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독일(뒤셀도르프)로 파견 나온지 어느덧 반년(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기다려 달라는 기다리겠다는 일언의 약속도 없이, 한 사람을 한국에 남겨둔 채 하염없는 시간을 따라 달린 지난 생활 속에서 내게 남겨진 건 무엇일까? 시간은 내게 냉소를 지으며 저 먼발치로 도망쳐 버렸다. 몇 달의 홍역을 앓고서야 비로소 돌이킬 수 없음도 깨달았다.
작년 11월말에 이곳으로 와 여러 정보들을 수집하며 일을 배워왔다. 처음 본사(프랑크푸르트)에서 오리엔테이션 담당자인 Peter씨를 만났을 때, 언뜻 보기에 옆집에 사는 인상 좋은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개괄적인 업무 브리핑을 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독일 직장인들의 포멧을 파악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정형적이었다. 당시에 각국 별로 파견나온 사람(다국적으로 선별된 선임자-Director)들은 나를 포함하여 필리핀, 대만, 일본에서 온 4명이다. 우리는 정신없이 연수과정을 밟았다. 가장 먼저 맞닥뜨린 난관이 언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나 혼자만 그랬는지도 모른다. 비록 한국(한국 본지사)에서도 독일본사와 여러 업무관련 문건을 수년 간 교환하면서 독일어를 사용해 왔지만, 그때의 사정과는 확연히 다르다.
첫 주부터 Peter씨는 우리들에게 경제언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별도의 언어-연수가 있단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 있을 때는 언제든지 사전을 꺼내 적당한 언어를 선택해 워드로 쳐서 문건을 교환하기만 할 뿐,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는 사용하지 않을 단어였기에 별반 기억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그게 아닌 것이다. 8주 동안 여러차례의 시험을 거치는 피 말리는 습득과정을 거쳐야 했다. 테스트 과정에서 누락이라도 될라치면 각국 지본사로 돌려 보내겠다는 약정서 때문에 온통 시험에 집중해야 했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오지 않았으리라. 고3의 그 과정을 또 겪고 있다고 생각하니 앞서 말한대로 피가 말리는 짖이 아니잖은가! 어째거나 우리들은 한명의 누락자 없이 지난 2월 말로 본사의 언어-연수를 마치고 각 담당별 본격적인 업무-연수를 위해 예정된 배정지로 흩어졌다.
필자는 뒤셀도르프, 유까노(일본)는 슈투트가르트, 마셀(필리핀)은 도르트문트, 쇵푸(대만)은 하노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독일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을 각국 별로 수출(한국입장에서는 수입)을 위한 컨소시엄-카운셀링이다.
현재 필자는 독일vs한국 담당-팀을, 지난 4월23일에 합류한 한국본지사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장 동료들과 맡고 있다. 현재 나로써도 고작 6개월 남짖한 파견생활인지라 여러모로 배울 면들이 많다. 문화적인 면, 경제적인 차이로 인한 여러가지 에러사항들로 하루에도 수 차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겨낼 것이다. 내가 한국사람이기에 한국 편에 서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이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닌, 초기에 나와 함께 본사에서 연수를 받던 친구들도 같은 마음이리라. 난 안중근도 유관순도 아니다. 다만 난 대.한.민.국. 사람이란 것이다. 그러나 독단적은 아니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2년 남짖 이곳에서 모든 일을 마치면 다시 한국본지사로 돌아간다.
가능한 많은 일을 배우고 돌아가길 소망할 뿐이다.
추신> 쓰다 보니까, 연재해야 할 듯 싶군요. 할 말이 많지만 곧 저녁을 먹고 찬양 반주연습을 하러 가야 합니다. 손목은 다 나았지만, 오른쪽 눈물샘이 아직은 완쾌가 안 됐네요. 신앙적이던 개인적인 위로의 메일(쪽지)이었던 감사합니다. 저 그렇게 약한 사람은 아녜요. 딛고 일어 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