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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33살 여자 독신. 집나와 자력으로 생활한지 16년.
고1때부터 너무 카마득한 시간을 혼자서 바동바동 살아왔습니다.
드디어 2년전 유학을 다녀와 서울에 자그만 새아파트를 장만했어요.
처음으로 가져본 제명의 집. 닦고 쓸고 만져보면서 밥먹지 않아도 배불렀어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뿌듯함....
오빠들도 새언니들도 대견하다며 먼곳에서 와주며 축하를 해 주었드랬죠.
그런데 엄마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번 오시질 않았어요.
시골생활 한가한 겨울에 놀러 오시라고 하면 염소걱정, 강아지 걱정, 집걱정...
옛날부터 서운한점 많았지만 이젠 그려려니 포기했어요.
오빠들도 있는데 엄마한테는 적당히 효도하고, 가끔씩 찾아뵙는 것으로 딸 도리를
다하려고 해요.
가끔 진짜엄마가 맞는걸까?
그런생각을 한적 있어요.
분명 오빠들하고는 닮았는데 혹시 아버지가 밖에서 데리고 온 자식인가? 하구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나중에 아주 나중에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데려온 자식인지 아닌지....
엄마를 사랑하지만 이해못할 부분들이 너무 많이 있었어요.
궁핍한 시골의 산촌생활.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버진 빚을 내더라도 고등학교 입학은 시켜주시마 하시는데.
엄마는 공장이나 가서 돈이나 벌어서 오빠들 뒷바라지를 하라고 대놓고 말을 했어요.
16살 어린 나이였던 전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답니다.
오빠들은(오빠세명) 어렵게 어렵게 고등학교를 가르치면서 저한테는 공장이나 가라니요!!
하나밖에 없는 딸인데...
어렵게 입학한 상고는 자취를 했답니다.
장마철이면 빗물이 세던 1평반정도의 셋방(월12,000원)이 가끔 생각나 목이 메입니다.
상고라서 6시쯤 끝나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귀가하면 11시가 다됐어요.
밥은 거기에서 먹구요. 생활비는 그렇게 벌고 등록금(당시8만원정도)은 장학금을 받았어요.
타자기를 사고싶었지만 엄두도 못내고 아침 일찍 등교해서 학교에 있는 타자기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아낀 돈으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하니까 엄마가 돈도 없는데 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제가 돈달라고 한것도 아닌데...
또 한번 상처....
졸업전에 00은행에 취직을 했어요.
개천에 용났지요.
자랑스러워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집안 형편은 계속 안좋았고 전 저축하고 멋부릴 여유도 없이 집을 도와주었습니다.
직장 다니며 여름휴가를 간적이 없어요.
여름엔 시골이 바쁘잖아요.
주말에도 휴가때도 선탠하면서 농사일을 거들었어요.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후회는 없답니다.
몇년후....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저에겐 일생일대의 큰 충격이었어요.
내편은 아버지밖에 없었는데....
아버지 한사람이 온세상을 잃은 것보다 더 슬펐어요.
그래도 간사하게 산사람은 살아지더군요.
충격을 잊기위해 야간전문대를 졸업하고,
IMF때 퇴직금을 많이 주길래 9년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갔습니다.
설거지도 해가며 고생했지만 그때가 행복했답니다.
엄마는 외국에 있는 딸이 보고싶지도 않은지 전화도 없고
저역시 별로 살가운 성격이 아닌지라 그냥저냥 지냈구요.
귀국 후 오갈데없는 전 오빠네 집에서 지내다 5개월만에
퇴직금과 대출을 합해 마이홈을 장만했답니다.
그런데....
엄마는 관심도 없습니다.
제가 차를 사도 고사를 지내주기는 커녕 그런걸 뭐하러 사냐고 합니다.
필요하니까 샀는데...
오로지 관심은 돈입니다.
시골가면 며느리들 많은데 다른집 며느리들 얘기를 하면서 비교를 합니다.
그럼 제가 그러지 말라고 말리기도 하구요.
옛날분이라 자기 하고 싶은 얘기는 거침없이 다해서 실수도 많이 하면서...
이제는 환갑이 넘었는데 고칠수도 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젠 자식들이 효도하고 손자들도 있는데 여전히 돈욕심은 많으시고....
저 퇴직금 안준거 다행이라고 몇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저도 살아야지요.
시골에 가면 제가 사다준 가전제품들, 생신때마다 시계, 반지...등
많습니다.
하도 금팔찌 타령을 하길래 지난 생신때 10돈 금팔찌를 해드렸습니다.
형제들과 돈 모아서 시골집도 지었구요.
별수있나요. 그래도 자식인데요.
그러면서 저희집엔 가자고 해도 안오십니다.
하룻밤이라도 주무시고 가시지...
요즘은 시골에 농사지으러 안갑니다.
엄마 생각해서 거들어 주려고 갔었는데 저도 이제 나이를 먹는지
게으름을 피웁니다.
사실 지겹다는 표현이 정확한지도 모르겠네요.
한달에 한두번 전화하고 명절이나 집안모임때 가고 일년에 4번정도 내려갑니다.
예전엔 매달 용돈 송금했지만 지금은 갈때만 드립니다.
저 엄마 돌아가시면 피눈물 흘릴지도 모르지만 지금 솔직한 심정은
'그래 난 할만큼 했다'입니다.
기본적인 자식노릇만 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엄마가 보내준 옥수수며 된장. 고추장. 참기름을 볼때마다
가슴이 아려옵니다.![]()
엄마는 저를 사랑하지만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제가 이렇게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역시 엄마를 사랑해요.
잘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은 엄마를 닮아서인지도 모르겠어요.
엄마가 오래오래 건강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