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이야기에 이어 갑니다.
조회수는 별로 였지만 그래도 재미있네요.
자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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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전공의 생활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다시 그 생활을 하라면 도저히 .... ㅜㅜ
다만 그러려니 하고 거기 적응해서 사는 것 뿐이죠.
저는 비교적 편하다고 하는 진단방사선과 (현 영상의학과) 전공의 였지만
그래도 생활이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우선 일주일에 집에는 한 두 번 정도 갈 수 있었고요 (컨퍼런스 준비 및 공부 때문에도
그렇고 저 같은 경우는 결혼도 안했었고 집도 좀 멀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당직을 서야하고 한 두 번은 연수강좌라는
것을 반강제로 참석해야 하니까 (과장님이 출결 체크하심) 완전한 주말과 일요일은
한달에 한 번 정도 돌아옵니다. 이 때는 그냥 집에서 잡니다. 매우 쿨쿨 자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병원이 집 입니다. 먹고 자고 생활하고...
병원에는 각 과마다 의국이라는 것이 있고 수련의 (인턴)들은 수련의 숙소가 따로 있어서 거기서 생활을 합니다. 내부에는 기숙사에서 볼 수 있는 철제 이층 침대 몇 개에 책상과 개인 캐비넷, TV 정도가 구비되어 있고요.
문제는 이 공간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는 것이지요.
수시로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가끔 높으신 양반들도 행차를 하시고 (그것도 불시에..)
형광등은 항상 켜져 있는 등... 사실 개인적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특히 자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TV를 본다든가 불을 켜 놓고 공부를 하거나 게임 등을
할 수도 있으니까 좀 예민한 사람들은 도저히 숙면을 취할 수가 없지요. 게다기 그때는 원내 금연이 아니어서 왜 그렇게 의국에서 담배들을 피워대는지? (참고로 전 대표적인 혐연가입니다).
저와 제 친구가 그랬습니다 생긴 건 안 그렇게 생겼는데 굉장히 예민한 녀석들이었죠.
남에게 내색은 안하지만 좀 내성적이면서 사람이 많은 걸 유전적으로 싫어하는....
그래서 결국 전 의국을 벗어나서 다른 곳에 잠자리를 잡았습니다. 바로 초음파실 이었죠. 침대도 더 편안하고 밤에 가끔 응급 초음파 환자가 오긴 해도 의국 보다는 조용하고 또 불도 소등할 수 있고요. 밤에 당직 방사선사들이 교대로 잠을 자는데 이 분들은 푹 자버리면 안되기 때문인지 초음파실 보다는 복도에 있는 나무 벤치를 붙여 놓고 자곤 하니까 그야 말로 독방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이곳에서 안자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처음엔 정말 좋더라고요. 그 일이 생기기전 까지는요.
전 의학 전공자 였기 때문에 가위 눌림이라는 걸 무슨 초자연적 현상이나 영적 존재와의 접촉 등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어왔습니다. 학생 때 정신과 선생님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의학적으로 확실한 기전은 모르지만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 되어 REM 수면 중 뇌가 불완전하게 각성되는 상태로서 정신이 부분적으로만 깨어나므로 의식이 희미하게 있으면서 환각, 환청 등을 경험할 수도 있고 사지는 마비 상태에 빠져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죠. 20대 후반 까지 전 한 번도 가위 눌림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초음파실에서 자기 시작한 후 일 주일 정도 지나서 부터 학회 발표 준비 때문에 집에 전혀 가지 못가고 일 끝나면 바로 자료 정리하고 사진 만들고 하는 일을 며칠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너무 피곤해서 일하다 바로 초음파실로 들어가서 옷을 입은 채로 그냥 침대에 몸을 던졌습니다.
정신 없이 자다가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희미하게요. 팔다리는 꼼짝할 수 없었고 노곤하기도 하고 저릿저릿하는 느낌이 온 몸에 드는 것 같으면서 발 쪽 정면으로 빛이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히 벽인데 그 때는 누가 문을 열었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혹시 누가 왔는지 보려고 그 쪽을 뚫어지게 응시했었습니다. 순간 아, 이게 가위라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분이 굉장히 나쁘고 다소 공포스러웠지만 요새 피곤하니까 이런 일도 생기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좀 있다 기억이 없어졌고 새벽에 깨어나서 다시 못했던 일을 서둘러 마무리 헀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습니다. 솔직이 무섭진 않았고요. 저는 피곤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자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꿈꾸는 셈 치자고 맘 먹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날도 가위 눌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날과 다른 일이 나타났습니다. 발 쪽 에서 보이던 빛 속에서 무언가가 스물스물 기어나오더군요. 누워 있는 침대 밑으로 그게 내려가면서 시야에서 없어진다 싶더니 제 우측 옆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목구비는 확인할 수가 없고 합창단들이 입는 폭 넓은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개를 더 돌려서 보고 싶은데 고개가 돌아가지 않아서 무척 답답했습니다. 작은 사람이 제 가슴 쪽으로 손을 뻗는 듯 했는데 큰 사람이 그 손을 잡아서 제자리로 돌려 놓는 듯 했고 뭔가 으으 하는 소리도 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곧 전 정신이 없어졌고 깨어 보니 아침이더군요.
다음 가위 눌림 부터는 이런 현상이 계속 나타났습니다. 지금 같아선 다른데 가서 자지 왜 그랬나 싶지만 하여튼 그 때는 별로 무서움도 없었나 봅니다. 아마 두 달 이상 이삼일에 한 번씩 이런 일이 반복됐던 것 같습니다.
오랜 만에 전체 과회식이 있었고 부어라 마셔라 모두 거나하게 취했습니다. 교수님 중 한 분이 "의국 침대가 모자라지 않아? 모자라면 초음파실이나 골밀도 방에 가서 자." 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제 1년 선배가 "초음파실은 무서워서요. 아빠하고 아들 귀신 나오쟎아요?" 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까? 옆에 있던 나랑 친한 방사선사도 "우린 불편해도 그냥 복도 벤치에서 잡니다. 그 방은 워낙 겁나서...."
뭐라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벌써 몇 년째 그 방에서 잤던 사람들이 저와 똑같은 가위 눌림을 경험한 적이 있었고 그게 알려지면서 아버지하고 아들 귀신이 나오니까 절대 그 방에서 자면 안된다고들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그 때 갓 들어온 1년 차 였고 사람들은 제가 인턴실이나 골밀도실에 가서 자는 줄 알고 있었답니다. 당연히 그 후로는 초음파실에 절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 반 년쯤 지나서 옆의 방과 터서 큰 방으로 완전히 리모델링이 되었고 픽턴 들어온 친구가 모르고 그 방에서 몇 번 잤는데 아무 일이 없다고 해서 저도 다시 거기서 자기 시작했고 가위 눌림을 다시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전 경험하지 못했는데 이런 가위 눌림 말고 다른 이상한 일을 경험한 선배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잠을 청하고 있는데 방사선사들이 입는 연청색 반가운 같은 걸 입은 사람이 들어와 구석에 있는 샤워실로 들어가더랍니다. 방사선사 겠거니 하고 그냥 잠을 청하는데 샤워기에서 물트는 소리도 안나고 아무리 지나도 나오지 않더라는 겁니다. 너무 이상해서 샤워실로 가보면 아무도 없고요...
이젠 십수년 전 일이라 크게 무섭진 않아도 가끔 밤에 그 때 일이 떠오르면 여전히 좀 섬뜩한 느낌은 들곤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십년 전 쯤 하이텔인가 천리안 인가에
rad***라는 아이디로 올린 적이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신적이 있어도 퍼왔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아이고... 점심 시간이 초과됐네요. 빨리 일 해야겠네요.
제 친구 얘기는 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