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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연예인과 사귄다면...

이원영 |2004.05.24 12:08
조회 3,254 |추천 0

처음엔 그 애가 그렇게 유명한 연예인인 줄 몰랐다

지난 일 년 동안 산 속에 들어가 소설을 쓰고 나오느라

그 새 보아만큼이나 전국민적인 배우가 되 있는 줄 몰랐다


뭐 예전에도 아역으로 자주 드라마에 출연했다고 하더라

근데 드라마 같은 걸 봤어야 누군지 알지

지금처럼 잘 나갈 줄 알았다면 그 때 봐 둘 걸 그랬다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버스 안에서였다

책 세 권 분량의, 필생의 역작을 막 쓰고 내려온 나는

서울 올라가자마자 출판사에 찾아가서 협상을 할 생각이었다

나의 자랑스러운 소설을 출판할 출판사를 잘 선별해서 고를 생각이었다


벅찬 가슴으로 버스에 올라 내 좌석번호로 가니까

그 애가 내 자리 - 창가 자리에 턱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모자도 깊이 눌러쓴 것이 상당히 반항아같아 보였다

어지간하면 다른 자리에 가서 앉으려고 했는데

그 애가 나를 상당히 귀찮다는 듯 힐끗 쳐다 보고 창문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상당히 싸가지가 없어 보여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거두절미하고 거칠게 한 마디 내뱉었다

 

 

「거기 내 자린데」

 


내가 너무 거칠었던 것일까

그 애가 날 살짝 쳐다보고는 눈을 다시 창가로 돌린다

쫄았나 보다

이번엔 부드럽게 말했다


「내 자리는 창가 쪽 26번이거든. 너의 좌석표 좀 확인해 보렴」


그 애가 다시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자리 많은데 아무데나 앉죠」


충격이었다

잘 봐야 고딩으로 보이는 중딩 꼬마틱한 녀석이

저런 러프한 단어를 내뱉는가 말이다

참을 수 없어서 나도 한 마디 했다


「아무데나 앉았다가 자리 주인 오면 어떻게 해」


그 애가 이젠 날 쳐다도 안 보고 창 밖만 보며 말했다


「자리도 비었는데 아무데나 앉으면 어때요」

「출발할 데 보면 꽉 찬다고」


그 애는 상당히 귀찮다는 듯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차표를 꺼내서 날 보여주었다


「자, 됐죠?」


차표는 안쪽 25번, 내 옆자리였다

그 애는 차표를 보여주고는 다시 생까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결국, 그 애는 내 옆자리인데 지가 창가 차지하고 앉은 거였다

속상했다

난 창가 쪽에 앉지 않으면 멀미하는데...


「내가 창가 쪽이니까 거기 앉으면 안 될까?」


쪽팔림을 무릅쓰고 간신히 말했다

그러자, 그 애는 여전히 귀찮다는 듯 말한다


「멀미해서 그래요. 좀 바꿔 앉죠」


젠장

나도 멀미하는데...



어쩔 수 없이 내가 안쪽에 앉았다

이윽고, 차가 출발하였고

정말 차는 대부분 꽉 차서 빈 자리가 없었다


난 멀미를 하지 않기 위해서 창 밖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시선이 멀리 있기에 멀미가 더 날 거 같아서

될 수 있는 한 창가 쪽에 붙으려고 노력을 했다

근데, 그 애가 나의 행동에 신경이 쓰이는 듯 자꾸 쳐다본다

그리고는 날 치한 보듯이 보며 말한다


「좀 떨어져 앉죠」


젠장

누군 좋아서 붙는단 말인가


웬만해서는 자존심 상해서라도 떨어지고 싶었는데

그놈의 멀미가 뭔지...

그래서 걔 말을 본의 아니게 씹고 바싹 붙어 앉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애가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아저씨」


충격이었다

아저씨라니


「아저씨 눈썰미가 좋은가 보군요」


뭔 말인가 싶어 그 애를 쳐다보니 그 애가 인심 쓴다는 듯 말한다


「꺼내봐요」


꺼내라니

뭘 꺼내 보라는 거야


「펜하고 같이 꺼내요. 나 펜 없으니까」


뭔 말이야

뭘 꺼내라는 거야

내가 멍하게 쳐다보자 그 애가 다른 사람 눈치를 살핀다


「딴 사람한텐 말하지 말아요. 빨리 꺼내요」

「뭘... 꺼내라는 거야...?」

「빨리 노트 꺼내라구요」


그 애는 내 가방을 빼앗듯 가져가서는 마구 뒤졌다

그리고는 내 필생의 역작이 기록된 노트를 꺼냈다


「이야~~ 아주 뽕을 뽑으려고 작정을 했네요」


그 애는 펜을 뽑아 들고는 노트를 펼쳤다


「세 권엔 다 못해주고 한 권에만 해 줄테니까 가서 친구들한테 돌려요」


그리고는 내 노트에다가 지 싸인을 마구 해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내 소설이 쓰인 글씨들 위에 아주 큼지막히 한 바닥 전체에...


그 애가 연예인인 줄 몰랐던 나로선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연예인인 줄 알았어도 충격이었을 거다

내 필생의 역작을 그런 식으로 망쳐 놓다니...


난 그 아이에게서 노트를 확 뺏었다

그 아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왜 그래요 아저씨」

「너야말로 왜 그러는데」

「왜 그러긴요. 싸인해 주는 거잖아요」


난 가방을 뒤져서 작은 수첩을 꺼내줬다


「낙서가 하고 싶으면 말을 해야 되잖아」

「낙서여?」

「모르고 그랬으니까 봐 준다만 이 노트는 아주 중요한 노트다」


난 노트를 챙겨서 가방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 그 애가 뺏지 못하도록 꼭 품에 안았다


그 애는 나를 기가 막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저씨」

「......」

「아저씨!」

「나 아저씨 아니다. 아저씨라고 부르지 마」

「허 참... 아저씨 왜 그래요?」

「너야말로 왜 그러는데」


그 애는 기막히다는 듯 나를 뻔히 쳐다보았다


「아저씨 나 몰라요?」


나도 그 애를 뻔히 쳐다보았다


「왜. 니가 연예인이라도 되냐?」


그 애는 날 계속 뻔히 쳐다보다가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는 날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잘 보세요 나를」


그 애를 잘 보았다

눈이 참 큰 아이었다

모자 벗으니까 꽤나 아니 엄청 귀여운 아이었다


그러나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속은 완전 싸가지다


「잘 봤다」


나는 이렇게 한 마디 하고는 창 밖을 쳐다보았다

그 애는 잠시 나를 어이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난 계속 생까고 창 밖을 쳐다보았다

그 애는 납득할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이제보니 아저씨 어디 산 속에 숨어 있었나 보죠?」


뜨끔했다

이 애가 어떻게 알았을까...


「어라. 정말 산 속에 숨어 있었던 아저씨인가 봐」


그 애는 날 신기한 듯 쳐다본다

난 그냥 생까고 창 밖만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 아이는 뭔가 재밌는 장난감이 생기기라도 한 듯

날 이리저리 쳐다보면서 놀리기 시작했다

아까는 내 눈 마주치는 것도 부담스러워 했건만

이젠 아주 내 눈 앞에 지 머리를 들이밀고 기웃기웃 거렸다


「산 속에서 도 닦고 내려오나 봐요?」

「......」

「도사치고는 수염이 없네?」

「......」

「산 속에서 뭐 했는지 말해봐요」

「......」

「혹시 간첩이에요?」

「......」

「어라! 간첩인가 보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면서 떠들때는 그냥 생까는 게 상책이다


「간첩인가 봐 이 아저씨. 안 되겠다. 신고해야지」

「......」

「나 진짜 신고해여? 운전사 아저씨 불러야지. 운전사 아...」

「나 간첩 아니다」

「오~~ 이제야 말을 하시는군. 간첩신고 할까봐 무섭다 이거죠?」

「간첩 아니라니깐」

「어떤 간첩이 나 간첩이요 해요? 아저씬 간첩이에요」

「아니야. 난 정말 간첩 아니야」

「그런데 왜 산 속에 숨어 있었어요?」

「숨은 거 아니야. 소설 쓰느라 그랬어」

「우아! 아저씨 소설을 써요?」

「......」

「요즘도 산 속에 들어가서 소설 쓰는 사람도 있구나」

「원래 글을 쓸 때엔 세상과 단절해서 써야 되는 거야」

「그러면 아까 아저씨 노트가 그 소설 노트?」

「응」

「한번 줘 봐요. 내가 봐 줄 테니까」

「싫어」

「줘 봐요. 내가 보면 팔릴지 안 팔릴지 알아요」

「그런 건 상관없어」

「에이 왜 그래요. 흥행이 되야 먹고 살죠」



그 애는 내 가방을 뒤져서 노트를 빼려고 했다

난 빼앗기지 않으려고 가방을 더 꼭 끌어 앉았다






「치익~~」


휴게소에 도착했다

난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가요?」

「어」

「당근쥬스 하나 사 와요」


그 애는 내 소설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억지로 빼앗다시피 가져갔는데

그래도 열심히 읽어 주는 거 같아 고마웠다

휴게실에서 내리지도 않고 읽어 주다니...


당근쥬스를 사서 버스로 돌아갔다

그 애는 노트를 덮고 길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여기」


당근쥬스를 내밀었다


「고맙다는 얘긴 안 할 거에요. 난 소설 읽어 줬으니까」

「누가 읽어 달라고 그랬나?」

「그래도 그렇게 재미없는 소설 읽어 주면 고마운 거죠」




쿵!!!


재.미.없.는.소.설...






「아저씨」

「......」

「아저씨이~~」

「......」

「에이~~ 아저씨이~~」

「......」

「아저씨 삐졌구나?」

「......」

「아저씨 삐졌어여? 에이 남자가 그런 거 가지고 삐지냐」

「......」



더 이상 그 애랑은 말도 하기 싫었다

일 년을 꼬박 쓴 소설인데...

몇 번이나 고치고 밤새 고친 소설인데...

차 안에서 건성건성 읽은 애가 그런 말을 하다니...



버스에서 내렸다

난 뒤도 안 돌아보고 내 갈 길을 갔다

사실... 내리자마자 출판사를 가려고 했는데

이런 기분으로 도저히 출판사를 갈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써는 아무데나 어두운 곳으로 숨어 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쫓아온다

두꺼운 안경으로 변장까지 하면서 날 쫓아온다

그렇게 변장 해도 난 그 애가 쫓아오는지 알았다

왜 나를 쫓아올까...


그래

신경쓰지 않는다

내 소설을 건성으로 읽고 악평을 한 그런 싸이코같은 애는

원래 싸이코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만화가게에 들어갔다

구석 자리에 앉아서 아무 만화나 집어 들었다

물론, 만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재미없는 소설 읽어주면 고마운 거죠」

「재미없는 소설! 우하하하!」

「우하하하!! 우하하하하하하!!」


환청까지 들려올 정도로...

내 귀를 막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악몽 같았다...


진정...

정말...

내 소설이 그렇게나 재미 없단 말인가...

그렇게 건성으로 읽고 덮어버릴 만큼...



화가 난다

눈물이 난다

기가 막히다


만화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는 울음을 삼켰다

억울하고 서러웠다

일 년의 시간이 아까웠다



그 때였다


「아저씨...」


고개를 들었다

그 애가 날 보고 있다

이 애가 만화가게까지 쫓아왔나 보다

정말 싸이코다


「아저씨 지금 울어여...?」


제법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낸다

이제와서 위로를 하려나 보지

그러나 이미 소용없다

너의 말은 나에게 비수로 와서 꽂혔다


「아저씨... 나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봤어여...」

「......」

「이나중 탁구부 보면서 우는 사람은 아저씨가 처음이에요」

「......」


그 애는 너무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이래서 재미없는 소설을 쓰는가 보네...」



우어어으아아아악악악!!!!!


마치 다트가 된 느낌이다!!!!




<다음편 예고>


그 애는 할 일이 없는지 날 계속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더니

급기야 모텔까지 쫓아 들어왔는데...


자세한 얘기는 다음편에 하겠습니다^^

이 뒷 이야기가 듣고 싶으시면 추천 아시죠? ^^

그럼 오늘은 이만 바이바이~~~



* 클릭하시면 커뮤니티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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