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변치 않은 자연과 전통… “근심 잊을 만하네”
외갓집 가듯 떠나는 체험관광, 충남 서천군 남당리 행복마을
장마가 물러가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다. 전국 주요 해수욕장과 계곡은 피서 인파로 붐비기 시작했다. 휴양지 인근 콘도와 펜션은 예약이 모두 끝난 상황. 10년만에 가장 무더운 여름이 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 8월 중순까지 피서 행렬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도로 정체, 넘치는 인파 그리고 피서지 상혼에 벌써부터 몸서리가 쳐진다면 색 다른 여름휴가를 계획해 보는 게 어떨까. 요란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는 한적함과 땀 흘리는 기쁨, 그리고 자연의 세례를 듬뿍 받으며 더위를 식히는 호젓한 나와 가족만의 시간. 약간의 불편함과 투박함을 감수한다면 시골 마을에서 보내는 여름 휴가는 넉넉한 여유와 색 다른 만족감을 안겨줄 것이다. 도시인에게는 자연과 함께하는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시름이 깊어 가는 농촌에는 새 희망의 싹을 제시하는 농촌체험관광. 미디어다음이 올 여름 가 볼만한 농촌체험마을을 소개한다.
그윽이 깊은 작은 한 마을 구석에
자연을 몹시 사랑하니 근심을 잊을만하네
인간의 옳고 그름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꽃피면 봄인 줄 알고 잎 지면 가을인 줄 아노라
마을 중앙에 버티고 선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 임벽당이 자신의 집 옆에 심었다는 은행나무 세 그루 중 하나로 시원한 그늘을 제공한다. ⓒ미디어다음 김진화 허난설헌, 신사임당 등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임벽당(林碧堂). 그가 남긴 이 시문의 배경이 되는 마을이 바로 충남 서천군 남당리다. 당시에는 속세의 모든 인연을 끊고 은둔할 수 있을 만큼 오지였을 지 모르나 지금은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 IC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다.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마을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영 딴판이다. 방금 전까지 시속 100km가 넘게 달렸다는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마을에는 적막감마저 감돈다.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지만 임벽당의 표현처럼 여전히 ‘그윽히 깊고 작은 마을’인 것 같다. 마을 입구에서 5분 정도 굽이 길을 따라 가니 저 멀리 한 눈에 봐도 엄청나게 큰 고목이 보인다. 임벽당이 심었다는 500년 된 은행나무다.
수은주 30도를 훨씬 넘어서는 땡볕더위. 그러나 거목이 내려주는 그늘에 털썩 주저 앉으니 또 다른 세상이다. 어디 선가 바람 마저 솔솔 불어와 목덜미를 흐르는 땀을 식혀 준다. 은행나무 주변은 마을 광장이다. 1000평 가량 돼 보이는 너른 마당 한 켠에 임벽당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이 곳이 바로 그가 살던 집터. 지금은 방문객들을 위한 민속놀이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기차기, 짚 공예, 투호놀이 등 가족 단위 체험객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이 곳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수질 1급수인 마을 소류지는 방문객만을 위한 천혜의 낚시터다. 새 울음 소리와 물결의 일렁임을 벗삼아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근심이 저 만치 달아난다. ⓒ미디어다음 김진화 70여 가구가 거주하는 남당리 행복마을이 자랑하는 특산물은 넝쿨콩이다. 강낭콩의 일종인 넝쿨콩은 삶으면 잘 익은 밤 맛이 난다고 한다. 6, 7월에는 방문객들이 직접 콩을 수확해 시식도 하고 가져가기도 한다. 손두부를 직접 만들어 볼 기회도 제공된다.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마을을 찾고 대량으로 콩을 구매해 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당장의 수익과 일회성 방문보다는 고향을 잃어버린 도시인들과 긴 인연을 맺는 것. 그것이 바로 이 곳 주민들이 지향하는 농촌체험관광의 진정한 목적이다.
방문객들을 위한 배려에 마을 사람들을 아낌이 없다. 수질 1급수라는 마을 저수지는 방문객들에게만 낚시를 허용한다. 녹음이 우거진 맑은 저수지에 낚시대를 드리우면 세월이라도 낚을 것만 같다. 공해 중에도 사람공해가 가장 심하다는 피서철에 이만한 특권이 또 있으랴.
춘장대 해수욕장이 10분 거리에 있지만 마을 주민들은 해수욕 보다는 갯벌 체험을 권한다. 인근 선도리 갯벌까지 경운기를 타고 가 맛조개와 바지락, 똘참게 등을 직접 잡는다. 제대로 된 갯벌체험을 위해서는 물 때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한 달에 두 번 주말에만 진행된다. 갯벌체험 일정은 마을 홈페이지(www.namdang.net)에 공개된다.
춘장대 해수욕장이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다. 갯벌체험은 이 보다 가까운 선도리 해안에서 진행된다. ⓒ미디어다음 김진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개시된 남당리 농촌체험관광은 서서히 궤도에 오르고 있다.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올 봄 이 곳을 찾았던 이들의 정겨운 안부인사가 올라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0세대 정도가 참여하는 이 마을 민박은 방만 내주는 ‘깍쟁이 짓’이 아닌 푸근한 ‘외갓집 모드’로 손님을 맞는다. 순 자연식 시골밥상에 꺼먹돼지 숯불구이까지 식사 또한 풀코스로 제공된다.
고속도로에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면서도 때 묻지 않은 농촌마을. 임벽당이라는 문화적 자원과 해수욕장, 갯벌 등 관광자원까지 갖추고 있는 곳. 그러나 남당리 행복마을이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것은 방문객들과의 끈끈한 ‘관계맺음’이다. 근대화 길목의 어딘가에 두고 온 고향의 의미 그리고 베품과 나눔의 철학을 일상에 복원해 보고픈 사람들은 행복마을을 방문해 볼 만하다.
- 가 볼 만한 농촌체험 마을
오학리 별마을 천문대(사진 위)와 이천 부래미 마을 전경. ⓒ미디어다음 김진화 ▲충남 서산시 오학리 별마을: 낮에는 서해안 갯벌과 해수욕장에서 여름의 열기를 즐기고, 밤에는 별자리에 담긴 꿈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곳이다. 숙소와 강의실까지 갖춘 아담한 천문대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여름 밤은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강의를 통해 다양한 별자리와 그것에 얽힌 동서양의 다양한 신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조선 초기 석성으로 보존상태가 좋은 해미읍성이 5분거리에 있고, 백제말기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인 개심사도 가까운 거리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이 있는 상왕산 용천계곡까지 가는 길은 드라이브와 하이킹 코스로 그만이다.
(연락처: 별마을 천문대 이병두 019-460-5681)
▲경기도 이천시 부래미마을: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현대식 가옥이 한 채도 없을 만큼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마을 내에 생태공원이 마련돼 있고, 도예공방에서는 도자기 만들기와 황토염색을 체험할 수 있다. 10인 이상 팀이 꾸려지면 남사당패 전수자로부터 사물놀이도 배울 수 있다.
여름철 농사체험으로는 감자, 고구마 캐기와 옥수수따기 등이 진행되고, 미꾸라지와 붕어도 잡아 볼 수 있다. 인근 팔성산 등반코스에서 산림욕도 즐길 수 있다. 농촌체험프로그램은 당일코스와 1박 코스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되며 자세한 일정확인과 예약은 홈페이지(http://www.buraemi.co.kr)를 통해 할 수 있다.
▲강원도 화천군 광덕리: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한 광덕계곡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계곡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물 좋기로 소문 나 있고 찰토마토 산지로도 톡톡한 유명세를 치르는 곳이다. 오는 31일부터 이틀 간 강원도와 화천군이 개최하는 토마토 축제가 열리는 마을이기도 하다.
도시인을 대상으로 주말농장(5평 기준 3만원)과 표고버섯목(개당 1만원)을 분양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토마토 수확체험에 참여하면 소정의 참가비만으로 5kg에 이르는 토마토를 수확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마을 홈페이지(http://www.kwangduck.or.kr)
▲농촌체험관광에 대한 정보 어디서 얻을까: 농림부 도농교류센터가 운영하는 농촌관광포털(http://www.greentour.or.kr)에 가면 농촌체험 캠프와 지역축제 등에 관한 폭넓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강신겸 박사가 운영하는 농촌·생태관광 전문웹사이트 투어랩(http://www.tourlab.com)에서는 농촌관광의 의미와 전망에 대한 정보와 각종 자료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