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오늘이 아버지의 날...
내게 아빠가 계시지 않은지 벌써 6년..
여기까지 썼는데도 갑자기 코 끝을 모질게 한방 얻어 맞기라도 한 듯
키보드위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아빠.. 내 아버지..
암이시지만 않았더라도..지금껏 건강하게 살아 계실 것을...
음악을 전공하셨던 아빠는 언제나
내 기억속에 클라리넷과 오보에 같은 목관악기들과
섹스폰과 트럼펫같은 금빛 찬란한 금관악기들과 함께 살아계시다.
내 어린시절 기억속의 젊은 아빠는
어린 나를 혼다 오토바이 위에 앉혀 사진을 찍기도 하셨고
릴 녹음기에 내 소리를 녹음시켜 주시기도 하셨고
가구처럼 커다란 전축에 검정색 반짝거리는 LP판을 걸고
비틀즈를 들려 주시기도 했다.
개를 무쟈니 좋아하셨던 개띠 아빠는
집 한채 값을 주고 개를 사시기도 하셨다한다.
덕분에 나는 어린시절 강새이들과 호형호제(?)하며 자랐다.
그러니 내가 한번도 보지 못한 강쥐들을 말만 듣고도
단박에 콱! 좋아해 버리는 것을 님들은 이제 이해하시리라.
클래식을 전공하신 아빠가 어린 내게 처음으로 들려주신 노래는
아이러니하게도 비틀즈의 " 그녀의 손을 잡고 싶어"라는 Rock'n Roll이었다.
빌리 할리데이, 쳇 아킨슨, 마일즈 데이비스..
그리고 바하의 두 대의 바이얼린을 위한 협주곡을 들으며 나는 근원을 아지 못할 슬픔을 배웠다.
나에게 처음 낚시대를 쥐게 해주시고 고기가 물었을 때의 그 손 끝 짜릿한 고기의 펄떡임과
낚은 고기를 바라볼 때의 가슴 떨리는 기쁨을 가르쳐 주신 분도 나의 아빠셨다.
내가 무얼 물어도 언제나 대답해 주셨던 아빠..
프랑스 온 지 6년하고도 6개월즈음 한국에 갔을 때
편찮으시면서도 나를 마중하러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나를 기다리시던 아빠..
그런 아빠를 선산에 모시고도 나는 일년이 넘도록
아빠가 이제는 더 이상 이 땅에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주 깜빡 잊곤했다.
한번은 아빠께 뭘 물어보겠다고 수화기를 들고 아빠의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기까지 했다.
물론 채 다 누르기 전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아이처럼 엎드려 엉엉 울었지만...
멋진 멜빵을 볼 때마다
멋진 중절모를 볼 때마다
빛깔 좋은 버버리 코트를 볼 때마다
낚시도구 파는 가게를 지날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악기들이 그득한 악기점을 지나다가도
나는 아빠가 그리워져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나곤 한다..
오늘도 사진속에서 아빠는 다정하게 웃고 계시는데
나는 웃으면서도 불그스레 술이라도 취한 듯 눈은 이미 축축하니 젖어있다..
가족들을 위해 고상한 인격도 자존심도 저만치 물려놓고
세상앞에 상사앞에 현실앞에
무릎꿇어야 하는 우리들의 아버지..
직장에서 괴로운 일을 당해도
가족들앞에서는 언제나 씩씩하고 용감해야하는
우리들의 아버지...
그래서 어느 시인은 그렇게 노래했다.
아버지는 결코 울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 아버지들이 마시는 술잔의 반은 아버지의 눈물이다라고...
3월에는 할머니 날이 있다.
5월에는 어머니 날이 있다.
6월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날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세상 아버지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흡족하도록 행복한 하루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