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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성(城)을 향해 가는 길 [8-①]-마음 베풀기※

미강 |2004.07.19 00:23
조회 4,847 |추천 0

 

 

 

 

8. 마음 베풀기


 

 

 

 이름모를 개는 생명력이 매우 질긴 게 틀림없었다.

 

 

하연의 보살핌 덕분이라고 해도 빠르게 기운을 회복했다.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넘기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힘겨워 보였지만

 

우유부터 시작해서 야채죽까지 하연이 주는 음식은 모두 먹었다.

 

 

상현은 올 때마다 개를 키우고 돌보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한 아름씩 구해다 주었고

 

하연은 상현이 사다 준 책 중에서

 

애견 키우기에 관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일단 몸이 회복되기 전까지는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음식을 손수 준비해서 먹이기로 했다.

 

 

그리고 하연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강인’이라고 이름도 지어 주었다.

 

 

 

강인이의 털은 하루가 다르게 윤기가 돌았고

 

청결을 유지해 주고 철저하게 소독을 해 준 다리의 상처 또한

 

특별한 감염 없이 잘 아물어 가는 듯 했다.

 

 

 

강인이는 꽤 영특한 개였다.

 

 

집 안에 깔린 어둠과 적막에 짖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 차렸는지

 

집 안에서는 절대 짖지 않았다.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민혁도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지는 강인이에 대해 가끔 안부를 묻는 정도가 되었다.

 

 

 

“그 개는 아직 숨이 붙어 있겠지?”

 

 

 

항상 이런 식이었지만. 그리고 때로는,

 

 

 

“아무래도 절룩거리는 걸 보니 완벽해지긴 틀린 것 같은데!”

 

 

 

이렇게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반어적으로 표현하는 민혁의 말투를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하연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전혀 낫지 않을 것 같던 강인이의 허벅다리 살은 빠르게 차도를 보이고 있었다.

 

 

덜렁거리는 살점을 조심스럽게 싸매고

 

상처 치료용 연고를 꾸준히 발라주었다.

 

 

빨리 낫기를 바라는 하연의 마음을

 

말 못하는 강인이도 알아차렸던지

 

무턱대고 붕대 감은 다리를 핥지도 않았다.

 

 

그저 하연이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안심하고 다리를 맡겨 버렸다.

 

 

 

“도대체 누굴 보살피러 온 거지? 당신의 간병 대상은 그 개가 아니라 나야!”

 

 

 

어느 새, 개를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하연의 뒤에 민혁이 와 있었다.

 

 

사실 민혁은 아주 오랫동안 하연의 뒷모습을 쳐다보곤 했다.

 

 

민혁이 기척을 하기 전엔

 

하연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부르기 전엔 곁에 오지 말라고 하신 것 같은데요.”

 

 

“…그랬지. 지금! 지금 필요해! 산책이나 가지.”

 

 

“아, 저….”

 

 

 

하연은 엎드려 있는 강인이를 돌아보았다.

 

 

아직은 완전히 다리가 낫지 않았는데.

 

 

민혁은 하연이 고개를 돌려 개를 바라볼 때부터

 

하연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머뭇거리며 망설이고 있는 하연을 대신해

 

민혁이 냉정하게 딱 잘라 결정을 내렸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정확하고 깔끔하게.

 

 

 

“걷지 못하는 존재에게 걸으라고 하는 고문은 하지 마!

 

그리고 저 개는 당신이 여기 돌아올 때까지 결코 함부로 움직이지 않아!”

 

 

 

개의 온전치 못한 다리를 향한 배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집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가는 것에 대한 하연의 걱정.

 

산책 하는 데 따라 나서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망설임.

 

 

 

모든 것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민혁은 제시했다.

 

 

하연은 민혁의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하연은 순순히 민혁의 말에 따르며 오래 전부터 궁금했던 말을 살그머니 풀어 놓았다.

 

 

 

“…마치 모든 존재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민혁씨는.”

 

 

“…보이지. 그냥 보이는 거야.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일종의 독심술이네요.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내 마음을 감추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이 보이더군.”

 

 

 

하연은 또다시 서글퍼졌다.

 

 

그래, 이건 우울함이 아니라 서글픔이었다.

 

한(恨)이 서린 슬픔.

 

 

왜 자꾸만 그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가슴 속에 서글픔이 들어차는 걸까.

 

 

그리고 언제나 가슴 속에 들어찬 서글픔은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은 먹먹함에 하연을 힘들게 만들었다.

 

 

 

“아, 오늘은 오른쪽으로 가지. 말했잖아. 달이 뜨기 전의 왼쪽 길은 황량하다고.”

 

 

 

왼쪽길로 접어들려던 하연은 조심스레 휠체어를 돌려 오른쪽 길로 방향을 잡았다.

 

 

무성하게 잡풀이 마구잡이로 돋은 왼쪽 길과는 달리,

 

오른쪽 길은 소보록한 잔디와 촉촉한 이끼가 낀 소나무가 울창했다.

 

 

솔잎 사이로 저물기 직전의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여긴 밝을 때 와야 하는 곳인가요?”

 

 

 

하연은 예전 블루문을 보던 때를 생각하며 그렇게 물었다.

 

 

산책을 할 때만큼은 민혁의 어깨가 편안해 보였다.

 

 

어깨 위에 올려져 있던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을 때처럼,

 

그 느낌이 하연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두우면 모든 게 가려지니까 좋지 않아.

 

근데…귀 뒤에 있는 점은 어렸을 때부터 있던 건가?

 

오른쪽 귀 뒤에 있는 점.”

 

 

 

“네? 점…이라구요? 저한테요?”

 

 

 

하연은 귀 뒤에 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지금까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황급히 귀 뒤를 만져 봤지만

 

점이 손가락을 통해 느껴질 수는 없었다.

 

 

다만, 하연은 난생 처음

 

오른쪽 귀 뒤에 있는 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게다가 그걸 이야기 해 준 사람이

 

이민혁이라는 남자여서 더더욱 놀라웠다.

 

 

 

“…하긴. 아무리 거울을 들여다봐야 보이지 않는 곳이니 몰랐을 수도 있겠군.”

 

 

“잠깐만요! 제 자신도 모르는 점을 민혁씨는 어쩜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거죠?”

 

 

 

하연이 민혁의 말끝을 붙잡았다.

 

 

민혁은 하연의 질문에 대답하기는커녕

 

멈춰선 하연을 놔둔 채

 

휠체어 바퀴를 손으로 스르륵 움직여 먼저 앞으로 가는 것이었다.

 

 

하연의 손은 여전히 오른쪽 귀 뒤를 더듬고 있었다.

 

 

하연은 황급히 걸음을 옮겨 민혁의 휠체어 앞을 막아섰다.

 

이미 하연은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 있었다.

 

 

 

“화내지 말고…말해줘요. 어떻게 알았죠?”

 

 

“…간단해. 뒷모습을 한 번쯤이라도 보면 자연히 눈에 보이니까.”

 

 

“그냥 넘어가려고 하지 말아요.

 

지난번에는 그냥 넘어갔지만 이번엔 아니에요.”

 

 

“…쓸데없는 일에 고집을 부리는 군.

 

그 성격 도저히 고칠 수 없겠어?

 

피곤하게 하는군.”

 

 

“미안해요. 그치만…알려줘요.

 

민혁씨! 지금까지 귀 뒤에 점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요?

 

그렇다면 어떡할 건데요?

 

아무도 없었어요. 아무도!”

 

 

 

민혁은 오랫동안 하연을 지켜봤다.

 

 

시간적인 길이는 짧았지만

 

민혁은 하연의 모습을 샅샅이 살폈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뒤로는 더욱 더 자세히 하연의 모습을 좇았더랬다.

 

 

민혁은 휠체어를 움직여

 

하연을 뒤로 따돌리려 했지만

 

하연은 아예 민혁의 휠체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민혁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제 뒷모습을…쭉 지켜봤던 거 맞죠? 그런 거죠? 말해줘요.”

 

 

“쓸데없는 소리!”

 

 

 

 

거짓말 하지 말아요.

 

당신의 눈은 여전히 무미건조한 채로 아무런 감정도 내보이지 않고 있지만

 

난 알아요.

 

느껴지는 걸요.

 

 

당신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왜 그렇게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서툰가요?

 

귀 뒤에 있는 작은 점을 발견했을 만큼,

 

당신은 나를 관찰해 온 거잖아요.

 

 

그런데도 왜 아니라고 하죠?

 

왜 쓸데없다고 하나요?

 

아무도 없었어요.

 

심지어 아버지조차 그 점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한 적 없었단 말이에요.

 

어쩌면 최근에 생겼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되는데.

 

난 많은 걸 바라지 않아요.

 

그저 내 말에 그렇다고만 해줘요.

 

그것도 해줄 수 없나요?

 

 

 

“벌써 내가 어떤 인간이라는 걸 잊은 거야?

 

그럼 할 수 없군. 직접 보여줄 수밖에!”

 

 

“미안해요. 화나게 했다면 미안해요.

 

그치만 당신은 내가 단추를 달아줬다는 사실도 알면서 모른 척 했잖아요.

 

지금도…그런 거 아닌가요? 아닌 척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당신이라는 여자와 무슨 상관이 있지?”

 

 

 

“나, 나한테…당신 마음을 맡긴다고 했었잖아요! 그랬잖아요!”

 

 

하연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을 담아

 

민혁을 향해 소리쳤다.

 

 

잘못 본걸까. 하연은 순간적으로 민혁의 미간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 간호도…당신이 해준 거죠? 그렇죠? 그 약병도.

 

내 입에 약을 먹여 준 것도 당신이잖아요. 왜 자꾸만 숨기려고 하나요? 왜?”

 

 

 

“…아직은…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민혁은 가만히 손을 뻗어

 

어느 새 하연의 얼굴에 주르르 흘러내린 따스한 물을 닦았다.

 

 

민혁의 손끝이 볼에 닿자 하연은 조금 움찔, 했지만

 

조용히 민혁의 손길을 기다렸다.

 

 

 

이마를 지나고 가지런한 눈썹을 지나

 

살짝 감고 있는 하연의 눈꺼풀 위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다시 적당한 하연의 콧망울을 지나고

 

볼에 말라붙은 눈물자국을 지나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 위에 민혁의 손가락이 도착했다.

 

 

하연의 가슴은 심장 발작을 일으킨 것처럼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쿵쾅대고 있었다.

 

 

간절하고 애절한 손길.

 

뜨거운 입맞춤보다도 훨씬 감미롭고 따스함이 온 몸에 번지는 듯한 감촉.

 

 

그것은 서로에 대한 탐색이었고

 

조심스럽게 한 발 내디딘 것이었다.

 

 

민혁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연의 얼굴을 더듬어 내려갔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

 

 

손을 내려야 할지, 아니면 이대로 머물러 있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고민스러웠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연이 민혁 대신 결정을 내려 주었다.

 

 

하연은 가만히 손을 들어 민혁의 손을 붙잡았다.

 

손목에 손가락이 닿았을 때,

 

하연은 민혁의 손목에 퍼져있는 핏줄이 긴장으로 팽팽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결코 하연의 손을 뿌리치거나

 

매정하게 손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마침내 하연의 손이 민혁의 손을 감싸 쥐었을 때,

 

민혁은 가슴 속에 스며드는 안락함을 느꼈다.

 

 

아주 오래 전에도 결코 느껴본 적 없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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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잘 보내셨나요? ^^ 이제 겨우 비가 그쳤지만...

 

텔레비전에서 보니 수해 입은 곳들이 많더라구요. 

 

제 글 읽으시는 분들 계신 곳은 혹, 피해가 없는지...

 

 

늦었지만 댓글 지난 이야기에 모두 달아놓고 오는 길이랍니다.

 

살며, 살아가며 여러 인연들을 맺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님들도 소중한 인연입니다...

 

마음 속에 간직해 주시길...*^^* 힘차고 행복한 월요일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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