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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블랙홀 |2004.08.23 23:18
조회 82 |추천 0

짝사랑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나보다 나이가 꽤 많지요.

그 나이라는 숫자는 그냥 수학적 기호일뿐이지만 이미 그녀는 두 딸의 엄마이고 내가 존경하는 분의 부인이십니다.

내가 다니는 화실 원장님의 사모님이죠.

전 미대을 준비하는 학생으로 고등학교 졸업후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조금씩 모은 돈으로 창조미술학원에 다니고 있는 재수생입니다.

보잘 것 없고 배경도 없고, 한마디로 나의 주변 환경은 모자라고 부족하고 가난하지만 한 번도 나의 삶을 비관하거나 포기한 적 없이 열심히 제대로 꿋꿋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놈입니다.

그런데 제게 바보같은 남다른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편의점에 일하다가 저녁이 되면 이 학원에 살다시피 합니다.

가정적인 분위기에 마음 좋은 원장님은 그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 분이시고 절 특별대우까지 하시며 각별히 아끼신다는 걸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해 주시는 멋진 분이십니다.

근데 전 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그림에 온 정신을 집중해도 모자랄 이 중요한 시기에 자꾸 제 마음이 항상 향하는 방향은 원장님의 사모님께로 흘러가고 있네요.

이를 어쩌면 좋죠?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못하니, 조절하지 못하니 괴롭습니다.

나의 눈빛이 다른 학생들과 다르다고 생각이 되시는지 사모님도 절 달리 대하시는 것 같고...

사모님이라고 하지 말죠. 그녀를 전 이렇게 부릅니다.

"나의 별이라고", "나만의 별이라고".

유치하죠? 그래도 뭐라 하지 마세요.

원래 특히 짝사랑은 매우 유치하고 보잘것없고 그래서 더 안타깝고 더 간절하고 더 설레이고 더 그립고, 절 더욱 더 미치게 만들죠.

그녀를 화실에서 뵙기 전에 제가 일하는 편의점에서 먼저 마주쳤습니다. 아니 마주친 것이 아니라 손님으로 그녀는 오셨죠.

그녀처럼 깔끔한 외모를 가진 두 딸들과 함께.

5살, 7살의 그녀의 보석들을 앞 세우고 과자를 사러 온거죠.

전 그녀의 나이를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녀의 외모가 세월이 흘러 젊음의 빛을 잃어 쪼글쪼글한 주름투성이의 할머니가 된다해도 그녀는 나의 소중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언제까지나 유일신처럼 나만의 여인이 될 뿐이니까요.

사실 우리나라에선 여자의 외모가 정말 중요하죠. 하지만 제겐 예외입니다.

그녀는 그리 예쁘지도 그렇다고 못생기지 않았지만 그냥 남들 눈엔 평범한 외모이지만 전 그녀의 모든 것을 맘에 들어하고 사랑스러워요.

어련하겠어요.

이미 지독한 늪에 푸욱 빠진걸요

어쩌면 그녀의 외모가 나의 어머니와 많이 닮아서인지 아니면 이유없이 딱히 뭐라  표현하기 곤란하지만  난 그녀가 무조건적으로 예뻐보이는 걸 어쩌겠어요.

얘기가 약간 빗나갔지만 그녀가 우리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저의 고단한 일상에 신선한 파장을 그리며  나의 세계로 그녀는 무단 침입했습니다.

어떤 예고나 경고도 없이 무심코, 지극히 자연스럽게 난 그녀가 내 전생에 사랑했던 여인이었다고 억측하면서 그녀를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았죠.

아! 드디어 나의 반쪽을 찾은 거야. 근데 이미 다른 사람의 여인이라니...

이런 비극이 날 맞이하고 있었지만 난 개의치 않습니다. 

이미 내안에 그대가 왔고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하니까요. 

넋이 반쯤 나갔는지도 모르죠.

내 영혼은 이미 그녀를 익숙하고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입력되어 있었나봐요.

내 가슴은 그녀를 반기며 그렇게 나만의 별님은 내 심장 구석 구석을 노크하며 인사했습니다.

"맛동산 얼마예요?"

전 그말의 상큼함을, 그날의 그녀의 첫 마디를 영원토록 잊지 못할겁니다. 사실 별말 아니죠.

전 가게의 점원이니까 당연한 질문을 받은 것이고 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얼마입니다하고 응대하면 끝나는 거죠.

근데 바보같은 전 "가격이 없어요. 그냥 드립니다"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그녀의 얼굴에서 적당히 큰 예쁜 두 눈이 정겹게 웃고 있었어요.

"엄마 이 오빠 바본가봐" 큰 아이가 그 작은 입술을 쭈욱 내밀며 놀려도

"가격이 없는데요. 이 맛동산만"

계산하는 척 하다가  0원으로 가격을 만들어 보였다.

"요렇게 장사하면 쫓겨날텐데 전 몰라요" 

계산된 형광판의 숫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상한 청년 다 보겠다는 그녀의 표정을 즐거운 마음으로 음미했고 가게 문을 열고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다른 손님도 자기가 산 물건들은 왜 공짜가 아니냐며 짖굿게 날 몰아세웠지만 난 그녀를 만난 기분에 매료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하루를 마쳤습니다.

하루종일 그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내면서 왜 내 심장이 사정없이 요동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머리로는 이해될 수도 없고 납득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생긴거죠. 가슴이 먼저 제 심장이 먼저 움직인 사건이 터진겁니다.

왜 하필 나의 사랑의 시작 그것도 나의 첫사랑이 이렇게 정상적이지 못하는지 나의 심장을 나의 가슴을 채찍질하고 야단쳐 봤지만 그게 제 마음대로 되질 않더군요.

 

나만의 별이여!

그대는 모르셔야 합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절대 그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생각으로 이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시시한 얘기거리만 만들 재료를, 꺼리를 만드는 계기로 밖에 안 되거든요.

나의 아픈 가슴을, 사춘기도 아니면서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이 치유될 수 없는, 지독한 독감을 앓는 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나의 이런 감정을 노출하거나 표현하고 싶지 않는 마지막 나의 자존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두려워서 일까요. 제가 그녀에게 이런 감정이 들통날까봐 그리고 나 이외에 다른 이가 알게 되면 내 자신이 이 현실 세계에 매장 당할까봐 일까요?

모르겠어요.

난 그녀를 남 몰래 아주 멀리서 나의 감정을 숨기고 또 밝혀지고 알게 될까 불안에 떨면서 숨죽여 지켜보는 해바라기와 같이 바라만 보다마는 약으로도 고쳐질 수 없는 불치의 이상한 병에 걸린겁니다.

 

나의 사랑은 불변의 진리처럼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그댈 사랑하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인줄 몰랐씁니다.

그댄 제 마음을 눈치채지도 나와 눈 길이 마주쳐서도 안 됩니다.

당신과 나 사이는 그런 관계여야 합니다.

저 혼자서 소리없이 침묵속에서 그댈 사랑하겠습니다.

그래도 전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우주속에서 이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에서 그대라는 나의 별을 찾은 기쁨에 내 영혼이 폭풍우 속에서 무참히 뒤 흔들린 듯 요동쳐도 겉으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완전 범죄형처럼 그댈 몰래 아껴가며 사랑을 앓고 성장하고 배워나가겠습니다.

떳떳한 사랑이 아니기에 정상적인 평범한 사랑이 아니기에 그 댓가를 즐거이 받아들이고 묵상하며 그저 조용히, 깊고도 넓게 그댈 맞이하고 축복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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