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속에서 기억에 남는 책을 다시 꺼내 들어 책을 펼칠 때면 그 책갈피 사이사이에 배어 있는 종이 냄새가 저에게는 Acacia(아카시아) 향으로 다가옵니다.
그 냄새가 가끔 그리울 때면 저는 책장 앞에서 한동안 서성거린답니다.
그렇게 서성거리는 동안 저를 아카시아 향에 흠뻑 취하게 하는 책이 있으니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와 ‘피천득’님의 수필집 [인연]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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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 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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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에 한번쯤은 간직하고 있을 첫사랑의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하는 [인연]의 글맺음을 뒤로 한 채 책을 덮고 있노라면 뭔가 가슴 한켠을 아릿하게 하는 여운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 자신이 첫(풋)사랑을 직접 경험해 보기도 전에 국어 교과서에서 실린 [인연]에서 아사코에 대한 피천득의 첫사랑에 대한 회고를 통해 이미 첫사랑을 대리 체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사코와 세 번 만났다며 그 세번째는 아니 만났으면 좋았을텐데...]라며 젊은날의 '인연'을 되뇌이던 노작가의 아쉬움과 회한이 글로나마 그렇게 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노작가의 손에 쥐어진 세월의 무상함이 그려내는 지난 날의 수묵화 같은 여백이 있어서라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됩니다.
저 역시 제 첫사랑에 대한 지금의 마음을 할 수만 있다면 노작가의 그 가슴을 빌어 나를 위로하고 그저 지난 세월의 인연을 이렇게 하소연하고 싶습니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짝사랑!
이젠 빛바랜 사진처럼 머리 한켠에서의 기억도 가물가물하기만 합니다.
대학 1학년 당시 여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말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우연히 술자리에 같이 합석하게 된 [그냥] 대학 여선배와의 만남이 아마 저의 짝사랑의 첫 장면이었나 봅니다.
앞서 [그냥]이란 표현을 쓴 것은 처음 만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저와는 생면부지였기 때문입니다.
87년 당시의 대학은 자칭 타칭 모두 운동권 학생일 수 밖에 없었기에 우리는 [시국토론^^]을 하며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그저 그렇게 술만 마셔대다가 그만 자리를 파할 때가 되어 술집에서 나와 각자 뿔뿔이 흩어졌기에 저 역시 학교 기숙사를 향해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는데 앞에 그 여선배가 풀린 다리를 간신히 수습하며 제게 하는 말이 가관이었습니다.
그 말인 즉 자기 집을 못찾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자기 집은 찾아 가기 마련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 날 거의 한 시간을 헤매다시피해 그 선배의 집을 찾았는데 방에 들어가니 집을 찾느라 한참을 걸어서인지 얼추 술이 깬 그 선배가 가겠다는 저를 붙잡고 술주정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너무 귀엽게 느껴지고 그 선배집을 나와 돌아오는 길에 입가에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 날 이후 저(사회대)는 사범대 근처를 자주 배회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 선배와도 몇번 눈이 마주쳤는데 저를 몰라 보는듯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앞서 말한 그 날, 술자리에 합석할 때부터 거의 기억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한달쯤 지나 친구와 모의 끝에 다시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선배는 그 날 일에 대해 제게 조금 미안해 할뿐 도통 저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술자리를 조금 일찍 끝내고 저는 기숙사에 들어와 그 선배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 먹고 나름대로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을 만드느라 퍽이나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애편지라는 것이 밤새 쓸 때는 폼 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아침에 읽으면 그저 유치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드는 것이 다반사인지라 막상 편지를 부치지 못하고 책상 서랍 한켠에 넣어두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 식의 편지쓰기가 되풀이되다 보니 제 서랍에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가 하나 둘씩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하루일과 중 하나가 일기 대신에 그 선배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되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 하루하루의 일상 그리고 그 선배에 대한 저의 끝없는 상상을 마치 일기처럼 적어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2월이 되었는데, 87년 대선 투표함 문제로 구로구청에서 농성시위가 있었는데 마침 그 선배와 저도 거기에 합류하던 중 경찰 진압 직전에 저는 비겁하게 거기서 빠져나왔는데 그 선배는 그만 붙들려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일로 동료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되는 것도 가슴이 아팠지만 그 선배를 볼 낯이 없어 더움 가슴 한켠이 쓰라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써왔던 편지들을 들고 (지금은 어딘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아마 청계천일 것 같은...) 제본을 할 수 있는 인쇄소 비슷한 곳을 찾아가 그 편지들을 책으로 만든 뒤, 정말 어렵게 그 선배에게 면회 신청을 한 뒤 그 편지책을 건네주고 나왔습니다.
그 선배는 다행히 며칠 후 훈방으로 풀려났었는데 제게 연락이 온 것은 그 보다 며칠이 지나서 였고 부산 고향집에서 제게 전화를 했는데 유치장에 있을 때 그 책(?) 재미있게 잘 봤고 너무 재미있어서 옆사람들까지 모두 돌려보았다고 하면서 서울 올라가면 보자고 했습니다.
선배의 전화를 받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무작정 술을 마시러 [낙성대]로 내려가다가 공중전화를 보니 그 선배와 다시 통화를 하고 싶어 부산집에 전화를 했는데, 조금은 민숭맨숭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퍼뜩 스치는 생각이 있어 일단 전화를 끊고 가게에 가서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동전으로 바꿔 인적이 드문 공중전화를 찾아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제가 먼저 사랑할래요]란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실 음치인지라 노래는 그리 잘 하지 못하는데 그래도 그 선배는 끝까지 제 노래를 들어주더니 자기가 답가를 불러 주겠다며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아마 김창완 노래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 아무 생각도 안 날 판이었으니 노래 제목이 기억 안 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당시 공중전화의 이 노래 장면은 그 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패러디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서울 부산간 전화 세레나데를 한바탕 치른 후 저는 술 한잔 못마신 채 다시 기숙사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수중에 있는 돈을 공중전화에 다 쏟아 넣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술 한잔 못마신 저였는데 저는 기숙사를 올라가는 내내 사랑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짝사랑은 성공으로 일단락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작년 조금 늦은 나이에 저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 때 그 선배가 제 아내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 선배가 제 첫사랑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선배는 제 젊은 날의 풋사랑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게 해 준 [아사코]였습니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 나오는 아사코...[아사코와 나는 세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으면 좋았을텐데...]라는 글맺음처럼 저 역시 그 선배를 아니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녀의 이름을 제 가슴에 묻어 두고자 합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끝난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보고 있으려니 다시 [아사코]가 생각나기에 그 시청 소감을 오행시로 아래와 같이 써보았습니다.
◆[파]도소리 들립니다 사랑해선 안된다고 파도에게 말합니다 그아니면 안된다고
◆[리]바이벌 신데렐라 드라만줄 알았는데 엔딩장면 보는지금 눈끝자락 아픕니다
◆[의]욉니다 제게아직 이런감정 있다는게 장면하나 대사하나 제가슴이 베입니다
◆[戀]人之情 天生之緣 여운으로 아직남아 내마음속 깊이잠든 아사코를 깨웁니다
◆[人]生草露 인생무상 몇천년을 되뇌어도 우리네들 가슴속엔 그런사랑 항상있네
(여기까지는 오행시를 멋지게 끝내기 위해 [인]자 韻을 위에처럼 썼지만 실제 제 마음은 아래와 같습니다)
◆[인]간지사 흔한 것이 남녀지정 연애인데 어쩌자고 드라마가 내마음을 흔드나요
이 글을 이렇게 끝맺으면 저 아내에게 많이 혼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