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은수가 영혼으로서 시연이 곁에 머문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 며칠사이에 눈에 띄게 야윈 시연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은수의 심정은 말로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않고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은수의 사진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일이 시연이의 하루 일과였다.
그런 시연이가 오늘은 그 동안 은수가 보내줬던 편지를
하나씩 읽어 내려가며 또다시 울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편지 써주지 않는건데…..
이런 생각을 하며 후회를 해보는 은수였지만
후회만 깊어 갈 뿐 아무것도 바뀌는 일은 없었다.
은수가 자신을 그토록 마음 아파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은수의 편지를 하나씩 읽어 내려가던 시연이 또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난... 답장 한번 쓴 적이 없는데
은수는 참 꾸준히도 편지를 보냈구나.’
은수는 유독 편지 쓰는걸 좋아했었다.
언제나 답장을 메일로 보내주며 메일이나 편지나
뭐가 틀린거냐고 따졌었지만 오늘은 왠지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시연이었다.
한참동안이나 은수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시연이가
문득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을 나섰다.
…어디를 가는걸까....?
시연이가 밖에 나가는게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따라 나서는 은수의 눈에 너무 급하게 서두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시연이가 들어왔다.
무릎에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는데도 시연은
급하게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재촉했다.
…바보.. 조심 좀 하지. 맨날 나보고 덜렁이라 놀리더니.....
…뭐가.. 그렇게 급하니 천천히 좀 다녀…
시연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시연에게 잔소리를 하며 열심히 따라가던 은수는
문구점에 도착한 시연이가 눈에는 눈물을 가득 담고서
편지지를 고르고 있는 모습에 또 다시
가슴이 아려오는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편지지가... 종류도 참 많구나.
은수는 어떤걸 좋아했을까?
은수도 항상 편지지를 고를 때마다 내 생각을 했겠지?
예쁜걸로 골라야 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눈앞을 가려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어.’
한참을 서서 고민하던 시연은 유난히 밤하늘을 좋아하던
은수가 떠올라 하늘빛 편지지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편지지를 산 후 집으로 돌아온 시연은 책상 앞에 앉아
편지지를 앞에 놓고는 또다시 울기부터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연이 울 때면 항상 곁에서 은수 또한 같이 흐느끼고 있었다.
…바보.... 바보 김시연...
…너가.. 그렇게 눈물이 많은 줄 몰랐어....
…내 앞에서는 단 한번도 우는 모습 보여주지 않았던 너인데...
…그래서 매일 감정이 매말랐다며 놀렸었는데.....
…너가.. 이렇게 많은 눈물을 가졌는지 몰랐어.....
편지지에 제목만 써놓고는 주책맞게 또 눈물이 흐르는 자신을 탓해보며
한 손으로는 계속해서 눈물을 닦아내면서도 열심히 편지를 쓰는 시연이었다.
To. 사랑하는 은수에게.....♡
은수야... 나야.. 시연이....
너.. 잘 지내고 있니? 니가 있는 그곳... 춥진 않니?
너.. 추위 많이 탔잖아.....
춥다고 하면.... 언제나 내가 안아줬었는데......
.......... 보고싶어......
나.... 은수가 너무 보고싶어.....
내 이런모습... 혹시나 보고 있다면..... 너도 슬퍼할텐데...
나보다 더 많이 마음아파할텐데.....
미안해...... 은수야.....
그런데... 자꾸만 눈물이 흘러.....
바보같이... 지금에야... 편지에다 답장을 쓰네....
너에게.... 처음 보내는 내 편지.....
좀 더... 일찍 편지를 써볼걸 그랬어.....
항상 편리한 메일을 나두고 편지를 고집하는 네 마음....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이렇게 후회하는 일은 없었을텐데...
나.... 이젠... 알 것 같아.....
- 편지를 쓰면... 시연이 생각 더 많이 할 수 있어서 행복해... -
이젠... 이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어....
한글자.. 한글자에 담긴 너의 사랑을 그리고 정성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어.
참... 바보같지...
왜 사람은 항상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를까...
왜 그 깊은 마음을 알 수 없을까.......
이렇게 후회하기 전에 알면 좋을것을...
이 편지.... 너가 읽을 수 있을까??
편지를 태우면.... 너에게 전해질까??
은수야, 사랑해....
언제나 너만을 사랑할거야. 나 믿지?
부디... 그곳에서 편히 쉬어.....
나... 정말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쉬렴....
Form. 너의 시연이가....
시연은 열심히 편지를 썼지만 써 내려가는 편지를 옆에서 읽으며
은수는 더 이상 시연과 함께 해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점점 마음만 더 아파올 뿐이었다.
…바보..... 난 이렇게 옆에 있는데.....
…매일 울면서 잘 지내긴 뭘 잘 지내......
…이제.. 난 너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는데....
…울지 말라는 한마디조차... 해줄 수가 없는데......
…너.. 힘들어 하는 거.. 아파 하는 거.. 보고싶지 않아...
…그러니까..... 잠시만.. 나 잊어.....
…나.. 잊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
…이번 생에서만... 나 잊고 살아줘....
…대신..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땐... 다시 내게로 돌아와야 해.... 응...??
…그렇게..... 해줄 거지......
…그렇지... 시연아.......
정성스럽게 편지를 쓴 시연이가 몇 번이나 다시금 내용을 살펴본 후
조심스레 접어 편지봉투에 넣었다.
보내는 사람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써넣고,
받는사람에 뭐라 써야 할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하늘나라에 있는 은수에게> 라는 글씨를 또박또박 적어 나갔다.
모든 준비를 끝낸 시연은 편지를 들고 은수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하늘과 가장 가깝게 가기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오는 것도.. 참 오랜만이구나….’
잠시 옥상을 둘러보던 시연이의 눈에 구석에 세워져 있는 돗자리가 보였고,
그걸 보자 또다시 작년 여름 밤 은수와의 추억이 떠오르는 시연이었다.
매년 여름 밤이면 피서를 가는 대신 옥상에 돗자리를 펴고 나란히 앉아
밤새면서 얘기도 하고, 밤하늘에 별구경도 하고 은수가 들려주는
별자리 얘기도 정말 재미있게 들었었다.
이렇듯 자신의 집 옥상만 해도 참으로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땐… 참 행복했었는데…..’
시연은 돗자리를 펴고 그 자리에 누워보았다.
그리고 바라본 밤 하늘에는 유난히도 반짝이는 별들이 많았다.
…바보… 아직 날씨가 많이 쌀쌀한데….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니…
시연이 누워있는 자리 바로 옆에 다소곳이 앉아서
걱정스런 마음에 잔소리를 늘어놓는 은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시연이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저게.. 북극성… 저쪽에 있는 별자리는… 천칭자리….
저기 저게.. 처녀자리….. 맞니 은수야?”
마치 옆에 은수가 있다는 걸 알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렇게 물어보는 시연이에게 은수는 열심히 답해주고 있었다.
…훗.. 바보.. 틀렸어…
…움직이는 건 별이 아니라 위성이라고 얘기 했었잖아!!
별자리를 맞춰보던 시연이의 눈에 또다시 맑은 물이 고였다.
“은수야…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거.. 정말이니?
넌… 저기 어디쯤 있을까…?”
그런 시연을 바라보는 은수의 가슴이 미어져왔다.
자신이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도무지 방법을
모르는 은수는 그저 지금의 상황이 안타깝기만 했다.
….나 여기 있어 시연아…
…바로… 네 옆에…. 여기 있어….
그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열심히 말해보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표현할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은수는 너무나 슬펐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바라보기만 해야하는 사랑이 이렇게나 마음 아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뼈져리게 느끼고 있는 은수였다.
한참을 누워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시연이가
일어나 앉아서는 편지와 성냥을 꺼내 들었다.
“은수야.. 나.. 너한테 편지를 썼어…
처음으로.. 편지라는 걸 써봤어… 지금 보낼 거니까…
꼭… 받아서 읽어봐야 돼… 알았지?”
‘이 편지가 부디.. 은수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잠시 눈을 감고 편지를 잡은 채 열심히 기도를 하던 시연이가
문득 성냥불을 켜고, 편지를 태워 밤하늘에 날려보냈다.
재가 되어 뿔뿔히 바람에 흩어지는 편지를 바라보는
은수의 눈에는 안타까움과 함께 슬픔이 가득했다.
다음날 아침……
어제 한참동안이나 밤바람을 쐬었던 시연이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얼굴은 붉게 상기된 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연아.. 약 먹었으니 좀 더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야..
일어나면 꼭 밥 챙겨 먹어라. 엄마가 오늘은 되도록 빨리 들어올게..”
아무리 다 큰 아들이라지만 아픈 아들을 집에 혼자 두고
일터에 나가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정은이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한 것도 아니고,
대학생이나 되는 아들녀석이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안나 갈 수 없었던
정은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수건을 한번
갈아 준 후 집을 나갔다.
어머니의 말씀에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하는 시연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여전히 옆을 지키고 있는 은수였지만,
정작 은수는시연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지켜보기만 할 수 밖에 없었다.
…바보처럼 감기나 걸리고….
…너 아프면 챙겨주고 신경 써줄 사람도 없는데 아프면 어떻게 하니…
…이젠 내가 너 죽도 못 끓여주고, 약도 사다 줄 수 없는데…. 아프지마..!!
은수의 걱정스러운 마음이 전달 된 것인지
문득 감겼던 시연이의 눈이 서서히 떠지고 있었다.
비록 아까 보다는 훨씬 안색이 좋아진 시연이 였지만
여전히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아픈 날 텅 빈 집안에 혼자 누워 있으려니
더욱 서러워지는 시연이었다.
언젠가 한번 많이 아팠을 때 자신을 간호해 주던 은수가 생각나
또다시 글썽이던 시연이의 눈물은 결국 참지 못하고 흘러 내렸다.
‘은수야 보고싶어….
이별한 사람을 잊는 시간은 그 사람을 만나온 시간만큼 아파해야 한다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더 많이 걸리기도 한다는데….
나.. 앞으로 10년이 더 지나도 너 못 잊을 것 같아..
너와의 예쁜 추억들이 너무나 많아서… 절대 잊고싶지 않아..
비록 그 기억들 때문에 내가 아프다 해도…
그렇다 해도… 널.. 잊지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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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산들바람
오늘은 여기까지...^^
시간 될때마다 조금씩 올릴게요.
지켜봐 주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