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랑하고 결혼 허락 받으러 갔을 때 시어머님 첫마디가 '교회에 다니면 안된다.'였다.
참으로 곤란한 조건이었다. 왜냐하면 난 기독교 모태신앙이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울아부지 아시면 자다가 벌떡 일어날 얘기이기도 하다.
어릴적부터 새벽기도에 날 데리고 다니시길 좋아하셨던 울아부지. 그 덕에 딴건 몰라도 새벽이슬 밟는건 아직도 그리 힘들진않다. 그케 표현하니 뭔 도둑이 밟는게 연상이 되네 ㅎㅎ
어머님은 예수쟁이인 날 랑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어머니 친구분을 동원하셨다. 옷을 사준다고 랑보고 날 데리고 오라고 하셔서 친정 어머니 혼자 사시니 이런 저런 떠돌아 다니는 나쁜 행실이 있다며 친정 어머니 욕을 하셨다. 난 파랗게 질려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난 그저
"아니요. 저희 엄마 그러신 분 아니에요."
그렇게 밖에 변명을 못했고, 랑은 나와 결혼 못하면 죽는다고 매일같이 내게 그랬기에 난 그저 그렇게 그 시간을 지나야 했다. 지금의 내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말을 한 어머니 친구분에게 마시던 물이라도 껴얹었을텐데 난 세상에 둘도 없는 겁쟁이였다. 어렸던 난 그런 일을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었다. 그저 그렇게 그런 일을 당하고도 밥먹고 사준 옷을 들고 왔다.
그 뒤로 랑과의 교제 자체를 기피해서 한달동안 피해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랑의 끈질긴 구애로 그리고 결혼하면 종교의 자유를 주겠다는 철떡같은 약속으로 자기네 엄마 아부지 앞에선 교회 안다니겠다고 말하라는 랑의 사주를 받아 결혼에 성공했다.
교회 안다니면 죽을꺼같은 집안에서 부처님 믿는 집으로 시집을 온거다.
우리 시댁은 아버님 어머님 젊을 적에 교회쪽 시댁 식구들에게 무지 구박을 받으며 사셨단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형제간 의리도 끊어지고 맘의 아픔도 많이 당하셔서 종교 문제가 다시 집안에 시작되는걸 싫어하셨다. 특히나 예수쟁이들에게 당한 고통이 뼈에 사무친 분들이라 예수 예자만 들어도 기절초풍하시는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에게 예수쟁이인 난 불안한 존재였다. 종교문제로 형제간 우애를 갉아먹진 않을까. 노심초사하였다.
난 나대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혼하자마자 교회와 단절되고 시댁 식구들과 같이 살아야하니 완전히 포기상태로 지내야했던 것이다.
아버님은 내게 대놓고 그러셨는데
"너 교회 다니려면 이혼할 생각해라."
첨에 결혼해서 나 혼자 한국에 남겨졌었다. 시댁은 먼저 아르헨티나로 떠나고 난 나중에 랑이 초청장을 들고 와서야 아르헨티나로 갈 수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시간중에 난 혼자 교회를 다녔고 여름 한철엔 여름성경학교 교사로도 활약을 했다. 그 자료를 다 버리지 못하고 벽장에 놔두고 왔는데 아버님과 어머님이 내가 아들 낳을동안 한국 방문중에 보시게 되었다. 당신들 입장에서 볼 때 난 너무 괘씸한 며느리였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형제를 이간시킬지 모르는 믿지못할 거짓말쟁이 예수쟁이였다.
어머님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셨는데 하필이면 내가 쉬야를 못해서 관끼고 있었던걸 의사가 방문해서 빼는 날 같은 시간에 돌아오셨다. 미운애가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고 어머님 눈엔 의사가 그렇게 관을 빼는 모습도 안타깝거나 안스럽지않고 미웁게 보이셨던거같다.
방에 들어오시자마자 아가를 힘들게 낳아서 고생했다는 둥 그런 말씀은 안하시고 전축 위를 손을 훑으며 먼지 체크를 하셨다.
"너 청소 언제했니?"
"네 아기 낳으러 가는 날이요."
"일주일 밖에 안됐는데 이렇게 먼지가 있니? 거짓말 하지 마라."
난 그런 불신 속에서 살아야했다. 어차피 랑이 시켜서 한 거짓말이래도 거짓말을 한거니깐 난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대접을 받아도 일언반구 대꾸할 말도 없었다. 왜냐하면 난 애초에 거짓말을 하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어머님이 느껴야할 배신감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랑 친구 준성씨가 한국 방문중에 있어서 무엇을 사다줄까 묻길래 쉐타 하나만 사오라고 부탁했다. 나랑 친했던 언니가 준성씨와 연락이 되어서 내게 쉐타를 두개를 사서 부쳤다. 그리고 준성씨가 쉐타를 살 시간이 안된다고 준성씨보고 쉐타 한 개값은 내라고 해서 내 쉐타 세 개가 오개 되었다. 애초에 그 언니가 내게 선물을 보내리라곤 생각을 못했던 터이고 그 쉐타에 대해서 어머님과 형님 아가씨에게 두개는 언니가 사고 한 개는 준성씨가 샀다는....그런 설명을 할 필요성을 못느꼈기에 그냥 쉐타 세 개를 선물로 받았으니 하나씩 갖자고 하며 아가씨와 형님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 언니의 준성씨가 쉐타 한 개값을 내었으니 내가 돈을 내는 상황인지 준성씨가 내게 선물을 하는건지 정확하게 모르니 암튼 쉐타값을 적어서 보낸다는 편지를 어머님이 보시게 되었다. 그래서 난 본의아니게 쉐타를 하나는 샀으면서 세개다 선물로 받았다고 거짓말 한 꼴이 되었다. 사실 다 선물로 받은 것이긴 했는데...결과적으로 어머님에겐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아주 사소한 일이고 설명이 필요없다고 느꼈지만 그 일이 내게 상처가 되었다.
아가씨가 그 일을 알게 되었고 슈퍼마켓을 다녀온 아가씨와 형님은 현관문을 따주던 내게 인사한마디 없이 올라갔다. 그리고 아가씨는 가방을 집어던지며 작은 언니 들어와서 엄마가 속상해 한다고 엄마 불쌍하다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저런 년이 들어와서 울엄마 너무 불쌍해."
점심 때였는데, 밥을 차리다 나도 눈물이 나왔다. 너무 슬펐다. 속상했다. 나도 대성통곡하며 울고싶었다. 하지만, 참고 복도에 있던 화장실에 가서 흐느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너무 싫어 죽고 싶었다. 어머님은 그런 내게 오셔서
"네가 뭘 잘했길래 그렇게 우냐"며 얼른 점심이나 먹으라고 하였다.
난 엄마 욕먹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독한 맘을 먹고 식탁에 앉아서 혼자서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참자. 여기서 내가 덤비면 울엄마 욕먹지. 참자.
새벽녘 잠이 깨어 거실로 물마시러 가던 난 아버님과 어머님이 대화하시던 걸 우연이 듣게 되었다.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난 쟤 둘째가 미워서 윤희도 하나도 안이뻐."
그 말을 들으신 아버님은 어머님을 야단치시고 그럼 못쓴다고 하시며 어머님께 어른으로서 잘하라고 하셨다. 어머님도 그 때 너무 젊은 나이에 시어머니가 되었기에 참지 못하는게 많았고, 난 그렇게 내가 미운 털이 박힌 며느리로서 살게 되었다.
야속한 랑은 그런 내 투정에 짜증이 나 나몰라라 밖으로만 다니며 어머니께 불손한 행동으로 자기가 기분 나쁘다는 표현을 했고 난 그럼으로써 다시 어머니께 내가 남편에게 어떤 말을 했길래 저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야단까지 맞게 되었다. 지혜롭지 못하게 행동하는 랑이 미웠던 난 아이만 바라보며 우울의 늪을 헤매야했다.
친구도 없고, 교회에 다니지도 않으니 밖에 나갈 일이 없는 난 그저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풍경과 옆집의 고양이를 키우는 할머니의 행동을 구경하는게 내 바깥 세상을 맛보는 통로였다.
가끔 집에 돌아온 랑이 나를 데리고 올리보스 쪽으로 나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포르쉐 대리점에 데리고 가서 차 구경도 시켜주고 영화도 보러다니며 좋은 공원으로 바람도 쐬러 나갔지만 마음에 잔뜩 낀 먹구름 속에서 좀처럼 탈출을 못하고 그저 나와 전혀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아르헨티나 광경에 무의미한 시선만 던졌을 뿐이다.
올리보스 동네에 굉장한 저택이 있는데 그 집은 너무 커서 강과 맞닿아 있는 곳은 보트로 집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놓았고 집 안에서 차로 드라이브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그 집 앞을 지나가게 되면 그 이웃들의 집이 보이는데 아이들 동화책에나 나오는 그런 이쁘고 이쁜 집들이 어여쁜 색과 어여쁜 모양새를 뽐내며 있었다.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그걸 봤다면 감탄이 나왔겠지만 난 그저 저 이쁜 집이, 저 부자가 사는 대 저택이 나와 무슨 상관이람.....하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