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 이야기 2.
캔디는 원래 꼴통으로 소문난 학생이었어요.
재산도 많으며 높은 공직에 계신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자라서 그런지, 동네와 학교에서 어렸을 때부터 유명한 꼴통으로 놀았고, 세살 위인 오빠하고는 죽이 척척 맞았어요. 언젠가 여자깡패 조직원에게 둘러싸여 얻어터진 것을 계기로 만능운동선수인 오빠에게 태권도를 열심히 배운 캔디는 유단자의 실력을 갖추었어요. 이 실력은 미국에 도착한지 몇 년 안 되어서 자기를 욕하는 흑인여자를 돌려차기로 다운 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어요. 나가떨어진 뚱뚱한 흑인 여자의 배 위에 올라타서 두 주먹으로 캔디의 말처럼 아구창을 돌려버리기도 했어요. 물론 캔디와 흑인여자는 나란히 직장에서 그 날로 쫓겨났지만,
하여튼 캔디는 가장 친한 오빠의 말처럼 꼴통이고 성질 사나운 소녀였어요. 마침 18세의 캔디에게 약혼초청의 형식을 갖춘 미국이민의 계기가 생겼어요. 캔디 집안에서는 도저히 한국에서는 캔디의 성질을 잡을 수 없으니 미국으로 보내자는 결정을 내렸고, 대담하고 뱃장 좋은 캔디는 홀홀 단신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죠. 위세 좋은 집안의 당당한 셋째 딸이 바로 캔디였어요. 학교 다닐 적에 공부를 싫어하던 캔디가 영어를 잘 할 리가 없었지만 일단 부딪치고 보자는, 그리고 호기심 많은 철부지의 뱃장이 태평양을 넘게 한 것이었어요.
사실 학교에서 공부를 못했다는 점이 캔디가 영어를 배우는데 유리하게 작용했어요. 왜냐하면 시시한 글자에 구애 안 받고 그냥 귀에 들어오는 대로 마구 따라 지껄이고 배웠으니, 생생한 영어를 터득한 것이에요. 영어란 처음에는 다 한글문법 방식으로 머릿속에 돌아다니게 되어 있어요. 어느 유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렵게 고물차를 구입하여 신나게 달리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미국인이 운전하는 고급승용차와 부딪치는 사고가 났는데, 미국인은 부셔진 자기의 고급차를 보고 무척 속이 상했어요.
"오우, 마이 브랜드 카,"하면서 한국유학생의 고물차는 거들떠도 안 보았어요. 유학생은 자기 차만 보고 속상해 하는 미국인을 보고 화가 났어요. 뭐라고 미국인에게 항의하기 위하여 영어를 급조하기 시작했어요.
"네 차만 차냐? 내 차는 차가 아니냐?"하는 항의를 한국식 영어로 지껄였어요.
"유 카 카? 마이카 노카?"
영어란 바로 이렇게 배우기 시작하거든요. 그랜드 캐년을 "그런 개년"이라고 발음해도 좋으니 자꾸 따라서 지껄이는 용기가 바로 영어를 터득하는 지름길이죠. 영어문법책을 백 번 읽어도 실제적인 영어구사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어요. 실제 대화에 있어서는 쑈커트라는 짧은 영어회화가 주로 사용되기에 문법책에 나온 대로 영어를 발음하면 미국사람은 전혀 알아듣지 못해요.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우리의 타령을......
"Play Play Young Play, Old Play no Play."라고 한국식 영어로 자꾸 지껄이다 보면 저절로 영어가 늘기 시작하거든요.
하여튼 공부를 싫어하던 꼴통 한국소녀는 학교에서 영어를 제일 못한다는 덕분에 금방 영어를 터득하여서 미국인들과 어울리고 한국인사회에서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교포로 인정받게 되었던 것이에요.
10여 년 전에 캔디는 남편과 이혼했어요. 미국생활에 있어서의 이혼이란 이민생활의 실패하고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에요. 순조롭게 터를 잡았던 십년 넘은 이민생활을 뒤흔든 사건은 남편의 외도였어요. 미국은 모든 사회조직이 부부로부터 시작되는데, 그곳에서의 부부란 신의를 기초로 한 남녀의 계약이에요. 한국은 아직도 결혼이란 한 집안과 다른 한 집안이 연결되는 성격이 남아있지만, 미국은 순전히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신뢰를 가지고 체결하는 개인적 계약의 성격이 짙거든요.
그것은 어른이 되면 다 부모를 떠나서 독립해서 살아야 한다는 미국풍습에서 비롯된 것이죠. 알다시피 미국은 어린아이를 부모가 안고 자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어린아이도 독립한 침대에서 따로 재우고, 조금만 크면 방도 따로 주어서 혼자서 자게 하니깐, 어찌 보면 미국인이란 어렸을 때부터 고독에 물들여진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서 부모를 또 떠나야 하니 고독한 남녀가 대륙을 방랑하면서 만나는 자체가 무척 드라마틱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고독한 사람끼리의 만남이기에 자연히 한쪽 배우자의 외도는 치명적인 심적 타격을 다른 쪽 배우자에게 가하게 마련이에요. 18세에 부모를 떠나서 미국으로 온 캔디는 남편의 외도에 무척 깊은 상처를 받았어요. 고독한 이민생활만큼 캔디는 방황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한국에서 정착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미국에서 걸려온 여섯 살 된 딸의 여릿여릿한 목소리에 캔디는 울음을 터뜨렸어요.
"마미, 나 지금 옷이 뜯어져서 바느질 하고 있어."
마치 부모 없는 고아가 바느질하고 있는 안타까움이었고, 고사리 같은 손을 움찔움찔 거리며 바느질하는 아이의 모습이 눈앞을 가렸어요. 그래서 한국에 정착하는 꿈을 포기하고 다음날 미국으로 돌아갔던 것이죠. 그리고 아이들이 다 커서 제 앞가림을 할 때까지 혼자서 아이를 키우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그렇게 또 십여 년을 기다린 세월이 바로 오늘인 것이에요. 물론 이혼한 남편은 캔디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외로운 이민생활을 의지해온 믿었던 사람의 배신이었기에 캔디의 가슴에 난 상처는 아물지 않았어요.
때로는 바보처럼, 때로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소리치고 울며, 또 때로는 일뿐이 모르는 기계처럼, 그렇게 살았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