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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사랑 그러나 아픈 추억의 사랑 ***

커피향 |2004.09.24 10:03
조회 645 |추천 0

** 위대한사랑 그러나 아픈추억의사랑 **사랑이 아름다울수록 운명은 혹독한 모양이다."안겔리키 스트라티고우"라는 할머니가 바로 그 주인공이 할머니는 이탈리아어로 "아모레 셈프레"(영원한 사랑) 라고 쓰여진 두통의 엽서를 가슴에 품고 숨을 거뒀다. 할머니가 숨지기 직전 한 말은 "티 아스페토 콘 그란데 아모레"(난 위대한 사랑을 안고 그대를 기다렸어요)1941년 8월 20살의 이탈리아군의 소위 "루이지 수라체"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북부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파트라이로 파견된다.어느날 행군을 하던 루이지는 집 앞에 앉아 있던 처녀 "안겔리키 스트라티고우"에게 길을 묻는 것으로 운명은 시작됐다.처녀의 크고 검은 눈이 매력적이었고 청년은 의젓하며 정이 많은 장교였다.보는 순간 둘은 서로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루이지는 길을 가르켜 준 처녀가 굶주림에 지쳐 있음을 눈치채고 갖고 있던 전투식량을 건네줬다.그후 루이지는 사흘이 멀다하고 먹을 것을 들고 그녀의 집을 찾았다.그 기간동안 루이지는 그리스 말을, 안겔리키는 이탈리아 말을 배웠다.짧았던 행복, 이 행복은 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하면서 끝난다.급히 귀국해야 했던 루이지는 안겔리키를 찾아 한번만 손을 잡게 해달라고 간청했다.그러나 적군장교와 사귀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볼까 두려워한 그녀는 끝내 거절했다.대신 "전쟁이 끝나면 결혼해 달라" 는 루이지의 청혼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전쟁이 끝난 후 루이지는 고향인 이탈리아 남부 렉지오 칼라브리아로 돌아갔다.그곳에서 루이지는 안겔리키에게 계속 편지를 띄웠다.둘이 처음 만날 당시 안겔리키는 고모집에 살고 있었다.조카가 적국의 남자와 연애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고모는 루이지에게서 온 편지를 중간에서 없애 버렸다.메아리가 없는 편지를 계속 보내던 루이지는 천 일째 되던 날 드디어 그녀를 잊기로 결심했다.루이지는 곧 결혼을 했고 아들 하나를 둔 평범한 삶을 살았다.그러던 중 96년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그의 가슴속에서 되 살아났다.루이지는 파트라이 시장에게 그간의 사정을 담은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로 인해 안겔리키 찾기는 시작됐다.드디어 파트라이 시장은 현지 스카이 방송사 기자들의 도움을 얻어 현재까지 그 도시에서 살고 있는 안겔리키를 찾아냈다."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요" 소식을 들은 안겔리키의 첫마디였다.안겔리키의 소식을 들은 루이지는 통한의 눈물을 한 없이 흘렸다.그녀가 60년전 옛날의 결혼약속을 여전히 믿으며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98년2월 성바렌타인데이, 둘의 감격어린 재회는 드디어 이루어졌다.파트라이를 방문한 루이지는 또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안겔리키에게 청혼을 했고 그녀은 벅찬 가슴으로 받아드렸다.결혼식은 다음해 1월23일, 두 사람은 1년의 절반씩을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지내기로 약속했다.2번째 청혼을 할 때 루이지는 77세였고 안겔리키는 79세의 나이였다.그러나 두 사람의 달콤한 계획은 안겔리키가 앓아누은 끝에 혼자 훌쩍 하늘나라로 떠나면서 꿈이 되어 버렸다.그 때가 결혼식을 2주일 앞둔 9일 이었다.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한 루이지는 안겔리키의 죽음을 모르고 있었다.주변에서 루이지가 받을 충격을 염려해 비밀로 부쳤기 때문이다.결혼식도 안겔리키의 피치못할 사정으로 연기된 것도 안다.언젠가 결혼할 날을 기다리며 루이지는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펜을 들어 받을 수도 없는 안겔리키에게 엽서를 쓴다."영원한 사랑" 으로 끝나는 엽서를..........그 절절한 사연이 담긴 엽서는 그녀의 무덤 앞에 쌓이고 있었다.누구나 기억 한편에 넣어놓고 허물어내지 않는 추억 하나 끌어안고 살듯이 되내고 또 되내어도 마음 상하지 않을 그리움 하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이겠지요. 때론 이유 없는 따스함으로.. 때론 까닭 모를 서러움으로.. 불러보고 또 떠올려 볼 그리움 하나 가슴에 담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요..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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