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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이 좀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사스키 |2004.06.10 23:47
조회 717 |추천 0

 

저희 남친, 착하고 성실합니다. 책임감도 강합니다. 맏아들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지요.. 대학은 지방의 조그마한 학교를 나왔지만 석사를 외국에서 했습니다.
언어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학연수를 하러갔다
석사까지 하게된 경우인데 상당히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 도움 전혀 안받고 혼자 아르바이트 해서 학비대고...
그러한 성실함 높이 샀습니다. 사실 어릴 때 친구라 어릴 때의 착한 모습 그대로더군요.

 

올해 2월에 석사 마치고 들어왔어요. 아는 분 소개로 어느 호텔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무산되었지요.
그리고 한군데 더 이력서 썼으나 역시 안되었습니다. 그가 영어 성적이 없어요.
그가 있었던 나라가 제 2외국어에 해당되는 곳이었어요.

 

이제 석달, 넉달 지났는데 이상하게 더 이상 이력서를 쓰지 않더군요.
저희들은 고향이 같은데 아주 시골입니다. 막차가 9시 정도에 끊기는 곳이니
말 다했지요. 지금 부모님 곁에 있습니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참으로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산책하고 일 도와드리고 텃밭가꾸는 일로
시간을 보냅니다. 아버지께서 지금 대학공부 하고 계신데 그 숙제 대신 해 주구요.
다 좋습니다. 다만 취업준비를 하지 않더군요.
저같으면 이력서를 수십군데는 내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저는 다른 도시에 나와 있구요 그와의 거리가 다섯 시간 이상이라 한달에 한두번 봅니다)

 

남친이 착하긴 하지만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에 모험을 두려워하는 편입니다.

내성적인 성격에 엄격했던 집안 환경 탓에 자신의 틀 너머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는 스타일이지요.
전공이 경영 쪽이라 그쪽으로 실력을 쌓으려면 서울로 갈 거라 여겼는데
서울에 가고 싶지는 않다 하더군요. 하긴 살기도 팍팍하고 경쟁도 치열하니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젊은 날 고생하고 치열하게 젊은이답게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것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그의 진로이기에 제가 무어라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부담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 고향 지역 대학에서 한 과목을 한학기 동안 가르쳐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답니다

산업대였다 일반대로 승격된 학교인데 고향에선 유일합니다.
본인이 혼자 결정하기 힘든 모양인지 아버지와 상의해야겠다 하더라구요.
그는 아마 고향에 자리를 잡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박사 학위도 어디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장남이라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집에 있으니 편안하고 안정되니 그러고 싶은가봐요...
시간강사에 박사까지 시작하게 되면 경제적인 부분은 제가 감당해야 하겠지요.
그것도 두렵지만 다른 이유가 더 있습니다.


우리 작은 동네에서 저희 집과 그의 집 5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저는 홀아버지가 계시구요, 혼자 저희 자매 키우느라 너무 고생하셨는데
지금도 참 가난하고 어렵게 사십니다.
그의 집은 그래도 우리 동네에서는 제법 부유한 편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그의 집에 시집가 시부모님을 모시게 되는 상황..
상상이 되시나요..

가난하고 초라한 내 아버지...신경쓰일 일이 너무 많아지지 않을까, 상처받을 일이
생기지 않을까 가슴이 아파옵니다.

워낙 작은 동네라 말많고 탈도 많고 그의 부모님...아들에 대한 기대와 사랑...

그를 사랑하지만..사실 두렵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제가 그의 결정을 망설이는 이유...
첫째는 (미래의)시댁과 친정이 5분 거리에다 여러 가지로 환경이 열악한 저희아버지가
받게 될 스트레스입니다. 동네에서 이슈가 될 이런 일들에 저희 아버지
상처받을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성격...동네에서 알아주거든요.
 
둘째는 어렵게 공부하고 돌아와 왜 이리 작은 시골에서 재능을 썩이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강사 자리라면 더 도시로 나가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제 친구들 중에도 외국에서 공부하지 않고도 석사따고 지방 중소도시에서 시간강사
하는 아이들 몇 있습니다. 중소도시도 아니고 아주 시골, 문화환경이나 혜택이 전혀
없는 그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그...

 

셋째는 모든 중요한 결정을 너무 부모님 위주로 생각합니다. 진로를 항상 부모님과 이야기하더라구요.
이번 건도 아버지의 의견에 따를 것 같습니다.
장남의 특징이자 착하지만 소심하고 결단력 없는 편인 그의 특성인 것 같습니다.
역시 제가 시댁에서 함께 살 경우, 모든 일은 아마 그의 부모님이 결정하게
되겠지요. 제 성격도 소심하거든요. 제 의견 피력하지 못할 겁니다.
남에게 절대 싫은 소리 못하는 저희 아버지 닮았지요.
남친은 한번도 부모님을 거스린 적이 없는 효자이니...
눈치보며 살게 될 저희 부녀의 모습...그려집니다.

제 주위의 결혼한 분들은, 친정이 가까우면 오히려 더 찾아가기 어렵다 합니다.
일거수 일투족이 눈에 보일 테니 말이지요.

 

그의 결정에 제 의견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좀 트러블이 있다 간신히 진정된 상황이라 그의 마음을 더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나의 미래와도 관련이 있다보니 마음만 싱숭생숭하네요.
아무 말 말고 따라야 하는 건지...
좀더 강력하게 내 입장을 피력해야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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