸에 끼어서 빠지지 않는 이불을 아래위로 몇 번 당기고서야 굼벵이 몸짓으로 억지로 일어나 아픈 아랫배를 허리를 꾸부려 움켜잡고 오리걸음으로 고장난 방문을 엉덩이로 힘껏 방문을 미니 방문은 왼쪽 벽에 쿵쿵 서너번 부딪쳐 쾅 쾅 소리내고는 절반쯤 열려다가 도로 닫히기를 반복하며 춤을 추더니. 손잡이 사이에 어 거지로 붙어있던 손잡이가 나사가 빠졌는지 문짝이 와장창 하면서 맥없이 얽어져 손잡이 아래 부분이 얽어지면서 내 오른 발등을 사정없이 찍어눌렀다. 위 부분은 유리가 덜렁거리며 금방 이라도 떨어질 위태롭게 흔들리고. 한 발이 나가 반쯤 방밖에 나갔던 몸 뚱 아리를 엉덩방아 찧고 말았다. 문짝이 떨어져 찍힌 발바닥을 하늘에 보이며 밖에 나가려던 나는 방바닥에 들어 누워 버렸다. 발등 을 찍고 얽어진 스텐 조각들을 발끝으로 치우고 피가 흐르는 발을 두 손으로 살살 잡아 당겨 겨우 방에 들이고, 방바닥에 발이 찍혀 피가 벌겋게 흘러도 배가 너무 아파 아랫배를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움켜잡고 앉은뱅이걸음으로 부엌 쪽으로 가다가 그만 아내의 팔을 밟아 아내를 내 몸 위에 엎어지고 말았다. 육중한 내 몸이 아내를 덮쳐 어도 아내는 으으 모기 소리소리만 낼뿐 아프다는 말도 한마디도 하지 못 했다. 아내에게 쓰러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아내한데 "형주 어 메야" "아프제 미안 하 데이" 라는 말을 하고. 부엌으로 나가 나오다가 얘들이 벗어놓은 신발에 걸려 서너 발 허공에 몇 발 헛발 내딛으며 앞으로 사정없이 또 꼬꾸라 엎퍼 졌다. 발톱이 찢겨 나가고 무릎 팍 이 깨져 한참이나 딱딱 한 시멘트 얼굴을 쳐 박은 체로 새우모양으로 엎어져 꼼짝도 못 하고 말았다. "에이 10팔 니기미" 고개를 겨우 들고 욕을 지껄이고. 마비된 몸뚱아리를 겨우 일으켜. 얼굴에 묻은 티끌을 손바닥으로 대충 털고 손바닥으로 시멘트 위에 말라있는 풀을 당기며 쳐진 엉덩이를 발끝으로 밀면서 억지로 앉았다. 엉덩이로 온몸을 밀면서 내 키보다 더 큰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무궁화 나무사이에 앉아. 문짝에 찍혀 퉁퉁 부어 멍든 오른 발등을 바라보니. 발톱 찢어진 곳과 문짝 떨어져
퉁퉁 부어 피가 흘러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발은 이미 피가 시커멓게 굳어 있었다. 퉁퉁 붓고 피 범벅된 오른발을 반쯤 구부려 펴고 내 그것을 꺼내고 소변을 보려해도 사고 때문에 너무 오래 참은 탓인지 아랫배는 창자가 꼬이는 듯 아프기만 하고 소변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십 여분을 바지를 반쯤 벗고 아랫도리를 내 놓은 이상한
꼴로 십 분도 넘게 고문 아닌 고문당한 후에야. 소변을 쏟으니 내 그것이 앉아 있는 허리에 접혀 소변이 끊어 졌다 나오다 하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바지만 조금씩 조금씩 젖을 뿐이었다. 소변을 다 보고 시원함을 느껴 을 때는 내 바지는 소변으로 흠뻑 젖고. 내가 앉은 엉덩이 밑에도 소변이 흥건하였다. 소변이 묻은 축축한 바지 속에 거시기를 넣지도
못 한 체 어깨를 두어 번 흔들고 엉덩이를 질질 끌고 시멘트 연자방아 쪽을 앉은뱅이처럼 기어가니. 시멘트 길 위에는 내 소변 묻은 바지가 물 자욱 그림 그리며 내 사타구니를 바짝 따라 왔다. 연자방아 구멍에 손을 넣고 몸을 끌어 연자방아에 걸터앉으니. 시간을 대충 짐작케 하는 것은 북쪽으로 드리워진 집 그림자가 그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소중하게 쓰여졌을 어른 두 아름이나 되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연자방아에 십 센치 정도 깊이의 네모난 구멍에 흙이 꽉 찬 곳을 중앙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두시는 넘었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퉁퉁 붓고 발톱까지 찢어진 굳어버린 오른발을 손으로 꾹꾹 눌러 쭉 펴고. 담배한대를 피우니 햇살은 겨울인데도 어깨위로 따뜻하게 나를 감싸며 위로하여 주었다. 담배 니코진이 속을 역겹게 뒤집어 우우욱 우우욱 헛구역질만 몇 번하고 담배를 절반도 피우지 못하고 두께가 두자나 되는 각을 잃은 마름 모로 움푹 파진 연자방아 중앙에 담배 불을 비벼 끄고. 사타구니 사이 연자방아를 담배꽁초를 너 댓번 문지르니 담배꽁초는 가루가 되어 힘을 잃고 말았다. 담배 불 끄는 손놀림의 의해 닳아 뜨거워 손을 입으로 후후 불어 흔들어 식히고. 피우다 남은 꽁초를 버리기가 아까워 왼쪽 밤색 남방 호주머니에 떨어트려 넣고. 아픈 몸을 엉덩이로 질질 끌고 방에 들어오니. 뱃속의 회충은 위액은 만들어 신물을 입까지 퍼 올리며 회충은 창자를 채워 주지 않는다고 극성을 부렸다. 작은 못질하여 접지도 못하는 먼지가 두껍게 쌓인 옷 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허옇게 얼룩덜룩한 밥상 위에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젓가락 굵기만큼 퉁퉁 불을 대로 불어터진 라면이. 국물 속에 밥알처럼 둥실둥실 몇 가닥 떠있었다. 언제 고장난지도 모르는 작고 낡은 붉 은색 밥통은 아직은 반나절 정도는 보온 역 활을 하며 우리 가족에게 충성을 하지만 이틀만 지나면 우리가족한데 역적이 되는 밥통을 열어보니. 반 그릇 정도의 밥은 누렇게 찐쌀이 되어 밥통에 붙어 있었다, 밥통을 열어 밥을 푸려니 밥알은 주걱 움직임에 구르며 따다닥 따다닥 소리를 낸다. 어제 저녁에 먹다 맘은 불어터질 대로 불어터진 라면이 둥둥 떠다니는 국물이 담긴 시커먼 냄비를 아픈 다리를 펴고 앉아 잡고. 시계방향으로도 돌리고 반대쪽으로 또 몇 바퀴 돌리고. 누런 찐쌀이 되어버린 딱딱한 밥을 어제 먹다 남은 라면 국물 속에 넣으려는데 주걱에서 밥이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말라비틀어진 찐쌀 밥을 냄비에 서너 번 툭툭 두드리니. 주걱에서 강제로 떨어지면서 라면 국물에 풍덩 떨어지는 바람에. 라면 국물이 눈 속에 튀어 들어가 왼쪽 눈을 멀게 하였다. 따가운 한쪽 눈을 감고 남은 밥을 주걱으로 문질러 넣다 가 한쪽 눈 마저 라면 국물이 튀어 들어가 잡고 있던 냄비를 그만 떨어트리는 바람에 얼굴에는 온통 라면 국물로 세수했다. 눈이 쓰라리고 따가워 수건을 찾으려고 맹인처럼 두 손을 허공을 휘저으며. 오른쪽 다리는 쭉 펴고 기어 싱크대
문짝이 장 석이 고장나 한쪽 문이 비스듬히 처진 낡은 싱크대를 향해 가는 실 눈을 떠
방향을 잡아 버둥거리며 더듬어 갔다. 걸레보다 더럽고 냄새나는 손에 잡힌 행주로. 라면국물로 세수한 라면국물이 뒤 범된 얼굴을 닦고 등을 축 쳐진 싱크대 문짝에 기대고 앉아 아픈 다리를 쭉 펴고. 냄비에 담긴 찐쌀이 된 누런 밥덩이를 숟가락을 주먹 안에 꽉 움켜쥐고 힘주어 툭툭 끄고 한 숟가락 푹 떠서 입 속에 가져가니 어제 초저녁에 먹다 남은 라면 국물에서는 싸근하고 이상한 맛이 내 혀끝을 자극해도 사망직전인 내 창자 속에 회충들은 마다하지 않은 재수라고 더럽게도 왕 재수 없는 기묘년 정월 초하룻날의 하루를 나는 이렇게 시작하였다. 방에 들어와 일기를 쓰면서도 서글픈 생각이 들어 아내의 이마에 손으로 짚어 본다. 밖에 인기척이 들려 부서진 문 쪽으로 손과 발끝으로 엉덩이를 끌고 밖을 억지로 나가보니. 큰 얘가 정종 병과 선물 꾸러미 들고. 얼굴엔 웃음을 가득 피워 머금고 아빠하며 내 품에 안겨왔다. 기운 잃은 서산의 해는 붉은 빛을 토하며. 푸른 구름을 삼 키며 우리 부자의 상봉을 축하해 주고는. 마른 감나무 가지 사이에 걸려다가 서쪽으로 맥없이 사라져 갔다. 나는 아이의 어깨에 내 팔을 얹고 한 쪽 발을 들고 절룩거리며 핏기도 가시지 않은 어린 아들에게 어리광을 피우며 아이에게 "오늘 재수 더럽게 없는 날이 데이"라고 투덜대니. 아이는 어른처럼 "그래도 이 아들이 왔지 않느냐"며 아비보다 어른스럽게 얘기하며 아비를 위로하였다. 어린아이가 담배 한 보루 내미는 것을 받으면서도 행복해 하는 못 나고 못난 아비다. 아직 핏기도 체 가시지 않고. 중학교 다녀야 할 어린 자식이 벌어서 싸와 내미는 담배를 받아들고서도 행복해 야만 하는 정말 못나고 못난 애 비다가 나란 사람이다. 오늘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시자 나를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와 따사로운 햇살까지 느끼며. 행복해서 두 눈에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해주며. 어디 그 뿐인가 내가 살아 움직이며 느낄 수 있는 모든 행복을 밤새도록 몇 날 몇 일을 열거해도 모자라는 내게 생명을 주신. 거룩하고 거룩하신 내 어머니 제삿날이자 내 인생에 가장 위대한 작품 큰아이가. 지금은 비록 짐승처럼 누워 있는 내 아내 몸에서 태어난 내 손으로 탯줄을 끊어준 날이다. 돐 때를 제외하고는 몇 번이나 생일 날 아침에 미역국 끓여 먹였는지도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니 생일이기도 하다. 열 살도 체 되지 않을 때부터 어미가 병들어 밥도 짖고 설거지도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아이다. 그러니 어찌 생일 날이라고. 아침에 따뜻한 미역국과 밥인들 얻어먹었을 수 있었으랴. 운명처럼 어머니 삼년상을 치르던 그 날 아침에. 어머니가 운명하시던 그 시간에 내 손으로 직접 탯줄을 끊은 내 분신인 아들이다. 아마도 내 어머님이 내 업을 예견하시고 보내신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사를 지내고 애들의 고모도 떠나고 어린 형제는 얼싸안고 얼굴을 비비더니 적은 놈은 "히야" "히야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하며 "히야"는 내가 안보고 싶어나"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형제의 정이 몹시도 그리웠던 모양이다. 내가 어쩌다가 "이 꼬라지가 되었을꼬" 어 메가 설 추석에도 잠 한번 제대로 편안히 주무시지 못하고 손가락 마디마디 마다 반창고 싸시는 것도 아까워 때가 번들거리는 헌 옷가지 찢어 언제나 동여 메시고. 주민등록증을 다시 만드실 때마다 지문이 닳아 면서기의 고개까지 갸우뚱하도록 일구어 물려주신 집과 적잖은 전답과 당신 부부가 묻혀 계시는 산 마저 한 평도 남김없이 다 털어먹고. 남은 재산이라고는 병든 아내도 모자라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저 어린것을 중학교도 졸업시키지도 못하고 돈 벌러 보내는 몹쓸 아비를 그래도 원망하지 않고 아비라고 찾아와 보고싶어 하니. 천륜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늘 아이한데 네 놈이 타고난 업이라 말하며. 조금만 잘못해도 매질하는 못나고 모진 아비 인자가 바로 나란 인간이다. 내 타고난 하늘을 덮고도 남을 업을 내 자식 한데 많은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나는 모진 아비의 길을 스스로 짊어지고 가는 것은 내 타고난 업은 내 대에서 끝내고 저 어린 자식들에게는 대물림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다, 눈동자 초점 잃은 아내를 부르며 형주 왔는거 아느냐고 물어도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새우처럼 몸을 접어 엉뚱한 곳으로 구르며 머리만 쿵 쿵 거리며 방바닥 여러 군데를 찧을 뿐 아무런 아프다는 반응조차 없다. 어린 형제는 무슨 할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좁은 방안에서 초롱초롱한 눈을 굴리며 형제의 정을 나누지만 애 비의 마음이 허물어져 입을 베 게로 틀어막고 줄줄 흐르는 눈물이 가슴을 고이고 있는 베 게를 흠뻑 적시고 남은 눈물은 방바닥을 타고 부엌문 쪽으로 흘러가는 눈물을. 아내가 덮고 있는 이불깃을 슬쩍 당겨 닦아도 철없는 저 아이들은 아비의 이 피보다 진한 업의 찬가도 모르며 형제의 정으로 밤을 세려나 보다. 아......! 살아 숨쉰다는 것이 이다지도 고통스러울 수도 있단 말인가. 나는 어찌 하여 아비 짓도 남편 구실도 제대로 못하고 자식의 의무마저 하지 못하며. 늙고 병든 누이들 한데 제사 음식까지 맡 껴야 하는 못난 운명을 타고났을꼬.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를 악물고 아이들이 듣고 볼까봐 병든 아내의 뼈 위에 가죽에 달려있는. 남편인 나에게도 보여주기 부끄러워하던 예쁘고 통통 하던 아름답던 쌍 봉은 어디로 갔는지 온데간데없고 말라 비틀어져 쭈글쭈글한 마른 포도 알처럼 되어 버린. 아내의 가슴 위에. 아내의 젖꼭지 보다 더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다가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아픈 몸을 학대하며 밖으로 뛰쳐나와 경덕 왕릉 소나무 숲 속 아래 내 눈물을 꼭꼭 다져 심으며. 업의 찬가를 동트는 붉을 기운의 힘을 빌어 겨우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