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건 뭔가 잘못됐어!
교문을 나서던 윤은 바글거리는 한 무더기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뭐지? 무슨 일 생겼나?”
미진이 슬쩍 발을 들어보더니 실망스런 얼굴을 했다.
“애들이 너무 많아서 안 보여.”
“여자들밖에 없는데.”
“혹시 부도난 악세사리라도 파는 건가?”
“헉, 가 보자!”
싫다고 극구 사양하는 미진을 가볍게 끌고 윤은 악착같이 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야, 야. 난 놓고 해. 싫단 말야! 악, 내 머리...”
“좀 참아 봐. 애들이 이렇게 몰린 걸로 봐서 괜찮은 물건들이 온 건지도 모른다고.”
내리누르는 사람은 멀리 치우고 옆에서 파고드는 사람은 발로 차주면서
윤은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 나갔다.
그리고 결국 그 앞에 도착한 순간 윤은 자기도 모르게 살망스런 탄식을 뱉고야 말았다.
“엥? 아무 것도 없잖아?”
“아유, 내가 못 살아. 머리고 옷이고 엉망이 됐네. 야!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윤은 옷을 탈탈 털면서 미진의 말을 못 들은 척 했다.
“뭐야, 괜히 힘만 썼잖아. 아, 이미지!”
그제서야 요즘 쌓아왔던 자신의 이미지를 상기한 윤은
거울을 꺼내 머리와 옷 상태를 체크하고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허리를 쭉 폈다.
그 순간 뭔지 모를 끌림에 고개를 들었다가 한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세련된 옷차림에 짙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마치 막 잡지에서 빠져 나온 사람처럼 미끈거렸다.
그를 빙 둘러싼 여자들의 눈에는 하트가 둥둥 떠나니고
동작 하나하나에 한숨이 터져나왔다.
“어머나... 쟤 누구지? 애들이 다 쟤 때문에 모여 있었나봐.
내 데이터에는 없는 인물인데... 신인인가?
근데 어째 낯이 좀 익은데.”
미진이의 호들갑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의 눈과 마주친 순간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가슴의 고동이 울렸다.
설레이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마구 울고 싶은 기분.
윤은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미진이가 팔을 치는 바람에 깨어났다.
“윤아! 왜 그래?”
“어? 아, 아냐. 가자.”
윤은 남자에게 시선이 가는 것을 참으며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근데 진짜 쟤 누구지? 요 근처에서 내가 모르는 킹카는 하나도 없는데.
어디서 봤다 싶은 게 티비에서였나?
야, 근데 쟤가 지금 우리 보고 있는 거 같은데.”
“도끼병은 공주병보다 더 고치기 어렵구나. 너 그거 중증이다.”
“아냐, 정말이라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가자.”
‘이상하네. 왜 낯이 익을까? 거 참.’
“윤아!”
“엑? 나?”
“윤이 너 아는 사람이었어?”
휘둥그레 눈을 크게 뜨고 윤을 바라보는 미진에게 윤은 고개를 저어보였다.
“몰라, 저런 애.”
“윤아! 나야.”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남자는 뛰어서 윤 앞에 섰다.
“누구세요?”
그야말로 완벽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는 상큼하게 대답했다.
“나야 나, 유진이. 보고 싶었지?”
“헉.”
“엑?”
미진과 윤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성이 튀어나왔다.
윤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유진을 가리켰다.
“네, 네가 그 김유진이라고?”
“응. 오랜만이야. 그 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자연스럽게 팔을 벌리고 안으려 드는 유진에게 윤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들이밀었다.
“너 군대 가 있는 거 아니었냐?”
“어? 그, 그게...”
“쫓겨났구만. 그럴 줄 알았다. 세상 어디서 너 같은 사이코를 받아주겠냐.
훠어이~ 훠어이~ 비켜. 전염된다.”
자기 할말만 마치고 얼른 자리를 피하는 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
“자, 이게 어...”
“화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구를 만났다구요?”
“메쉬 장로가 화성 내 군부 반대 세력을 이끌고 있더구나. 그보다...”
“아! 라탄에서도 도움을 줬다면서요?”
“......라탄은 원래 이전 지도층과 막역한 친분이 있었으니까.
그들로 보면 내가 정통후계자였을 테지. 이제...”
“이렇게 지구에 오셔도 되는 겁니까? 안 그래도 통신이 도착했었다구요.”
“내 할일은 다 했다고 생각해서 돌아 온 것 뿐이다. 윤이가...”
“그, 그러니까... 아! 화성에 연구성과는 무사히 전하셨습니까? 그들이 이해하는 것 같던가요?”
윤이의 상황에 대해 질문만 하려 하면 말을 가로막는 세진때문에
유진의 이마에는 점점 핏줄이 솟아올랐다.
급기야 입을 다물고 가만히 노려보는 유진의 눈초리에 세진도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세진은 숨도 쉬지 못한 채 가만히 유진의 눈치를 보며 떨고 있었다.
한동안의 침묵 끝에 유진이 목소리를 촥 깔아 물었다.
“윤이의 기억을 어떻게 한 거야?”
“지우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지운 거냐고!”
“문제가 되는 부분은 죄다 지웠는데요.”
“그럼 윤이가 날 싫어하는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냐?”
“그렇지만... 그게 정상적이잖아요...”
콰당!
유진의 손아래 식탁이 두 동강이 나 나뒹굴었다.
그 모습을 본 세진은 창백하게 질렸다가 이내 눈을 까뒤집었다.
“일어나. 당장 안 일어나면 가만 두지 않겠다. 하나, 둘...”
“넷!”
딩동~ 때마침 울린 초인종 소리에 세진은 눈물나게 고마와하며 얼른 문으로 달려갔다.
‘감사합니다! 살았다!’
그러나 한걸음에 달려나가 문을 연 세진은
아까보다 더 창백하게 질린 채 문을 닫고 등으로 막고 섰다.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머, 오빠. 왜 거기 서 있어? 좀 비켜봐.”
힘을 주어 버텼지만 윤이 밀고 들어오는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세진은 질질 끌려 옆으로 비켜섰고 그 사이로 윤이 가볍게 비집고 들어왔다.
“오늘은 잡채 좀 해 봤는데. 식기 전에 먹어.”
‘오, 마이 갓! 기어코 네가 날 잡으려고 드는구나.’
************************
“자, 여기 젓가락.”
생긋생긋 웃으며 세진의 손에 젓가락까지 챙겨주는 윤이었다.
유진은 아니꼬운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뭔가 점점 잘못돼 간다는 생각에 눈을 부릅떴다.
“저, 저기... 내가 먹을께.”
“응, 맛있게 많이 먹어, 오빠.”
기대에 찬 눈으로 식탁에 턱을 괴고 앉아 세진만을 바라보는 윤의 모습에
유진이 험악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세진은 유진과 윤의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 하고 눈치만 살폈다.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세진은 간신히 당면 한 가닥을 건져 올렸다.
단단히 토라진 유진은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이를 갈면서도
윤이 해 온 잡채를 한 젓가락 떴다.
순간 획 접시를 치우고 유진을 노려보는 윤.
어이가 없어진 유진은 멍하니 윤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세진오빠 먹지도 않았잖아. 왜 네가 먼저 손을 대고 그래?”
“아씨, 안 먹어! 안 먹으면 될 거 아냐!”
유진은 서운함과 민망함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팽개쳤다.
흥, 하고 콧방귀를 뀐 윤은 유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세진에게만 여전히 생글거리며 음식을 권했다.
“그럼 오빠, 나 가. 내일은 더 맛있는 거 해 올게.”
“제발 오지 마...”
변함없이 끔찍한 맛의 잡채를 배터지게 먹은 세진은 달려가 소화제를 찾았다.
그런 세진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저도 모르게 벽에 붙어 울먹거리는 세진을 향해
유진이 음산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불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봄꽃님, 과연 윤이가 사랑했던 기억을 찾을 수 있을까요? ^^
보시다시피 세진이는 완전히 찍혔고...
그래도 세진일 족치는 것보단 윤이의 마음을 돌리는 게 급할텐데...
불상한 유진이, 죽어라 전쟁하고 왔더니 이제는 윤이가 말성이네요. ^^;;
라엘님, 네, 유진이가 왔습니다.
등장도 나름대로 신경써서 멋지게 했건만...
불행히도 윤이는 전혀 관심이 없네요.
그러게 있을 때 잘 하지...쯧쯔.
밥풀님, ㅎㅎㅎ 조금만 기다리시면 싱싱한 녀석들로다가
한번 쭉 선뵈입지요. ^^ 골라보자구요.
세진이는 아마도 잘 살아 남을 겁니다. ^^
그 녀석이 의외로 강하거든요. 잡초는 밟혀도 죽지 않는 법!
시온님, ㅋㅋㅋㅋ 그러나 제가 세진일 이뻐하는 관계로
세진이가 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유진이 성격에 절대로 세진이를 그냥 놔 둘리는 없겠죠? ^^
비야님, 말씀듣고보니 정말 애들이 다 불쌍하네요. -_-;;
유진이는 유진이대로, 윤이는 윤이대로, 세진인 세진이대로...
으아악~! 행복한 놈이 하나가 없어요. ㅠ.ㅠ
수정맘님, 거야... 기억하는 놈은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돌리려 할 테고
기억 못 하는 놈은 도망다니지 싶은데요. ^^;;;
생각해보면 비련의 커플입니다. (오옷, *_* 비련커플할래요~!)
희동이마을님, 아시는군요. 윤이의 음식은 절대! 먹을 것이 못 됩니다.
이건 사랑의 힘이라도 안 될 것 같아요. ^^;;
세진이가 원래 이런 녀석이었다니까요. (소근)
알고보면 엄청 귀엽답니다. ^^
닐리리님, 여러분께서 기억을 되살려 달라고 하시는데...
기억을 되살리는 약은 없습니다! 두둥~
ㅋㅋㅋㅋ 궁금하시죠?
뭐, 꼬인 상황도 나름대로 즐겁다는 ^^;;
하지만 나중엔 제 머리가 꼬일지도 몰라요. ㅠ.ㅠ
이점님, 다들 세진이 걱정을 해 주시는군요. ^^
그치만 세진이가 호락호락 당할리가요. ^^
산전수전 다 겪은 녀석이니까 꿋꿋하게 살아갈 겁니다.
하지만 유진이도 이대로 당하지만은 않을 듯. -_-;;
싸우면 안 되는데... 정리가 안 되는데... ㅠ.ㅠ
보노보노님, 유진이 귀환특집으로 좀 차려입혀 봤는데
마음에 드시기를... ^^
지금 유진이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 얍~!
윤이가 못 알아볼 정도랍니다. ^^
유진이의 변신은 이 다음에 계속됩니다, 쭈욱~
응원하던 팀이 져서 침울 상태입니다. ㅠ.ㅠ
더구나 베드아줌마가 부상을 당해버려서...
결승 걱정은 역시 일렀던 게죠. 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