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어린이날 풍경이었다.
거리는 한산했고 날씨마저 왠지 을씨년스러웠다.
개나리가 만개하고 벚꽃이 눈꽃처럼 피었지만
하나도 아름답지 않았다.
봄이지만 동혁의 마음은 여전히 추운 겨울이다.
부모의 손을 잡고 오가는 아이들의 천진함에도
편안함이 별로 전해오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헤어져야할 소라에게 특별한 추억이라도
만들어 주고싶지만 마음뿐이었다.
놀이공원이라도 같이 가주고 싶지만 돈을 쓰고싶지 않았다.
조금 이라도 돈을 쓰는 게 마치 생명이라도 허비하는 느낌이었다.
소라의 여러 바램에도 불구하고 결국 오래 전부터 사달라고
노래 부르던 필통하나 달랑 사주는 걸로 때우기로 했다.
"자! 골라봐 소라야! 필통 예쁜 거 많지?"
"응, 근데 인형은 안 사주고 필통만 사줄 거야? 잉..."
"아빠가 이 담에 돈 많이 벌어서 인형 많이 사줄게.
그러니까 오늘은 필통 하나만 사자. 응?"
소라를 달래는 동혁을 따라만 다니면서 보던 은정이
귓 속말로 말했다.
"내가 더 벌게. 우리 딸 예쁜 인형 하나 사주자! 동혁씨..."
"안 돼! 필통도 비싼 거 사지말고 적당한 걸로 골라!"
동혁은 잘라 말했다.
뭐든지 비싸고 좋은 걸로 사주고 싶어하는 은정의 마음을 잘 알기에
단호해야 했다.
다행히 소라도 마음을 아는지 별로 보채지 않았다.
"그래. 필통만 사줘! 인형은 아빠가 이 담에 돈 많이 벌면 사주고!"
"아유~ 우리 소라 다 컷네! 이렇게 아빠 말도 잘 듣고!
엄마가 어떤 필통이 좋은지 봐줄게! 소라가 예쁜 거 골라봐!"
"응, 예쁜 거 골라야지! 내일 유치원가서 친구들한테 자랑하게!"
소라가 은정의 손을 잡고 필통을 고르면서 이것저것 갖고싶은
예쁜 것들을 눈독들이곤 했다.
그것이 안쓰러워 은정이 다시 말했다.
"인형이 아니더라도 싸고 예쁜 것 많은데 더 사줄까?"
"안 돼! 콜록! 콜록!"
동혁은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문구점 안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와 학용품을 사거나
팬시 악세사리 혹은 장난감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가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모습이었다.
동거녀였던 정주희가 떠올랐다.
소라를 치장하고 가꾸는 일을 삶의 목표이자
기쁨으로 여겼던 그녀였다.
아이가 자라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관심이 남자로 바뀌기까지
그녀는 적어도 최고의 엄마였다.
먹이든 입히든 뭐든 최고로만 했다.
소라를 안고 백화점에 가면 누구나 가 쳐다봤다.
철따라 비싼 명품 옷을 골라 입혔다.
언젠가 작품 발표회를 위해 소라의 옷을 사서 입히려
백화점에 갔을 때 동혁은 묘하게도 이런 날이 또 올까 싶었다.
내년에도 정주희와 소라와 함께 이 백화점에 올까하는 불안감이
이유 없이 엄습했다.
그리고 그 것은 거짓말처럼 현실이 되 버렸다.
그 날 이후 그는 정말 소라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본 적이 한 번 없다.
사업이 부도나고 동거녀 정주희도 다른 남자를 만나 떠나 버렸다.
동혁은 생각했다.
지금 눈앞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언제 자신처럼
불행에 떨어질 줄 모른다고...
그 행복을 지키려면 치열하게 사랑해야하고
또 많은 걸 양보해야한다고...
"무슨 생각해? 이거야. 소라가 고른 필통이..."
멍하게 생각에 빠진 동혁에게 은정이 필통 두 개를 들고 와
내 보이며 말했다. 동혁은 가격표만 보고 금방 결정했다.
"이걸로 해! 애들 필통이 비쌀 필요는 없잖아?"
"아냐, 이걸 소라가 더 마음에 드는 눈친데 값도 그리 비싸진 않아!
이걸로 사주자!"
"싼 걸로 해! 금방 망가뜨릴텐데...콜록! 콜록!"
아빠가 어떤 결정을 내릴까 궁금해하는 소라의 표정이
동혁의 시선에 들어왔다. 동혁이 눈을 찡긋했다.
소라가 쌩긋 웃었다.
"좋아 그 대신 소라 머리띠하나 사줄게! 그건 되지?"
"응, 싸면서도 예쁜 거 많잖아?"
동혁은 대답 해놓고도 스스로가 놀랐다.
언젠가의 느낌 그 대로 다시는 소라에게 백화점 같은데서 비싸고 좋은 걸
사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퀭한 무력감에 가슴이 답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