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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壬辰)년의 기억. <1편>. 세상에 하나 뿐 인 성을 가진 소년.

박영찬 |2004.06.01 14:40
조회 126 |추천 0

 


** 세상에 하나뿐인 성을 가진 소년 **

.......................................................


"다정민!"


점심을 먹고 시작된 5교시 수업, 창으로 쏟아지는 혼곤한 햇살 속에 깜빡 잠이 들었을까?

정민은 무언가 세차게 머리를 때리는 충격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네!"


깜짝 놀라며, 지금이 예쁘지만 깐깐하기로 소문난 ‘강 정숙’ 선생님의 역사시간 이란 걸

퍼뜩 깨달으며 교과서에 흥건히 고인 침을 소매로 훔쳤다.


"아주 수영장을 만들지 그러냐?"


반 녀석들이 선생님 눈치를 보며 소리죽여 키득거린다. 무안함에 슬쩍 선생님을 올려봤다.

올해 스물일곱인 선생님.. 남자고등학교에 흔하지 않은 예쁜 처녀선생님이란 것에

학기 초 학생들은 어리광과 짖궂은 장난을 치곤했지만 곧 혹독한 체벌과 엄격함에 질려

고양이 앞의 쥐처럼 고분고분 해 진 뒤였다.


"다정민! 선생님이 지금 어디 읽으라 했지?"

"...."


그녀는 빳빳한 출석부로 정민의 머리를 쿡쿡 치며 말했다.


"성만 특이한 줄 알았더니 하는 짓도 특이 하구나.. 반장!"

"네"

"금방 읽으란 곳 대표로 읽어"

"네"


반장이 일어나며 교과서를 읽기 시작했고 교탁 앞으로 가며 그녀는 정민에게 다시 주의를 주었다.


"정신차려 이 녀석아 고3으로 올라왔으면 정신 차려야지..더구나 고아 녀석이"


고아..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이는 말이지만 이런 식으로 들을때면 정민은 움츠러들곤 했다.

옆줄에 석훈이가 계속 킥킥거리며 정민과 눈이 마주치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속에서 뭔가 울컥 치밀었지만 그냥 잠자코 교과서로 눈을 가져갔다.



 "....강 명 장군과 백성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왜적에 맞섰으며

 그 결과 적의 제2주력부대였던 3만여의 병력을 섬멸하고 적장 마사토를 죽게 함으로써

 임진왜란의 전황을 뒤집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비록 마지막 전투에서 강명 장군과 성의 백성들은 모두 몰살당했지만

 이미 장수와 대다수의 병력을 잃은 왜군은 퇴각 할 수밖에 없었으며

 전쟁의 주도권을 조선으로 가져온 기념비 적인 사건이다.


 당시 조총과 여러 우세한 무기를 보유한 3만 왜병에 비해 대다수가 맨주먹뿐인 수천의 백성들은

 강명 장군을 중심으로 호국의 일념아래 굳게뭉쳐 전투에 임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칼과 창, 돌을 들고 천안 성을 지켰으며 일주일에 걸쳐 벌어진

 네 번의 전투을 통해 천안대첩이 완성되었다........"


반장이 읽기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기록상에 남아있는 천안대첩 외에도 전설로 내려오는 천안대첩 이야기가 많이 있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다섯 장군 이야기나 큰 벼락이 왜적에게 떨어져 성을 구한 것,

 적장을 죽음으로 유혹한 아름다운 기생 유화에 관한 것은

 여러분도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일겁니다.


 그런 전설이 생겨난 까닭은 믿을 수 없는 큰 승리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강명장군과 성의 모든 백성이

 몰살되었다는 비장감도 한몫 했다는 학설이 유력하지요

 하여튼 한마디로 천안대첩 전투 자체는 몰살이라는 패배였지만

 결국은 소수의 백성이 왜군의 주력부대를 섬멸하여 임진왜란 전황을 뒤집은 엄청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아..그리고 여담으로 강명장군은 제 직계조상이랍니다."


 설명 끝에 강정숙 선생님의 은근한 자랑이 곁들여 지자 반 아이들이 은근한 휘파람을 불며 화답했다.

 그녀도 자부심 가득한 얼굴 표정으로 미소 지었으며 곧 수업종료 벨이 울렸고

 책을 챙겨들고 나가다가 정민의 앞에 멈춰서서는 말했다.


 "다정민! 오늘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와"


선생님이 나가고 나자 제일 먼저 석훈이 다가와 책상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부럽다는 듯 떠들기 시작했다.


"야! 선생이 너 맘에 들어하나보다"

"...."


그러자 또 다른 녀석이 석훈의 뒷머리를 치며 말했다.


"야야 무슨 소리 저 선생 애인 있어"

"정말?"

"그래. 군바리래 그것도 <강명부대> 중대장이란다."

"강명부대? 그 특수부대 말이야?"

"그래 임마. 그 부대는 아무나 가는데도 아니래. 싸움도 잘해야 하고 공부도 졸라 잘해야 한댄다."

"니미..군대도 시험봐서 가냐?"

"병신. 강명부대가면 짱이야. 대우 좋지, 사람들이 알아주지, 뽀대나지 얼마나 좋아?"


어느새 녀석들은 강명부대 얘기에 잔뜩 열을 올리고 있다.

정민은 그런 녀석들의 무리에서 슬쩍 빠져나와 창가로 갔다. 고3..

이제 일년 후면 독립해야 할 시기가 다가온다.

하지만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막연하기만 했다.

작게 한숨을 쉬며 눈을 찌르는 머릿결을 가볍게 넘기는데 커다랗게 떠드는 석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저 강정숙 선생..좀 이상하지 않냐? 진짜 정민이 좋아하는 것 같아"

"병신. 나이차가 얼만데 우리같은 애를 좋아하냐?"

"아냐 임마. 정민이 한외모 하잖아 솔직히 내가 봐도 그림처럼 생겼는데 여자 눈엔 오죽할까?"

"그럼 정민이 데리고 놀 생각인가?"


한 녀석의 말에 모두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곧 녀석들은 화장실로 몰려갔고

혼자 남은 석훈이 정민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야! 너 오늘 저녁 약속 알지?"

"...."

"밤 8시야 꼭 와라"


다짐을 받듯이 확인을 하고 녀석도 화장실로 가버렸다.


.......................................................


어둑한 골목길에 정민은 혼자 서 있었다. 벌써 9시가 넘은 시간이 맘에 걸렸지만

그나마 자신과 어울려 주는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 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오겠다며 골목 안쪽으로 사라진 석훈과 친구들은 정민에게

골목입구에 서 있기를 부탁했다. 아무 설명 없이 ‘금방 올게’ 라고 씩 웃던 석훈.


고아원으로 돌아가야 할 귀가시간이 훨씬 지나 원장선생님께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수업 후 만났던 강정숙 선생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선생님은 정민에게 졸업 후 강명부대에 가 볼 것을 권유하셨다.


수많은 지원자가 몰려들고 선별된 사람들만 뽑아 최고의 군인으로만 구성된다는 그 곳.

고등학교 졸업 후 독립해야할 정민에게 솔깃한 제안이기도 했지만 까다롭다는 시험엔 자신이 없었다.

군대에 가기위해 영어 시험까지 쳐야 하다니.

엘리트 특수부대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국어와 영어, 역사까지 시험과목이란 설명을 듣곤

고개를 떨궜다.

'왜? 자신이 없니?'


선생님의 부드런 음성이 아직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선생님 애인이 그 부대 중대장인거 알지? 네가 원한다면 준비하는 걸 도와 줄 수도 있어'


그 때 정민은 자신의 뺨을 다정하게 쓰다듬는 선생님의 손길에 깜짝 놀랐었다.

은은한 향기가 나는 손길. 고개를 든 정민의 눈과 마주친 예쁜 선생님의 눈빛도 따뜻했다.


'넌 꼭 내 동생처럼 느껴지는구나. 그냥 선생님은 네 진로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야.'


마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이 너무 강렬해서 정민은 얼어붙었고 말았다.

그런 정민이 귀여웠는지 뺨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었다.


'세상엔 하려고 하면 못할 것 도 없어. 잘 생각해 보렴 알았지?'


밤하늘을 바라보며 선생님의 손길을 떠올리던 정민은 작게 미소 지었다.

친 누나 같은 느낌을 주던 선생님. 맘이 따뜻해지며 정민은 정말 강명부대에 도전해 볼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멋진 군복과 보장된 생활, 사람들의 은근한 선망 속에서

떳떳하게 살아 갈 자신의 모습.

순간 막연한 공상에 젖어 벽에 기대 서있던 정민의 귓가에 다급한 석훈의 외침이 들려오며

친구들이 뛰어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깜짝 놀라 물어보는 정민에게 석훈이 외쳤다.


"야! 도망가. 어서!"


그와 동시에 친구들이 뛰어오던 방향에서 중년의 억센 아저씨가

각목을 들고 뛰어오며 외치는 게 보였다.


 "이 도둑놈들, 거기 안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정민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 아저씨가 지금 무척 난폭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

잠시 정민 주변에서 서성이던 친구들이 화다닥 도망가는 순간 그 아저씨도 정민 앞까지 와

각목을 높이 치켜들며 석훈의 뒤통수를 후려치려 했다.


'위험해!'


그 짧은 순간 정민의 오른손이 남자의 얼굴을 향해 빠르고 강하게 날아들었다.


 '빠악!'


 "어이쿠"


코를 정통으로 맞은 남자는 거꾸러지며 정민의 다리를 움켜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사람살려! 강도야! 강도야! 강도가 사람친다! 사람살려!"


다리를 잡은 힘은 무시무시했다. 어떻게 돼가는 건지 잘 모르지만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에 다리를 빼보려 했지만 억센 손길에 잡힌 다리는 빠지지 않았다.

주변에 친구들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의 고함소리에 골목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다시 힘껏 다리를 빼보려 했지만 남자는 오히려 더 부둥켜안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람살려! 강도야! 강도야!"


누군가 정민의 뒤를 덮쳤다. 다급함에 몸부림을 치던 중 또 다른 사람이 정민을 쓰러트렸고

3명의 남자가 정민의 몸을 짓누르며 팔을 꺾었다. 친구들은 이미 어디론가 도망가고 없다.


정민은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간다는 걸 느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친구 녀석들은 모두 어딜 간 거지?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데.


어디선가 싸이렌 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경찰차가 도착했고

두 명의 경찰이 다가와 정민을 거칠게 붙잡았다.


 "왜..왜 이러세요? 이것 놔요!"

 "시끄러! 손 내밀어!"


정민은 자신의 손목에 전해오는 싸늘한 촉감에 숨이 탁 막혔다.

영화에서나 보던 수갑. 무서웠다. 뭔가 오해가 있다고 외치고 싶지만 입 안에서만 맴돌 뿐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경찰차에 태워지고 문이 닫히자 옆자리에 경찰이 싸늘하게 말했다.


"고개 숙여!"


정민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힘을 주어 수갑 찬 손을 벌리자 날카로운 톱니가 점점 더 손목을 죄어올 뿐.


정민을 둘러 싼 시간도 그렇게 죄어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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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시간에 나오는 천안대첩과 인물들은 픽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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