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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28. 식구 수가 많을 수록 빨리 돈 버는 이민생활?

무늬만여우... |2004.10.05 05:28
조회 3,057 |추천 0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지만, 옷가게를 주업종으로 하거나 야채가게를 하거나 하는 이민자가 많은 나라에서의 이민 생활은 식구 수로 그 집이 흥하고 망하고의 속도를 가늠하게 한다.

딸 부잣집은 꼬세집(바느질 집)을 하면 돈을 많이 벌었는데, 일명 '달려라 삼천리' 라고 하는 옷을 만드는 집이다. 모든 식구들이 다 들러붙어서 재봉질을 하면 그 일한 만큼 돈을 버니 식구가 적은 집보다 일하는 손이 많으니 일찍 돈을 버는 것은 당연지사다. 작은 규모의 옷 공장이 되는거다.

그런 일을 직종으로 가진 집은 모든 식구가 나이가 많건 적건, 모두 재봉틀에 들러붙어서 일을 했다. 학교 다녀와서도 재봉질을 해야했고, 나이가 적은 아이들은 하다못해 실밥이라도 쪽가위로 잘라주는 시다바리를 했다. 그렇게 몇 년 고생하며 온세에 가게를 내고, 또 나중에 새로운 상가를 떠오르는 '아베쟈네다' 거리에 가게를 내곤 했는데, 역시 식구들이 똘똘 뭉쳐서 서로 도와주는 그런 집은 금방 일어났다.

그래서 딸이 결혼을 하게되면 사위를 끌고 오느냐, 며느리를 우리집 사람으로 부려먹느냐로 신경전을 벌이는 집들도 봤다. ㅎㅎ 나중에 사둔 양쪽 집이 서로 힘을 합해서 잘 사는 이쁜 모습도 많이 봤다.

아들이 많은 집들은 야채가게 내지는 과일가게를 많이 했드랬는데 새벽에 아들들이 큰 야채 도매시장에 가서 무거운 감자며 고구마, 호박, 과일등을 자루째 사오면 그걸 이쁘고 깨끗하게 정리를 해서 팔았다.

어른들은 아무래도 언어 습득이 느리니 주로 아이들이 애어른이 되어서 통역도 해야했고, 서류처리며 가게일로 바빠서 평일엔 서로 어울려 놀거나 공부만하는 아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가게를 안하는 일요일을 무지 기다리고, 토요일 저녁은 축제분위기였다.

아르헨티나에 가보면 과일 가게가 너무 이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 사온 과일들을 질서정연하게 정리를 해서 진열을 해놓는데, 어찌나 이쁘게 해놓는지 가서 그 이쁜 진열의 모양새를 망칠까봐 사오기가 미안할 정도다.

어쨌든, 그 당시 서로 모여서 우스갯소리 반 진담 반으로 사람들은 식구 수가 많은 것을 은근히 부러워했고, 자식들이 아이를 많이 낳는 걸 권장하는 추세였다. ㅎㅎ

누구네 집 딸이나 아들이 몇 명 이럼 바로 인력을 먼저 떠으르게 되니 아직도 난 그 꼬세집이나 야채가게를 하던 그 시절 이민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우리랑 같이 양봉 2차 이민으로 오신 친하게 지내는 집도 아직 양봉을 시작 안한터라 모든 식구들이 알마센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했는데 그 집은 주로 막내 딸이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오빠 둘은 물건을 사오거나 진열하고, 휘암브레리아를 맡거나 야채 쪽을 맡아서 했기 때문이다.

항상 그렇듯이 또라이 짓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동네에서 항상 꼬레아노(한국인)라고 무시하고 말썽 피우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날따라 그 집 딸내미 혼자서 가게를 보고 있었댄다. 그 동네 녀석은 옳다 싶어서 시비를 걸었고, 싸움이 일어났다. 한국 여자애들이 화나면 무섭다고 움츠려드는게 아니라 더 용감해지는걸 모르는 이 녀석은 싸우다 총으로 쏴죽이겠다고 위협을 했다.

이 아가씨도 총의 위험을 잘 모르는 이민초기였고, 그 동네넘이 진짜로 총을 가지고 나오리라곤 생각을 안했을꺼다.
그 넘은 마약을 했는지 흥분을 하며 들어가서 총을 갖고 나왔고, 그 아가씨를 향해서 두 발을 쐈는데 다행히 한 발은 빗나갔고, 한 발은 다리를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 여학생은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고, 그 넘은 도망가버렸다.

나중에 그걸 안 오빠들이 그 집에 찾아가서 반죽여놨다고 했다. 다른 아르헨티노라면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그런 식으로 풀겠지만, 아마 그 집은 직접 찾아가서 응징을 했나보다.

그 사건은 우리 아는 사람들끼리 커다란 충격이 되었고, 한동안 총에 대한 에피소드가 돌아다녔다.

랑 친구였던 한 사람은 술마시고 차를 끌고 가는데 너무 쉬야가 마려웠댄다. 참다가 참다가 너무 마려워서 주유소 한 쪽 옆에 차를 세우고 실례를 하는데 뒤에서 경찰이

"손들어" 라고 외쳤단다.

이 사람 나오던 쉬야는 멈추지 않고 손은 들었고, 자기 모양새가 참으로 우스웠다고 하며 말은 하지만 그 때 당시 수배되던 차량하고 비슷한걸 몰고 다녔기에 당했던 그 일이 진땀나게 했댄다.

그래서 난 그 랑 친구가 놀러오면 외쳤다. ㅋㅋ

"손들어~!!"

"어휴~! 제수씨 그 일은 고마 잊으소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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