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의 상처 안고사는 40대 여성들에게 띄우는 편지
[세계일보 2004-07-08 13:45]
사랑하는 누이
네가 그 길고 긴 아픔과 참을성을 던지고 떨어져 나와 홀로 서려 애쓴 지 어느새 몇 해가 지났구나. 이제 겉보기엔 담담하고 가여운 상처도 아문 듯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여전히 속으로는 피눈물이 철철 흐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치미는 절망에 누운 채로도 자빠지곤 하는 것을. 자, 이제 다시 시작하자. 그리고 훌훌 털자꾸나. 그렇지 않으면 좀처럼 새로운 시작은 어려울 것 같구나.
압축된 시간과 공간을 뚫고 험한 세월 달려온 지금 이 땅에 살아있는 어느 세대인들 스스로 ‘낀 세대’라고 생각하지 않으랴?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몸소 겪은 우리 부모 세대며, 졸속한 산업화에 온몸으로 앞장선 우리 선배 세대며…. 하지만 정작 그나마 혜택은 누리기 시작했지만 위에서 누르고 밑에서 치받치는 사이에 엉거주춤한 우리는 오죽하랴? 무엇보다도 여성과 남성사이라는 가장 가깝고도 먼 관계를 화두로 놓고 보면 우리야말로 어지럽고 헝클어진 시대를 살며 지금 여기 삶에 대한 믿음조차 뚜렷하지 못하구나.
그래, 우린 처음으로 여성학이며 양성 평등의 가치를 만난 세대다.
처음엔 그 세상을 뒤엎는 듯한 소리에 놀라며, 그러나 곧 자신의 성장과정과 존재내용을 의심하고 기존의 모든 것을, 특히 당연함에 시비거는 법을 배웠다. 세상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 안에서 힘겹게 살아온 우리네 꽉 막힌 생각도 느낌도 바뀌어 그예 너처럼 그 제도와 틀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을 제법 집단으로 쓰기 시작한 것도 아마 우리가 처음이지.
그래 네 선택은 잘잘못을 떠나 불가피했다. 더는 그런 가부장적이고 비인간적인 굴레를 감내하고 살지 않겠다는 결심인 만큼 마땅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결단인들 쉬웠겠니?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너는 마치 사회 전체를 적으로 삼은 듯 밖으로도 어렵고 힘든 싸움을 했고, 안으로도 온갖 다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혼과정에서 겪은 제도와 같은 숱한 장벽이야 이루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생활이었다. 아직도 비뚤게만 보는 남의 눈들부터 먹고 사는 일에서 겪는 못나고 못된 본새들까지….
무엇보다도 아이들 문제가 어려웠지. 여전히 아이들 교육은 어머니 몫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자 떨어져 살수록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우리네 고질적인 모성 이데올로기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그조차 버리자. 아이 기르기는 이제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과제다. 다만 그 바람에 네 안에, 그리고 아이들과의 관계에 남아있는 종속과 의존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죄의식 또한 이제 헛된 것이다. 그것도 버리자.
자, 이제 새로 시작하자.
누군가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 게다가 자칫 수사만 화려하고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구호로 그칠 위험도 크다.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가자. 지금 너와 비슷한 어려운 길에 나선, 홀로 서기 버거운 누이들과 함께 가자. 또 그 밖에도 야멸차기만 한 이 땅에 주변으로 밀리고 막다른 골목에 몰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가자. 그러면서 호주제 폐지와 같은 제도를 바꾸는 일도 서둘러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 마음 속에 뇌리 속에 남아있는 부계 혈통주의를 지우고 사람다운 줄과 연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기자. 결국 우린 ‘낀 세대’로서 우리 양쪽에서 좁혀져 오는 실망과 절망의 벽을 온 존재로 밀어 버티면서 그 틈새에 삶은 애닯지만 사람이 처절하게 아름다운 세상으로 버티는 거다. 그렇게 다시 시작하자, 사랑하는 누이야!
[출처] 돌싱닷컴(이혼/사별자들의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