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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와 김치찌게 ※

매니아 |2004.06.08 21:28
조회 1,186 |추천 0

☆★☆★☆★☆★☆★☆★ 김치와 김치찌게 ☆★☆★☆★☆★☆★☆★

1.

나는 김치를 무척 싫어한다.


김치가 싫은 이유가 뭐냐고 딱 꼬집어 말하라면...





아마도 외관이 너무 못생겨서? -_-;




버얼건 고춧가루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한조각을 들면 새빨간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김치..



정말 겉으로 보기엔 징그럽게 생기긴 했다..-_-...




여튼 그런 이유로 나는 김치를 싫어했고,

어렸을 적엔 김치를 먹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고,


학교 다닐때, 점심시간에 김치반찬이 나오면,

하나도 손대지 않았다가,

집근처 쓰레기장에 그냥 다 버린적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나에게 김치를 먹이기 위해서 만들어내신

어머니의 고육지책은 바로


'김 치 찌 게'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김치는 안먹으면서도 김치찌게를 무척 좋아했고,


그 때문에 나의 어린시절 식탁에는,

거의 매일 김치와 김치찌게가 함께 올라왔었던 기억이 난다.



















2.




중학교 2학년 때,

농촌으로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다.



요즘에야 하루에 두시간인가 세시간 이상은,

학교에서 봉사활동시간으로 인정해주질 않지만,

내가 중학교 때는 그런 규정이 없어서,

하루에 10시간 봉사활동 했다고 학교에 적어내는 놈도 있었다;;;



그시절 나에게 2박 3일 21시간의 봉사활동은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고,

나는 그렇게 농촌에 봉사활동을 하러갔다.



지금 나는 학생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절대로 여름에 마늘농사하는 농촌은 피하라고-_-;;



뭐 정말로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면야 상관없지만,

단지 학교에서 규정으로 정해놓은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절대로 가지마라-_-;









하루에 7시간동안 마늘만 깠다...







종교단체에서 청소년 8명을 모아서 간 봉사활동이었는데,



낮에 7시간동안 마늘까고..

밤되면 다들 지쳐서 잠자고..



그렇게 2박 3일을 보냈다;;;





마지막 날..


우리는 2박3일동안 항상 우리가 가지고 간 밥으로만 밥을 먹었고,

나중엔 밥이 조금 모자라서 라면을 끓여먹었었다.



그 것을 안타깝게 보시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하신다고 하셨다.




정말 너무 행복해서 밥상으로 날아갔다-_-;;



그런데,

밥상에 놓여진 반찬은 김치와 물, 김치찌게..




물론 악의같은 건 전혀 없이,

그 집에서 가장 맛있는 반찬만 골라서 꺼내주신 것이리라.



하지만,

같이갔던 남자 1명과 여자 5명은 반찬을 보더니,

안먹는다고 고개를 돌렸고,


나와 봉사활동팀의 리더격인 형,

둘만 밥을 먹었다.




나는 솔직히 안먹기 미안해서 밥을 먹었고,

그 형도 나와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런데..


그 때 그 김치..








너무 맛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정성으로 담그신 김치를,

당신들의 손자같은 우리에게 먹여주시기 위해서 꺼내셨던 것이다.




그것도 딱 마지막 날에,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기 위해서,


꺼내주셨던 그 김치...






정말 그 때 그 김치 맛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3.




나의 외할머니는 김치를 아주 맛나게 담그신다.


내가 처음으로 먹은 김치가 '남해산 외할머니식 김치'였고,

지금도 내가 먹는 두종류의 김치 중에 하나다.





나의 큰어머니께서도 김치를 아주 맛나게 담그신다.


'유기농 직접재배 큰어머니식 김치'는 내가 두번째로 먹은 김치고,

이것 역시 지금 내가 먹는 두 종류의 김치 중에 하나다.






전에 아버지께서 친가쪽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농담으로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었다.



"너는 큰어머니 김치랑 외할머니 김치 중에 어느게 더 맛있어?"



참 난감했다.


큰어머니 김치를 맛있다고 하자니,

괜히 어머니께 죄송하고.


그렇다고 외할머니 김치를 맛있다고 하자니,

괜히 큰아버지께 죄송하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한 뒤,

이렇게 대답했다.





"외할머니 김치는 그냥 먹으면 맛있구요,

큰엄마 김치는 김치찌게 해먹으면 맛있어요"





어른들께서는 폭소를 터뜨리셨고,

나는 멋적은 듯이 고개를 끄적였었다.




















4.




나는 밖에서 꼭 혼자서 무언가를 사먹어야만 할 때면,

일부러 손님 별로 없는 식당을 찾는다.




그리고 그 식당에서 김치찌게를 시킨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김치찌게가 특별히 맛있는 집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김치찌게가 특별히 맛없는 집을 본 적도 없다.





조용한 식당에서 김치찌게를 시키면,


혼자서 밥을 먹는 분위기도 나고.


그렇다고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운치있고 좋은데 그걸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다.







언제 어디에서 먹어도


특별히 맛있지도 않고,


특별히 맛없지도 않은,


'김치로 만든 김치찌게'





김치찌게야말로,




언제 어디에서 먹어도,


구수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마치 뭉퉁하고 무뎌서,


내 마음속의 어떠한 빈자리도 꽉꽉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정겨운 맛'이 담긴 음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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