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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향기/41편

나다 |2004.09.16 00:19
조회 488 |추천 0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지금 하정은  회장실 앞에 서 있다.  무슨 일로 부르는지 하정은 알지 못했다. 하정은 한번도 아버지의 회사에 온 적이 없다. 더구나 아버지가 직접 불려서 온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왠지 불안했다. 별로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할머니도 걱정하시면 다녀오라고 했다. 

아버지의 비서가 문을 열어 주었다.  제 시간에 오지 않으면 또 무슨 말을 들을지 불을 보든 뻔했다. 그래서 하정은 늦지 않기위해 시간 약속보다 조금 빨리 도착했다. 아예 그 편이 낳으니까?

"앉거라"

 

아버지의 목소리 오랜만에 들어본다.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도 많이 변해 있다.  세월은 어느 누구도 피해가지 못하는 법인 것 같다. 

 

"무슨 안 좋은 일이에요"

"아니다"

 

역시 하고 싶은 말만 하시는 아버지는 여전하시다.  난방이 잘 된 사무실이라고 해도 몸이 떨린다.

 

"너 대한유통 사장 아들과 만났다고 하던데 사실이냐"

"대한유통 아들요"

"조 유환. 아는 사람 아닌냐"

"그걸 아빠가 어떻게 알아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나 다 끝난 일이다.

 

"그러나 이젠 안 만나고 있어요"

"아니 뭐라고 하는게 아니다. 그 쪽에서 먼저 전화가 왔더구나 같이 저녁이라도 했으면 하더라 너도 만나고 싶어하고... 어떻게 알게 되었지"

"자선 모임에서요"

"대한유통이면 우리한테도 도움이 되는 집안이다.  아마도 너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것 같더구나 그 집 아들과  약혼 얘기가 올 갈것 같으니 그리 알고 일요일날 약속 시간에 늦지 말고 오거라"

"전 아직 어려요. 결혼 생각 없어요"

"그럼 지금부터 생각해봐"

 

그 말에 하정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온 몸으로 타고 흐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하정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아빠가 공부하라는  공부할게요. 미대가는 것 포기할게요. 유학가라고 하면 갈게요 그러니까 제 결혼은 서두르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한번도 아빠한테 부탁한 적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번 한번만 제 부탁들어주세요. 전 아직 어리고 할머니 곁에 조금 더 있고 싶어요.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부탁이에요 아빠"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것 있으면 모든지해라. 그러나 그 집과의 일은 우리가 결정할테니 그 뜻에 따르도록 해라"

"아빠"

" 나가보거라."

 

하정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아무리 애원해도 들어주지 않을게 뻔했으니까?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필요도 없었다.  하정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방에서 나왔다. 누가보면 사형선고라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하정은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으면 정말 유환오빠와 결혼하는 문제는 현실이 될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애원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벌써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에 내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하정은 무작정 뛰었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다.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다.  소용없는 짓인지 알면서도 그냥 손 놓고 이대로 떠날 수는 없었다.

하정은 유환이 살던 집으로 갔다.  무작정 갔다. 만나야했기 때문에 무작정 왔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이 천국과 지옥을 헤매고 있었다.

 

"들어와"

 

하정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방안이 많이 지저분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도 많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내가 무슨일로 왔는지 오빠는 알지요"

"짐작은 하고 있어"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할지도 알고 있어요"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좀 앉아"

 

하정은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손이 떨려서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건 유환도 마찬가지 였다. 

 

"그만해요"

"내가 말했지 다음에 우리가 만났다면 결혼 얘기가 올 갈거라고.. 그리고 난 너와 결혼한다고 말했지"

"오빠밖에 없어요. 이 결혼 막을 사람 오빠밖에 없어요. 그만해요"

"아니 그만 둘수가 없어."

 

하정은  방안을 찬찬히 둘려보았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그녀의 초상화도 보았다. 그리고 유환오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동안 많이도 아팠던  유환오빠의 모습도 보았다. 

하정은 일어나 그림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그림을 들어  바닥에  던졌다.  바닥에 던져진 그 그림을 하나하나 부셨다.  모든 그림들을 던지고 부스고,  하나도  남김없이 그렇게 했다.  그 모습을 그저 유환은 지켜보고 있었다. 말릴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런 것에 연연해하지 마세요. 우린 잠시 만났고, 다른 연인들처럼 아니라고 생각해서 내가 헤어지자고 했어요. 더 이상 오빠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어요. 그래서 우린 헤어졌고, 헤어진 연인은 더 이상 만나지 않는 법이에요. 저에게 연연해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면 시원하니"

"내가 오빠에게 상처 줄지도 모른다는 말 진심이에요. 그러니까 오빠가 그만두세요. 오빠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상처주기 싫어요"

"지금도 상처받고 있어. 널 위해 난 그림도 포기했다"

 

그 말에 하정은 두 눈을 감았다. 

 

"오빠가 결혼하고 싶다는 여자가 저 여자였어"

"유림아"

"네가 뭔데 우리 오빠한테 상처를 주는거야."

 

무척이나 화를 내는 그 여자를 하정은 멍하니 쳐다보았다.   유림이라고 했다.  오빠 동생이라고 했다.  하정은 그저 가만히  모든 걸 듣고만 있었다.  오빠를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저 듣고만 있었다.

 

"오빠는 벨도 없어.  오빠를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랑 결혼하고 싶은거야. 제인언니하고 그냥 결혼해. 제인 언니는 저렇게 싸가지 없게 행동하지 않아 적어도 오빠를 사랑한다구"

"유림아 진정해"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밖에서 다 들었어 오빠 제발 정신차려"

"나중에 얘기하자"

"싫어. 당장 나가라고 말해. 여기서 나가라고  당당하게 오빠가 말해"

"못해"

"바보야 왜 못해. 오빠를 사랑하지도 않고, 상처주는 사람인데 왜 말 못해. 저런 여자가 뭐가 좋은데 내 눈에는 싸가지 없는 고딩으로 보이는데 왜 못해"

"사랑하니까"

"헉... 미쳤어"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아. 나중에 얘기하자"

 

유림은 안타까운 얼굴로 오빠를 한번 바라보고는 하정에게는 독한 얼굴로 노려보고 나갔다. 

 

"오빠 그림 좋아하잖요"

"아버지와 거래를 했어. 너랑 결혼하는 조건으로 회사로 들어가기로 했어"

"오빠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었어요"

"그 동안 내가 무서운 사람인지 아닌지 잘 몰랐다. 사랑을 해본적이 없으니까? 누굴 이토록 갖고 싶은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젠 알았다. 널 사랑하고 그래서 갖고 싶은 내 마음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어느 정도 무서운 사람인지 끝까지 갈 것 같다. 너 만이 멈출 수 있어"

"내가 알던 유환오빠는 무서운 사람 아니에요. 부드러운 사람이에요.  그리고 유머도 있는 사람이에요. 날 웃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그 기억만 갖게 해주세요"

"내가 알던 하정은 날 사랑하는 사람이고, 날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고, 날 위해 야한 옷도 입을 줄 아는 사람이고, 날 위해 요리도 하는 사람이야. 그런 기억 갖게 해준 사람이야. 날 무서운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줘"

"전 이젠 그럴 수 없어요"

"그 사람한테 넌 못가. 그럼 잠시 시간을 주지. 보름이야 그 기간동안 네 오빠와 하고 싶은일 마음껏해. 그리고 보름뒤에 우리 다시 만나자. 더 이상은 시간을 줄 수 없어."

"유환오빠"

"보름이야. 보름동안 정리할 시간을 줄게. 그리고 나와 떠나는거야. 제발 날 무서운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줘"

 

유환이 등을 돌렸다. 하정은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그 집을 나오면서 하정은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 앉았다.  그리고 울었다. 소리 내어 울었다.   지금은 소리내어 우는 일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정의 우는 소리를 안에서 듣고 있었다. 유환은 두 주먹을 쥐었다.  온 심장이  다치고 있었다. 상처받고 있었다.  죽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같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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