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운명의 향기/17편

나다 |2004.07.14 23:50
조회 640 |추천 0

비가 많이 왔어요... 비 조심 하세요^^

 

 

"이게 고딩의 비애야.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해야하는 이 현실. 한창 좋은 나이에 이 청춘을 이 미모를 어두운 교실에서 썩혀야 하다니. 그래서 말인데 우리 노래방이나 가자"
"난 안돼"
"왜"

일제히 하정의 얼굴을 보면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정은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면 한마디라고 잘 못 말했다가는 큰일날 것 같았다.

"아니...저기... 오늘 유환오빠... 학교 갈거야"하정
"아예 대 놓고 연애하네" 경숙
"언제부터야" 희진
"여행에서 돌아오고 처음 만나는거야. 한번만 봐줘"하정
"좋아, 우리가 봐준다." 혜정
"고마워"

 

 

애교로서 하정은 친구들에게 미안함을 대신했다. 교복을 입은 채로 가기가 좀 그랬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사복을 따로 챙겨 오지도 않았고, 너무 잘 보이려고 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도 상했다.
유환오빠가 먼저 만나자고 전화해서 너무나 좋았다. 그 전에 내가 먼저 전화할까? 말까? 하루에도 열두번 생각하고 다시 수화기를 들고, 혼자서 생쇼를 할 때 유환오빠의 한 통의 전화가 마른 땅에 비와 같이 소중했다.
유환오빠가 다니는 학교앞에 약속장소를 잡았다. 교복차림의 자신의 모습이 너무 어리게만 보이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다.
대학교 정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고딩의 모습이 언니, 오빠들의 시선을 사로 잡고 있었다.

 

"교복 입은 여고생 처음보나"

 

아마도 교복입고 그것도 대학교 앞에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은 보기 드문 광경일 것이다. 왜냐면 보통 다 사복을 입으니까? 방학인데 교복입은 여고생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촌스러운 발상이다.

 

"왜 안나오지. 민망해서 죽겠네"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이상한 눈으로 아니 좀 놀라워하는 얼굴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네"
"한 유환씨 아세요"

 

하정은 이 여자를 오늘 분명히 처음 보았다. 그런데 이 여자가 내가 유환오빠를 기다리는지 알고 있었다. 아니 날 알고 있는 듯 했다. 어떻게 날 알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쪽은 나를 모르지만 전 알아요"
"......."
"유환씨 만나러 왔어요"
"네"
"저 유환씨 약혼녀인 이제인이에요. 좀 놀랬죠. 어떻게 알고 있는지 말이에요"
"......."
"유환씨한테서 얘기 말이 들었어요. 저도 지금 유환씨 만나러 가는데 같이가죠"
"아니에요. 오빠한테 먼저 간다고 말해주세요"

 

 

그 상황에서 그 여자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다. 유혼오빠가 약혼한 사람이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은 없을 것이다. 더 기분 나쁜것은 나에 대한 얘기를 그 여자에게 다 했다는 것이다. 나를 어떻게 알았지. 진짜 기분 더럽네.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그런데 왜 자꾸 멍청하게 눈물이 나오는거야. 정말 바보같고, 멍청해.


제인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유환의 화실 가득 어떤 여자의 그림을 처음 발견했을때, 불 같은 질투심에 화가 나기도 했었다.
살아있는 여자가 아닌 유환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의 여자라는 걸 알고, 더 이상 질투도 그 그림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그 여고생이 그림속의 그 여자였던 것이다. 질투심에 제인은 뭐라도 해야만 했다. 가만 두고 싶지 않았다. 분명 유환씨는 나에게 그 그림은 상상의 여자라고 했다. 그런데 살아있는 여자라니.. 배신감에 제인은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림의 여자가 살아있는 여자였어"

 

심상치 않는 눈으로 하정을 바라보던 제인은 발길을 돌려 유환의 화실로 갔다.

 

 

 

"하정아, 밥 먹어"
"싫어요"

집으로 돌아온 하정은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에요. 그냥 입맛이 없어요. 할머니 그냥 저 잘게요"
"이마에 열은 없는 것 같은데.. 푹 쉬어"
"네"

 

할머니가 방에서 나가고, 하정은 또 다시 유환의 약혼녀라는 그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쭉쭉빵빵, 풋풋한 대학생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 여자는 성숙한 여자인 반면 나는 아직까지 여자라는 느낌보다는 소녀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고딩일뿐이다. 그것도 입시준비로 스트레스에 잔뜩 찌듯 고딩이라고 할까?

"말도 안돼.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야"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고 있었다. 하정은 그날 밤새도록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마음이 아련하게 아파오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서 짜증이 났다. 밤새 하정은 몸에 열이 올라 그 다음날 일어나지도 못했다.

 

"여보세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하정은 친구 혜정의 전화를 받았다.

 

-슨 일이야. 결석을 다하고, 어디 아파-
"응"
-제 유환오빠랑 심하게 놀아서 몸살 난거야-
"아니야"

어제 그 생각에 다시 하정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하정아-

당황하는 혜정의 목소리.

"유환오빠... 약혼했데..."
-뭐라고, 꼼짝 말고 집에 있어. 우리가 곧 갈게"
"알았어"

 

 

전화를 끊은 하정은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침대 옆에 버러진 휴지들이 산을 만들고 있다. 눈물 샘이 고장이 났는지 눈가에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유환오빠에게 약혼녀가 있다는게 무슨 소리야"

친구들이 혼비백산. 하정의 방으로 쳐들어왔다. 정말 그 표현이 정확한 것 같다.

"좀 앉아, 쳐다보기 힘들어"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어. 오빠가 직접 약혼했다고 그래" 경숙
"아니, 약혼녀가 직접 말했어"
"널 어떻게 알고, 널 본적도 없을텐데" 혜정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어. 그런 생각할 뜸도 그걸 물어볼 생각도 못했어. 다리가 너무 떨려서 심장이 너무 뛰어서 서 있을 수도 없었어"
"이 바보 물어봤어야지. 유환오빠는 뭐라고 그래" 희진
"전화 안했어. 사실일까봐 겁이 나서 전화 안 받았어"
"정말 한심하다. 빨리 일어나 지금가서 오빠 만나서 직접 물어봐" 혜정
"진짜 사실이면... 나 무서워"
"경숙아, 준비해" 혜정
"알았어"

 

침대에  누워 있는 하정을 일으켜 세워 화장대 앞에 앉혔다. 경숙이 자신의 가방에서 온갖 화장품 도구를 쫘 펼쳐 보였다. 비장한 얼굴로 하정을 한번 쳐다보고는 능숙한 솜씨로 하정을 여자로 만들고 있었다.
희진과 혜정은 옷장에서 의상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섹시버전으로 가자"  희진
"청순하게 좋지 않을까?"  혜정"
"노우. 남자들은 입으로는 청순한 여자라고 말하지만 눈은 섹시한 여자를 보잖아. 이효리의 노래처럼 10분안에 사로잡는거지" 희진
"좋았어" 혜정

 

옷을 입었다. 벗었다. 친구들의 요구에 하정은 혼이 다 나갈 지경이었다. 점점 기운이 빠지고 있는데 친구들이 요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았다.

 

"돌아봐"
"나 힘들어"
"참아. 그런데 그 여자 예뻐"
"괜찮더라, 분위기 있어 보이고, 당당하고, 멋진 여자더라"
"기 죽지마. 너에게는 우리가 있잖아"
"마지막으로 구두"

 

희진이 구두를 꺼내어 하정의 발아래 놓았다.

 

"너무 높지 않아"
"여자의 섹시한 다리는 구두에서 완성되는거야. 신데렐라에게 유리구두가 없었다면 왕자와 만나겠어?"
"잘도 갖다 붙인다. 여기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
"아님 말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다. 치마는 겨우 엉덩이만 가릴 정도로 짧았고, 머리는 어른처럼 세팅으로 틀어 올렸고, 화장은 너무나 진했다.

 

"너무 야한 것 아니야"

 

하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친구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전혀. 완벽해. 퍼펙트"

경숙은 박수까지 치면 오버하고 했다

"유환오빠 어디에 있다고 그래"
"민호랑 통화했는데 칵테일 바에 있다고해. 거기는 내가 알기로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이 가는 걸로 아는데 좀 사나봐"
"거기가 어딘데..."
"너는 아무 걱정하지말고 우리만 믿어"
"그런데 좀 뭐가 밋밋하지 않아'

 

경숙이 휴지를 여러장 뽑아 동그랗게 만들어 하정의 가슴에 쑥 넣었다.

 

"이제야 좀 볼륨있어 보인다. 가슴에 힘좀줘" 경숙
"뭐가 이 정도면 됐지" 하정
"여자의 자신감은 가슴에서 나오는거야. 넌 너무 평면이야. 껌 같아"경숙
"좀 더 넣을까?"하정
"젖소부인 촬영할 일 있어"
"우리의 친구 하정의 사랑을 위해 파이팅!"
"아자!아자!"

 

대문 앞에 벌써 택시 한대가 와 있었다. 이게 마차인 셈이다. 구두가 발에 잘 맞지 않아 발이 아팠다. 걸음걸이도 뒤뚱뒤뚱 우스웠지만 친구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 나름대로 섹시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조건 남자에게는 섹시가 먹혀. 알지"
"알았어"
"잘해"

 

확고한 결심으로 대통령이 온다고 해도 이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꼭 유환오빠를 유혹해서 그 약혼이 잘 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