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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성(城)을 향해 가는 길 [21-①]-서로가 찾고 있는 것※

미강 |2004.08.27 00:32
조회 3,341 |추천 0

 

 

 

 

21. 서로가 찾고 있는 것


 

 

 

 동이 트기 전에 회사로 나온 민혁은 무거운 한숨을 토했다.

 

 

분명 그 여자가 찾고 있는 건 비밀 장부이리라.

 

 

어떤 식으로 자금이 들어오고 어떤 경로를 통해 그 자금이 흘러나가는지에 관해

 

상세히 기록해 둔 장부!

 

 

만약 그것이 검찰의 손에 넘어가기만 한다면

 

그 즉시 원영에게 모든 수사의 초점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사실 한태서 회장의 자살로 흥진그룹의 몰락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일단락되고,

 

회사 지분을 상당 소유하고 있던 그녀 또한

 

검찰의 손길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건넨 자금을 집어 삼킨 사람들의 명단이

 

세상에 공개 된다면 분명 정치계가 발칵 뒤집힐 테지.

 

 

자신이 장부를 살펴본 결과, 그녀의 꿈은 발칙하리만치 원대한 것이었다.

 

 

교묘한 방법으로 해외 루트까지 모색해 둔 것을 보면.

 

검은 돈이 포함된 불법자금들을 해외형태로 투자한 뒤

 

이익을 내는 것으로 돌려받지만

 

그것은 돈세탁을 위한 눈가림일 뿐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약점이 고스란히 담긴 그 장부를 찾아내지 못해서

 

몸 달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명줄 삼아 틀어쥐고 있는 민혁과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원영과의 싸움!

 

 

 

아직까지는 민혁이 우위에 서 있었다.

 

 

그는 애초부터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흥진그룹을 차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캐슬 인 파라다이스 호텔’을 시작으로

 

독일 게른하르트사와의 연결을 차단하고

 

정통성 있는 후계자라는 위치를 내세워

 

건설주들의 양도증서까지 모두 확보함으로써

 

흥진제국을 몰락의 길로 내몰았다.

 

 

 

명예회장의 사위 보다는

 

아들이 후계자의 위치에 더 가깝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스스로 민혁과 손을 잡았고,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흥진그룹에 실망한 사람들은 빠르게 등을 돌렸다.

 

 

 

원래 거대할수록 미세한 균열에 버텨내는 힘이 없는 법이다.

 

 

완전한 소멸 뒤의 재건!

 

 

민혁은 과거의 영광을 적절히 이용하여 빠른 시간 안에 재건을 이룩했다.

 

 

 

 

“생각보다 부지런한데?”

 

 

 

민혁이 사무실에 불을 켜자마자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가 천천히 일어났다.

 

 

온통 새카만 차림으로 일어선 원영을 향해

 

무미건조(無味乾燥)한 눈빛을 던졌다.

 

 

갑작스런 그녀의 출연을

 

당연시 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는 쪽이 맞았다.

 

 

원영은 마치 잘 갈아진 칼날을 쓰다듬듯

 

책상 앞에 놓인 명패를 스르륵 쓰다듬었다.

 

 

 

“더럽고 불쾌하군! 거긴 내 자리야, 비켜!”

 

 

 

크르릉 거리며 매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맹수처럼

 

민혁은 자신의 책상을 차지하고 있는 원영을 거칠게 밀어 버렸다.

 

 

책상 모서리에 퍽, 하는 소리를 내며 부딪쳤음에도 불구하고

 

생긋 웃으며 돌아보는 원영이었다.

 

 

그러더니 긴 손톱을 파르르 떨며

 

사나운 기세로 명패를 인정사정없이 집어던져 버렸다.

 

 

 

와장창창,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무실 한 쪽을 차지하고 있던 진열장이 박살나 버렸다.

 

 

 

 

“후…. 이제 좀 견딜 만 한 걸?

 

더러운 이름 석 자를 봤더니 도저히 참을 수가…흡!”

 

 

“지금이라도 네 목뼈를 부러뜨려버릴 수 있어!

 

기고만장한 콧대 따위 뭉개버릴 수 있다고!

 

내 손가락 하나, 하나에 힘이 더해지면 산소 부족으로 괴로워하게 될 거야!

 

더 이상…네 입에서 더럽다는 소리 들을 이유 없어.

 

한 번만 더 그 따위 소리 지껄이면 당장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리겠어.

 

단박에 목숨을 끊기 딱 좋은 높이지. 안 그래?”

 

 

 

목덜미를 잡고 있던 손을 훽 뿌리치자 잔기침을 콜록거리며

 

원영이 한 걸음 물러섰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서늘한 냉기.

 

 

원영은 냉기가 가져다 준 두려움에 부르르르 떨었다.

 

 

하지만 곧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옷자락을 툭툭 털고서 소파로 걸어가 털썩 앉았다.

 

 

 

“우리 사이엔 청산해야 할 빚들이 너무나 많아. 안 그래?”

 

 

“빚 따위는 없어!”

 

 

“오호, 정말 그럴까? 8년 전 일을 그냥 잊어주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잊을리가! 그건 빚이 아니라 Rache(독: 복수, 징벌)!

 

돌려줘야 할 것.”

 

 

“네놈의 시신을 못 찾았다고 했을 때, 이미 눈치 챘어야 했어!

 

처참하게 찌그러진 차체 속에서 살아남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건 내 착각이었지.

 

하지만 나중에는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기쁘기만 하던걸.”

 

 

 

말끝에 따라 나오는 휘이익, 하는 휘파람 소리는

 

그녀의 사악함을 충분히 눈치 챌 수 있게 만들었다.

 

 

원영은 꿈틀거리는 민혁의 미간을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저주스러웠을까.

 

분명 눈앞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일그러진 ‘여자’의 얼굴을 보았을 테니까.

 

다리 하나 쯤 절단 나서 처절한 삶을 살고 있겠지, 했는데 내 뒤통수를 쳐?”

 

 

 

쨍, 하고 목소리가 올라갔을 때 조심스레 사무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걸어 들어왔다.

 

 

알록달록한 찬합을 손에 든 채 하연이 걸어 들어오기까지

 

모든 공기들이 급속도로 얼어붙는 듯 했다.

 

 

허공에서 멈추어진 공기의 흐름은

 

한 발자국씩 걸어가는 하연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말 것을.

 

 

차라리 그냥 집에 머물러 있을 것을.

 

 

잠든 하연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민혁이 문 밖으로 나섰을 때,

 

이미 하연은 잠에서 깨어나 있었더랬다.

 

 

난장판이 되어 버린 가운데서도

 

하연은 주섬주섬 그를 위한 아침을 만들었다.

 

 

밥도 2인분, 반찬도 2인분, 후식으로 먹을 과일도 2인분,

 

숟가락과 젓가락도 두 벌.

 

 

설레임을 안고 도착한 문 앞에서

 

하연은 날벼락 같은 소리를 본의 아니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돌아갈까.

 

처음부터 오지 않았던 것처럼 그냥 가버릴까.

 

수없이 망설이던 하연은 차마 발걸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를 만나러 왔기에.

 

 

그것이 돌아설 수 없었던 이유의 전부였다.

 

 

 

“이런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바짝 긴장을 해서야 어디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겠어? 어서 와요, 하연씨.”

 

 

“…여긴 어쩐 일이야! 쓸데없이!”

 

 

 

한 사람은 지나치게 상냥했고,

 

다른 한 사람은 지나치게 무뚝뚝했다.

 

 

하지만 야속하다 싶을 정도로 무뚝뚝한 사람에게

 

진정한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하연이었다.

 

 

원영의 지적처럼,

 

하연이 모습을 드러내자 눈에 띄게 민혁의 표정이 긴장되어 있었다.

 

 

하연은 그런 민혁을 향해 믿음이 담긴 눈빛을 보내며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곁에 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미안해요, 하연씨.

 

내가 그렇게 망쳐놓아서 어떡해요?

 

하지만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을거라는 약속은 못하겠어요.

 

사정없이 망가뜨리고 나니까 행복해졌어요.

 

그러니까 하연씨가 이해해 줘요.”

 

 

 

타인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

 

 

고통스럽고 괴로워하면 할수록 그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

 

 

하연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이 분이 민혁씨의 누님이라니.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위험한 분.

 

 

지켜야 한다!

 

하연의 자아가 눈을 떴다.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이 또다시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만약 기다란 손톱으로 그의 가슴을 후벼 파려 한다면

 

나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으리라.

 

 

하연의 눈동자에서 파란 의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만큼은 내가 막아 줘야 해.

 

 

 

“…민혁씨, 나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이야기 계속 나눠요.

 

난 괜찮으니까.”

 

 

“어머나, 배려가 깊기도 하여라.

 

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아! 내 뒤통수 친 이야기 까지 했던가?

 

그래, 그렇게 처참한 죽음을 직면하고도 별로 얻어지는 교훈 같은 건 없었나보지?”

 

 

 

“받은 만큼 갚아주겠다는 교훈은 얻었지.”

 

 

 

“아니야. 그게 아니야. 틀렸어!

 

예전에도 그랬으면 이번에는 실수를 하지 말았어야지!

 

또 다시 곁에 약점을 만들어 두고 있으니 말이야. 안 그래?”

 

 

 

약점이라는 단어와 함께 앞에 앉은 하연을 훑어보는 원영의 눈빛에

 

하연은 콧잔등에 땀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건

 

분명 민혁과 닮아 있었지만 악(惡)과 독(毒)은 전혀 달랐다.

 

 

입을 앙다문 채 애써 분노를 누르고 있던 민혁은

 

노랫가락처럼 흘러나오는 원영의 말에 폭발했다.

 

 

 

“이번엔 어떤 방법이 좋을까?

 

지난번처럼 교통사고로 위장한다면 정확도가 떨어질 테고.

 

요란하지 않으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시간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한 점 망설임 없이 날린 손바닥에

 

원영의 입술에서 묻어난 피가 묻어 있었다.

 

 

핏방울 까지도 불쾌한 것처럼

 

더러운 오물을 닦아내듯 곁에 있는 휴지를 뽑아 사정없이 닦아냈다.

 

 

만약 휴지에 배어든 핏자국이 아니었다면

 

하연은 민혁이 여자의 뺨을 때렸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훗, 하며 유유히 곡선을 그리는 원영의 입술에

 

하연의 입이 벌어졌다.

 

 

저럴 수는 없다. 사람인 이상 저럴 수는 없는데!

 

 

 

“날 증오해! 날 미워하라고!

 

저주를 퍼부어도 나에게 하면 되잖아!

 

왜 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야! 죽이고 싶어? 날 죽여!”

 

 

 

“호호호호호…. 알고 싶어?

 

그래야 네놈이 더 철저한 고통을 느낄 테니까.

 

네놈이 싫어! 미워!

 

그래서…네놈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저주를 퍼붓는 거야.

 

 

직접적인 아픔보다 간접적인 아픔이 때로는 치명적이거든.

 

 

만나서 반가웠어요, 하연씨.

 

다음에 또 만나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 안타까워라….”

 

 

 

미친 듯한 웃음소리를 남겨둔 채 그녀는 사라져 갔다.

 

 

원영이 사라진 뒤에야 하연은 숨통이 트였다.

 

 

숨조차 쉴 수 없던 상황 속에서

 

다행스럽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꼿꼿이 버텨냈다.

 

 

혹시라도 눈물을 흘리면 그의 주의가 흐트러질 지도 모르니까.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하연의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며 축 늘어지자마자

 

민혁의 단단한 두 팔이 감싸왔다.

 

 

남자의 힘찬 심장박동을 느끼는 하연의 머리카락 위로

 

잔키스가 별무리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절대 안 돼!

 

내가 지키겠어. 다시는 속절없이 놓아 버릴 수 없어.”

 

 

 

두려워하고 있구나, 이 남자는.

 

온 몸의 근육들이 바짝 긴장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남자의 몸을 보듬어 안으며

 

온 힘을 다해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제야 참고 있던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그가 겪었던 슬픔이, 아픔이, 고통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단순한 미움 때문에

 

가차 없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니.

 

 

하늘 아래 떳떳하게 고개를 쳐들고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당신이 왜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는지,

 

왜 모든 감정들이 굳어 버렸는지,

 

고통에 몸부림치며 잠들 수 없었는지,

 

어째서 마음속에 증오의 씨앗을 심었는지 알아 버렸어요.

 

 

당신 스스로 뿌린 복수의 씨앗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심어졌다는 사실도.

 

 

세상에 용서할 수 있는 것과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당신의 말도

 

이젠 이해할 수 있어요.

 

 

어떻게 세상에 그토록 질기고 아픈 인연이 존재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인연은 분명 하늘의 실수이리라.

 

 

 

“…괜찮은 거야?”

 

 

 

한참 만에 품에서 하연을 풀어준 뒤,

 

민혁이 던진 첫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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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he는 독일어 단어구요, '복수, 앙갚음'의 뜻이 있다고 합니다.

 

읽는 건 '라헤'라고 읽구요. 

 

저도 독일어는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말씀드립니다. ^^a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멈추다가, 흐린 날씨였다가 또 비가 오고...

 

날씨처럼 괜히 기분도 우울해 지는 날이었답니다.

 

그래도 이곳에 와서 댓글을 달 때 만큼은 많이 웃고 많이 미소지을 수 있답니다.

 

너무 늦게 올려서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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