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혹적인 한탄강
강원도 평강에서 발원해 경기도 연천군에 이르는 한탄강은 국내에선 보기 드문 풍경으로 찾는 이의 가슴을 씻어 준다. 시원스런 절경이 빚어 내는 비취색 물빛으로의 여행.
허리 잘린 국토의 최전방, 땅굴, 비무장지대…. 강원도 철원하면 으레 안보나 반공같은 단어들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청정한 공기와 자연의 원시적 풍광을 자랑하는 곳 중 철원만한 곳도 드물다. 태초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철원의 비경은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漢灘江) 때문에 더욱 빛난다.
한탄강은 강원도 평강군에서 발원해 김화·철원 등지를 지나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전곡면의 경계에서 임진강과 합류하는 길이 136km의 긴 강이다. 하류인 전곡 부근은 6·25전쟁 때의 격전지이기도 한데 아름다운 강변으로 일찌감치 유원지가 조성되었다.
처음 한탄강을 찾은 이를 감탄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자연이 빚어 낸 천혜의 비경들. 하지만 한탄강은 국토에 산재한 여러 강들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지니고 있다. 강을 따라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중간 중간 보이는 기암절벽의 절경은 사람의 세 치 혀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여느 강과는 다른 한탄강의 이색적인 풍광은 지형적 요인과 관계가 깊다.
강변을 걷다 보면 제주도에서나 봄직한 거뭇거뭇한 현무암들이 눈에 띄는데, 이는 과거 이 지역에서 화산이 폭발했음을 알려 준다. 강안을 따라 늘어선 절벽은 화산 분출시 땅이 수십m 폭으로 꺼져 국내에선 보기 드문 침식협곡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냈다. 도무지 강이 흐르리라곤 생각지 못하고 걷다가 눈 아래 펼쳐진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곳이 한탄강 상류다.
한탄강 상류에서 가장 먼저 손을 반기는 것은 고석정(孤石亭)이다. 비취색 파문을 일으키며 흐르는 강 중간에 바위산처럼 우뚝 솟아 있는 바위가 바로 고석정. 원래 절벽 위에 정자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강가의 절벽 위에 아담한 정자 하나가 있어 지나는 이의 땀을 식혀 주고 있다. 높이가 20m에 이르는 바위 위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석굴이 있는데, 이곳은 조선 명종조의 유명한 의적 임꺽정의 전설이 스며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석정 인근은 신라의 진평왕과 고려의 충숙왕이 즐겨 찾았을 만큼 아름다운 명승지다.
고석정을 가운데 끼고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 그리고 강가를 따라 수없이 늘어선 커다란 너럭바위는 한낮의 오수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고석정 입구에 이르기 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 같은 낡은 다리 하나가 눈길을 끈다. 승일교(昇日橋)라는 이름의 이 다리는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1948년 이 지역이 북한 땅이었을 때 북한에서 공사를 시작했다가 6·25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고 휴전 후 한국 땅이 되자, 1958년 12월 우리 정부에서 완성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기초 공사와 교각 공사는 북한이, 상판 공사 및 마무리 공사는 한국군이 한 남북 합작의 다리인 셈이다. 김일성 시절에 만들기 시작해 이승만 시절에 완성했다고 해서 이승만의 '승(承)' 자와 김일성의 '일(日)' 자를 따서 지었다는 설이 전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고석정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 한탄강의 자연이 빚어 낸 또 다른 작품은 순담계곡(純潭溪谷)에서 감상할 수 있다. 고석정에서 남쪽으로 약 3km 아래에 있는 협곡인 순담계곡은 기묘한 모양의 바위, 시간의 더께를 쌓아 놓은 듯한 장송, 그리고 이 모든것을 감싸안 듯 흐르는 강물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강변을 따라 널찍하게 펼쳐진 모래밭은 가족과 함께하기 좋은 나들이 코스로 손색이 없다. 이곳은 래프팅 장소로도 유명한데, 계곡에서 군탄교까지 약 6km, 2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을 자연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
고석정에서 2km 정도 올라가 붉은색 아치의 다리를 건너면 고석정만큼이나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진다. 높이는 3m 정도에 불과하지만 폭이 무려 80m에 이르는 직탕폭포(直湯瀑布)가 그것이다. 넓은 강폭을 따라 한꺼번에 쏟아지며 하얀 포말을 만들어 내는 물줄기는 여름 뙤약볕에 지친 심신을 시원스레 씻겨 준다.
폭포 아래에선 한가로움을 즐기는 강태공들의 고기잡이도 한창이다. 높이에 비해 엄청난 길이의 폭 덕에 '한국의 나이애가라'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폭포 아래 흐르는 물은 수심이 얕고 물살도 급하지도 않아가족나들이 장소로도 그만이다.
철원 지역 한탄강 지류의 끝자락을 장식하는 마지막 절경은 삼부연폭포(三釜淵瀑布). 국도를 따라 길을 재촉하다 보면 높이 20m 폭포의 장관에 잠시 넋을 잃기 쉽다. 폭포수가 높은 절벽에서 세 번 꺾여 떨어지고, 세 군데의 가마솥같이 생긴 곳에 떨어진다 해서 삼부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鄭敾)이 금강산으로 향하던 중 이곳의 비경에 취해 잠시 짐을 내려놓고 진경산수화를 그렸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폭포 옆 도로에는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날 만한 크기의 터널이 하나 있는데,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이 또한 도시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다.
한탄강이 빚어 낸 마지막 절경은 강 하류인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에서 찾을 수 있다. 한탄교와 사랑교 사이의 강변 1.5km는 일찍이 지난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이곳에는 고즈넉한 상류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게 가족 캠핑장과 보트장, 어린이 놀이터, 다목적 운동장 등과 식당, 매점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여름 휴가철에는 하루 평균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다.
깨끗한 물과 모래, 미루나무 숲도 일품으로 최근에는 오토캠핑장이 들어서 가족 나들이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인근의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도 유명하다.
잘려진 국토의 최북단에서 온갖 절경을 빚어 내며 흐르는 한탄강. 한여름에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비경은 자연이 내려 준 소중한 선물이다.
▒ 한탄강 가는 길 ▒
서울을 출발해 의정부, 포천, 운천을 지나 43번 국도를 따라 신철원으로 간다. 자유로를 타고 가다 문산 IC에서 빠져 37번 국도를 타는 방법도 있다. 포천읍을 지나 43번 국도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38휴게소, 운천 시내를 지나 신철원이 나온다. 대중교통은 서울 상봉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신철원행이나 구철원(동송)행 버스가 운행되며, 수유역 앞 터미널에서도 철원행 직행버스가 있다. 동송읍이나 신철원 버스터미널에서 고석정행 시내버스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