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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당!
아주머니가 손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하연은 그대로 기절했을 지도 몰랐다.
방문이 부서지지 않고 그대로 문틀에 붙어 있는 게 용할 만큼 어마어마한 소리였다.
활짝 열린 방문 앞에는 민혁이 있었다.
아주머니가 서둘러 방을 빠져나간 뒤
하연은 도대체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서 방 안 이 곳 저곳을 두리번거렸다.
냉기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아서 하연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혈관 속의 피를 얼릴 것 같은 눈초리를 피할 방법은 아무데도 없었다.
“도, 도대체 어디서부터 듣고 이, 있었던 거에요?”
기척조차 하지 않았던 민혁을 책망하는 마음보다
혹시라도 민혁이 자신의 말을 마음대로 해석해서 오해라도 하게 될 것이 겁났다.
더듬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하연의 모습을 싸늘한 시선으로 쏘아보며
민혁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가 그렇게 궁금해?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궁금해? 쓸데없는 관심 따위 딱 질색이야!
질색이라고! 내 꼴이 그렇게 우스워 보여?
그 눈! 휘둥그레하게 뜨고 쳐다보기만 하면 다 설설 길 줄 아나보지?
웃기는 소리! 그 따위 알량한 동정 같은 거!
집어 치워! 치우란 말이야!”
와장창창창―! 쨍그랑―!
온 집안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민혁의 고함소리는 극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하연의 화장대에 놓여 있던 브러쉬를 집어던져
벽에 걸린 거울을 박살내고
그것도 모자라 화장대 위에 있던 물건들을 모조리 쓸어 버렸다.
하연은 온 몸으로 파고드는 공포심에 입 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어찌나 놀랐는지 부들부들 떨 힘조차 잃어버렸더랬다.
어떻게 해서든 이 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최대한 용기를 쥐어짜낸 하연은 주춤주춤 일어나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 안에 들어와 있는 민혁을 피하는 방법은
자신이 방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민혁은 빙그르르 휠체어를 돌려 벽 쪽으로 하연을 몰아 세웠다.
“…흐, 흐읍!”
하연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두려움에 짓눌린 신음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벽에 유리잔을 던질 때는 오히려 나았다.
발바닥이 따끔거렸지만 하연은 그 아픔조차 신경 쓸 수 없었다.
하연은 벽으로 바싹 붙어 섰지만
코앞에서 전해지는 냉기 때문에 이빨이 딱딱 부딪혔다.
그 냉기를 견디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았을 때
하연은 목덜미를 파고드는 서늘함에 또 한번 몸서리쳤다.
으르렁대며 위협하는 맹수의 눈초리.
“푸른수염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
쓸데없는 궁금증이 불러낸 죽음들이지!
열쇠가 손에 쥐어진 이상 안 들어가 보고는 배겨날 수 없는 게 가증스러운 사람이거든.
그 순진해빠진 눈초리를 하고 있으면 뭐가 달라질 줄 아나 보지?
주제파악도 하지 못하고 궁금해 하다가
목숨까지 위태로워진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아!
겁먹은 니 모습 따위, 역겨워!”
민혁은 하연의 목을 잡은 손에서 조금 힘을 뺐다.
이성을 잃고 달려들 만큼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자 걱정을 하고 있다니!
하연은 잘못하다가는 목이 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하연의 얼굴 가까이로 민혁이 쓰윽 얼굴을 들이밀었다.
코끝에서 민혁의 숨결이 느껴졌다.
당신도 사람이잖아.
숨쉬고 있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지독하게 구는 건데!
하연의 외침은 소리 없는 눈물이 되어 방울방울 떨어졌다.
툭, 하고 민혁의 손목 위로 하연의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따뜻한 물기가 느껴지자마자 민혁은 불에 덴 듯
하연의 목에서 손을 떼버리고 말았다.
“이런 젠장! 겁 없이 까부는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이니라….”
마치 오래된 비극의 한 구절을 읊는 것처럼 민혁은
욕지거리와 함께 하연의 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눈물만 뚝뚝 떨구고 있는 하연에게서 홱 떨어져서는
거칠게 휠체어를 움직였다.
“…한 번만 더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게 내 귀에 들어오면
그 땐…나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명심해!”
흑흑대며 눈물만 흘리고 앉아있던 하연은
어디서 무슨 힘이 나오는지 별안간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찬바람이 휙휙 돌 정도로 유유히 휠체어를 조종하며
방 밖으로 나가던 민혁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에 우뚝 멈추었다.
“그, 그래요! 당신이 뭐 하는 사람인지,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궁금했어요! 궁금했다구요!
궁금한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래서 물어 봤어요!
단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 뿐 이라구요!”
“…왜…궁금하지? 나에 대해서? 진하연 당신이 왜 궁금해 하냐고?”
“하! 왜 안 궁금하겠어요?
이런 어두침침한 저택에서 전혀 궁핍하지 않게 비밀 속에 숨어 살아가는 남자라니!
게다가 수행비서는 매일같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두꺼운 파일 뭉치를 들고 당신의 방을 들락거리는데다
그토록 괴팍한 성질을 갖고 있는데 왜 안 궁금 하겠냐구요?
게, 게다가 당신은 휠체어에 앉아 있잖아요!”
한 번 따지기 시작하자 하연은 가슴 속에 끙끙대며 담아 두었던 말들이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민혁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젠 한 쪽 눈썹까지 치켜 뜬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지만 하연은 머릿속이 빙빙 도는 바람에
무슨 말을 어떻게 지껄여 대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태라
민혁의 표정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맙소사!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하연이 깨달았을 땐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민혁은 이젠 무슨 말이 나올까 느긋하게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그 다음은?”
“그, 그, 그 다음이라뇨?”
하연의 목소리는 고르지 못했다.
높낮이가 기묘한 하연의 목소리를 들은 민혁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하연의 발바닥에서 흘러나온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하연의 발바닥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 다음. 당신은 휠체어에 앉아 있잖아요, 다음은 뭐지?”
“다, 다음이 어딨어요? 그, 그냥 그렇다는 거에요!
뭐가 그렇게 감출 게 많은 거에요?
당신이 감춰야 할 그…아…저…하여튼!
그것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진다는 건 생각도 못 하나…!
뭐, 뭐에요?”
하연은 종아리에 닿은 민혁의 손길에 기겁하며 물러섰다.
그제서야 발바닥이 화끈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 피, 피잖아!
“알았으면 순순히 발 좀 들어 봐.”
지금 저 남자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람.
민혁이 내밀고 있는 손을 멍하게 쳐다보던 하연은
뒤늦게 그 손짓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런데도 하연은 머뭇거렸다.
불이 난 것처럼 화끈거리고 칼날 위에 선 것처럼 쓰리지만
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파상풍에 감염되고 싶지 않으면 고분고분 굴어!”
하연은 버럭 터져 나오는 민혁의 목소리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발을 민혁의 손 위로 가져가고 있었다.
민혁은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하연의 발목을 확 잡아끌었다.
민혁이 보기에 상처는 깊지 않았다.
아마도 방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유리조각에 살짝 긁히기만 한 것 같았다.
이미 배어들던 피는 자연적으로 지혈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색한 자세로 맨발을 남자 손에 맡긴 하연은
발을 붙잡고 있는 민혁의 손에서 온기가 야릇하게 퍼져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따뜻한 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쩌면 그토록 냉랭할까.
처음으로 느끼는 이상한 기분에 하연은 왠지 부끄러워졌다.
“어, 언제까지…이러고 있어야 하나요…?”
“…이거 아나? 중국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발을 만지게 허락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허락하는 것과 같은 뜻이라는 거.”
“놔, 놔 주세요!”
“멍청하긴! 방 안이 이 모양인데 어딜 돌아다니려 하는 거야!
설쳐대지 말고 잠깐 앉아서 기다리도록 해!”
민혁의 손에서 발을 뺀 뒤 후다닥 달려 나가려던 하연은
또 다시 터져 나온 고함소리에 놀라서 자지러지듯 침대에 걸터앉고 말았다.
민혁은 능숙하게 휠체어를 돌려 방을 나갔다.
잠시 후 들어오는 민혁의 다리 위에는
붕대와 의료용 가위, 연고, 약솜 등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그게 뭐에요?”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내숭 따위 집어 치우고 발이나 이리 내!”
거칠게 하연의 발을 잡아 챈 민혁은 능숙한 손길로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따갑다는 엄살조차 피우지 못하고 발을 맡긴 하연은
민혁의 빈틈없이 붕대 감는 솜씨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원래 팔이나 다른 곳과는 달리 발은
구조상으로도 붕대 감기가 까다로운 부분이었다.
그러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처럼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 아얏!”
하연의 웃음소리가 거슬렸던 것일까.
민혁은 발목에 매듭을 지으면서 일부러 꽉 묶어 버렸다.
하연은 민혁이 지어놓은 매듭을 느슨하게 풀면서
빤히 쳐다보고 있는 민혁의 시선을 살짝 피했다.
“…말 해.”
“네? 뭘…요?”
“말하라고. 왜 웃었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그냥이라는 건 없어! 그냥, 이라는 말로 어설프게 때울 생각은 내다 버려!”
“…항상 언제나 이런 식인가요?”
무지막지한 단어들로 사람을 궁지에 몰아붙이는 게 취미인가 보죠, 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공격을 개시하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닦달하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명령조로 일관하는 남자.
“넌 쓸데없이 피식거렸고 난 그 이유를 물었어. 잘못된 건가?”
“아, 아니…그런 건 아니지만….”
반박할 여지조차 남겨주지 않는 남자.
기절할 만큼 공포스럽지만 한 편으로는 다친 발을 치료해 줄 만큼 다정한 남자.
“어물거리지 마! 대답해! 왜 웃었어?”
“간병하러 온 사람이 오히려 간호를 받고 있어서요. 됐어요, 이제?”
“앞으로는 쓸데없이 버티지 마! 말 안 하고 버틸 가치조차 없는 말이잖아.”
“그 쓸데없다는 말 좀 안 할 수 없어요?”
“…뭐라고?”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제발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부탁이에요.”
정신없이 도리질치며 부탁까지 하는 여자의 반응은 의외였다.
민혁은 하연의 볼을 붙잡고 더 이상 도리질치지 못하게 했다.
딱 멈춰버린 하연의 시선에서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하연은 순식간에 방망이질 치는 심장 탓에 숨이 가빠짐을 느꼈다.
두려움? 공포?
아니었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려움이나 공포라고 단정 지으려면 사무치게 스며드는 냉기가 있어야 했다.
오히려 냉기는커녕 따스함이 스며들었다.
“쓸데없는 것과 쓸데 있는 것의 차이를 아나?”
“아니…요…. 그 차이라는 게…뭔…데요…?”
“그 차이도 모르면서…왜 나한테 쓸데없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지?”
“몰라요….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지금 이건…쓸데 있는…행동인가요?”
“그렇지. 내가 진하연이라는 여자를 더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성!
이제 쓸데 있는 것과 쓸데없는 것의 차이를 알겠어?”
“아니요. 아직도…모르겠어요….”
“…여자여, 모른다는 것은 하늘이 그대에게 주신 축복이리니!”
볼을 감싸고 있던 민혁의 손이 떨어져 나가자 차가운 공기가 훅, 하고 느껴졌다.
끝자락을 붙들고 싶은 안타까움.
하연은 알 수 없는 안타까움에 가만히 손을 가져다 볼에 댔다.
그러다가 놀라움에 눈이 커졌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하연은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감정을 애써 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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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의 이야기는 프랑스의 전래동화입니다. 블루비어드(Bluebeard, 푸른수염)는
품위와 예절과 부를 고루 갖춘 멋진 신사입니다. 당연히 뭇 여성들에게 좋은 신랑감으로
알려져 여러 차례 결혼을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아내들은 계속해서 죽습니다..
블루비어드는 여행을 떠나면서 새로 결혼한 아내에게 성 안의 모든 방문들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넘겨주면서 다른 모든 곳은 열어봐도 좋지만 일층 복도끝의 방문은 절대로
열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줍니다. 아내는 처음에 그 방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복도 끝 방을 열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벽에는 부인들의 시체가 걸려 있다는 것이 이 동화의 줄거리 입니다.
혹시라도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미강이가 전래동화를 조금 요약 했답니다.
너무 섬찟한가요...? ㅎ ^^a
그리고, 중국에서 남자에게 발을 맡기는 것이 몸을 허락하는 의미라는 것은 궁리가 출현한
영화속에서도 등장 합니다. 가마에 타는 궁리의 발을 살짝 만지는 장면이요..^^
(영화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넘 오래되서..ㅋ)
오늘도 댓글 빠짐없이 달아 놓았답니다. *^^* 그럼 미강이는 이만 총총요~
7월 8일 목요일로 넘어가는 시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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