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날씨는 청명했다. 채연처럼… 그러나 너무 오랜만이라 긴장했는지 조금은 무더웠다. 하지만, 지금 채연에게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흰색의 팔이 없는 티에 밝은 핑크색의 짧은 스커트를 입었다. 그리고 따가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 챙이 긴 모자와 선 글라스를 착용했다. 가방을 매고 방을 나서는 그녀를 지켜보던 경관들이 그녀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잠시 외부인인줄 착각을 할 정도로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너무나 다른 맑고 밝은 모습으로 변신해 있었다. 채연은 지금 자신의 마음을 무엇으로도 감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
‘왜일까?’
주변의 모든 것이 맑고 밝아 보였다. 빛나 보였다. 심지어 구걸을 하는 걸인조차도…
‘같은 거리를 걷고 있는데, 왜 지금까지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걸까…?’
알 수 없었다. 왜 지금까지 이 거리를 느끼지 못했는지… 그녀는 지금 경찰서로 향하고 있었다.
‘왜… 재우씨…를 만나러… 그래서 인가?’
그녀는 지금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 하지만 즐거워… 그거면 된 거야…’
그녀가 묵던 호텔에서 경찰서까지 꾀 먼 거리였다. 그러나 그 긴 거리가 너무나 짤게 느껴졌다.
‘뭐지… 이 기분은…’
그녀는 문득, 경찰서 건물을 대면하자 현실로 돌아와 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그리고 지금 그녀는 누구보다도 행복했는데 딱 한가지 그녀를 불쾌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달라붙어 있는 경관이었다.
‘젠장, 오늘 만큼은… 꼬리를 달고 다니고 싶지 않은데…’
그녀는 마음을 바꿔 다른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땀이 옷에 베일 정도로 걸을 즈음 그녀는 백화점 건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인파 속에 묻혀서 자연스럽게 경관들을 따돌렸다. 그렇게 경관들을 따돌린 그녀는 다시 평화로워진 오후를 맞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평화롭게 주변의 모든 것을 만긱하고 있는 사이, 반대로 경찰서는 비상사태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채연이 사라진 것을 안 강반장은 직감적으로 정수아의 집을 찾았다.
“뭐죠?”
예상대로 정수아는 퉁명스럽게 그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굳힌 강반장은 영장도 없이 정수아의 오피스텔을 급습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가 버렸고 그곳에 채연은 없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정수아는 당연히 상당하게 불쾌해 했지만, 다만 그뿐 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강반장이 물었다.
“어디 있죠?”
“채연이는 여기 오지 않았어요. 번지수 잘못 찾은 거라고요.”
“그녀를 한번도 만난 적 없나요?”
“정말, 어이가 없군요. 면회조차 시켜주지 않은 사람이 누구인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다니? 호텔에까지 바리케이드를 쳐 놓고서는…”
“사라졌어요.”
“…”
강반장의 이 말에 정수아는 입을 닫아 버렸다.
‘뭐지? 그녀가 경찰을 따돌리고도 자신을 찾지 않은 것에 조금 충격을 받은 건가?’
강반장은 재차 정수아에게 물었다.
“혹시, 갈만한데 없나요?”
“반장님 같으면, 이런 일을 당하고도 알려 주겠어요?”
“…”
그러나 정수아는 적어도 채연의 내면에 대해서 만큼은 강반장보다도 한수 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의미 있는 말을 건 냈다.
“아마, 오랜만의 자유를 누리고 있겠죠.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들의 의미를 습득하고 있는지도… 뭐, 걱정 말아요. 기다리면 내일은 경찰서로 출근할 테니까…”
강반장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실례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그녀의 집에서 나오던 강반장은 경찰서로 행했다. 그리고 채연을 찾기 위해 비상근무중인 모든 경찰을 다시 정상근무로 회귀시켰다.
그 시각, 채연은 거리의 카페에서 경찰의 동향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조금은 현명해 졌네… 좋은 남자야… 강재우. 역시, 미워할 수 없단 말이야…’
저녁이 되자. 강반장은 마지막으로 호텔에 있는 동료에게 김채연의 귀가를 묻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인가요?”
“그래… 아직도 도시 어딘가를 감상하고 있나 보지. 그녀가 없으니, 오늘을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것 같군. 내일 보지…”
“네, 먼저 들어 가세요.”
경찰서를 나서는 강반장은 오늘은 왠지 차를 두고 걷고 싶어졌다. 그는 걸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채연을 생각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온 바깥세상에서의… 하룻동안의 자유라… 그녀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이 일상에서 충분히 소중한 무엇인가를 찾았을까…?’
강반장은 지금 채연이 걷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경찰서에서 호텔 까지 걸어 보았다. 꽤 긴 시간을 걷고 나니 땀이 조금 베어 나왔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손수건을 건 내 주었다.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아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젊은 여자였다.
“…괜찮습니다.”
“사양하지 말고 받아요.”
“…”
강반장은 잠시 자신에게 손수건을 건 낸 여인의 향기에 매료되어 버렸다.
‘누굴까?’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해? 나야!”
순간, 강반장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 김채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반장은 비록 어두웠다고 하지만, 잠시나마 그녀를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젠장, 이렇게 달라 보이다니… 대낮에 도시에 섞여 있으면, 못 찾을 만도 하군…’
김채연이 말했다.
“안 받을 거야?”
강반장은 이마의 땀을 닦기 위해 어렵게 그녀의 손수건을 받으려 했다. 지금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도 떨리고 있었다. 그때, 채연은 손을 거두고는 한발 앞으로 다가서서 자신이 직접 강반장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순간, 강반장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걱정 마. 안 잡아 먹으니까.”
그녀는 다정하게 말하면서 다가와서는 어느새 재우의 팔에 자신의 팔을 의지했다. 그리고 푹신한 그녀의 가슴이 감촉이 재우의 팔에 닿아서 그의 온 몸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저…”
“가자. 밥 먹으러.”
어느새 재우는 자신도 모르게 힘없이 그녀에게 이끌려 가고 있었다.
가로등이 켜져 있는 거리를 거니는 재우와 채연. 그들은 조금 나이 차는 있어 보이지만,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틀림없는 연인이었다.
“이제 곧 40인데, 왜 아직 총각이야?”
“총각이 아냐.”
“그럼?”
재우는 채연에게 그녀의 대답을 되돌렸다.
“왜 되묻지?”
“그게 무슨 말이야?”
“나에 대해서라면… 내가 너에 대해 조사한 것처럼, 다 조사해서 알고 있잖아.”
재우의 이 말에 채연은 오늘 하루의 환상이 모두 깨져 버렸다.
“…”
채연이 갑자기 차갑게 식어서 멈추어 서 버리자, 강반장은 그제서야 자신이 큰 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채연은 이미 돌아서서 호텔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자 재우는 다급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팔을 꼭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뭐야?”
“…미안해!”
그러나 채연은 재우를 외면한 채 되물었다.
“왜 이래. 넌 경찰이고 난 용의자야. 그뿐이잖아.”
“사과 할게. 정말 미안해.”
채연이 한번 더 재우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물었다.
“이러는 이유가 뭐야?”
“그건…”
“수사는 협조할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결국, 재우는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 건 됐어.”
“…”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얻어 낸 채연은 고개를 돌려 재우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재우가 말했다.
“넌 충분히 매력적이야. 아름답다고...”
“…”
“지금은 단지…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자신의 예상을 한 꺼풀 더 벗은 이 대답에 순간적으로 채연도 자신도 모르게 잠시 시간이 멈추어 선 듯 했다. 그러나 역시 그녀는 김채연 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젠장, 정신차려! 김채연.’
채연은 이제 재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손을 서로에게 내어준 채 걷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자 두 사람은 밖이 내다 보이는 창가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 꾀 비싸 보이는데, 경찰 월급으로 이런데 와도 되는 거야?”
“한번인데 뭐…”
“한번? 재우씨도 참… 여태 혼자 살만 하네…”
“그런가…?”
“그렇지 그럼.”
두 사람은 지금 행복했다.
‘왜 일까…?’
두 사람은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 지금 행복한 걸까…? 아빠…’
‘난, 행복한 것일까…?’
그러나 그러한 교감은 그리 오랜 것이 될 수 없었다. 적어도 아직 이 두 사람에게는…
‘젠장,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겠군. 용의자와 심야 데이트라니…’
이제 두 사람은 각자 엇갈린 생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한 심리를 먼저 밖으로 드러낸 것은 이번에도 재우 였다.
“너야말로, 그 동안 사귄 사람이 하나도 없어?”
“사귄 사람이라…”
“넌, 솔직히… 아주…”
“됐어. 그만해.”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식사가 끝날 때 까지 서로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였다.
“하나 있었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인…”
“…이름이… 뭐지?”
“…김…경수야…”
“…”
“오빠는 죽… 계속해서 아빠처럼… 기다려 줄까…?”
“…”
그렇게 말하고는 김채연은 다시 입을 닫았다. 그러한 그녀를 보며 재우는 생각했다.
‘젠장, 이게 무슨 짓이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경찰이라는 직업이 싫어지는군.’
채연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는 재우를 보라 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쪽 눈에서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며 창 밖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던 재우는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빠… 나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 이게 뭐야… 우리 서로 수를 세고 있어… 우리는 말이야…’
두 사람은 그 이후로 별로 서로에게 교감을 하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채연과 헤어진 강반장은 최형사에게 전화를 했다.
“김경수 말이야”
“네”
“아직이야?”
“수배는 하고 있지만… 다른 일도 모두 시간을 다투는 것들이라”
“다 제쳐두고 직접 찾아봐”
“네? 무슨 일 있었어요?”
“김경수… 정말로 김채연의 연인 이었어”
“그건 이미 알고 있었잖아요”
“아니, 다른 사람의 증언으로만 들었었지”
“그럼, 김채연이 시인했나요?”
“…”
“뭐죠? 지금까지 데이트라도 했나요?”
“마음대로 상상해”
“반장님!”
“왜?”
“지금 이 사실을 채연씨가 알면, 무척 슬퍼할 거예요.”
“내일… 보지…”
강반장은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