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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님과의 로맨스 [9] 안되나요

미니미니 |2004.09.17 13:55
조회 1,896 |추천 0

“...태민아 어떻게...”

 

 

하연은 태민 쪽으로 걸어가지도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늘 시험 끝나는 날이라..... 누나 놀라게 해주려고.....”

 

 

태민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뜻밖의 광경에 충격을 받은 듯 태민은 서서히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보았던 장면을 부정하기라도 하는 듯.

 

 

“일단 여기서 좀 나가자. 사람들이 너무 쳐다본다.”

 

미라와 수정이가 하연을 부축하며 손사래를 쳤다. 현재와 태윤은 태민이 서 있는 입구 쪽으로 말없이 걸어나갔다.

 

 

"태민아 일단 나가서 이야기하자. 내가 처음부터 설명할께."

 

태윤이 태민의 어깨를 잡으며 나직이 말했다. 태윤도 괴로운지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동생이 아주 오랫동안 하연을 사랑해왔다는 것을 태윤도 알고 있었다. 어리다고 해서 그 마음이 거짓은 아닌 것을 알기에 태윤은 마음이 아팠다.

 

 

".........형은 뭐야? 곤주 누나에게로 간 거잖아.... 왜 하연이누나한테까지 이러는 거야?"

 

 

"태민아... 우리!!..."

 

태민에게 다가서서 그 팔을 잡으며 말을 꺼낸 하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태민이 자신과 태윤의 손을 세차게 뿌리쳤다.

 

 

"그래... 나 비겁하지만 하연이에게 고백했고 그래서 우리 두 사람 사귀기로 했어. 미안하다."

 

 

"...........미안해? 그게 미안한 거야?............"

 

 

".............................................."

 

 

눈물이 가득 고여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태민의 눈이 하연에게로 향했다.

 

 

"누나는..........누나는 한번이라도 내 마음 생각해 준 적 있어?

 

형보다 내가 먼저 누나 알아봤고 형보다 내가 더 오랜시간 누나만을 생각했는데....

 

그저 누나보다 나이가 어려서, 형같은 어른이 아니라서 형만 생각한거야...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잔인해? 어떻게...."

 

 

"...........태민아..... 미안해......"

 

 

하연은 가슴이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지는 듯 했다. 태민의 말이 사실이었다.

 

그 마음이 진실인 것을 알면서도 외면했고 태윤을 보았다. 할 말이 없었다.

 

 

"........태민아 하연이 잘못이 아니야. 다 내 잘못이야......."

 

 

".............하.........집어치워!!!"

 

 

태민은 태윤의 손을 뿌리친 채 밖으로 뛰어나갔다.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간 태민은 태윤과 하연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빠르게 사라졌다.

 

주인을 잃은 헬멧만이 오토바이에 세워져있던 자리에 나뒹굴고 있었다. 하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헬멧을 주워들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더이상 알 수가 없었다. 태윤이 가만이 하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하연아 일단 집에 가자. 다음에 태민이가 좀더 진정되고 나면... 그때 우리 함께 얘기하고 이해를 구하자."

 

 

"...........미안. 지금은 도저히 네 얼굴을 볼 수가 없어. 용기가 나질 않아."

 

 

하연의 거부에 태윤은 온몸이 빳빳이 굳어오는 것 같았다. 곤주의 울부짖음도 민이의 원망도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연의 거부가 그를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괴롭게 했다.

 

 

"그래요, 태윤씨. 오늘은 하연이도 이것저것 충격을 많이 받았을테니 생각을 좀 정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좀 줘요. 우리가 집에 데려다줄테니 먼저 가보세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하연아,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께."

 

 

현재의 말에 태윤은 하연의 등을 보며 그 한마디를 남기고 뒤돌아서서 걸어갔다. 태윤의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하연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괜찮겠어? 우울한데 기분전환이나 하고 들어가지. 혼자 있으면 더 괴롭잖아."

 

집에 오는 내내 달래고 얼르고 하던 수정과 미라가 하연에게 말을 건냈다. 하연은 차에서 내리며 친구들에게 애써 웃어보였다.

 

 

"고마워.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쉴래. 나 괜찮으니 걱정말고 얼른 가봐. 오늘 방해해서 미안해."

 

 

"기집애, 서운하게 별 소리를 다 하네. 그래, 그럼 집에서 푹 쉬고 내일 보자."

 

 

하연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멍하니 앉아 벽을 보니 태민이와 데이트하던 날 찍은 사진과 태윤과 별장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렇게 상대방에서 주변 사람에게 상처주는 사랑이 과연 옳은걸까. 너무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라 결국은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는 것이 아닐까. 하연은 북받쳐오르는 슬픔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가슴앓이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서로 사랑하고 있는 두 사람인데.....

 

 

 

"하연아......"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아침 일찍 하연을 데리러 온 태윤이 하연의 딱딱한 얼굴을 보고 차에서 내렸다.

 

 

".......밤새 생각해봤는데 우리 당분간 거리를 두고 좀 지내자. 난 내가 행복한 것만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상처주는 거 너무 괴로워...."

 

 

"......................."

 

 

"..............그리고 너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많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

 

 

"......................."

 

 

하연의 손을 힘없이 잡은 채 듣고 있던 태윤이 하연의 등 뒤에 얼굴을 숙이고 파묻었다. 하연은 움찔하며 태윤의 숨결을 느꼈다.

 

 

"제발........그러지마...."

 

 

하연은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입을 틀어막았다.

 

 

"..........나 너 없이 충분히 고통스러운 긴 시간을 보냈다는 거 너 알잖아... 제발 그러지마...."

 

 

"..........................."

 

 

".......노력할께. 네가 슬프지않게 고통스럽지 않게 내가 노력할께. 그러니까 나를 밀어내려고 하지마. 내게서 멀어지지마, 제발....."

 

 

하연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뒤돌아서서 울고 있는 그를 안아주었다. 크고 강하던 그 태윤이 자신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다신 그런말 하지 않을께."

 

 

 

 

벌써 여름이 끝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다음주면 수강신청을 하고 2학기 등록을 해야했다. 4년간의 대학생활이 마지막 학기로 접어드는 시기였다.

 

 

곤주나 태민에게서는 어떤 연락도 없었다. 다행이라는 생각 반과 죄책감 반. 하연과 태윤은 고통스러웠지만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특히 하연에 대한 태윤의 마음씀씀이는 너무도 지극하여서 주변 사람들이 감탄할 정도였다.

 

 

"어떻게 저 고고하신 왕자님을 저렇게 길들인거야. 너 정말 대단하다."

 

 

요즘 수정의 입버릇이었다. 하연은 그런 태윤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평범한 연인이라면 정말 즐거울 시기인데, 그 일 이후로 좀처럼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자신 때문에 태윤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행복해도 되는 것인지 끊임없는 그 물음이 하연을 괴롭혔다.

 

 

 

"오늘은 몇시까지 할꺼야?"

 

 

"음~~ 11시쯤 갈까 하는데."

 

 

"그래, 그럼 11시에 데리러 올께. 핸드폰 밧데리가 없어서 전화는 못 받을지도 몰라. 급한 일 생기면 유진이한테 전화해."

 

 

저녁을 먹고 도서관에 바래다주며 태윤이 밴드 친구의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태윤은 하연의 손을 꼭 잡으며 살짝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는 연습실 쪽으로 걸어갔다. 하연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열람실로 돌아왔다.

 

 

요즘 부쩍 집중이 되지 않아 걱정이었다. 자리에 앉은 하연은 핸드폰도 끄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고개를 숙이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보다가 기지개도 켤 겸 고개를 든 하연은 열람실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을 보았다.

 

 

".........태민아!!"

 

 

하연의 뜻밖의 얼굴에 깜짝 놀라 그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쳐다보았지만, 다급한 표정으로 하연에게로 뛰어온 태민의 말에 하연은 시선조차 느끼지 못했다.

 

 

"누나 빨리 Y대 병원으로 가야해. 아저씨가 쓰러지셨어, 위독하시대."

 

 

"............!!!!!!!!!!.............."

 

 

 

정신을 차려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수없이 다짐하는데도 자꾸만 다리의 힘이 풀려서 잘 걸을 수가 없었다. 태민이 하연을 안다시피 해서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피를 흘리는 사람들, 애타게 의사를 찾는 사람들, 전기충격을 받고 있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그 아비규환을 뚫고 들어가자 하연의 아버지가 하얀 침대에 누워있었다.

 

 

한눈에도 호흡기를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아버지는 상태가 좋지 않아보였다. 거의 실신한 듯 넋을 놓고 있는 어머니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태윤의 아버지와 어머니.

 

 

하연은 입술을 세차게 깨물며 침대 모서리를 잡고 천천히 아버지에게로 다가섰다.

 

 

“아..아빠? 아빠... 아빠!!! 아빠!!!"

 

 

현실이 아닌 것 같았지만 명백한 현실이었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맛이, 하연의 옷자락을 잡으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현실임을 알게 해주었다.

 

 

“아.....아.....아니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아빠 빨리 일어나봐요. 아빠!!! 아니야!!!"

 

 

태윤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다 등을 돌려버리셨다. 태윤의 아버지가 하연의 머어니를 부축해 옆 침대에 눕히고 간호사를 불렀다.

 

 진정제를 맞은 어머니는 잠이 들고 하연은 침대 옆에 주저앉아 계속 눈물을 흘리며 아니라는 중얼거림을 되풀이했다.  

 

 

“누나, 제발 진정해.”

 

태민이 겨우 하연을 일으켜세워 의자에 앉혔다. 부들부들 떨며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한 하연을 태민이 옆에서 꼭 안고 있었다.

 

 

"하연아...."

 

 

태윤의 아버지가 하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지막히 불렀다. 하연은 태민의 부축을 받아 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함께 의자에 앉자 태윤의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떼었다.

 

 

"회사에 자금사정이 급박해져서 어제밤부터 고전분투했단다. 오늘 아침 일단락 된 이후에 계속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고 하더니 갑자기 쓰러졌어.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인한 뇌출혈이란다. 수술을 받긴 했지만 마취에서 언제 깨어날지는 의문이란다."

 

 

"...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건가요? 살 수 있는 거죠? 그렇죠, 아저씨?"

 

 

하연은 태윤의 아버지 옷자락을 잡고 애타게 물어보았다. 하연의 아버지 못지 않게 안색이 좋지 않은 태윤의 아버지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쩔 수가 없단다. 깨어나도 휴유증은 남을거라고........미안하다, 하연아....."

 

 

하연은 믿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나오다가 다 증발해버린 느낌이었다. 아빠에게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누나!!! 누나!!!!"

 

 

태민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리며 하연은 순간 정신을 잃었다.

 

 

 

 

"..........그래서 회사의 사정은 어때요? 자금은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고, 자신의 손을 강하게 잡고 있는 다른 손이 느껴졌다. 태윤이 자신의 옆에 와있었다. 조용한 것으로 보아 개인병실인 듯 했고 태윤과 그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연은 다시금 솟아나는 절망과 함께 그래도 태윤이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눈을 뜨고 싶었지만 천장의 밝은 빛과 너무도 큰 절망감이 자꾸 눈을 감겼다.

 

 

".......곤주 아버지가 자금줄을 풀어주지 않고 있어...... 곤주와 너 헤어진 모양이더구나. 그것도 작용한 모양이야."

 

 

"........!!!!!!.........."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던 곤주의 말이 하연의 뇌리를 강하게 쳤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저렇게 되신 것이..........

 

 

"......방법은 없어요?"

 

 

"회사의 주식을 하나로 통합해서 최대주주가 되면 자금유통이나 각종 일을 처리하는데 유리하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지금 회사 주식의 많은 부분이 하연의 아버지와 내게 양분되어 있어서 힘들어."

 

 

"................................."

 

 

"저번에 말했던 대로, 네가 하연과 결혼을 하게 되면, 네가 상속받을 부분과 양쪽 집안의 주식을 하나로 묶어 네가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단다."

 

 

".............!!!!!!!!!!!........."

 

 

하연은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눈 바로 위에서 강렬한 빛을 발하는 형광드을 보면서도 눈이 부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 저는...."

 

 

태윤이 말을 채 잇기도 전에 비명같은 태민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하연이 누나에게도 누나의 인생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리고 저도 하연이 누나를 진심으로 좋아해요. 아니 사랑해요. 저는 안돼요?"

 

 

".......그런 문제가 아니야, 태민아. 하연이와 너희 형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잖니. 그리고 너는 미성년이라 결혼을 해도 상속이 되지 않는단다."

 

 

"........아버지, 저는 하연이의 선택을, 그 아이의 인생을 존중해주고 싶어요.

 

하연이가 원해서 하는 결혼이라면 저도 행복하겠지만 단지 회사 때문이라면 부담주기도 싫고 강요하기도 싫어요."

 

 

"...아저씨........저 잘 생각해볼께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갑자기 일어나 앉은 하연의 목소리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아버지만큼이나 피곤하고 괴로워하는 아저씨, 안타까운 표정의 태윤과 태민.

 

 

하연은 갑자기 자신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삶의 무게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예요. 당신이 깨어나지 않을 때 마음 졸이던 것을 생각하면...."

 

 

하연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몸을 닦아주며 말을 건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동안 괴로워하셨지만 2주가 지난 지금은 오히려 초탈한 표정이셨다.

 

 

자신때문에 이렇게 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하연은 가슴이 많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아버지께서 깨어나신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했다.

 

 

"하연아, 피곤하지 않니? 2주 동안 한번도 편히 쉬지 못했잖아. 집에 가서 좀 쉬다 오지 그래."

 

 

하연의 아버지가 하연의 손을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말했다. 하연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아버지와 어머니도 태윤과의 일을 알고 있는 모양인지, 태윤과 하연을 안타깝게 보셨다. 매일 일과가 끝나면 밤늦게 태윤은 이것저것 사들고 바쁜 그의 아버지의 전언까지 받아서 병실에 오곤 했다.

 

하지만 하연은 마음이 정해질 때까지 태윤을 보지 않겠다고 그를 외면했고, 그런 하연을 태윤은 밤새워 병실 앞 의자에서 기다리다 새벽이면 돌아가곤 했다.

 

 

".... 네가 죄송할 게 무어있니. 아버지는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소중한 우리 가족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몸은 불편하지만 재활치료를 통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하니 기다리려고 한단다.

 

회사일도 태윤의 아버지에게는 미안하지만, 네가 잘 생각해서 결정했으면 좋겠단다."

 

 

"그래, 하연아. 엄마랑 아빠는 네가 태윤이랑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지만, 강요나 부담에 의해서 결정하지는 않길 바래."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에 하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2주 사이에 핼쓱해지고 생기가 없는 하연을 보며 부모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저 왔어요~ 오늘은 좀 어떠세요?"

 

 

어두운 분위기를 일시에 해소하기라도 하듯 태민이 그 부모님과 함께 활기차게 병실에 들어섰다.

 

 

 태민은 학교가 마치자마자 병원으로 다시 출근하다시피 하였다. 아직 학생이라서 저녁 쯤이면 집으로 돌아가곤 했지만, 하연에게 저녁도 먹이고 유일하게 웃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 어서오너라, 태민이. 너 보려고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었지."

 

 

하연의 아버지도 활기차게 웃으며 태민의 인사를 받았다. 어른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시자 하연은 말없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연을 보던 양쪽 부모님께 태민이 말했다.

 

 

"제가 나가볼께요. 나간 김에 밥도 같이 먹고 올께요."

 

 

"태민아, 미안하지만 오늘 하연이 집에서 좀 잘 수 있도록 해주겠니? 애가 2주 동안 잠도 거의 못자고 지금 상태가 말이 아니야. 아버지 퇴원하기 전에 쟤가 먼저 쓰러지겠다."

 

 

"...........네, 걱정마세요."

 

 

태민은 걱정스러운 표정의 하연의 어머니 손을 꼭 잡으며 씩씩하게 대답을 했다.

 

태윤의 아버지는 민망한 듯 이마를 짚고 있었고, 하연의 아버지도 어느새 1층으로 내려간 하연의 모습을 창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1층 정원으로 내려간 하연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추렸다. 어느새 가을이 오고 있는 듯했다. 2학기 등록과 수강신청이 끝났겠구나.

 

 

그토록 기다렸던 마지막 학기였는데, 친구들은 지금쯤 시험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텐데... 아버지가 깨어나셨을 때 이제는 더 원하는 것이 없다고 신에게 감사했지만 서운하고 서러운 기분이 이제 와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누나, 무슨 생각해?"

 

 

어느새 뒤로 성큼 다가선 태민이 자신의 윗도리를 걸쳐주며 말을 건냈다.

 

 

"그냥... "

 

 

하연은 힘없이 웃어보였다. 태민은 그 웃음에 마음이 아팠다.

 

 

누나는 그렇게 웃는 사람이 아니었잖아. 우울한 기분도 우중충한 날씨도 날려버릴만큼 환하게 밝게 예쁘게 웃는 사람이었잖아.

 

 

"밥 먹으러 가자, 누나~"

 

 

태민은 하연을 태워서 집으로 왔다. 일하는 아줌마에게 미리 부탁드려서 차려놓은 먹음직스러운 식탁으로 하연을 이끌고 있는데 부엌에서 태윤이 나왔다.

 

 

"민이 이제 오........."

 

 

태윤은 하연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은 하연의 손을 잡고 있는 태민과 하연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깊고 검은 그의 눈이 슬픔에 잠겨서 흔들렸다.

 

 

"왜 이렇게 말랐어... 잘 먹어야 간호도 잘하지. 많이 좀 먹어.

 

 마음 아프게 하지 말고...."

 

 

마지막 말은 속삭이듯 말해서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말을 마친 태윤은 태민의 어깨를 툭 치며 나갔다. 이윽고 차 시동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연은 서 있는 땅이 무너지는 것 처럼 그 음성이 슬펐다.

 

 

"나 술 한잔만 줄래?"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하연이 태민에게 말했다. 태민은 흠칫 놀라다 말없이 큰 잔에 블랜디를 따라주었다. 하연은 홀짝홀짝 그것을 마시며 태윤에게 띄엄띄엄 말했다.

 

 

"나......태윤이 많이 좋아하나봐. 태민이 너에게는 참 미안해........

 

 

하지만 곤주와 너를 이렇게 힘들게 하면서 태윤이를 좋아하는 건 나쁜 일인 것 같아.

 

 

나 때문에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거 알았을 때는 이 마음을 끊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어.

 

 

하지만 결혼이 회사와 집을 다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니 너무 무섭고 혼란스러워.

 

 

그냥 평범하게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하나씩 알아가고...

 

 

그렇게 그 사랑이 깊어지고 진해지면 함께 하고 싶다는 소망은 자연스레 생기는 거라 그렇게 생각했는데....

 

 

갑자기 무게를 알 수도 없었던 내 인생이 너무 버거워져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어.

 

 

너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나도 우습고, 마음 아프면서 그냥 웃고 마는 태윤과 너에게도 미안해.

 

 

나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나 어떻게 해야하지....."

 

 

술기운에 피곤이 더해졌는지 하연은 테이블에 엎드려 어느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태민은 하연을 조심스레 안아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다시 만났던 날, 하연이 누워서 잠들었던 그 침대에 하연을 눕히고 태민은 그 손을 꼭 잡았다.

 

 

"누나... 사랑해.... 나 정말 누나를 사랑해.....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었어...

 

 

누나를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 내게는 아직도 너무 힘들어....  

 

 

내가 누나 사랑하고 지켜주고 함께 하고 싶은데.... 나 어떻게 해야해....."

 

 

태민은 가만히 하연이 누운 침대에 자신의 머리를 묻었다.

 

 

 

 지난편에 이어 오늘도 내용이 좀 꾸물꾸물하죠? 저도 쓰면서 많이 우울했어요. 다음편 마지막 쯤부터는 내용이 다시 좀 밝아질 것 같아요.

 

오늘도 길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어떠셨나요? 잼있게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답글과 추천 많이 부탁드리구요 오늘도 화창한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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