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 이야기
18세에 미국으로 가서 한국인2세와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24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다시 나온 캔디는 가슴이 쓰렸어요. 남편과 10년 전에 이혼하고 아이가 다 크면 미국에서 번 돈을 가지고 한국에 나와서 살 생각을 평소에도 하고 있었지만,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42세라는 중년 나이로 한국에 나온 것이에요. 캔디는 장사를 했어요. 미국 서부에 있는 큰 도시에서 네 시간 가까이 떨어진 시골에서 잡화점을 했는데, 농장에서 일하는 멕시칸들을 주로 상대했고, 항상 친절하고 싹싹한 캔디는 돈도 많이 벌었어요. 그래서 커다란 집도 마련했고 아이들도 잘 키웠어요. 큰 아들은 오토바이 선수로 활동했고 작은 딸은 이번에 UCLA에 입학하는데, 공부를 너무 잘하기 때문에 장학금도 나왔어요.
캔디는 미국생활이 무척 외로웠어요. 이국땅의 고독이 엄습하면 차를 몰고 넓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혼자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엉엉 목 놓아 울기도 했어요. 바쁜 미국생활 때문에 재혼은 생각조차 못했고, 어찌 보면 혼자 사는 여자만의 심적인 애달픔이기도 했겠죠. 그때마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과 생존해 계신 엄마가 보고 싶었고, 또한 네 명의 형제들이 그리웠어요. 캔디 아버지는 지금 서울 근교에서 시로 승격된 어느 동네의 큰 부자였어요. 딸이 많은 캔디 집안에 기둥격인 오빠 한 분이 계신데, 세살뿐이 차이가 안 나는 오빠하고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가까이 지냈어요. 이혼한 상태로 10년을 지낸 캔디는 자식들이 자라서 다 제 갈 길을 찾는 나이가 되면 한국에 혼자 나와서 새 삶을 시작하리라고 굳게 마음먹었죠.
그러던 중, 올 봄에 캔디에게 불행이 닥쳤어요.
마스터라이션스를 가지고 장사하는 캔디는 허용된 약품도 팔고 있었는데, 이 약품을 조달하는 한국인 직원이 서류를 위조하였고, 그 위조된 서류를 가지고 약품을 뭉텅이로 빼돌렸어요. 그러나 그 약품이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성분으로 되어 있기에 법으로 그 판매가 제한 된 것이었어요. 약품 조달하는 한국인 직원 두 명이 구속되었고,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캔디는 오너로서의 책임을 져야 했던 것이죠. 그 사건이 터지자 세무서에서 세무조사가 나왔어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몇 년 전에 가게에 화재가 났기에 모든 장부가 불타 버렸어요. 그래서 세금관계를 입증할 수가 없어서 세무서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히고, 가게와 집, 그리고 은행에 예금된 돈마저도 몽땅 세무서에서 동결시켜 버렸어요.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니며 하소연했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영어를 잘 해도 동양인에게는 역시 낮선 나라라는 절망감만 들었던 것이죠.
미국인들은 이 사건을 메스콤에 대서특필하고 까발렸어요. 똑같은 사건이라도 미국인, 즉 동양인 시민권자가 아닌 미국인이라면 이렇게 범죄인 취급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캔디는 미국에 질려버렸어요. 어렵게 고생하면서 살 때는 그럭저럭 혜택도 많이 입고 호의적인 미국인 줄 알았는데, 일단 어느 정도의 재산이 형성되면 보이지 않는 압력이 마구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어요. 캔디 입장에서 볼 때는 고생고생 해서 번 돈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이 그냥 뺏어가는 것 같았죠. 변호사에게 의뢰하여서 약품사건과 세무서의 재산동결에 관하여 이의신청을 했지만, 미국은 변호사 사회라서 그 수임료 역시 만만치 않았던 것이에요. 이래저래 뺏기는 재산이라면 법정투쟁을 위한 변호사에게 먹히겠다고 결정했어요. 그래서 한국에 계신 오빠와 상의해서 어차피 나와서 살 한국인데, 이번 일을 계기로 미국국적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던 것이죠.
여름 날,
영종도 국제공항에 내린 캔디는 마중 나온 오빠 차를 타고 서울 부근의 조그만 도시로 향했어요. 사실 오빠로서는 캔디가 제일 가까운 동생이기도 하지만, 캔디에게 잘 해 주어야 할 이유가 있었어요. 캔디는 오빠의 자식 두 명을 미국으로 불러들여 사비유학을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죠. 삼 년간 조카를 돌봐 준 공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에요. 그래서 올케도 캔디에게 조그만 가게라도 차려줄 궁리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나와 보니 고국은 24년 전의 한국이 아니었어요. 한국이 변한 것도 변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너무도 미국화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이에요. 미국에서는 코리언우먼이지만 한국에서는 아메리칸우먼이라는 사실에 당황한 것이죠. 또한 온통 사방으로 날리는 먼지와 빌딩이 빼곡히 들어 찬 서울과 조그만 아파트, 그리고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한국 돈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어요. 크기만 컸지, 달러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한국 돈이었죠.
꿈에 그리던 고국에서 캔디의 심적 방황은 시작되었어요. 실로 감당키 어려운 문화충격이 머리를 때렸고 캔디는 정나미 떨어진 미국과 혼돈스럽기만 한 한국의 중간에서 비틀거리기 시작했어요.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다가, 어떤 아줌마와 어깨를 부딪쳤어요. 캔디의 입에서는 무의식중에 이런 말이 튀어나왔죠.
"읍스, 익스큐즈 미."
한 눈에도 양 볼에 심술이 붙은 아줌마는 이상한 눈초리로 캔디를 올려다보며 볼을 실룩 거렸어요.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에 서로 어깨를 움찔하거나 한마디 주고받으며 기분 좋게 돌아서는데, 그 아줌마는 기분 나쁘다는 눈초리로 캔디를 바라본 것이죠.
캔디도 순간 머쓱했어요. 그래서 또 버릇처럼 어개를 으쓱 들어올리며 입술을 삐쭉 했어요. 그랬더니 그 아줌마는 별 이상한 여자도 다 보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면서 멀리 가면서도 또 뒤돌아보았어요.
이렇게 사소한 싸인 하나도 안 맞는 한국사회에 캔디는 이방인으로 떨어진 것이에요. (계속)
☞ 클릭, 오늘의 톡! 사실 어.쩌.면. 그건 남자들만의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