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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2. 난 눈치없는 며느리였어

무늬만여우... |2004.08.26 21:05
조회 8,314 |추천 0

도착한 날 다음 날부터 철없던 랑 (원래 남편이라고 잘 안한다. 이제부터 랑이라고 해야지)과 배가 불러 럭비공 형상을 한 마찬가지로 철없는 임신부는 틈만나면 나가길 좋아했다. 하긴 그 젊은 시절 누구나 처녀 총각 시절을 재미나게 보낼 시기에 결혼을 했으니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할 만하긴 했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엔 커다란 강이 파라과이와 맞대어 국경이 되어 있는 곳이 있다. 그 강이름이 파라나 강이었는지...리오네그로 줄기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수평선이 펼쳐진 넓은 강을 난생처음 보았다. 파도도 치고, 수평선이 보이는 짜지만 않았지 바다와 다를게 없었다.

 

그 강을 따라 강변엔 음식점들이 즐비했는데 우리 또래 부부들은 그리고 부부아닌 연인들은 그 곳에서 밥을 먹고 데이트하기를 좋아했다. 그 동네 이름을 '꼬스따네라'라고 불렀는데 강변이란 말의 스페인어인지는 나중에 알았다.

 

그 음식점엔 주로 '아사도'라는 쇠고기 숯불구이가 주종을 이뤘는데 , 사실 아르헨티나 음식이란게 별거없다. 주로 고기와 바겟빵을 먹거나 닭을 굽거나, 러 햄종류를 그 바겟 빵에 넣어 먹거나 아님 과자에 고구마를 양갱처럼 만든것과 물렁한 치즈를 두껍게 썰어서 얹어 먹는...대부분의 식사 내지는 간식이 그랬다.

 

물론 음식점에선 고기를 넣은 엠빠나다란 만두와 피자를 만들어 팔기도하고, 스파게티 국수 종류도 많아서 모양별로 신선한 젖은 국수를 사다가 집에서 해먹기도 하고 사먹기도 하곤했다.

 

어쨌든, 아르헨티나 저녁 식사 문화는 너무도 늦은 시간에 시작해서 너무도 오래 먹는다는 것이다.

원래 적게 먹던 식습관도 있었지만, 늦은 저녁엔 뭘 먹는 버릇이 없던 난 랑 친구들의 저녁 식사 초대에 나간다는게 고역이었다. 그리고 주로 우리가 얻어먹던 장소가 그 꼬스따네라였다.

 

그땐 달러의 가치가 아주 높아서 한국돈 삼사만원 정도의 돈이면 다섯 명이 최고급 포도주와 소 부위별로 다 맛볼 수 있는 코스 요리를 시킬 정도였다. 그래서 가뜩이나 철없던 어린 부부는 그렇게 돌아다니며 먹고 즐겼다. 나중에 내가 시부모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며 랑혼자 바깥으로 놀러다니는 계기도 되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홉시나 되어야 레스토랑이 문을 여는게 난 도저히 이해가 안되었다. 다섯시에 간식들을 먹는다치지만 배도 안고픈가부다. 주로 피크가 열두시였는데 새벽 세시까지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난 의자에 앉아서 졸고있기 일쑤였다.

 

그때 주로 같이 다녔던 친구들은 다 미국이나 케나다로 가서 목사도 되고, 정육점 주인도 되었다하고, 슈퍼마켓도 차린 친구도 있다하며 건설현장에서 일한다는 친구도 있었다. 난 이렇게 페루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고...이민생활이 그렇다. 숫자의 집합놀이처럼 셋둘 모였다가 흩어진다.

 

난 눈치도 없는 며느리였지만, 일도 디게 못하는 며느리였다. 공부만하다 결혼했으니 오죽했으랴. 겨우 밥 앉치고 라면만 끓일줄 알던 난 종가집 음식도 배우며 기독교인 덕택에 제사음식은 구경도 못해봤는데 제사음식상도 준비 해야했다. 물론 내가 하는게 아니고 시어머님과 손빠른 형님이 하고 난 그저 시다발이였다. 그것도 손도 느리고 일도 잘 못하는 어리버리한 시다발이ㅎㅎ

 

난 젤루 못하는게 정리정돈인데, 오자마자 군기 팍 들어서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중에 우리 독립해서 살 때 내가 청소 다해놓으면 랑이 한마디했다.

 

"야, 청소 한거니?

 

뭘 외우라고 하거나, 하루종일 앉아서 공부를 하라거나, 책을 읽으라고 하거나 그럼 난 할 자신이 있는데 이상하게 부엌에만 들어가면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져서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허둥대곤했다. 그때 울시어머님 얼마나 답답하면

 

"넌 공부는 잘했다면서 왜그렇게 멍하냐?"

 

일단 시어머님이 뭐 시키시는 일이면 대답도 아주 잘해서 "네" 큰소리로 말한다음 제대로 못해서 혼나는 일도 많았다. 왜그렇게 까먹길 잘했는지. 그래서 내가 대답하면 또 우리 시어머님 한마디 하신다.

 

"대답만 잘해"

 

그렇게 초보 며느리, 초보 동서, 초보 올케 초보 작은엄마 노릇을 하다보니 저녁이면 긴장감이 풀어져서 파김치가 됐다. 워낙 못하는 애들이 더 힘든법이니깐.

 

그런 날 위로한답시고 랑은 친구들과 날 데리고 밖으로 쏘다니길 좋아했다. 그렇게 밤에 나가서 다니다 들어와서 아침에 겨우 일어나 움직이려니 하루종일 잠이 부족했다. 임신부 잠이 부족한데다 병원에 가면 의사랑 뭔 말이 통해야지...아기 나올 때도 멀었는데 하혈이 시작되어서야 심각하구나 깨닫기 일쑤였다. 한국에선 5천원만 주면 초음파로 아기도 잘 보여주던데 아르헨티나는 나무 망치로 배 여기저기 살살 두드려서 소리로 아가와 임산부의 건강을 체크했다. 도대체 미심쩍었지만  아르헨티나 산부인과가 세계적으로 수준급이라니 할말없었다.

 

게다가 부주의한 임신부였던 난 전기선 잘못만져서 전기 감전되어 기절도 하고, 오븐 조작을 잘못해서 가스폭발이 일어나 앞머리랑 눈썹이랑 얼굴을 손으로 가리는 바람에 손등이랑 홀랑 화상입고 기절해서 남산만한 배로 화상병원에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화상연고는 좋기도 하지. 그 연고를 바르면 바로 아픈게 나았고, 물로 씻겨지면 무지 쓰라렸다. 다행히 흉터는 없이 잘 아물어서 지금도 잘난척하며 다닐 수 있다.ㅎㅎ 달라진게 있다면 눈썹털이 너무 흐렸는데 화상덕인지 좀더 진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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