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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이야기 9. (마지막 회)

태평양 |2004.09.05 23:05
조회 3,340 |추천 0

캔디 이야기 9. (마지막 회)



캔디가 오빠에게 따귀를 맞은 사건에 가장 가슴 아파했던 사람은 바로 팔순에 접어든 캔디 엄마였어요.  캔디오빠를 나무랐어요.  미국에서 고생만 하다가 나온 동생을 괄시하면 못 쓴다고 울었어요. 경로당에 놀러갔다가 떡이나 과자가 있으면 미국에서 나온 딸에게 갖다 준다고 슬그머니 꿍쳐서 가져오는 캔디엄마였어요.  냉장고에 콜라가 보이면 손자들이 먹을까봐 몰래 숨겼다가 캔디방에 슬쩍 들여놓기도 했어요.  그럴 때면 캔디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싱긋 웃어보였어요.  다음날 아침에 캔디는 오빠가 조카를 마구 야단치는 소리를 들었어요.  매일 컴퓨터 앞에 매달린 조카를 큰소리로 야단치며 컴퓨터를 다 부셔버리겠다고 하는 목소리에 캔디는 또 싱긋했어요.  방구석에서 나오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캔디에게 던지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죠.  그리고 오빠가 자기를 때린 것에 대하여 무척 속상해하고 있으며 그 분풀이가 조카에게 떨어진 것이라는 것도 느꼈어요. 


사실 오빠에게 뺨을 맞는 순간에 캔디는 아픔보다는 희열을 느꼈어요.  가슴이 확 트이는 듯한 감정이었어요.  그러나 캔디는 방에 꼼짝도 안하고 있었어요.  오빠가 더 속상하라는 귀여운 보복감정이었죠. 캔디를 괄시하면 못쓴다고 우는 엄마와 속상해하는 오빠의 심정은 가족감정이에요.  미국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한국문화거든요.  또한 올케는 캔디를 제일 많이 생각하고 염려해 주어요. 캔디가 먹을 아이스크림을 매일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 놓거든요.


캔디가 제일 무서워하는 큰언니는 냉철한 시선으로 캔디를 주시하고 있었어요.  캔디오빠나 올케가 일에 묶여서 캔디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 것을 알아채고는 속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큰언니는 사십 중반에 남편과 사별하고 거친 장사를 하며 자식을 키운 대장부 같은 여자에요.  목소리도 크고 욕도 잘 하지만 냉철한 눈빛 뒤에는 캔디에 대한 애정이 도사리고 있었어요.  어느 날 캔디와 마주앉은 큰언니는 조용히 이야기했어요.

"네가 무엇을 해야 먹고 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우선 네가 살 집이 필요할 것이니 내가 세를 준 아파트를 빼서 줄 테니 쓰도록 하고, 내가 운영하는 가게에 나와서 일단 일을 하고 있어라.   그리고 네가 무엇을 할 것인지 서서히 생각해보도록 하자."

캔디는 급속히 한국문화감정을 느끼고 있었으며 자신도 모르게 한국감정을 찾아가고 있었어요. 


따귀를 맞은 날 아침에 미국에 있는 딸에게 전화가 왔어요.  캔디는 엄마가 한국에서 싸웠다고 딸에게 말했어요. 딸인 킴블리는 깜짝 놀라서 물었어요.

"Mam, Are you all right?"

그러자 캔디는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응, 괜찮아. 머리가 많이 뽑혔지만 엄마가 싸워서 이겼어."

딸은 마구 웃었어요.

"정말? 엄마가 이겼어?"

"응, 그래. 엄마가 이겼다니깐, 호호호"

"우와, 엄마 파이팅이다.  That's your best place."

킴불리는 엄마의 활기찬 목소리에 소리쳤어요.  엄마가 있는 곳이 엄마에게는 최고의 장소라고 외쳤어요. (끝)



*** 에필로그 ***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지금 캔디는 큰언니의 도움으로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어른들의 이상행동을 분석할 때에는 꼭 당사자의 유년시절을 조사합니다.  사람의 기본성격과 특징은 유년시절과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다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인의 핏줄을 가지고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면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한국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캔디는 월드컵축구경기에서 한국과 미국이 맞붙는 순간에 미국사람 틈에 앉아서 텔레비전 중계를 보고 있었습니다.  모든 미국사람들이 Go America, Go America.를 외치며 미국을 응원할 때에 자신도 모르게 Go Korea, Go Korea.를 외쳤다고 합니다.  이것은 영원한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가 표출된 것이며, 아무리 못난 고국이라도 끝내는 내 고국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열병상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며 외국으로 이민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최초의 이민자라고 볼 수 있는 한국인은 못 살아서 대륙으로 건너간 것이며, 하와이농장으로 일본인에 의하여 끌려간 사람들입니다.  못사는 사람들이 가야만 할 이민을 지금은 돈 뭉텅이를 쥐고 떠나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생활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외국에서 일년, 십년, 이십 년, 그렇게 지내다보면 촘촘히 가려진 외국사회의 그물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민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속담대로 자세한 정보와 계획을 가지고 이민을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외국사회에서 중심적인 자리에 서는 이민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껏 노동자로 전락하거나 겨우 조그만 가게나 하며 평생을 보낸다면 그것도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왕이면 외국에 나가서 당당히 그 사회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터를 닦아야 합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조직적으로 한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고구려를 중국역사에 편입하려는 중국정부의 조직적 노력은 장래에 통일된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휴전선의 철조망이 걷히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우리가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조선족이 많이 사는 만주로 넘나들 것입니다.  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리 압록강에서 우리민족의 진출을 차단시키려는 시도입니다. 


우리민족은 외국사회에서 천대받거나 괄시당하지 않아도 될 우수한 민족입니다.  또한 발전할 여지가 많은 조건도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똘똘 뭉치고 애국심을 발휘한다면 휴전선을 걷어버리고 남북통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넓은 대륙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 이민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은 한국민족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교두보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한국인이 보살피고 감싸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니면 우리를 감쌀 민족이 지구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눈물까지 보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스토리의 자료로 제공하여 주신 캔디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부디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빌며, 한국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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