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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민은 작은 도시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이다.
불한강(佛漢江) 하부에 위치해 있어 남부해(南部海)로부터
들어오는 해상물품을 활발히 거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대동국이 지배 할 때부터 해상 무역이 활발한 곳으로
동대륙 뿐만 아니라 서대륙과 북대륙의 상인들까지 거래를 했다.
지금은 청연합군의 감시 아래 모든 무역거래가 이루어 지다보니
예전과 같이 자유스런 무역활동을 할 수 없다.
이미 이곳의 실적은 반이 뚝 떨어질 만큼 줄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곳은 세계 곳곳의 상인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항상 번화하고 화려하다.
그 중에서도 천화루는 가장 유명한 음식점이자 술집이다.
거대한 은빛 사각기둥 일곱 개가 7층 누각을 바치고 있는데
그 기둥 주위에는 화려한 초화(草化)가 피어있어 은빛 기둥의 자취
를 은근히 가려주어 마치 건물이 하늘에 떠 있는 듯 보이게 만든다.
그 화려함과 장중함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지르게 만들어
서대륙과 북대륙의 상인들이 자주 찾는 곳 이기도하다.
천화루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대붕 강대호가 거대한 대접에 술을 가득 채운 후 들이키며 말했다.
"역시 술맛은 이렇게 입안에서 짜릿하게 톡 쏘면서 뱃속을 불태우듯
이 쓸고 내려가야 제 맛이지. 하하하하. 안그렇소? 치령형!"
초목 치령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역시 대호 형은 술맛을 잘 아는군."
"그럼. 내 이 술맛을 내기 위해 술 빚는 놈이란 놈은 다 잡아다와
연구에 연구를 거듭 한 거 아니오. 이 천화루도 이 술맛 때문에
유명한 거지 뭐."
사실 천화루의 실질적인 주인은 대붕 강대호 였다.
그는 천화루 뿐만 아니라 동대륙 곳곳에 자신의 정보망을
펼치기 위해 많은 기루와 술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 천화루도 그 곳 중 하나 일 뿐이었다.
"술맛은 이리도 좋은데 기분은 우울하니...."
초목 치령의 말에 대붕 강대호가 술잔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기다려 보시오. 내 수하 놈들이 곧 상천제 막개를 찾아 낼 테니."
"느낌이 별로 좋지 않소."
"어허. 나 대붕 강대호를 못 믿소?"
"하하하. 내 어찌 천하의 대붕 강대호의 말을 믿지 못하겠소?
단지 지금 동대륙에 돌아가는 정세가 영 의심스러워서 그러지."
"뭐가 말이오?"
대붕 강대호의 물음에 초목 치령은 주위를 은근히 둘러보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운(戰運)의 조짐이 보이고 있소."
그의 말에 놀란 대붕 강대호가 소리쳤다.
"뭐요?"
강대호의 고래 같은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쳐다보자 치령은
인상을 쓰며 조용히 말했다.
"아직 나도 잘 모르겠으나 청연합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소.
그리고.."
"그리고?"
"황실 내의 정보에 의하면 이기국(夷記國)의 병력이 증강 되었다고
들었소."
"유령국.....이기국이 움직였단 말이오?"
"그 것 뿐만 아니요. 우리 대동국도 이미 만일에 대비해 준비를 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을 것 같소."
"무슨 소리요?"
"동대륙 전체에 전운이 일고 있단 말이오. 유웅국과 삼묘국 까지
군사적 움직임이 잡히고 있소. 바이칼 쪽은 아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 할 수 없소."
대붕 강대호는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럼. 누가 누구와 서로 손잡고 누굴 치겠다는 거요?"
그의 말에 초목 치령은 고개를 저의며 말했다.
"그게 이상하다는 말이오. 분명 서로 견제하기 위해 군사를 움직인
것은 확실한데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처음에는
우리 대동국을 향해 북청과 남청이 손을 쓰려는 줄 알았소. 그러나
그것도 아니오. 아직은 무어라 말할 단계가 아니오."
"음.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잘 못 불이 당겨진다면 동대륙은
걷잡을 수 없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겠소."
대붕 강대호의 심각한 말에 초목 치령도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옳은 말이오. 잘 못하면 지옥이 ..... 생지옥이 생길 것이오."
그들이 심각하게 말하고 있을 때 한 쪽에서 시끄럽게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다.
"야! 임마! 술 가져와! 술!! 모두 죽었냐?"
그는 이미 만취한 상태에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점원을 향해 소리를 쳐댔다.
그의 시끄러운 소리에 사람들이 인상을 쓰며 불평을 하자
점원하나가 급하게 그에게 다가가 사정을 했다.
"아아구! 추민 도련님 술을 이렇게 많이 드셨는데....헤헤.
오늘은 그만 드시는게 좋겠네요."
점원의 말에 눈을 게슴츠레 뜬 추민은 씩 한 번 웃더니
갑자기 머리로 점원의 가슴을 들이받아 버렸다.
"이이쿠!!"
점원이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자 추민은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크하하하. 이놈아! 내가 천하의 추민이다. 태민의 최고 갑부
추량의 외아들!! 임마! 그런데 네가 뭔데 술을 먹어라 ...마라야?"
그의 술 주정을 보던 초목 치령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린놈이 벌써부터 망나니짓을 하는군."
"저 놈? 이 지역의 최고 갑부인 추량의 3대 독자다."
"추량?"
"이곳 태민에서 무역으로 엄청난 부을 얻은 놈이지. 청연합군이
이곳에 들어오자 바로 달려가서 돈을 받치고 그 힘을 빌어
유세를 떠는 놈이야. 이곳에서 동대륙 국민들은 거의 짐승
취급을 받는데 그 놈만은 연합군 놈들에게 돈을 주고 편안하게
살고 있지. 그리고 이 지역의 상권까지 쥐고 흔들고 있는
놈이야. 아주 악질 상인인데 그 놈의 자식까지 저 지경이니..."
그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추민은 술에 취에 탁자에
쓰러져 조용해 졌다.
치우는 추민이 탁자에 쓰러진 후 천화루로 들어왔다.
그는 가진 돈이 얼마 없었으나 이곳 최고의 부자를 알려면
이 정도의 주점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와! 정말 화려하구 사람이 많구나."
치우는 괜히 움추려 드는 마음을 다시 잡았다.
그때 점원하나가 치우의 아래위를 쳐다보며 물었다.
"무얼 드실 거죠?"
그는 치우가 아직 어리고 옷도 초라해 보여 만만하게 보고
말한 것이다.
치우는 거지생활을 하며 많은 일들을 겪어보아서 그 점원의
행동이나 눈빛만 보아도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무시하는 점원에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무슨 소리야? 손님이 왔으면 자리부터 얼른 마련할 것이지."
치우의 호통소리에 점원이 찔끔해서 얼른 빈자리에 안내했다.
"이 쪽으로 앉으시죠."
치우는 약간은 거만하게 자리에 앉았다.
"저...무엇을 드릴 까요?"
점원의 말에 치우는 자신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집에...제일! 싼 차로 한 잔 줘!"
치우의 말에 점원의 인상이 갑자기 싹 바뀌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고작 차 한 잔 시킬 꺼면서 큰 소리는'
점원은 치우에게 싸늘한 눈빛을 남기고는 주방으로 사라졌다.
치우는 점원의 행동에 신경도 쓰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보통 이런 음식점들은 많은 소문들이 퍼지는 곳이었다. 그래서
치우도 정보를 얻고자 들어 온 것이다.
치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입구 쪽에서 무척 뚱뚱한 사내가
어기적거리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치우의 눈에 그가 유난히 눈에 띈 것은 그의 온 몸에 치장된
보석과 금들 때문이었다. 한 눈에 보아도 돈 많고 게을러 터졌으며
인색한 부자로 보였던 것이다.
"음. 목표물이 나온 건가?"
치우가 중얼거릴 때 그 뚱뚱한 사내는 탁자에 술 취해 쓰러진
추민 앞으로 갔다.
"이런 죽일 놈!! 언제 정신 차릴 꺼야?"
그의 호통소리에 쓰러져 잠자고 있던 추민이 고개를 살짝
들고 쳐다 보며 말했다.
"어? 아버지 아닙니까? 헤헤. 어쩐 일로 이런 곳까지 납시셨나요?"
뚱뚱한 남자는 태민시의 최고 갑부인 추량이었다.
추량은 살찐 얼굴을 더욱 부풀려가며 인상을 썼다.
"이 놈!! 언제까지 술에 취해 세월을 보낼 작정이냐?"
추민은 술병을 다시 들고 마시며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헤헤. 뭐 어때서요? 최고의 갑부인 우리 아버지가 있는데 술 먹으
면서 세월을 죽인다고 거지가 되겠습니까? 헤헤. 전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헤헤....이렇게.....꿀꺽!....캬~ 술을 마.....
윽!.......커.....헤..."
잘 말하던 추민은 갑자기 또 책상에 머리를 박아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추량은 한숨을 쉬며 뒤에 서 있던 하인들에게
소리쳤다.
"뭐하냐? 도련님 어서 모셔가지 않고!!"
그가 소리치자 건장한 하인 세 명이 추민을 업고 주점을
빠져나갔다.
추량은 그 모습을 보고 천천히 입구 쪽으로 몸을 옮겼다.
그 때 주인이 다가와 실실 웃으며 추량에게 말했다.
"헤헤. 대인 그럼 몸 조심히 가십시오."
그의 말에 추량은 주머니에서 자은 다발을 꺼내서 던져주며 말했다.
"그 돈은 내 아들놈이 먹은 술값이다. 그러나 이번 뿐이다. 다음에
또 이곳에서 내 아들놈을 찾게 만들면 그 땐 아예 이놈의 집에
불을 놓아 버리겠다. 알겠냐?"
추량의 말에 주인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대...인!!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도련님께서 저희를...."
"넌 저 놈이 무섭냐? 아님 내가 무섭냐?"
"무...물...론! 대인 입죠!"
"그럼 알아서 처신해라."
추량은 말을 마치자 휑하니 천화루를 빠져나갔다.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치우는 추량의 뒤를 바로
쫒아 나갔다.
대붕 강대호가 천화루를 나가는 추량을 보며 말했다.
"저 돼지 같은 놈!! 언제가 저 놈 집을 털어서 대동국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어야 되겠군."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나. 대동국이 이미 저들을 보호 해
줄 수 없으니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겠지. 모두 우리 태황실
사람들의 잘 못이네."
"그렇지 않지. 비록 대동국이 지금은 쇠퇴해 저들을 돌보아 주지
못하지만 모두가 저 놈처럼 자기 배 속만 채우지는 않아....그런데도
저 돼지 같은 놈은 오히려 백성의 고혈을 빼고 있으니...중요한
일만 없었어도 내가 저 놈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는 건데..."
대붕 강대호의 말에 초목 치령은 하얀 치아를 들어내 웃으며
말했다.
"자네의 그 바른 성정은 누구도 감당하지 못하겠군. 하하하."
"하하하. 어디 초목 형 만큼 하겠소?"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천화루로 백의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얼굴을 하얀 면사로 가리고 있어 그 진면목을 볼 수 없으나
굴곡있게 잘 빠진 몸매가 미인 임을 짐작케 했다.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대붕 강대호가 흠짓 했다.
"음? 저 여인은...."
대붕 강대호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보고 초목 치령이 여인을
쳐다보았다.
맑고 검은 두 눈동자만이 내놓고 있는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자 그는 궁금증이 일었다.
과연 누구길래 대붕 강대호가 관심을 갔고 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