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5살 직장인 여자입니다.
제목 그대로.. 22살 결혼한 동생을 생각만 하면 마음이 서글퍼지고 우울해져서...
퇴근 전 몇 자 남겨볼까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저희 자매를 무한히 사랑해주셨으나,
교육적인 면에 있어서는 무지하신 탓에 신경을 못 써주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때 저희 가족은 아버지 일 때문에 떨어져 살기 시작했고
사춘기 방황을 심하게 겪던 저 때문에 아버지 있는 곳으로 가 다시 합쳐 살기까지
5년정도...
그렇게 미친듯이 우울하고 힘들고 고민많던 학창시절을 보낸 기억이 납니다.
천성이 순하고 약한 저희 엄마는 그런 저를 어쩌지 못하고 그냥 방치해두셨던 것 같아요.
그런 엄마의 스트레스를 제 동생이 다 받았을테구요.
전 고등학교 때 아버지 있는 도시의 시골학교로 전학을 갔고,
그 곳에서 이방인 딱지가 붙어 (그 때 전 시골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없었습니다. 졸업할 때까지 혼자 먹고 혼자 놀고 혼자 공부했어요.
동생은 중학생일 때니, 나름 친구를 사귀고 생활을 해나갔구요.
전 그 때까지도 정체성 확립이 안된 그저 까다롭고 감수성 예민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까만 피부에 통통한 외모때문에 자격지심도 많았고, 성격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자살충동이 인 적도 몇 번 있었지만 혼자만의 해프닝으로 넘겼고 아무도 모릅니다.
찰과상 정도로 제 팔목을 그어본 적이 있는데, 가족들 모두 보고서 아무말 없었던
기억이 나요. 그 정도로 부모님이 제게 무관심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그 지옥같던 고등학생 시절이 끝나고 대학교를 갔어요.
살도 빼고 화장도 하고 옷도 예쁘게 입고 다니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생겼습니다.
여자로서 외모에 자신감이 생기니 고등학교 때의 찌질한 삶이 잊혀지더라구요.
개념없고 술좋아하고 맘껏 논 시절이었으나 그 때 행복했던 것 같아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저희 식구는 원래 살던 본고장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모든 기억이 뭍혀진 곳으로요.
처음에 또 적응하는 데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되나갔어요.
전 작지만 탄탄한 회사에 취직도 했고,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와서 좋아하시는 엄마를
보니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는 일주일에 몇번 왔다갔다 하셨구요.
저도 철이 조금씩 들면서 사춘기때 방황하고 엄마를 속썩혔던 미안함에
엄마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고, 용돈도 드리고 이것저것 사드리고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하고 그렇게 과거의 죄송한 마음을 갚아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동생이 엇나간다고 느낀건 2008년 즈음이었을거예요.
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대를 붙었는데 집도 어려웠고, (이건 학자금 대출이
있으니 지가 벌어서 갚으면 될 일이라 별로 큰 이유가 못되요)
무엇보다도 동생이 울면서까지 가지 않겠다고 하더라구요.
저희 부모님이 그 때 끝까지 보내셨어야 옳았는데
동생은 저랑 다르게 한번도 실수를 하거나 밖에 나가서 잘못 하고 들어온 적이 없었고
나이에 비해 생각이 바르고 현명하다고 생각한 부모님께서 대학이 가기 싫으면
원하는 걸 하라고 하셨어요.
동생은 조금 있다가 대기업 하청 제조업체에 취직했고 거의 1년을 잘 다녔어요.
그 기간 중 동생이 사내에 어떤 오빠를 좋아하는데 자꾸 자길 밀어낸다며 힘들어했고
전 그 나이때의 제 연애경험을 떠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죠.
그러다 그 남자와 정식으로 사귀게 됐는지 어느날부턴 연애하는 여자 티를 내더라구요.
울다가 웃다가, 귀가 시간도 늦어지고.. 핸드폰만 하루종일 보기도 하고.
그래도 전 동생의 첫사랑이니 그렇게 한번 찐하게 연애해봐야 남자보는 눈도 생기고
경험상 좋을거라고 생각하고 별 터치를 안했어요.
그 때 저와 사귀던 오빠가, 그 남자얘기를 제 동생에게서 듣고는 별로 좋지
않으니 만나지마라고 말리던 기억이 나네요.. (전 그 때 남자친구와는 헤어졌습니다)
저는 저대로 회사일하며, 새로 사귀게 된 너무나 멋지고 빠질 것 없는 지금 제 남친에
올인하며, 바쁘게 살았습니다.
동생은 동생대로 회사다니고 그 남자와 연애하며 바쁘게 살았겠죠.
작년 이맘때 쯤이었나.. 동생이 갑자기 회사 그만두고 회계공부를 하고싶다며
기숙학원에 넣어달라고 부모님한테 조르더라구요. 몇날 며칠을..
그때도 저희 가족은 동생을 믿었습니다. 저처럼 사고치고 튀는 행동 아이가 아니니까요.
아버지는 대학교도 못보내줬다는 죄책감에 늘 동생을 보듬어주고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두시는 편이었어요. 결국 가족 모두 동생을 집에서 1시간정도 떨어진
기숙학원에 넣어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엔 일주일에 한번 오던 아이가
다음엔 이주에 한번.. 그러다 시험준비로 공부가 바쁘니 3주에 한번..1달에 한번..
이렇게 와도 밥만먹고 잠깐.. 그래도 아무도 의심어린 눈초리, 생각조차 안했죠.
동생은 올해 4월에 있다는 시험때문인지 더 집에 안왔고, 전 저대로 부모님께 잘하고
마찰없이 회사생활하며 나름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사귄다는 그 남자와 가끔 집에 놀러와서 같이 저녁도 먹었고, 가족여행에 껴서 같이
놀러도 한 번 갔다왔구요. 집에 남자가 아빠말곤 없었으니 전 마냥 신났었어요.
우리 자매가 남자집가는 게 아니라 남자가 오는 거니까 크게 나쁘게 생각도 안했구요.
그 올해 4월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달입니다.
저희 가족들과 밥먹으러 나간 자리에서 전 동생이 임신6개월이나 됐다는 걸 알았어요.
몸이 통자라 배가 약간 나왔어도 그저 밥많이 먹어서 그런거겠지 똥배겠지 생각했고
나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그 동안 속썩인적 한번 없는데 누가 그러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전 부모님께 알렸고 그 남자는 불려왔고 하루아침에 저희가족들은 무너져버렸어요.
하지만 곧 결혼이 급하다는 의견일치를 보았고 서둘러 진행하자고 얘기가 됐죠.
더 억장이 무너졌던 것은.. 그 남자에게 초등학생 딸이 있다는 걸,
임신 사실 밝혀지고 결혼준비하자고 얘기나온지 정확히 일주일 뒤에 알았다는 거예요.
남자가 저보다도 나이가 많은 총각이긴 하지만, 고등학생 철모를 때 사고치고 다니다
여자가 낳고 주고간 딸이라더군요. 그 여자와 간간히 연락은 하는 모양입니다만
아이는 남자 쪽 어머니가 평생 데리고 살겠다고 염려말라고 상견례 자리에서도
그랬다하구요. (전 상견례 안갔습니다.)
어쨌든 동생은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일을 이렇게 진행시켰던겁니다.. 혼자서 다..
모르고 당한게 아니고, 알면서 한거예요. 알면서. 사랑때문에.
배는 불러오고 저희 가족은 어쩔수 없다 생각해서 결혼식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고
얼마전 결혼식 했습니다. 저희 동네 저희집에서 가까운 곳에 아파트도 구했고
곧 그 집으로 들어갈테지만, 산후조리다 뭐다 해서 한동안은 본 집에 있을것 같아요.
이렇게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고 잠잠해지기까지 두어달 정도 걸렸습니다.
사고쳐서 낳은 딸이지만 끼고 사는 걸 정상참작해 그래도 인간은 된 남자라고 생각하고
저도 제부된 사람에게 연민도 들었고, 전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으나
팔자니 운명이니 그런걸 어느정도는 믿는 사람이기에..
저 사람이 저렇게 되고 싶어 된게 아니라 어린시절부터 불행하게 살아온 삶도 있고
(제부된 사람의 가정은 저희집 정도는 평범한 축에 속할 정도로 굴곡이 많습니다)
저렇게 될 수 밖에 없게 만든 그 윗대에 책임이 더 크다는 생각도 들었고..
동생도 큰언니인 저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받아야할 것들을 제게 뺏긴 존재이고..
제 사춘기 방황때문에 원치않는 전학을 오갔고.. 인문계 못가고 상고 간 것이
제 탓도 있다는 생각이 들엇고.. 대학 못 간것도 저 때문인 것 같고..
첫사랑이니 뭐니 하며 그 남자 좋다고 할 때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던 게
제 탓이고.. 공부한다고 집 나갔을 때 좀 더 살펴봤어야 했는데.. 악을 쓰고 대들든
어쩌든 일주일에 한번 집에 꼭 와서 자고 가게 하고... 그 남자와의 일을, 관계를,
다 알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해서... 죄책감이 너무 큽니다.
전 이제야 비로소 세상 돌아가는 시스템이 어느정도 보이기 시작했고..
애 낳는 것도 어지간히 벌지 못하면 택도 없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결혼도 늦게 하거나
아니 할거라면 욕심 많이 내서 빠질 것 없는 남자와 해야한다는 생각도 들고...
지금 남친과도 제가 처음부터 욕심 내서 만난 사이이고 그래서 늘 노력합니다
더 위로 올라가려구요.. 제 자격지심일 수 있으나 변두리 빈민촌에서 유년기 보냈다는
생각에 제 아이는 그렇게 안살게 하려고 저도 노력, 제 남편될 사람도 저보다 나은,
아니 제가 속한 부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길 바라며 삽니다..
그렇게 못할거면 다 때려치고 부모님 모시며 살다 죽었음 좋겠구요.
이런 제가 보기에 동생은 처음부터 너무나 힘든 길을 가려고 스스로 택한 바보로
보입니다. 남편월급에 목매며 일도 못하고 집에서 한동안 애봐야 하는 삶..
제부 된 사람 뻔한 월급에 저희 부모님한테서 얼마나 도움받을 지 뻔히 보이고..
전 저대로 이것저것 챙겨줄거고.. (챙겨주는 게 아까운 게 아니라 정석대로 결혼 못하고
가족에게 도움받아야 하는 그 애 자존심도 처량하고 성인인데 그래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속상합니다. 서로 선물로서 주고받는 것과.. 한쪽이 너무 없어서 조금이나마
나은 쪽이 해줘야 하는건 다른 거잖아요.)
이 모든 걸 몇주 동안 잊고 지냈는데.. 몸 부어서 본 집에 있는 동생과 자꾸 마찰을
일으키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쓴 물이 올라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평소같으면 상쾌하고 좋았을, 엄마와 시답잖은 농담으로
시작했을 월요일 아침이었을텐데... 작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오늘은 혼자 맥주 한 잔 하고 가려고 했는데...
집에 우울하게 있을 동생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서 눈물만 나고...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냥 밝게만 생각하기엔 제가 너무 부정적인 인간인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