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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적절한 남자(18)

리드미온 |2004.06.11 00:37
조회 7,831 |추천 0

밤새 뒤척거렸던 탓인지 출근해서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훈과 데이트 후에 가라앉았던 마음들이 잔잔한 파도에서 거센 해일을 만난 것처럼 온 심장을 출렁이게 만들고 있었다.

앞으로 정훈과 어떻게 될까?

그 동안 정훈은 연애를 한 적이 없었을까?

많은 호기심과 궁금증들이 머리 속을 가득 메우고 있어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 듯한 현수는 내가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방해되지 않으려고 불도 켜지 않은채 밤새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뒤척이다 한 두시간 못자고 겨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현수는 막 잠이 들었는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동거를 하고 있는 현수와 나....

미국에서 사기 당하고 무일푼이 되어 돌아온 현수를 보며 측은한 마음이 들어

내가 이 집에 나가기 위해서라기 보다 빨리 현수가 일자리를 찾아 씩씩하게 지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오후 회의는 요즘 중국 유학이 붐을 이루고 있으니 중국 유학쪽으로 마케팅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장의 지시가 있었고 갑자기 중국 유학을 맞고 있는 팀장이 목에 힘을 주며 역설했다.

유럽 지역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별 할 말이 없어 그저 중국 유학 시장이 앞으로 커질 것이라고 한마디 거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오후 시간이 지나가고 있을 때 정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영화 보러 갈래?"

 

정훈은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물었다.

어제의 키스 이후로 정훈과 나는 모든 것이 3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3년 전이라기 보다는 정훈을 처음 만났던 대학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정훈의 말 한마디에도 가슴이 설레였다.

 

"무슨 영화?"

 

나도 옛날처럼 자연스럽게 되물었다.

 

"공포영화...."

 

공포영화라....

정훈과 처음 같이 본 영화는 공포영화였다.

그리고 연인들의 공식처럼 우리가 처음 손을 잡았던 날이었다.

스무살 초반의 남자들에게 불문율처럼 떠도는

'손을 잡으려거든 영화관에 같이 가라~'라는 공식을 정훈은 실천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쑥쓰러워하며 고백했었다.

 

"그 왜 많이 나오잖아. 무서운 영화 같이 볼 때, 여자들이 어머...그러면서 남자 품에 안기는 거, 그거 한번 해보고 싶었어."

 

어쩌면 우리도 스무살에 사람들이 연애를 할 때 겪었던 경험 느낌들을 충실히 따라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책이나 영화에서만 보아왔던 연애의 규칙이나 감정들을 현실로 부딪히며 신세계에 있는 것처럼 행복한 시절을 보냈었다.

 

그때의 느낌을 정훈도 기억하고 있었는지 대뜸 공포영화를 보자고 했다.

 

"내가 예매할게. 좀 늦은 걸로 할테니까 저녁 먹구 영화보자."

 

정훈의 말을 들으며 좋아하는 남자와 영화를 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득해졌다.

가끔의 소개팅 혹은 선을 보며 억지로 영화를 보긴 했었지만 정말로 마음 맞는 사람과 행복한 느낌으로 영화를 보았던 적은 근래에 없었던 것 같았다.

 

정훈의 전화 한통이 나의 멍한 오후를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정훈은 바로 다시 전화를 걸어 9시 영화를 예매했으며 유명한 베트남 식당에서 저녁 먹자고 했다.

 

3년 전과 다르긴 했다.

그때 우리는 마음 놓고 한끼도 먹기 어려운 연인이었다.

조금 세련된 분식집에 가는 걸로 만족했어야 했다.

정말 정훈은 돈가방을 싸들고 온 옛 애인이란 말인가.

 

정훈을 만나 저녁을 먹으며 우리는 옛날 얘기들을 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정훈과 재회 후에 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너 나 몰래 선 본적 있었거든...결국 나한테 들켰는데..그게 베트남 쌀국수 때문이었어."

 

나도 기억했다.

선 본 남자와 베트남 쌀국수를 먹고 와서 무심결에

 

'베트남 쌀국수 맛있더라'

 

라고 말을 했을 때, 정훈이 어디서 누구랑 먹었냐고 물어보는 바람에 결국 들키고 말았었다.

그때 우리는 싸우고 일주일 동안 연락을 안하기도 했었다.

 

"참 그때 할 말 없더라. 이런 것도 못 사주는 게 내가 무슨 자격이 있을까 싶어 먼저 연락하기 싫더라..."

 

"그럼 이젠 이거 사줄 수 있어서 먼저 연락한 거야?"

 

"하하..그건 아니다."

 

정훈과 나는 유쾌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정훈이 예매했다는 영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막상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다.

 

"그냥 사랑 얘기가 보고 싶었어."

 

정훈은 내가 왜 영화가 바뀌었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대답했다.

 

사랑 얘기라....

문득 얼마 전에 현수의 집에 무작정 들어와서 자기 집인양 사기를 쳤던 진우가 사랑은 없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고 내가 사랑이 있다라고 논쟁했던 것이 기억났다.

정훈은 나처럼 사랑을 믿고 있는 것일까...?

 

즐겁고 유쾌한 로맨틱 영화를 보고 나오며 무음으로 해놓았던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메시지가 와 있었다.

 

'레종...이 죽어가요....'

 

현수의 메시지였다. 시간을 확인했다. 메시지는 내가 영화를 보기 시작한 초반인 9시 반쯤이었다.

 

'레종이????'

 

"왜 그래? 얼굴이 새파래지네...무슨 메시지인데?"

 

"저..내가 기르는 고양이가 있는데 얼마 전에 아파서 동물 병원에 맡겼는데 상태가 안좋은가봐..."

 

"그래? 어디야? 내가 데려다 줄게."

 

"아냐. 나 그냥 택시 타고 갈래. 가서 연락할게."

 

나는 정훈에게 미안하다고 몇 번 사과를 하고는 택시를 탔다.

전에 선을 본 것을 속였던 것처럼 선본 남자인 현수와의 관계를 또 정훈에게 속이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한 달이지만 그 동안 정들었던 레종이 죽어간다는데 정훈과 데이트를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택시 안에서 제발 레종이 무사히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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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0
반대수1
베플비야 |2004.06.11 01:09
ㅠ_ㅠ.......... 리드미온님.......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눈빠지고 목빠지게 내놓고 기다렸습니다.. ㅠ_ㅠ 돌아오신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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