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아기를 보는 일이 괴로워졌다.
우리아기가 저 세상으로 떠난 뒤부터 티비 광고에 나오는 아기들을 볼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엄마와 아기의 모습.
그 천사같은 눈망울을 볼 수 없는 나 자신이 저주받았다고 생각되어질 정도였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이 충혈되고.... 여지없이 채널을 돌려야만 했다.
한동안은 티비를 쳐다볼 수 없었다.
지금도 애써 아기는 보지 않으려 한다. 일상생활에서건 매스컴에서건...
그래도 친구의 아들은 곧잘 가서 놀아주곤 한다.
그앤 이미 두돌이 다 되어가는데다 남자아이기 때문이다.
친구의 사랑스런 아들이란 생각에 그 이상 어떤 생각도 진전시키지 않기때문인지 그 아이를 볼 땐 그다지 괴롭지 않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길을 걸어가거나.. 할인마트에 갔을 때..
기차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하여간 이곳 저곳에서 만나게 되는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 정말로 나를 힘들게 한다.
얼마나 다정하고 포근한 정경인가 말이다.
하지만 내겐 그 어떤 것보다 아프다.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죄이는 듯한 괴로운 광경이다.
그것은 내게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조산으로 잃은 아이는 딸이었다.
그 여자가 지 멋대로 낳은 아이도 딸이었다.
남편은 내 딸을 잃고 나서 그 여자의 딸을 보고는 그 여자에게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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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딸과 함께 남편도 잃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일이 현실이 되었기에 한동안은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아이는 죽었고 그 여자의 아이는 엄연히 살아서 아빠를 필요로 하기때문에 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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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 이후로 내겐 이상한 증상이 생겨버린거다.
살아가면서 공공장소에서 마주치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타인의 모습이 내게 아픔이 되었기 때문이다. 난 그 모습을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넘겨보려하지만 마음 속은 불편하고 아프다.
할 수 있으면 그 자리를 피하거나 신경쓰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한다.
귀여운 딸과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지켜보는 아빠.
얼마나 보기좋은 모습인가.. 그런데.. 그런데... 그것이 내겐 상처가 된다.
어디선가 그 사람도 저런 모습을 하고 살아갈테지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그러지 말자고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
이미 어쩜 내 정신적인 결함으로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심한 충격을 받으면 그 이후로 그 대상에 심한 기피현상을 갖게 되는 그런 병 말이다. 어릴 때 개에 물린 이후로 난 개를 싫어한다.
근본적으로 무의식에선 두려워하고 있다.
성인이 되어 안그런척 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내 모습이다.
지금 아빠와 딸이라는 이 컨셉을 도저히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 모습은 일시적인 걸까? 아님 영원히 지속되는 걸까?
인생을 살면서 왜 자꾸 이런 옹이가 생기는 걸까?
피해가고 싶은 것,, 되돌아가고 싶은 것,, 보고 싶지 않은 것,, 견디기 힘든 것,,
동생이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살다가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
난 병원이 나오는 드라마는 볼 수가 없었다.
인공호흡기라도 나올라치면 눈물이 먼저 쏟아져서 ....
2년이 훌쩍 넘은 시간...
이제 그 때처럼 눈물을 쏟진 않지만 아직도 힘들다.
아기를 보는게 다른 사람들만큼 즐겁지 않은 것도..
다정한 부녀의 모습을 보는게 너무 괴로운 것도..
세월이 지나면 조금은 덜해질까?
하지만 여전히 개는 무서워 하는데...
죽을때까지 계속 내게 상처로 남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