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한명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새벽에 병실 앞을 지나가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안을 봤더니..
그녀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온 몸을 떨고 있었다.
-이런 사건은 처음입니다. 이렇게 사체를 훼손시킨 것을 보면 아무래도 원한관계인 것 같습니다. 혹시
병원에 이 사람을 찾아오거나 한 사람 없습니까?
-없습니다. 이 사람은 처음에 병원 실려 올 때부터 일종의 기억상실 증상을 보이고있었습니다. 우리 병원에서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고있는데요.
-병원 입구에 감시카메라 같은 것은 있겠죠?
-있습니다. 경비원에게 말하면 됩니다.
조슈아는 경찰관의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하는지도 모를 만큼 놀라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다 복도에 있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어느 새 먼 동이 터오고있었다.
-203호 환자가 죽었다더군요.
-어떻게 알았습니까?
조슈아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카밀라를 노려보았다. 그는 방송국이며 신문사, 친구들에게서 쏟아지는 전화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있었다.
-오다가 간호사에게 들었어요. 아주 난도질이 되어있었다지요?
-난도질이 되어있었는지, 믹서로 갈려있었는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납니다.
-그래요?
카밀라는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아, 그리고 셰리는 당신을 모른다고 하던데요?
-반 헬싱 가의 충직한 집사 셰리 말인가요? 내 얼굴을 보면 기억하겠지요.
말을 마친 카밀라는 알 듯 말 듯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조슈아는 잠깐 동안 눈을 감았다. 너무 피곤했다. 병원의 모든 업무가 마비되어 있었고, 아직도 203호 실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환자들은 모두 이웃 병원으로 옮겼고, 차갑게 생긴 경찰관들과 검시관들이 들락거릴 뿐이었다.
-나는 다만, 당신 아버지가 쓰던 물건 중에 하나를 찾고 싶어서 온 거에요.
-무슨?
-당신 아버지가 죽기 직전까지 쓰던 연구 일지 말이에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아버지는 유언 한마디 남기지 않으셨어요.
조슈아는 소파에 몸을 깊숙하게 묻었다. 힘든 하루가 끝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보겠지요. 사실, 닥터 크리스챤 반 헬싱은 내 아버지가 의뢰한 연구를 하던 도중
급사했어요. 그때 닥터는 아버지에게 모든 연구 결과를 비밀에 붙이고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자료를 넘겨주기로 각서까지 썼어요. 이것이 그 각서에요. 한번 보시겠어요?
조슈아는 됐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뭡니까?
-당신 아버지가 썼던 서재를 보여주세요. 내 아버지가 그 연구 일지를 꼭 봐야할 일이 생겼어요.
그 말에 조슈아는 몸을 일으켰다.
-내 아버지의 연구일지는 없습니다. 그리고 각서가 있다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만 돌아가 주시지요. 너무 피곤합니다.
-그 연구는 당신 어머니와도 관계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 아버지도 그 연구를 시작하신 것이죠.
조슈아가 카밀라를 바라봤다. 카밀라는 이래도 안 보여줄테냐? 하는 표정으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
-좋습니다. 이번 한번 뿐이니, 보고 싶으면 보시죠.
-그럼 있다 저녁 9시에 반 헬싱 저택으로 가겠습니다.
카밀라가 일어섰다.
-그럴 필요 있나요? 마침 저도 집에 가려던 참이었으니 같이 가시지요.
조슈아도 따라 일어나 가운을 벗었다. 너무 힘든 날이야. 그는 중얼거리며 자켓을 들었다. 카밀라는 선글라스를 꺼내 들었다.
-오셨어...
문을 연 셰리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왜 그래요, 셰리? 괜찮아요?
조슈아가 그를 부축했다.
-안녕하세요, 셰리? 오랜만이죠?
-카밀라 아가씨?
-그래요. 오랜만이죠?
셰리는 더 말도 있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조슈아는 분명 셰리는 이 여자를 모른다고 했는데?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을 따지기에 그는 너무 피곤했다.
-왜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그러고 서 있는거죠?
카밀라는 밝게 웃으며 말하더니 조슈아에게 서재가 어디냐고 물었다.
-셰리, 이 숙녀분을 아버지가 쓰시던 연구실로 안내해 드리세요. 저녁은 나중에 먹을게요.
-네?
셰리는 울상을 짓더니 카밀라를 응접실 가로질러로 안내했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은 크리스챤이 죽은 이후로 한번도 열지 않은 문이어서 열 때 소름끼치는 소리가 났다. 셰리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카밀라를 돌아봤다. 카밀라는 어서 가자는 듯 고개로 연구실 문을 가리켰다.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셰리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연구실 겸 서재 문이 열리고 그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내려앉은 먼지가 일어났다.
-셰리.
-네, 아가씨.
카밀라는 문을 닫고 셰리 앞에 섰다.
-너는 다 알고 있을테니 더 말하지 않겠어. 반 헬싱의 연구 일지를 어디에 숨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